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대위 귀환하다 077화
20. 또 이상한 곳에 떨어졌다(2)
쉘터 ‘고려’의 간부 정태경은 마음이 답답했다.
‘쯧, 이번에도 꽝이구먼.’
지금으로부터 약 한 달 전, 신입이 하나 들어왔었다.
‘고려’ 쉘터장의 운영방침 중 하나는 한국인만 가입시키는 것.
435구역은 이상하게 한국인 비율이 적어 운영에 고생하던 찰나, 새 신입의 등장은 가뭄에 물줄기였다.
그러나 그 희망이 오늘부로 다 깨져버렸다.
“파티장님. 쟤, 정신 나간 것 같은데요?”
“알고 있어. 인마.”
정태경은 한숨을 쉬었다.
새로운 신입이 들어오면 쉘터는 의무적으로 한 달 동안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그 후, 첫 사냥을 통해 쉘터 인원으로 받을지 아닐지 정한다.
이곳에서 종종 발견되는 악마같이 생긴, 소위 익마(翼魔)라 불리는 괴물들은 쉘터를 유지하기 위해 필히 사냥해야 하는 존재들이다.
그들을 잡으면 나오는 ‘영혼석’은 이 지옥 같은 공간에서 천국을 맛볼 수 있게 해주는 좋은 화폐니까.
날개의 개수에 따라 일익마, 이익마 등의 명칭이 붙는데, 보통 일익마는 어느 정도 짬밥만 있으면 혼자 상대할 수 있고, 이익마는 적어도 열 명 정도의 인원이 있어야 안전하게 잡을 수 있다.
‘옆 쉘터는 벌써 삼익마까지 처리했다는데.’
아직 ‘고려’는 삼익마는커녕 일익마나 간간이 사냥하고 있는 처지다.
“어쩔까요?”
정태경은 다시 한번 신입을 쳐다봤다.
입에 침을 질질 흘리며 눈알을 뒤집어 까고 있었다. 방금 전 일익마(一翼魔) 세 마리를 마주하고부터 계속 저 상태였다.
“버려야지 뭐. 교육하는 데 든 시간과 식비가 아깝긴 하지만.”
“얄짤없으시네요.”
“어쩔 수 없어. 사냥도 못 하는 식충이를 데리고 있으면 우리의 생존이 위험해질 수 있다.”
“하긴……. 밥이랑 옷, 집이 다 이 ‘영혼석’에서 나오는 거니까요.”
각 구역마다 쉘터의 개수는 딱 정해져 있다. 그리고 그 쉘터 안에는 태초부터 존재했다는 커다란 상점이 있다.
상점은 신비로웠다.
절대 부서지지도 않고 입장할 수도 없으며, 직원은 하나뿐이다. 그것도 이상하게 생긴 말하는 고양이.
거래는 간단했다.
원하는 것을 말하면 무엇이든 구해다 준다. 가치에 맞는 ‘영혼석’만 지불한다면.
단, 지구에 존재하는 것이어야 하고, 그 희소성에 따라 고양이가 가치를 매긴다.
각 쉘터는 ‘영혼석’을 통해 생존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이곳엔 구할 식량도 식수도 없었으니까.
이외에도 ‘영혼석’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했다. 대충 정리하자면…….
1. 고양이와 거래로 지구 물품 구해오기. (보통 식량이나 의류, 무기 )
2. 위급 상황 시 포션으로 대용 가능.
3. 고양이와 거래로 [쉘터 업그레이드] , 주거 및 방어시설을 자동으로 확장해 준다.
4. 고양이와 거래로 [스킬] 또는 [신체 능력 발달] 가능
정태경이 처음에 이곳에 떨어졌을 땐, 무슨 게임 속으로 들어온 줄 알았다.
본인의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니, 그리고 스킬이라니. 그 역시 주어지는 대가에 따라 다 달랐다.
처음에는 누가 이런 공간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의문들이 다 있었다. 그러나 점차 사라져갔다.
다들 호기심보다는 생존이 먼저였으니까.
“자, 다들 복귀할 준비 해라. 오늘은 그래도 영혼석 세 개 얻었으니 끼니는 때울 수 있을 거다.”
“넵! 파티장님!”
정태경의 명령에 다섯 명의 인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중 한 명은 기절해 있는 신입의 옷가지와 무기까지 챙겼다.
어차피 버리기로 했으니 쉘터에서 제공한 모든 것을 회수하는 것이다.
