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대위 귀환하다 080화
21. 죽은 자들의 세계(2)
난 화면 내용을 하나하나 둘러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확인했던 건 [영혼석 교환] 서비스.
1영혼석 100개 ↔ 2영혼석 1개
2영혼석 10개 ↔ 3영혼석 1개
3영혼석 10개 ↔ 4영혼석 1개
4영혼석 999,999개 ↔ 5영혼석 1개
이처럼 하위 단계 영혼석은 그 윗단계 영혼석과 교환이 가능했다.
이익마를 잡았던 정태경의 파티가 영혼석을 어떻게 분배할까 궁금했었는데 바로 답이 나왔다.
“우와-! 5영혼석까지 있는 거 보니 오익마까지 있나 보네?”
“그런가 봅니다. 일익마만 잡을 수 있는 사람들도 꾸준히 노력만 하면 얻을 수 있게 해놓은 것 같아요.”
“근데 단가가 왜 저래? 5영혼석은 백날천날 노력해도 안 될 거 같은데?”
“저건 그냥 얻지 말라고 해놓은 건가 본데요?”
손나연과 한태휘가 서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고양이가 우릴 단체 손님으로 묶은 것일까? 그도 그녀도 내가 보는 화면을 그대로 보고 있는 듯했다.
[보아하니 처음 이용하는 인간들인가 보구나. 영혼석은 이곳에서의 화폐와 다름없다. 보아하니 그대들이 소지한 화폐는 2영혼석 2개. 1영혼석 200개와 교환할 수 있다. 교환하겠는가?]
신기하게도 고양이는 내가 소지하고 있는 결정체의 수를 정확하게 맞췄다.
그리고 나름의 의사소통도 가능한 것 같았다. 난 궁금한 것을 즉시 물었다.
“교환은 됐고, 혹시 신체 강화는 가능한가?”
아직 어쩌면, 이곳을 탈출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는 상태.
강해질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강해지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총사령관의 간섭쯤은 우습게 여길 정도로…….
[나머지 두 인간은 가능하지만, 그대는 안 돼. 그대의 신체 상태는 이미 상점 제작자의 한계를 넘어섰다.]
“상점 제작자?”
[그건 알려줄 수 없다, 인간. 어쨌든 그대는 어떤 값을 지불하더라도 불가능해. 능력 밖이다.]
쉘터장의 말에 따르면, 분명 상점은 태초부터 존재해 왔다고 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이 죽은 자들의 세계를 만들어낸 존재가 이 괴상한 상점도 만들었겠지.
그런 존재조차 한계를 넘어섰다고 할 정도로, 내 신체가 대단한 건가?
하긴, 인도자도 심기체(心氣體) 중 기와 체에는 별다른 말이 없었으니까.
새삼 그 말도 안 되는 공간을 만든 물의 왕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와- 단장님. 생각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었네요…….”
“……무슨. 신체 강화가 안 될 수도 있는 겁니까?”
“그만큼 강하시다는 거겠지?”
“신입 아니셨어요? 아…… 기억상실증에 걸리셨다 했었지.”
신입과 비서가 한마디씩 주고받았다. 그리고 신입은 그녀의 말에서 한 가지 사실을 캐치했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단장님. 단장님 하시던데. 무슨, 과거에 헌터 집단이라도 운영하셨던 겁니까?”
“아…… 그건.”
손나연이 내 눈치를 봤고, 난 고개를 저었다.
굳이 정체를 밝혀 소란 피우긴 싫었다. 이곳 쉘터에 정 붙일 생각은 없었으니까. 당장에라도, 탈출의 실마리가 보인다면 쉘터 밖으로 나갈 생각이다.
“잊었나? 과거에 관해 묻는 건 이곳에서 금기라는 걸.”
“앗, 죄송합니다. 불편하신 기억일 수도 있겠군요.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사과하는 그를 뒤로하고, 다음 질문을 지속했다.
“고양이. 그럼 스킬은 배울 수 있는 건가?”
[스킬은 신체 능력과 무관하게 누구든 배울 수 있다. 한계도 없으며, 대가만 지불한다면 모든 기술을 배울 수 있지.]
“그럼 현존하는 스킬과 아이템 전부 띄워 줘.”
[그러지.]
고양이는 곧바로 화면을 띄었고,
나는 그 목록들을 눈대중으로 확인했다.
스킬은 약 100개 정도 있었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가격대가 비싸졌고, 끝까지 내려봐도 딱히 눈에 차는 게 없었다. 제일 비싼 거라 해봤자.
