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대위 귀환하다 078화
20. 또 이상한 곳에 떨어졌다(3)
그들 여섯 명의 나이는 가지각색이었다.
정태경은 30대 초반쯤으로 보였고, 나머지는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했다. 웃긴 건, 나이가 무색하게 서로 반말을 한다는 거다.
“야, 늙다리. 오늘 이익마 잡은 거 정산받으면 뭐할 거냐. 위스키 한 잔 때릴까?”
“저축이나 해라. 언제까지 그런 그지 같은 스킬로 민폐만 끼칠 거냐. 꼬맹아.”
초로의 노인과 어린 소년이 나누는 대화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할 정도로 어색한 장면이었다. 그들 여섯 명 전부가 다 이런 식이었다.
정태경이라 해도 예외는 없었다.
파티장이라는 직책 때문인지 말은 높이는 것 같았지만, 그뿐이었다. 다들 반말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친근하게 굴었으니까.
‘이게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인가?’
난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계속 걸음을 지속했다.
쉘터까지 거리가 꽤 긴지, 벌써 걸은 지 반나절이 지났다.
나와 다른 이들은 멀쩡했지만 손나연은 벌써 얼굴이 발그스름하게 달아올라 있었고, 이마는 축축하니 젖어 있었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능력도 없는 그녀가 강행군하기엔 확실히 무리였다.
그런데도 도와달라는 말 한마디 없이 꿋꿋하게 걷고 있었다.
결국, 그녀를 다시 업기로 했다. 또 상태가 안 좋아지면, 더 피곤해질 수도 있기에…….
연신 미안해하는 그녀를 안아 든 채로 다시 행군을 지속하자 정태경이 다가왔다.
“이봐. 괜찮아?”
“뭐가 말인가.”
“아니, 너 말고 아가씨. 보아하니 기본적인 ‘신체 강화’도 안 된 몸인 것 같은데, 어떻게 그 지역에 있을 수 있었지?”
“신체 강화?”
“응. 땀 흘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흐음……. 보통 신입 때 웬만하면 쉘터에서 영혼석 하나쯤은 지원해 주는데. 그것조차 안 한 몸이라……. 악덕 쉘터에서 소환됐었나 보군.”
정태경의 의문에 호기심이 일었다.
도대체 쉘터가 뭘까. 그리고 놈들을 잡고 얻은 검은색 결정체를 이곳에선 ‘영혼석’이라 하는 것 같던데……. 그걸로 신체 강화를 할 수 있다고? 난 냉큼 가방에서 결정체 2개를 꺼냈다.
“혹시 이게 뭔 줄 아는가?”
그 모습을 본 정태경이 화들짝 놀랐다.
“으아악, 이게 뭣이여? 이익마 영혼석이 두 개나? 이거 어디서 났어.”
“정신 차리고 보니 가방 안에 있던데. 이게 그리 대단한 건가?”
한바탕 소란에 다른 인원들도 걸음을 멈추고 모여들었다.
“왜, 왜. 무슨 일인데.”
“뭐야. 영혼석이야?”
“헐, 일익마도 아니고 이익마 영혼석?”
이들의 반응을 보니 여기선 생각보다 가치 있는 물건인가 보다.
내가 계속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자 그들은 친절하게 영혼석의 사용처를 설명해 줬다.
말하는 고양이의 존재.
그리고, 이것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언뜻 들으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그냥 믿기로 했다. 상식을 버리니까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니까 이걸로 의식주를 해결하거나, 본인의 힘을 기르는데 사용한다는 말이군.”
“이곳의 실질적인 화폐라 보면 된다. 그나저나 정말 기억을 잃은 모양이구먼?”
“그렇다. 그대들이 말하는 신입이나, 쉘터, 파티장. 전부 생소한 개념이야.”
“걱정하지 마라. 쉘터에 도착하면 처음부터 다시 배울 수 있으니까. 아마 금방 적응할걸?”
우리는 다시 이동했고,
하늘이 어둑해질 때쯤 도착했다.
쉘터 ‘고려’의 상태는 생각보다 조악했다.
볼품없는 방호시설과 5층짜리 작은 건물 두 개.
그래도 나름 오랜 기간 있었던 곳인지 자잘한 보수의 흔적이 가득했다.