떠날 채비를 마치고 발걸음을 내디뎠을 때였다.
푸숙-
“……끄으윽-”
살 뚫는 소리와 단말마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정태경이 신속히 고개를 돌렸다.
“시이벌, 뭐야?”
“뭔가 있습니다. 파티장님!”
인원들이 신속하게 무기를 꺼내 들었다. 커다란 삼지창으로 신입의 가슴을 뚫고 나타난 것은 이익마(二翼魔) 한 마리였다.
“제기랄, 이익마라니!”
정태경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분명히 이익마가 출몰하는 지역은 아니라 생각했는데, 너무 깊숙이 들어왔었나.
“다들 포지션 지켜! 섣불리 움직이지 마라!”
“괘, 괜찮을까요? 저거?”
인원은 정태경 포함 총 여섯 명.
자주 호흡을 맞추는 사이라지만 이익마를 상대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었다.
시커먼 피부와 두 쌍의 날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길한 삼지창은 공포감을 절로 불러일으켰다.
신입은 이미 죽었는지 모래로 으스러져 있었다.
‘허, 참……. 운수 좋은 날인가? 오늘 일진이 왜 이래?’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상대할 수밖에. 쉘터까지 거리가 꽤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익마의 기동력을 벗어날 힘이 없었다.
“짜식들아, 함 떠보자고. 오늘 저거 잡고 회식한다.”
“그, 글쎄요. 우리가 쟤 회식 거리가 될 것 같은데요?”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연습한 대로만 해!”
“예!”
그렇게 그들의 피 말리는 전투가 시작됐다.
***
나는 적당한 나무 위에 내려앉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 품에 안겨 있는 손나연이 조용히 속삭였다. 오면서 시원했는지 어느새 땀은 다 말라 있었다.
“저, 저거, 아까 단장님이 잡으셨던 괴인 아니에요?”
“그런 것 같은데.”
“저게 저렇게 센 놈이었어요? 아까 단장님은 간단하게 잡으셨잖아요. 그것도 세 마리나.”
“으음…….”
날개 한 쌍짜리 괴인과 싸울 때부터 있었는데, 그때는 그럭저럭 체계적으로 싸우는 듯하더니……. 날개 두 쌍짜리가 나타나자마자 확실히 진영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조금은 실망이었다.
나로선 한 쌍이나 두 쌍이나 똑같이 약한 놈일 뿐인데 저 정도 차이가 난다고?
「아베르노」라 해서 엄청 무시무시한 곳일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껏 보아온 바로는 오히려 지구만 못한 것 같다.
난 이제 어찌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한국말을 쓰는 것으로 보아 한국인이 분명한데, 사용하는 능력은 절대 지구인의 것이 아닌 사람들.
지금 나서면 이들은 나에게 호의를 가질까?
“도와주실 거예요?”
그러고 싶긴 한데, 아직 정확하게 판단이 서지 않았다.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겠고, 사람 하나를 쉽게 버리는 것 보니 좋은 놈들인지도 모르겠다.
“아직. 좀 더 지켜보자.”
***
푸숙!
마침내 이익마의 심장에 얼음 조각이 박혔다. 스르륵- 하며 연기로 화하는 놈. 그야말로 영혼의 맞다이였다.
“후우- 뒈지는 줄 알았네.”
“허억, 허억. 파티장님 전 곧 뒈질 것 같습니다.”
상태가 멀쩡한 파티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의 능력 대부분이 근접형이었기 때문이었다.
오직 정태경만이 마법을 사용해서인지 멀쩡했다.
근 1년간 결정체를 저축하고 저축해서 고양이에게 구매한 스킬.
그 이름 하여 〈얼음 화살〉
하루에 총 20번, 조준하는 곳에 쏠 수 있는 마법이었다. 데미지도 상당할 뿐만 아니라, 정확도도 좋다.
또한, 맞는 순간 놈들의 움직임이 둔화하는 효과까지 있다. 그야말로 현 정태경의 최고 자산이었다.
‘이게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그는 안도했다.
사실상 스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구역을 통틀어 극소수다.
고양이가 제시하는 가격이 어마무시하기 때문이었다.
당장 이 스킬만 해도 일익마 영혼석 100개 혹은 이익마 영혼석 1개를 지불해야 한다.
하루 밥 벌어먹기도 살기 힘든 현실에서 그 많은 영혼석을 모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들 급한 대로 일익마 영혼석 하나씩 먹어라.”
