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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82화 (82/128)

육군 대위 귀환하다 082화

21. 죽은 자들의 세계(4)

그들이 아는 지름길을 따라 세 시간쯤 걸었을까, 선두를 걷던 안이슬이 손을 뻗어 신호를 보냈고, 파티원들이 전부 멈춰섰다.

“애송이들. 여기가 우리가 주로 이용하는 사냥터의 초입부다.”

전방에 보이는 것은 우리가 처음 떨어졌을 때와 비슷한 모습의 열대우림이었다.

“가끔 상위악마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대부분 일익마들이니 조심만 하면 안전하게 복귀할 수 있을 거야. 자자, 다들 준비하자고! 오늘은 그래도 인당 세 마리씩은 잡아가야 하지 않겠어?”

그녀의 파이팅 넘치는 명령에 각 파티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가방에서 무기를 꺼내 들었다.

한태휘는 애초에 지급 받은 검을 들고 있었고, 나와 손나연은 그 모습을 멀뚱히 바라봤다.

“어이, 너넨 뭐하냐? 무기 안 꺼내 들고. 우리 뭐 하는지 안 보여?”

창 든 사내가 다가와 말했다.

시선이 내가 멘 가방을 향해 있는 게, 우리가 무기를 사용하는 줄 알았나 보다.

“저 말씀이십니까?”

“그래, 인마. 맨손으로 그렇게 얼빠지게 서 있다가 공격받으면 그냥 뒤지는 거야. 너도 알다시피 여기서 죽으면 다음 세상은 없어. 그냥 소멸이라고.”

허어- 아까 영혼석으로 내기할 땐 언제고, 그래도 신입이라고 걱정된다는 건가?

“우린 걱정하지 마십시오.”

“뭬야?”

“주먹으로 싸울 거니까.”

“허- 미쳤군.”

창 든 사내가 헛웃음을 들이키며 한소리 하려 하자, 뒤에서 안이슬이 다가왔다.

“야. 냅둬, 그냥.”

“응? 왜.”

“교관들의 교육방식도 우습게 여기는 대단하신 신입분들인데, 어련히 알아서 잘하시겠지.”

“그래도 창 든 놈들을 주먹으로 잡겠다니……. 악마 무서운 줄을 모르고. 하긴, 뭐. 뒤져도 내 책임 아니니까.”

명백하게 비웃는 어조였다.

거기에 더해 안이슬은 한태휘를 불러세워 군기까지 잡았다.

“야, 신입.”

“네……? 네!”

“너 쟤네보다 못하면 앞으로 국물도 없다! 알겠어?”

“그…… 그게.”

한태휘는 분명 알고 있었다.

내 신체 능력이 사실 한계치에 다다랐다는 것과 손나연이 그 자리에서 1영혼석 200개를 신체 강화에 때려 박았다는 사실을.

방에서 쓸데없이 입 놀리지 말아달라 부탁했는데, 나름 입이 무거운 친구인가 보다. 이들이 전혀 모르는 것 보면.

그는 나를 한번 힐끔 보더니 개미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노, 노력해 보겠습니다.”

“노력은 개뿔. 하여간 이번 신입들은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들어. 패기도 없지, 싸가지도 없지. 쯧쯧.”

“……죄송합니다.”

난 쓸쓸히 고개를 숙이는 신입을 향해 가볍게 미소 지어줬다.

그러자 그가 눈을 슬쩍 피한다. 왠지 그녀보다 나를 더 무서워하는 느낌이다.

***

이들의 사냥방식은 간단했다.

순찰조 한 명이 나서서, 일익마를 유인해 온다. 다가온 놈들을 남은 인원이 매복해 있다가 한꺼번에 잡는다.

RPG 게임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은 아! 하며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먼저 내가 시범 보여주지. 애송이들. 잘 보고 따라 해라.”

안이슬이 검을 몇 번 휘둘러보더니 창 든 사내에게 눈짓을 줬다.

“뭐, 내가 하라고?”

“네가 제일 잘하잖아. 빨리 유인해와.”

“X벌, 저번에도 내가 했잖아! 이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

“쓰읍- 사냥 나오면 파티장 말에 토 안다는 거 잊었어? 대신 잔여 영혼석 더 챙겨줄게.”

“제기랄 놈의 파티장. 그래서 몇 마리?”

“세 마리 이하로. 이왕이면 한 마리.”

“후우- 오케이.”

창 든 사내가 긴장된 듯 떨리는 목소리로 한숨을 내쉬더니 조심히 출발한다.

안이슬은 그 모습을 바라보더니 한태휘를 옆으로 불렀다.

아까부터 표정이 굳어 있는 게, 첫 사냥에 공포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이봐. 신입.”

“네, 넵!”

“긴장 풀어. 우리 베테랑이니까 걱정 말고.”

“아…… 알겠습니다.”

그녀는 신입의 어깨를 두들겨 주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잘 들어. 사냥은 무조건 안전이 최우선이야. 이 정도 전력에 이익마 이상의 악마나, 일익마들 뭉텅이로 만나게 되면, 다 뒈지는 거지. 그러니 유인할 때도 놈들의 날개 수를 꼭 확인해야 해. 절대 유인조를 제외하고는 숲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되는 거고. 알겠어?”

