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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79화 (79/128)

육군 대위 귀환하다 079화

21. 죽은 자들의 세계(1)

주변을 둘러다 봤다.

신입의 등장을 환호하며 반기는 자들. 상점에서 술과 안주를 구매해 마당에서 판을 벌이는 자들. 그저 신나게 웃으며 수다 떠는 자들.

“……그랬군.”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즐거워 보이기 위해 억지로 짓는 웃음이.

죽어 있는 그들의 탁한 눈빛이.

죽음에 대한 기억을 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이.

“……내가 죽은 거였다니.”

허무했다.

총사령관의 함정에 걸린 대가가 죽음이었다니. 그것도 이렇게 간단하게 말이다.

균열에서의 피나는 생존, 지구로 복귀해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음에도 놈들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렇게 벌여놓은 일이 총사령관의 간섭 하나로 전부 무너져 내렸다.

‘적어도 이렇게 죽어선 안 됐어.’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팔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아무리 내가 무모한 성격이라지만 ‘죽은 자는 되살아날 수 없다’라는 세상의 진리를 모를 리가 없었다.

“후우- 충격적이겠지. 이해한다. 들어가서 마음 좀 추슬러. 누구나 다 겪는 일이니 금방 괜찮아질 거야.”

“…….”

정태경이 내 어깨를 살짝 두드리고 떠났다. 난 그런 그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석실로 이동했다.

작은 창문을 통해 우울한 달빛이 방안을 은은하게 밝히고 있었고, 손나연은 아직도 태평하게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이 편해 보여 굳이 깨우고 싶진 않았다.

“후우……. 미치겠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사후세계가 존재했었다니.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지구에 육체를 두고 온 영혼들.

나 역시 순례길에서 영혼의 상태로 수련을 하다가 함정에 빠졌다.

그렇다면 지구에 있는 내 육체는 어떻게 되는 걸까?

여느 시체처럼 썩어 문드러지는 걸까?

지구는 나 없이 놈들의 침공을 막을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뒤흔들어 놓았다.

***

다음 날 아침.

정태경에게 간단한 끼니를 제공받은 후, 그를 따라 건물 꼭대기 층으로 이동했다.

처음엔 다 내팽개치고, 떠날까 생각도 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직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단 밤새 고민했던 것.

지구에서 죽은 자들과 나는 확실히 달랐다. 그들은 소환진에서 빛과 함께 나체로 나타난다.

하지만, 난 수련할 때 입고 있던 옷 그대로 정글 한복판에 떨어졌다.

그 말은 아직 확실하게 죽은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거다. 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파악도 할 겸, 좀 더 이곳에서 지내보기로 했다.

“쉘터장님. 어제 말씀드렸던 인원들 데려왔습니다.”

방 안에는 어젯밤 봤었던 쉘터장과 신입이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신입은 하루 만에 모든 것을 받아들인 걸까, 아니면 이들이 밤새 잘 케어해준 걸까, 생각보다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태경의 말을 들은 노인이 나와 손나연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들이구먼?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는 이들이.”

우리가 멀뚱히 쳐다보고 있자, 그가 말을 이었다.

“뭐하고 서 있나. 이리 와서 앉게. 태경인 나가봐도 좋아.”

“네, 고생하십쇼. 쉘터장님.”

그가 나가고 우리가 소파에 앉자 노인이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2미터에 달하는 장대한 키, 근육으로 똘똘 뭉친 허우대, 팔뚝과 얼굴에 난 자잘한 상처들.

과거 어떤 일을 했는진 모르겠지만 뭐든, 굉장했을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피겠나?”

“아뇨. 끊었습니다.”

“끌끌……. 건강 문제로 끊은 거면 그냥 펴도 돼. 어차피 신체 강화 한 번만 하면 술, 담배로 몸 망칠 일은 없으니까. 뭐, 비싼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험상궂은 낯짝과 다르게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그나저나 이곳 사람들은 유난히 술을 입에 달고 사는 것 같다.

이 역시 죽음을 잊기 위한 것일까? 노인은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빨고 내뱉었다.

“후- 그래. 자네가 현이고, 자네는 음……. 나연? 둘 다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했지?”

“그렇습니다.”

내가 대답했고.

손나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처음 이곳에 왔다 생각하고 잘 지내보게나. 음……. 듣자 하니 현이는 어느 정도 신체 각성이 된 것 같고, 나연인 신입이나 마찬가지라던데. 맞나?”

“아마 그럴 겁니다.”