그리고 가운데 있는 신비한 건물. 아마 저게 그들이 말한 상점이겠지. 상점 앞 바닥에는 육망성(六芒星)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저건 또 뭘까?
“일단 오늘은 늦었으니 둘러보는 건 내일 하고. 둘 다 따라와.”
정태경은 주변을 둘러보는 우리를 조그마한 방으로 안내했다.
간신히 끼어서 자면 사람 다섯 명 정도를 겨우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조잡한 방이었다.
습기가 많은 지역이라 그런지 축축하고 퀴퀴한 냄새가 났다.
“좋은 방들은 쉘터 인원에게만 제공되는 거라, 누추하더라도 양해 좀 해줘. 둘이 한 방 써야 하는데 괜찮지?”
그의 말에 손나연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낯선 곳에 혼자 있는 것보다는 나와 함께 있는 게 안전하다고 판단했으리라. 나 역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쉘터장님 보러 가야 하니 그리 알고.”
“알겠다. 신경 써줘서 고맙다.”
“고맙긴. 그쪽이 잘해주면 그냥 서로 윈윈인거지. 일단 난 스케쥴 있어서 먼저 가볼게. 일단 쉬고, 궁금한 건 내일 풀어보자고.”
정태경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문을 닫고 나갔다.
그리고 흐르는 적막한 침묵.
가방을 내려놓고 벽 한쪽에 기대어 앉자, 손나연도 맞은편 벽에 기대어 앉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구는 하나도 없는 석실.
화장실도 샤워실도 없었다.
“으……. 찝찝한데. 씻을 수도 없나 보네요. 방도 후끈하고.”
손나연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좋게 생각해. 노숙하는 것보단 낫잖아.”
“그건 그렇죠. 그래도 다행이에요.”
“뭐가.”
“만난 사람들이 괜찮은 사람들인 것 같아서요.”
괜찮은 사람들이라.
갑자기 홍이나가 떠올랐다.
사람의 눈빛만 보고 본인에게 이득이 될지 해가 될지 맞혀내는 능력.
100% 정확한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 맞았던 거로 기억한다. 물론 나에겐 그런 능력이 없다.
“그건 아직 모르는 일이야. 너도 봤잖아. 쓸모없어지니까 바로 버리는 거.”
“아……. 그 신입인가 뭔가 하는 애요?”
“이들의 목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도 우리의 목적을 잊어선 안 돼. 지구로 복귀할 때까지 우리도 철저하게 이들을 이용한다.”
손나연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이제 앞으로 어쩌실 계획이세요?”
아직 이곳이 무얼 위해 존재하는 공간인지, 지구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딱, 일주일.”
사실 어떤 것을 파악할 때 가장 좋은 것은 직접 해보는 거다.
난 이들과 직접 살을 치대며 이곳이 어떤 공간인지 직접 알아볼 계획이었다.
정태경이 쉘터에 도착하면 다 배울 수 있다고 했으니까.
“일주일 동안만 이곳 생활에 적응해보자. 그 정도면 이곳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이 되겠지.”
***
벽에 기대 눈을 감고 상념에 빠져 있을 때였다.
댕- 댕- 댕-
힘찬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창문 밖을 보니 아직 시커먼 야밤중이다.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걸까? 생각하는 찰나, 바깥이 시끌벅적해졌다.
맞은편을 바라봤다.
손나연은 바닥에서 두 팔을 베개 삼아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오늘 온종일 엄청 피곤했는지 이 난리 통에서도 잠을 지속한다.
‘하긴, 거의 목숨이 오락가락했었으니.’
난 가방에서 옷가지들을 꺼내 뭉쳐 그녀의 머릿밑에 받혀주고 밖으로 나왔다. 어떤 소란인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건물 밖을 나오자 아까 봤던 신비한 상점 앞에 약 50명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앞, 육망성의 문양에 빛이 흐르고 있었다.
“다들 모여라! 신입 받자!”
“와, 얼마 만에 신입이야?”
“아마 한 달 만일걸? 이번엔 좀 쌔끈한 놈이길. 우리도 빨리 삼익마 사냥해서 이 빌어먹을 건물 업그레이드 좀 하자고.”
