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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81화 (81/128)

육군 대위 귀환하다 081화

21. 죽은 자들의 세계(3)

소녀의 교육이 끝난 후, 무술 수업이 시작됐다. 교관은 처음 보는 털 수염 사내와 그래도 안면이 있었던 정태경.

그들이 우리에게 교육이랍시고 알려준 것은 검술과 궁술, 그리고 창술이었다.

한태휘는 어리바리하게 따라 하는 것 같았고, 손나연은 그래도 어느 정도 흉내는 내는 수준. 그러나 내 눈엔 교관들도 이들과 별다를 바 없어 보였다.

엉성한 자세.

부정확한 궁술.

비효율적인 힘의 전달.

처음 접해보는 내가 봐도 주먹구구식으로 느껴질 정도의 커리큘럼.

애초에 100여 명도 안 되는 인원이 모여 있는 쉘터다.

규모도 작거니와, 겨우 이익마 몇 마리에게 쩔쩔매는 집단에서 제대로 된 기술을 익히고 있는 자가 있을 리 없었다.

어디서 주워들은 거로 대충 알려주는 거겠지.

결국, 양해를 구하고 도중에 단칸방으로 복귀했다. 잘 따라 하고 있었던 손나연도 데리고.

나름의 돌발상황이었지만 교관들은 쉽게 수긍했다. 어차피 교육받는 것 또한 선택사항일 뿐, 그들이 강제할 권리는 없었으니까.

“갑자기 무슨 일이신데요. 단장님?”

손나연은 내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표정이었다.

“저런 기술 익혀봐야 하등 쓸모없다. 저들이 닳고 닳은 베테랑도 아닐뿐더러, 애초에 놈들을 상대할 때 거창한 기술 같은 건 필요 없어.”

“그…… 그래요?”

“어차피 이곳에서의 싸움은 힘과 힘의 싸움이다. 우리는 사람을 상대하는 게 아니라 괴물을 상대하는 거야. 기술보단 신체 강화와 스킬 숙련도에 중점을 둬야지.”

지구에 있는 헌터들 중 무술을 연마하는 사람은 없다. 오직 각성 능력 사용에만 초점을 두며, 그것만으로도 본인의 가치를 입증할 수 있다.

나 역시 여태껏 괴물이나 사람을 잡으면서 제대로 된 무술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간단한 주먹 뻗는 동작으로도 모든 것이 해결됐으니까.

그저 회전을 실어 온전히 힘을 담을 수만 있으면 된다.

“거기서 시간 낭비할 바엔, 그냥 나한테 배워라.”

“직접 알려주시려고요?”

그녀가 눈을 빛냈다. 왠지 모르게 아까 교육 때보다 더 기대하는 것 같았다.

“그냥 간단하게 힘 싣는 동작만.”

“감…… 사합니다. 영광이에요. 세계 최강이었던 분에게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니…….”

“거창한 걸 알려주려 하는 게 아니다. 그냥 능력으로 압도하면, 상대가 느려 보이게 돼 있어. 그저 느리게 움직이는 놈들의 약점에 주먹만 꽂아 넣으면 돼. 나중에 해보면 무슨 말인지 알 거야.”

“그…… 렇군요!”

손나연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녀의 상태는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곧이들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좋은 현상이다. 교육자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빠른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

“일단 제일 먼저 배울 동작은 스텝이다.”

“스텝……!”

난 몸에 힘을 푼 후, 가벼운 복싱 스텝 시범을 보여줬다.

기초적인 스텝과 허리에 회전을 넣는 스트레이트 그리고 훅까지만 알려줄 생각이었다.

그 이후엔 오로지 고양이를 통한 신체 강화와 스킬슥듭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내 생각엔 그게 그녀의 능력을 단기간에 끌어올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손나연은 10분도 안 돼서 곧장 잘 따라 했다. 자세가 어색하긴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건 반복 숙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거니까.

“익숙하다고 느껴질 때까지 쉬지 말고 반복해.”

“아, 알겠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 역시 천천히 호흡을 다스렸다. 불의 능력을 숙련시키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점검할 생각이었다.

먼저 「아베르노」의 존재. 인도자에게 들었던 미지의 세계는 이곳이 아니었다.

이곳은 그저 「아베르노」에 입장하기 위한 관문.

그리고 난 당연히 그곳에 입장할 생각이다. 희망조차 없었던 저승에서 겨우 알게 된 부활의 실마리니까.

물론, 그곳에 대한 공포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인도자가 겁을 주기도 했고 무엇이 존재하는지, 무엇을 위한 공간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공포심보다는 불의 종족에 대한 분노가 더 컸다. 놈들은 가만히 있는 인류를 공격했다.