「십만 볼트」 ↔ 3영혼석 1개.
→ 고전류가 흐르는 십만 볼트의 전압을 전방에 발사한다. [하루 사용량 제한 : 3]
나로선 그리 비싼 가격대도 아니고, 잘 쳐 줘봐야 유현동이 사용하는 전기 충격 정도일 것 같았다.
훈련할 때 그가 항상 ‘백만 볼트!’를 외치며 전류를 뿜어댔으니까.
물론, 실제로 그 전압이 백만 볼트인진 확인 안 해봤지만…….
그래도 분명히 좋은 점은 있었다.
기존 헌터들에 비해 각종 능력들을 중복으로 익힐 수 있다는 거니까.
가령, 여기 보이는 이런 스킬들은 익혀두면 조금은 쓸모 있을 것이다.
「물의 치유」 ↔ 2영혼석 5개.
→ 대상의 치유 속도를 20배 증폭한다. 체내에 수분을 공급하여 갈증을 없앤다. [하루 사용량 제한 : 3]
「의사 소통」 ↔ 1영혼석 5개.
→ ’인간’들끼리의 언어 장벽을 없애준다. [영구 지속 효과]
아이템은 스킬과 달리 쓸만한 물품들이 몇 개 보였다.
내가 들고 있는 마법 가방 역시 1영혼석 3개 가격으로 파는 저가의 물품이었다.
수납공간이 더 큰 고가의 가방도 있었다.
이런 게 지구에 있었으면 결정체 담기 참 편했을 텐데. 입맛을 쩝- 다시며 아이쇼핑을 즐기다 마지막에 특이한 걸 발견했다.
「VIP 상점 입장권」 ↔ 3영혼석 5개.
→ 입장료는 비싸더라도 효과는 확실히 보장하는 우수고객 전용 상점. 여유분의 영혼석이 없다면 구매를 권장하지 않음. [시간제한 : 1달]
곧바로 고양이에게 물었다.
“VIP 상점은 뭐지?”
[그건 구매자에게만 말해줄 수 있는 정보다. 정보를 원한다면 대가를 지불해라, 인간.]
“흠……. 왠지 쓸만한 건 이곳에 다 몰려 있을 것 같군. 좋아. 일단 2영혼석 2개를 지불하지.”
[좋아. 받았다 인간. 무얼 사겠는가.]
내가 2영혼석 두 개를 고양이에게 던지자, 자연스럽게 날름 받아먹는다.
“이 여자 신체 강화에 전부 때려 박아줘.”
“저, 저요?”
손나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입도 놀란 표정이었다.
지나가다 들은 말에 따르면 1영혼석 1개면 비기너, 100개부터는 초보 딱지를 뗄 수준으로 강화된다고 했으니…… 200개면 잔병치레로 시간 낭비할 일은 없겠지.
“그래.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 정도까지다. 이제부턴 필요한 게 있으면 직접 구해.”
“……알겠어요. 고마워요.”
***
손나연의 강화를 끝내고 시간을 보내다, 오후 교육시간에 참석했다. 교육 장소는 건물 2층 조그마한 단칸방이었다.
우리는 습기가 가득해 다 썩어 문드러져 가는 나무의자에 앉아, 1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앳된 소녀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었다.
물론, 이곳에서 보이는 나이만큼 쓸모없는 것은 없다. 아이처럼 보이는 사람이 실제로는 100살을 넘겼을 수도 있으니.
“그래. 교관이 뭐랬지?”
“이곳에서 죽으면 진짜 죽는 거라고 했어요.”
손나연은 수업이 재미있는지 항상 소녀의 질문에 또박또박 대답했다. 존댓말까지 써가면서.
“그래. 영혼이 소멸한다는 건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거야. 그러니 빨리 정신 차려야 해. 지금까지 설마, 설마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겠지만 절대 그 설마가 맞다. 너희들은 죽었고, 다시 힘내서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야 해. 우린 또 한 번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까.”
“기회요?”
“그래. 다시 살아갈 기회. 이곳은 선행도 악행도 없어. 오직 영혼석만이 그 ‘정의’를 대변할 뿐이야.”
“그게 무슨 말인가요?”
손나연의 적극성이 마음에 드는지 소녀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곳은 영혼석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어. 원한다면 다시 지구로 돌아갈 수도 있지.”
순간, 나도 신입도 그녀도 눈을 부릅떴다. 죽은 자가 복귀할 수 있다고?