“우리 쉘터는 신입이 들어오면 영혼석 하나를 무료로 지원해 준다네. 다른데 쓰지 말고 꼭 신체 강화에 쓰도록 해야 해. 그럼 더위가 좀 가실 거야.”

신입도, 손나연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에어컨 하나 없는 공간에서, 온종일 땀만 흘리고 씻지도 못했으니 상당히 고역일 거다.

“자! 그럼 인사는 이쯤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셋 다 이거 읽어보게.”

노인은 우리에게 무언가 적혀 있는 종이를 각자 한 장씩 내밀었다. 종이 상단부에는 ‘쉘터 가입 계약서’라 적혀 있었다.

내용은 대충 이랬다.

쉘터는 집과 상점을 제공해주며 회원들이 이곳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각종 교육을 시행한다. 대신 가입 후 한 달이 지나면 회비를 걷는다.

한 달에 일익마 영혼석 5개.

회비 미납 시 회원자격이 박탈되며, 즉각 쫓아낸다. 사냥하지 못하는 자들을 철저히 거르겠다는 의도였다.

“생긴 건 누추해 보여도 무려 50년 동안 발전시킨 쉘터네. 애들도 나름 착한 편이고, 지낼 만할 거야.”

노인은 우리가 당연히 서명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아마 여태껏 신입들 중 서명하지 않은 자는 없었을 거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낯선 곳에 떨어졌는데, ‘난 혼자서 할 수 있어!’하고 밖으로 뛰쳐나가는 간 큰 사람은 없었을 테니까.

나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서명했다.

보니까 그냥 구두 계약일 뿐, 다른 결속력은 없었다. 단물만 쭉 빨고, 회비만 내지 않으면 바로 나갈 수 있으니 손해 볼 것도 없지.

노인은 우리가 서명하자 간담회랍시고 이런저런 얘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노인이 하는 얘기들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그는 일제강점기 시대 조선 사람으로 이곳에 온 지 한 100년쯤 됐다고 했다.

첫 쉘터에서 타국인에게 큰 상처를 받았는지 50년 전쯤 나와 새로운 쉘터에서 독립을 시작했고, 오직 한국인들만 가입시킨다고 했다.

그게 본인에게 편하다며…….

다른 나라 사람이 쉘터에 소환되면 근처 쉘터로 안내해 준단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 이해하지 않기로 했다. 뭐, 사정이 있겠지.

그중 신기했던 건 쉘터의 개념이었다.

쉘터는 각 구역당 5만 개씩 태초부터 존재해왔다고 했다.

5만 개라니.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이 상점과 소환진만 존재하는 빈 쉘터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건물이 없기 때문이었다. 건물을 지으려면 고양이에게 영혼석을 제공해야 한다.

그 가격이 혼자서 감당하기엔 너무 크기에, 지금처럼 사람들이 모여 회비로 충당한다고 했다.

죽은 사람들은 이 수많은 쉘터 중 무작위로 소환되고, 간혹가다 빈 쉘터에 혼자 떨어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몇몇 인원들은 주기로 주변 쉘터들을 순찰하며 그들을 구조하기도 한단다.

그나저나 구역이라.

순간, 놈들에게서 얻었던 지도가 떠올랐다. ‘435 area’라 쓰여 있었던 지도가.

“혹시 435구역이 뭔지 아십니까?”

“아, 지도를 봤나 보구먼?”

“그렇습니다.”

내가 인정하자, 노인이 끌끌거리며 친절하게 설명했다.

“수천 년 전부터 이곳의 지도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네. 근데 위성도 없는 곳에서 지도를 만들려면 직접 다 가보는 수밖에 없지 않겠나. 처음엔 이곳저곳 다 다니면서 천천히 지도를 늘려갔었다더구먼. 그 첫 시작이 1구역이었고. 근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지도제작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지.”

확실히 이 정도 큰 지역을 위성도 없이 만들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었을 것이다.

“지도를 제작한 지 몇백 년이 흘러도 완성되질 않는 거야. 끝없이 나오는 육지. 강을 따라가도 나오지 않는 바다. 사람들은 그렇게 점점 지쳐갔다네. 그러다 누군가 이상한 걸 발견했지.”

“그게 뭡니까?”

“그 사람은 강을 조사하던 사람이었어. 배를 하나 만들어 쭉 타고 내려갔지. 내려가다 보면 바다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던 거야. 그렇게 정처 없이 유람하던 중 익숙한 길이 계속되는 느낌을 받았다더군. 봤던 풍경이 또 나오고, 또 나오고, 계속 반복되니까 뭔가 이질감을 느낀 거야.