왁자지껄-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마치, 군대에서 새로운 이등병을 받는 일병의 모습이랄까.
그 모습들을 멀리서 가만히 보고 있자,
등 뒤로 누군가 다가왔다.
“나와 있었나?”
정태경이었다.
“아, 시끄러워서. 무슨 일인가 하고.”
“이해해줘. 우리 쉘터가 좀 소형이라 다들 신입에 환장하지.”
“신입?”
“이 공간에 처음 떨어지는 사람들을 신입이라고 해. 나도 그런 적 있었고, 너도 그런 적 있었겠지.”
난 그런 적 없다.
정신 차려보니 그 열대 숲 한가운데였으니까. 그렇다면 이 지구인들은 모종의 이유로 누군가에게 소환당하는 것일까?
“기억이 안 나.”
“뭐,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모르겠군. 기억을 잊는다는 거.”
“그게 무슨 소리지?”
“이곳에 소환되는 사람들치고 좋은 기억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거든. 차라리 잊어버린다면 마음이라도 편할 것 같은데.”
정태경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난 지금껏 궁금하게 생각됐던 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넌 지구에서 온 건가? 도대체 이곳은 어디지?”
“흐……. 지구라. 이곳이 어딘지도 모르는데 또 지구는 기억하는 거야?”
“응.”
“흐음……. 그럼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겠는데…….”
그가 손가락으로 턱을 짚고 말하는 순간.
육망성에서 빛이 터져 올랐다.
“아, 드디어 나왔나 보군.”
조금의 시간이 흐르자 빛이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 나타난 나체의 남성 하나.
“으아아악! 살고 싶어! 제발……. 아파.”
그는 그 육망성 안에서 처절하게 울부짖고 있었다. 무언가 배에 찔린 듯 움츠러든 상태에서 아프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더니 뭔가 이상함을 느낀 듯 흠칫한다.
“뭐…… 야. 여긴…… 무서워.”
쉘터 인원들이 하나둘 모여 그를 달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옷을 가져다줬고, 어떤 사람은 어깨를 토닥여 줬다.
그런데도 그는 바들바들 떨고만 있을 뿐이었다.
한 노인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이번엔 젊은 사람이군. 기대해볼 만하겠어.”
“여긴 어디예요? 뭐에요 당신들은? 저승사자들인가요?”
“일단 진정하고, 따라오게나 천천히 설명해줄 테니.”
난 멍하니 그 모습을 쳐다봤다.
“저분이 쉘터장님이시다.”
“그런가? 저 사람은 어디서 소환되는 거지?”
“물론 지구지. 근데 하나 충고하지.”
정태경이 괴로운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지구’라는 단어를 무척 싫어해. 암묵적인 금기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그곳에서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진 이들이 대다수고, 또 묘한 향수를 불어 일으키기도 하거든.”
지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라…….
난 아까 갓 소환된 남자의 표정을 떠올렸다. 살고 싶다고 외치는 모습. 고통스러운 절규의 표정.
어디서 어렴풋이 본 기억이 있었다. 아니, 분명히 알고 있었다.
F급 균열에서 선소연이 죽였던 노인의 표정. 특수부대 작전 간 사살했던 테러범의 표정.
그렇다.
분명 죽음을 앞둔 사람의 표정이었다.
순간, 소름이 끼쳤다.
등줄기가 저릿하면서 팔뚝에 닭살이 서서히 피어올랐다.
과연 그런 것이었나.
이들이 나이는 다른 데도 반말을 하는 이유.
이익마에게 심장을 꿰뚫렸던 신입이 죽었을 때 피를 흘리지 않고 모래로 으스러지며 소멸했던 이유.
정태경이 굳이 기억하지 않는 게 좋을 수도 있다고 했던 이유.
남자가 마지막에 쉘터장에게 저승사자냐 물었던 이유.
지금껏 얻었던 퍼즐 조각들이 천천히 맞춰지기 시작했다.
“아- 설마, 이곳은…… 그리고 이 사람들은…….”
내 읊조림에 정태경이 어딘가 슬퍼 보이는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몰랐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듯이…….
“그래. 이곳은 죽은 자들의 세계. 지구에서 생을 마감한 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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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죽은 자들의 세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