“넵!”

“쉿- 조용히 대답해. 너한테만 특별히 알려주는 거니까.”

“그, 그렇습니까?”

미안하지만 다 들린다…….

그녀의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뻔했다.

나와 손나연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겠다는 걸,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마치 이것 보란 듯이. 주제도 모르고 교육을 포기하니까 그런 꼴을 당하는 거란 듯이.

“와- 더는 못 봐주겠네요. 정말 유치해서.”

출발 전부터 참고 참았던 손나연이 결국 폭발했다.

“별것도 아닌 거에 신경 쓰지 마라.”

“웃기잖아요. 무슨 태휘한테 국물도 없다느니, 패기가 없다느니. 보니까 겨우 일익마 한 마리 유인해 오라 시켜놓고는. 참 기도 안 차서.”

“네가 참아. 어린 나이에 죽어서 생전에 제대로 배우지 못했나 보지.”

“아무리 못 배워도 그렇죠! 요즘 중고등학생들도 얼마나 개념 있는데!”

손나연은 들으라는 듯 소리쳤고, 나도 굳이 목소리를 낮추진 않았다.

아니, 속으로 그녀가 나서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한참 한태휘를 교육하던 안이슬은 그 말을 제대로 들었는지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야. 너네.”

그녀가 우리에게 험상궂은 표정으로 다가왔고, 손나연이 맞대응했다.

“왜요!”

“방금 그 말 나한테 한 소리야?”

“그럼 여기에 그쪽 말고 또 누가 있어요?”

손나연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안이슬이 눈을 부릅떴다.

“하- 너희가 드디어 미쳤구나? 주먹으로 싸운다고 지랄할 때부터 미친 건 알았다만, 이 정도로 돌은 줄은 몰랐네?”

“저 정상이거든요? 누가 봐도 사사건건 트집 잡으면서 엿멕이려고 하는 속내가 뻔히 보이는 데 참고만 있어야 하나요? 그쪽이 뭐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면 몰라.”

“흐응- 그러는 넌 뭐,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니? 기껏해야 신입 주제에!”

“사람의 인격을 논하는 건데, 갑자기 신입 문제가 왜 나오죠? 진짜 못 배운 티가 나시네요.”

그녀들의 눈이 서슬 퍼렇게 빛났다. 당장 머리카락이라도 쥐어뜯을 기세였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내뱉은 말들에 주변 파티원들은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을 뿐이었다.

“정말 죽고 싶냐? 신입?”

결국, 안이슬이 먼저 검을 겨눴다.

쌍심지를 켜고 말싸움을 하던 손나연이 주춤했다. 그러더니 나에게 배운 스텝 자세를 취하며 앙증맞은 주먹을 내민다.

“이…… 이건 정당방위에요. 죽어도 몰라요?”

“참- 이젠 귀엽기까지 하네. 어디 죽여봐. 죽일 수 있으면.”

일촉즉발의 상황.

하지만 그 상황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저 멀리서 인기척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제기랄! 도망쳐어어어!”

어딘가 다급해 보이는 목소리.

순찰조 사내가 창을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맨손으로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뭐, 뭐야? 저 새끼 왜 저래?”

“뭔데, 뭐 잘못된 거야?”

당황하는 안이슬과 술렁이는 그녀의 파티원들. 그들은 신속하게 무기를 들어 만약의 상황에 대비했다.

그러나 곧이어 벌어진 상황에 그들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끄어억!”

기이하게 생긴 삼지창이 순식간에 사내의 심장을 뚫고 튀어나와 버린 것이다.

“꺄아악!”

그 잔인한 모습을 본 손나연이 눈을 질끈 감고 비명을 질렀다.

사내는 작살에 꿰뚫린 생선마냥 펄떡거리며 천천히 들렸고, 그의 뒤엔 묘하게 웃고 있는 것 같은 시커먼 악마 한 마리가 보였다.

심신이 약한 사람이 봤다면 심장마비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공포스러운 모습.

그 악마의 날개는 총 세 쌍이었다.

이곳에 떨어진 후 처음 보는 삼익마(三翼魔).

일익마, 이익마와 똑같이 생겼는데, 날개 한 쌍만 더 달려 있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스피드와 힘은 그들과 궤를 달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순찰조 사내는 모래로 화해 부스스- 떨어졌고, 놈은 다음 목표를 가늠이라도 하듯 창을 우리에게 겨눴다.

***

한태휘는 아까부터 이 상황이 불편했다.

쉘터 간부와 신입 남녀 사이에 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평소 본인의 성격이었다면 쉘터 간부에게 붙어 각종 아양을 떨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분명 있었다.

저 신입 남자.

처음 쉘터장과 함께 만났을 때, ‘강 현’이라는 이름을 듣고는 긴가민가했다.

지구에서 그 이름 두 글자를 모르는 자는 없었으니까. 그래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흔치 않은 이름이긴 한데, 동명이인일 확률이 높지. 아무렴 KH의 단장이 죽었을 리가 없잖아.’