“흐엑, 아깝게.”
“뒤지는 것보단 낫잖냐.”
힘겹게 잡은 이익마의 영혼석을 챙기고 있을 때였다. 또, 주변에서 스르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또?
“하…… 제발.”
이익마만 아니길 바라며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얼음 화살〉의 잔량은 이제 총 5개. 어깨 위에 하나의 화살을 띄어놓고 파티원들에게 명령했다.
“다들 빨리 먹고 준비해. 기척이 있다.”
“하- 진짜 오늘 뭔 날이야?”
그들은 긴장감 속에서 다시 대열을 갖췄다.
그리고 곧이어 풀숲에서 무언가‘들’이 툭 튀어나왔다. 웬 남자와 여자였다. 그것도 엄청 잘생기고 예쁜…….
***
“뭐야. 처음 보는 사람이네? 어디 쉘터 소속이냐?”
저 무리의 리더로 보이는 자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쉘터라고?
뭔가 이들만의 용어가 있는 건가? 내가 답을 하지 않고 있자, 손나연이 앞으로 나섰다.
“저…… 한국분이세요?”
“어? 한국인?”
“네. 혹시 여기가 어딘지 아시나요?”
“그게 무슨 생뚱맞은 소리여. 마법 가방에 칼까지 들고 있으면서 여기가 어디냐니. 그나저나 한국인이면 우리랑 어느 정도 교류가 있을 텐데. 그짝들 어디 소속이냐니까?”
남자가 다그치듯 물어왔다.
그것도 반말로. 그런데 말투가 좀 터프해서 그런 것인지 거슬리지는 않은 느낌이었다.
나는 당황하는 손나연의 어깨를 붙잡아 뒤로 보내고 앞으로 나섰다.
“쉘터가 뭐지?”
순간, 남자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말장난 치자는 거냐?”
“아니다.”
“쉘터를 모를 수가 있나. 이곳에 떨어지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쉘터랑 고양인데.”
이곳에 떨어진다? 그렇다면 역시 그들은 지구인인 걸까? 그러니까 그런 표현을 쓰는 거겠지?
어쨌든 남자의 불쾌한 표정을 보아하니 더 질문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바빠 보이기도 했고, 그는 아직도 내가 장난치는 줄 알고 있는 모양이다.
난 순간 재치를 발휘했다.
“사실, 우리는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뭬야? 기억상실증?”
“그래.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어느 순간 눈 떠보니 이 여자와 함께 숲속에 있었고, 그녀 또한 기억나지 않는다 했어. 그렇지?”
손나연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바로 풀었다.
“마, 맞아요.”
천연덕스러운 거짓말.
일단 이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의 정체와 상황을 까발릴 순 없었다. 이 모든 게 총사령관의 계략일 수도 있으니까.
“흠……. 이런 곳에서도 그런 질환을 앓을 수가 있나?”
“…….”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남자 중 하나가 웃으며 끼어들었다.
“파티장님. 잘된 거 아닙니까? 우리가 데려가죠. 한국인이기도 하고, 마법 가방 들고 있는 거 보면 소싯적에 영혼석 좀 모았나 본데. 실력도 있지 않을까요?”
“난 수상한데? 이익마가 출몰하는 지역에서 남녀 둘이 다니는 게 말이 되나? 쉘터장이라고 해도 그건 미친 짓인데.”
“별게 다 수상하셔라. 안 그래도 쉘터 힘들어 죽겠는데, 그런 거 다 따져서 언제 옆 쉘터 따라가려고 합니까? 이번 신입도 꽝이었는데……. 저도 스카이라운지 있는 건물에서 양주 한잔하고 싶다고요.”
“그건, 사익마를 잡아도 안 될걸……. 쩝. 어쨌든 좋아.”
파티장이 입술을 핥았다.
“어이, 그쪽들. 그럼 우리랑 같이 갈래? 이제 복귀할 건데. 따라오려면 따라오던가.”
좋았다.
우선 이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간에 가서 정보를 더 모은다. 이들과 척을 지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빠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와 손나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피식 웃으며 인사했다.
“내 이름은 정태경이다, 그냥 파티장이라 부르면 돼. 그짝들은? 아 이름도 까먹었나?”
“……아니, 난 강현이다.”
“전 손나연이에요.”
우리는 그렇게 물 흐르듯 그들의 집단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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