또한, 평범했던 내 삶을 균열 속으로 던져 넣었고, 많은 이들에게 절망과 공포를 선사했다.

특히 총사령관.

간섭 한 번으로 날 저승으로 보내버린 존재. 내 노력을 단숨에 물거품으로 만든 존재.

놈의 면상에 주먹 한번 꽂아 넣어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삶에 대한 미련?

그런 건 없었다. 이곳은 내 눈앞에 존재하는 분명한 사후세계다.

소녀 교관이 말하길,

꿈이 없는 공간.

악마들로 인한 원색적인 공포가 가득한 공간.

본능적인 생존만 존재하는 공간.

선행과 악행의 구분이 없는 공간.

영혼석이 모든 행동의 ‘정의’가 되는 공간.

여러 가지 말로 표현했지만, 내가 느끼기엔 지구에서의 삶과 다를 바 없다. 현 지구도, 결정체가 ‘정의’가 되어가고 있었으니까.

‘우선 생각해보자. 「아베르노」에 가기 위해선 VIP 상점을 열어야지.’

VIP 상점에 입장권이 있다.

그리고 그 상점을 열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은 영혼석을 모으는 것이다. 그것도 엄청 많이.

이왕 넘어갈 거면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다 얻은 후 넘어갈 생각이었다.

「아베르노」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고, 향후 불의 종족을 상대할 때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문제는 ‘오익마’였다.

놈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도 해야 한다.

일익마와 이익마의 수준 차이는 나로선 별 차이를 못 느꼈지만, 고양이가 제시한 영혼석 교환 액수는 경각심을 절로 일게 했다.

4영혼석 999,999개 ↔ 5영혼석 1개

사익마 100만 마리를 잡아야 놈과 비등하다는 말이다. 그 수준이 얼마일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구역의 중앙에 있다는데, 이곳의 위치를 모르니 방향을 잡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아메리카 대륙 만한 공간을 이 잡듯 뒤집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즉, 안내자가 필요하다는 말인데…….’

***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좁은 단칸방에서 지내는 인원은 나와 손나연, 그리고 한태휘.

그에게 물으니 첫날은 케어 차 좋은 방에서 묵었다지만, 그다음 날부터는 가차 없이 신입 전용 방에서 보내라 했단다.

그리고 쉘터가 지닌 신입들을 위한 방은 이곳뿐이란다.

불만을 가진 손나연이 간부들에게 물어봐도 들려오는 대답은 ‘한 달 후 정식 회원이 되기 전까진 그곳을 이용해야 한다’라는 답변뿐이었다.

그 이후 항상 맞은편에서 쪼그려 자던 그녀가 내 옆으로 옮겨와서 잠을 청했다.

자연스레 그 자리는 한태휘의 자리가 되었다.

그는 아침에 나가서 밤늦게 들어왔다. 들어보니 교관들에게 착실하게 지도받고 있다 했다.

특이한 점은, 더 이상 우리에게 살갑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 말없이 들어와 잠만 자고, 아침이 되면 인사도 없이 나갔다.

나는 오히려 그 점이 편했다. 불필요한 정을 붙이지 않아도 됐으니까.

난 그동안 손나연의 수련을 도우며, 오익마에 대한 정보를 알아봤다. 그러나 알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아, 그게 나도 잘 몰라서…….”

“쯧, 알아서 뭐하려고. 그런 건 알아봐야 쓸데없는 정보야.”

“죄송합니다. 사냥 출발해야 해서.”

“그런 실없는 질문 하지 말고, 신입은 신입답게 교육이나 받게.”

이곳에 있는 자들은 ‘오익마’에 대한 기피증이라도 있듯 대답하기를 꺼려 했다.

오직 우연히 만난 소녀 교관만이 남다른 답변을 해줬다.

“이곳에 알고 있는 자는 거의 없을 거야. 뭐, 간부들이나 쉘터장들이라면 알 수도 있을 텐데. 아마 가르쳐주진 않을걸? 몇 번 가르쳐 준 적 있었는데, 다 오익마 잡는다고 떠났다가 돌아오지 않았거든. 쉘터 입장에선 엄청난 손해지.”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아마 쉘터장이 알고 있는 사람들의 입을 다 막아놓았을 거야. 생각보다 쫀쫀한 양반이거든 그 사람.”

그녀는 그런 식으로 자신 또한 모른다는 것을 어필했다. 나 역시 모른다는 사람을 계속 취조할 생각은 없었다. 본인이 직접 안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아, 그나저나 너희 무술 교육 안 받는다 했다며?”