“아……. 뫼비우스의 띠처럼 말입니까?”

“그렇지. 나중에 지도를 모아놓고 보니까 일종의 규칙이 보였어. 이곳의 모든 구역이 똑같은 정사각형의 땅을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놓은 것처럼 되어 있던 거야. 끝도 없이. 산도 강도, 심지어 심어져 있는 나무까지 완전히 똑같이 말이네.”

“그 말은 435구역이 설마…….”

“그래. 1구역으로부터 435단계만큼 떨어져 있는 커다란 정사각형 모양의 대륙일세. 1구역이랑 완전히 똑같이 생긴 대륙 말일세. 뭐 별 큰 의미는 없지만.”

대화는 약 30분 정도 이어졌다.

아쉽게도 내가 한 질문은 435구역에 관한 것 하나. 그 외에는 다 노인이 어떻게 생활해 왔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노인은 내 궁금한 표정을 보더니 따로 교육시간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털털하게 웃었다.

우리는 가볍게 인사한 후 밖으로 나왔다.

오후에는 신입을 위한 기초교육과, 무술 지도가 있다고 했고 지금부터는 쭉- 휴식이었다.

손나연과 나는 남은 시간에 상점 구경이나 하기로 했다.

그렇게 이동하고 있는데, 뒤에서 신입이 쭈뼛거리며 따라온다.

“저, 저기.”

“아? 신입이시죠?”

그가 머뭇거리며 말을 걸자 손나연이 동질감이라도 느낀 걸까 친절하게 답했다.

“……네.”

“그럼. 우리 상점 구경할 건데 같이 가실래요?”

“좋…… 좋습니다! 아 참……. 전, 한태휘라고 해요. 앞으로 쉘터 동기가 될 텐데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22살 어린 나이라 말 편하게 하셔도 돼요!”

“그럴래? 그러자 그럼. 잘 지내보는 건, 음……. 생각 좀 해볼게?”

“……네?”

“장난이야. 장난.”

손나연이 익살스럽게 그의 어깨를 두들기더니 내 옆에 달라붙었다.

단순한 장난인지 아니면 어젯밤 철저하게 이용만 하라 했다고 저렇게 말하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나저나 22살이라…….

20대 초 창창한 나이에 어떤 사고를 당했길래 죽음을 겪었을까. 어디 균열이라도 잘못 들어간 걸까?

물론 묻지 않았다.

남의 사정을 묻는 것은 금기라 했으니. 그렇게 궁금한 내용도 아니었고.

“그나저나 단장님! 오늘 상점에서 영혼석 쓰실 거예요?”

“일단 보고.”

내심 궁금했다.

특히 신체 강화를 할 수 있다는 것. 내 신체는 불의 왕이 가진 신체와 동일하다. 과연 여기서 더 강화한다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

“냐옹-”

상점은 한적했다.

보통 낮에는 사냥에 떠나고, 주로 밤에 이용하나 보다. 진열장 위에는 신비로운 고양이가 앉아서 울고 있었다.

저게 정태경이 말했던 말하는 고양인가? 딱히 말할 것 같지는 않은데…….

우리가 다가와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어도 그저 울고만 있을 뿐이었다.

“나비야! 이리 온.”

손나연이 다가가 손을 뻗자 우리가 가방에 들어가려 시도했었을 때처럼 정체 모를 막이 그녀의 손을 튕겨냈다.

“이씨. 이거 어떻게 이용하는 거죠?”

“잘 모르겠군.”

우리가 멀뚱멀뚱 보고 서 있자, 뒤에서 한태휘가 나섰다.

“그냥 ‘구매!’라고 외치면 될 거예요. 어제 누가 저 위로해 준다고 데리고 나와서 술 사줬었는데, 그때 봤거든요.”

“오, 정말이니?”

우리는 동시에 구매를 외쳤다.

그러자 디지털 문양의 글자가 눈앞에 나오기 시작했다.

[상점에 온걸 환영한다. 뭐가 필요하냐, 인간.]

아, 이래서 말하는 고양이라 한 건가?

저승도 디지털 세계를 벤치마킹했는지 참 편리한 방식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새로운 화면으로 전환됐다.

[지구 물품 조달]

[아이템 구매]

[스킬 구매]

[능력 강화]

[쉘터 업그레이드]

[영혼석 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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