“무…… 무슨 제대로 설명해 주세요!”
“별거 없어. 바로 환생이지. 열심히 노력해서 사익마 영혼석 10개를 모아 구역 중앙으로 가면, 오익마가 그대들의 영혼을 다시 지구로 보내줄 거야. 추가로 영혼석을 더 많이 지불하면 지구에서 더 특별한 삶을 살 수 있는 옵션을 달아준다던데? 그래서 영혼석만이 정의를 대변한다고 했던 거지. 실제로 쉘터 하나를 사기로 털어먹은 사기꾼이 좋은 옵션으로 환생하는 경우도 있었다니까.”
김이 팍- 샜다.
부활이 아니라 환생이라니.
소녀는 꿋꿋하게 설명을 지속했다.
“결국, 너희들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는 거야. 이곳에서 영혼의 상태로 삶을 살아 나갈지. 아니면 지구에 가서 또 다른 삶을 시작할지. 뭐, 대부분은 그 근처에도 못 가보고 여기서 눌러앉아 살더군.”
“혹시 환생 말고, 부활하는 방법은 없습니까?”
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녀에게 질문했다. 그래도 교관의 예우를 갖추어 존댓말로.
“깔깔- 매번 신입 교육 때마다 그런 소리를 하는 놈들이 있지. 삶에 미련이 많은 놈들. 알다시피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돼.”
소녀가 이해한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난 그녀의 대화에서 미묘한 단어를 캐치했다.
“거의? 그럼 방법은 있다는 겁니까?”
“성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시도는 있었어. 기록사에 남아 있더군.”
다시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난 다급하게 물었다.
“어떤 시도입니까.”
“짐작하다시피 오익마는 무언가 다른 악마들과는 격이 다른 존재야. 일단 소통이 된다는 점. 그리고 사냥에 성공한 자가 ‘거의’ 없다는 점. 애초에 영혼을 환생시켜줄 수 있다는 점에서 거의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이지 않을까 생각해.”
이번에도 소녀는 ‘거의’란 표현을 사용했다. 그 말은 누군가 사냥에 성공했다는 거겠지?
“그 시도는 VIP 상점에서 시작했어.”
조금 전 확인한 3영혼석 다섯 개를 입장권으로 받는 그 상점. 그곳에 실마리가 있다는 건가?
“누군가 그 상점을 열었고, 그 안에 무려 오익마 영혼석 한 개짜리 아이템을 확인했지. 그 이름하여 「아베르노」 입장권.”
입장권이라고? 입장권이란 말은 이곳이 아베르노가 아니란 말인데. 설마, 여긴 인도자가 말했던 그곳이 아니었던 건가?
“아베르노? 이곳이 아베르노가 아닙니까?”
“허얼- 그게 무슨 헛소리야? 그래도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더니 「아베르노」는 알고 있네. 안타깝지만 기억이 비틀어져도 많이 비틀어졌어. 이곳은 「아베르노」가 아냐.”
소녀의 말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과거 수천 년 동안 그대처럼 지구에서 부활하기를 원하는 자들은 분명히 있었고, 그중에 능력이 되는 이들도 있었지. 예를 들면 항우라든지, 척준경이라든지, 여포라든지.”
‘진’나라 무장이자, ‘한’의 황제인 역발산기개세의 ‘항우’
고려 시대 중기의 무신 ‘척준경’
중국 후한 말기의 장수 ‘여포’
이들도 이곳을 거쳐 갔다는 말인가? 아, 그랬겠지. 이곳이 저승이니까.
“그들은 놀랍게도 오익마 사냥에 성공한 후, 「아베르노」에 입장했어. 실로 골때리는 자들이야.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그곳에 대해 전혀 추측할 수가 없어. 그곳으로 향한 사람은 몇몇 있었는데, 돌아온 자가 단 한 명도 없으니까. 뭐, 역사 기록을 봤을 때 부활에 성공한 것 같진 않지만……. 혹시 알아? 부활해서 몰래 잘 살았을 수도 있지.”
“…….”
“어라, 거기 표정 뭐야? 당장에라도 오익마 때려잡을 표정인데, 그러지 마. 그건 진짜 그냥 개죽음이야. 또 충고하는데 괜스레 VIP 상점 열지 말고. 하나같이 턱도 없이 비싸면서 쓸모없는 것들만 파니까. 영혼석 낭비지 낭비. 난 분명 말했다?”
아쉽게도 난 그녀의 조언을 들을 정신상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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