그러나 그 생각은 그들과 함께 고양이 상점에 간 기점에서 곧바로 무너졌다.

세상에 상점 제작자의 한계를 넘어선 신체 능력이라니.

이곳에 처음 발을 들인 그가 봐도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거기에 계속 단장님, 단장님 거리면서 따라붙는 예쁜 누나.

혹시나 싶어 물었다.

“무슨, 과거에 헌터 집단이라도 운영하셨던 겁니까?”

“잊었나. 과거에 관해 묻는 건 이곳에서 금기라는 걸.”

그의 대답에서 거의 확신했다.

경험상 대답을 회피한다는 것은 그 사실을 인정한다는 거다.

그리고 알았다.

저 남자는 자신의 신분이 밝히는 걸 원치 않고 있으며, 나와 크게 엮일 생각도 없다는 것을. 그리고 곧 이곳을 뜨겠다는 사실도.

옆에 있는 누난 KH 단원이겠지.

그럼 그녀도 S급 헌터였단 말인데…….

자연스럽게 주눅 들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그들은 본인과 태생이 다른 존재들이라 생각했다.

본인은 천민, 그들은 귀족, 아니, KH면 거의 왕족이다. 그가 지구에서 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못할 일이 없었으니까.

곧이어 남자가 상점에서의 일을 떠벌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할 때는 협박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사실 알게 모르게 들은 그에 대한 소문이 있다. 그의 신경을 거슬린 대기업 자제들의 팔을 하나씩 다 뽑아버렸다는 얘기.

실로 극악무도하지 않은가. 마음에 안 든다고 생사람의 팔을 뽑다니.

‘입 잘못 털다간 황천길 갈 수도 있겠어. 아, 여기가 황천길이지……. 입단속 잘하자.’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쉘터 인원들이 그들을 배척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잘못하다간 큰 초상을 치를 수 있겠다 싶어, 지구 이야기를 꺼냈다.

그들이 범상치 않은 존재라는 것만 각인시켜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헌터’가 뭔지도, ‘불의 종족’이 어떤 놈들인지도 몰랐다.

혹시 따른 차원에서 넘어온 것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었으니 말 다 했지.

특히나 ‘지구’ 이야기에 경기를 일으키는 그들에게 정황을 설명하는 건 KH에 입단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지내다 나온 첫 사냥.

그는 사실 일익마 사냥 따윈 긴장조차 되지 않았다. 선배들이 오줌 지리지 말라고 겁을 줘도 웃어넘겼다.

현 지구에서는 베테랑 헌터와 함께 균열 속으로 같이 들어가게만 해준다면 수억 원을 지급하겠단 자들도 있는데 무서울 리가 있나.

그것보단 저 안이슬이라는 여자 때문에 살얼음을 걷는 기분이었다.

자꾸 그들의 신경을 건드리는 그녀가 원망스러웠다.

저들이 폭발하는 게 일익마 수백 마리보다 더 무서울 것 같았다.

그렇다고 강현 쪽에 붙자니, 그들이 떠난 후의 후환이 두렵다.

그가 저승 생활을 책임져 주는 건 아닐 테니까. 정말 총체적 난국이었다.

특히, 안이슬이 그 누나한테 칼을 겨눴을 땐 심장이 멎을뻔했다.

당장에라도 그녀의 팔이 뽑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지 않은가. 그러나 다행히도 상황이 종료됐다.

악마 한 마리가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날개 세 쌍의.

“미, 미친 삼익마야! 도망쳐야 해!”

안이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이미 남은 파티원 세 명은 저 멀리 도망가고 있었고, 그 누나는 강현 옆에 슥- 달라붙어 있었다.

‘난 어째야 하지? 도망가야 하나? 아니면…….’

결국, 한태휘도 누나를 따라 남자 옆에 은근슬쩍 붙었다.

무섭지만 지금 상황에선 제일 안전한 곳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의리 없는 새끼들! 지들만 살겠다고!”

안이슬이 칼을 내팽개치고 쏜살같이 달리려 했다. 그러나 곧이어 우당탕- 하고 바닥에 넘어졌다.

한태휘는 분명히 봤다. 저 사내가 그녀의 발을 슬쩍 거는 것을. 그녀도 바보가 아니었기에 어떤 상황인지 금세 알아차린 것 같았다.

“이런 미친! 무슨 짓이야!”

“어딜 그리 급하게 가시려고 그러나? 네 친구가 날개 세 쌍짜리 초특급 선물을 가져왔는데.”

“미쳤어? 당장 튀어야 해. 저건 우리 쉘터 전원이 달라붙어야 겨우 상대해 볼 만한 놈이라고!”

“글쎄. 난 오익마를 잡을 생각인데, 겨우 삼익마 따위한테 도망치면 쓰나.”

“……이, 이 미친놈아……. 이젠 늦었어.”

삼익마가 괴상한 소리를 내지르며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 도약했고, 안이슬의 표정은 울상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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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VIP 상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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