“그렇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어떻게 알긴. 이 좁은 곳에서 소문 하나 안 날까. 건방진 신입들이 들어왔다고 말들 많더라고. 뭐, 나야 그런 거 신경 안 쓰니 걱정하지 말고. 그러게 애초에 나처럼 잘 가르쳤어야지. 호호.”

아, 그것 때문이었나?

그래서 요즘 들어 한태휘도 말을 걸지 않는 것일 테고. 하긴,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일 테니.

왕따나 은따 또한 번번히 일어날 거다. 난 별 관심 없었다. 어차피 그저 잠시 머무는 곳이니.

***

손나연은 스텝을 다 떼고 이제 스트레이트 진도를 나가는 상태. 슬슬 시간이 아깝다 느끼는 찰나,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첫 사냥을 나간다는 소식이었다. 물론, 그 소식은 기분 좋게 다가오지 않았다.

우리 앞에 나타난 사람은 이곳에 와서 처음 보는 20대의 여성 간부였다.

이름은 안이슬.

아침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사냥만 다닌다고 해서 별명이 ‘사냥귀’인 그녀는 우릴 보자마자 툴툴댔다.

“거기 건방진 신입들. 빨리빨리 안 와?”

해도 뜨지 않은 새벽.

그녀는 신입들을 소집했고, 다짜고짜 원정사실을 알렸다.

한태휘의 말에 따르면, 간부 중 한 명이 우리의 교육 불참에 불만을 품었고, 한 달의 교육 기간 없이 바로 원정 갈 것을 건의했다고 한다.

그 간부가 저 여자인 것 같았다. 나에겐 무척이나 고마운 여자다.

“출정은 항상 해뜨기 전에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일익마 두 마리라도 건지고 복귀하지. 늦게 출발하다 잘못하면 그곳에서 밤을 지새워야 할 수도 있는데, 그럼 회원들의 안전은 누가 책임지지?”

그녀는 사전에 말도 없이 불러놓고, 우리가 준비도 없이 나온 것에 대해 약 10분 동안 질책했다.

그 시간에 출발하는 게 더 이득일 거라 생각했지만 별다른 말 하지 않았다.

“너희는 오늘 첫 원정에 떠난다. 출정 인원은 쉘터 ‘고려’팀 나 포함 다섯 명. 그리고 신입 세 명. 총 여덟 명이다. 떠나기 전에 충고 하나 하지. 가서 일익마 하나 처리 못 하는 놈은 쉘터 회원이 될 자격이 없는바 그곳에 버리고 올 거다. 그러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각오를 다져라. 알겠나!”

“알겠습니다!”

한태휘와 손나연은 힘차게 대답했고,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거기, 너!”

“저, 말입니까?”

그녀는 손가락으로 날 지목했다.

“그래 너. 누가 고개만 까딱거리라 했나? 뭐 불만이라도 있나?”

안이슬의 날카로운 말에 손나연의 얼굴이 붉어졌다.

당장에라도 ‘감히 단장님께!’라고 외치며 따질 것 같은 그녀를 손으로 저지하고 단순하게 답변했다.

“불만은 없고 질문은 있습니다.”

“질문?”

“간부님은 오익마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지금 내 관심은 오직 오익마 뿐이었다. 그러자, 그녀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

“하- 내 저럴 줄 알았지. 그래. 안다! 알아도 너한텐 안 알려줘. 일익마만 봐도 오줌 지리는 게 태반인 애송이들이 꼭 처음 와서 오익마부터 찾는다니까. 쯧쯧-”

뒷말은 들리지 않고, 오직 ‘그래. 안다!’라는 말만 크게 들린다. 처음이었다. 본인 입으로 알고 있다 하는 사람은.

“분명 안다고 했습니다?”

“닥쳐라. 신입. 인내심 돋구지 말고 출발 준비해. 하아- 씨이발. 이번에도 꽝인 것 같구만.”

그녀의 한탄에 나머지 팀원이 낄낄거렸다.

“뭐, 언젠 꽝 아닌 적 있었습니까? 쉘터 신입 흡수율이 보통 10%도 안 된다잖아요.”

“일익마 보고 패닉상태 빠진다는 것에 영혼석 2개 건다. 콜할 사람?”

“난 3개 건다. 받을 사람 없어? 킥킥.”

물론, 들으라는 듯이.

한태휘와 손나연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지만 난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들에게 생긴 정도 없었고, 어차피 오익마를 알고 있는 사람이 나타난 이상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생각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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