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대위 귀환하다 073화
19. 함정(2)
주유라에게 간단한 보고를 받은 후, 쉬고 있을 때였다.
덜컥-
단장실 문이 열리고, 선소연이 들어왔다.
뒤에서 손나연이 쭈뼛쭈뼛하는 거 보니,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문을 열었나 보다.
“오빠.”
“어? 여기까지 무슨 일이야.”
벽시계를 확인했다.
10:10 AM
보통 훈련을 마치는 시간이 오전 10시이니, 끝나고 대충 정리한 후 바로 달려온 듯싶었다.
“할 말이 있어서요.”
“1차 테스트는?”
내 질문을 들은 선소연의 뺨에 살짝 보조개가 파였다. 언제봐도 아름다운 모습.
YEO에서 날고 긴다 하던 여성 참여자들을 압살하는 미소였다. 어쨌든, 이 질문에 웃는다는 건 성공했단 거겠지?
“오늘부로 성공했지요.”
그녀가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그리며 말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어깨를 위로하듯 두드렸다.
약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쇠구슬만 들어댔다. 도중 포기할 수 있었음에도 끝까지 해낸 그녀가 대견스러웠다.
“고생했어. 그래도 물들어왔을 때 노 저으랬다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지?”
“후우- 그렇긴 한데, 오늘도 12시간 빡시게 달렸더니 피곤해서요.”
“그니까 한숨 푹 자고 밤에.”
“그건 물론이죠.”
내 가슴 위치에서 고개를 젖히고 올려다보던 그녀가 밝게 미소 지었다.
“그래서. 그거 말하려고 여기까지 달려온 거야?”
“아니요. 아니요.”
그녀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수련 끝내고 나오니까 목걸이가 계속 푸르게 빛나더라고요.”
“목걸이가?”
“네. 알고 보니 문어가 호출하는 거였어요. 불러내서 이게 뭐냐고 물어봤거든요.”
목걸이에 그런 기능이 있었다니, 처음 알았다.
아마 선소연에게 목걸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크라켄이 그녀의 수련종료 시간에 맞추어 불렀겠지.
참고로, 크라켄은 우리가 순례길로 들어가는 즉시 역 소환당한다. 목걸이로 보내는 기운이 끊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왜 호출했대?”
“급하게 할 말이 있댔어요.”
물의 종족인 그가 급하게 전할 말이 있다니, 무언가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뭐라던데?”
“오빠랑 같이 듣겠다 하고 좀 있다 불러내겠다 했죠. 그런 다음 대충 걸쳐 입고 나온 거예요.”
“잘했어.”
“……별일 아니겠죠?”
“일단 불러보자.”
우리는 접객 테이블로 이동했다.
그녀가 목걸이를 나에게 넘겼고, 난 불의 기운을 목걸이로 주입했다.
그러자 푸른 거품과 함께 나오는 자그마한 모습의 패밀리어.
선소연도 그렇고, 크라켄도 그렇고 2주 만에 보는 모습이라 그런지 반가웠다.
“오랜만이네.”
[잘 쉬고 있었나? 둘 다 생각했던 것보다 빨라 다행이긴 한데…….]
“급하게 할 말이 있다며.”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불의 종족 상황도 아는 거예요?”
선소연의 질문에 크라켄이 다리 하나를 들어 좌우로 휘저었다.
[그건 아니다. 다만, 놈들이 언제 공격해 올지는 알 수 있지. 어제부로 지구에 거대한 기의 파동이 나타났다. 과거 6,600만 년 전 느꼈던 그 기류와 비슷할 정도의 힘. 아무래도 저번에 세웠던 가설이 맞는 것 같다.]
“가설? 소연이와 감각을 공유하는 거 말인가?”
[그렇다. 아무래도 5군단장이 능력을 통해 지구의 상황을 총사령관에게 전달한 것 같다. 놈들이 침공을 준비하고 있어.]
생각보다 이르다.
아직 KH 창설 한 달밖에 안 됐는데 벌써 침공이라니.
그래도 군단장급이라면 나와 선소연이 어떻게든 해결해 줄 수 있다.
나머지 레프나, 레다 같은 놈들은 단원들이 맡으면 되니. 세계 S급 헌터들의 수도 점차 늘고 있는 상황이고.
“놈들의 규모도 알 수 있나?”
[이 정도 규모의 기류라면 아마…… 총공격인듯싶다.]
“……총공격이라면?”
[나머지 군단장과 총사령관까지 전부 넘어올 것이다. 그때도 그랬다. 불의 왕과 휘하 군단장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놈들 전부가 넘어왔었지.]
6,600만 년 전.
균열이 열린 후 100만 년 만에 물의 왕에게 패해 도망쳤다던 총사령관. 그동안 얼마나 갈고 닦았지 짐작조차 되질 않았다.
“우리가 많이 위협적이라고 느낀 건가? 군단장만 보내는 게 아니라 한꺼번에 넘어온다니.”
[아마, 그건 아닐 것이다. 총사령관은 영리하면서도 천성이 겁이 많은 자. 현재의 그대들이 두렵다기보단, 그대들의 성장 가능성에 더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확실하게 끝내고 싶었겠지.]
저번에 봤던 5군단장처럼 단순 무식했으면 좋았을 텐데, 놈의 겁 많은 성격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아직 제대로 준비되지도 않았는데 그들을 맞이해야 한다니.
옆에 앉아 있던 선소연이 내 손을 꼬옥- 잡았다.
따듯한 온기가 느껴졌다. 과연 내가 그녀와 가족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갈 터전을 지켜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승산은 있나?”
[안타깝게도…… 0에 수렴한다. 총사령관은 정신계 능력자. 그녀를 막기 위해서는 둘 중 한 명이라도 4단계 탈피에 들어서야 한다.]
***
그 시각-
불의 종족 본거지.
그중에서 가장 고지대에 위치한 웅대한 화산 위에 다섯 존재가 있었다.
총사령관.
1군단장. ‘피닉스’
2군단장. ‘발록’
3군단장. ‘레드드래곤’
4군단장. ‘티라노 킹’
총사령관이 화산 중앙 가운데 떠 있었고, 그녀를 기준으로 동서남북 방면 군단장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2군단장. 시공간은 준비되었나?]
불의 종족 총사령관이 위엄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건강미 넘치는 짙은 갈색 라틴계 피부에 붉은 머릿결을 가진 그녀의 모습과 크기는 확실히 다른 군단장과 비교해 괴리감이 느껴졌다.
그림자로만 산 하나를 가릴 듯 거대한 군단장들에 비해 총사령관의 크기는 평범한 인간의 크기였으니까.
뒤에 붙어 있는 날개만 아니라면 그 누구도 그녀를 불의 종족이라 생각하지 못할 정도였다.
[명하신 대로 전군이 공격 가능한 균열을 뚫었습니다.]
2군단장.
불의 검을 든 괴물이 검에 기대어 무릎을 꿇으며 담담히 말했다.
[고생했다. 완전히 열리는 데까진 어느 정도 소요되겠는가.]
[과거와 동일하게 1년 정도 걸릴 듯합니다.]
5군단장을 보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크기의 균열이다.
군단장뿐만 아니라 종족 전체가 이동할 수 있는 초대형 균열.
수천만 년을 기다려온 총사령관 입장에서 1년이면 무척 짧은 시간이었다.
[좋다. 다들 만전의 준비를 기하라.]
총사령관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의 정적 후.
동쪽에서 허스키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근데, 굳이 총공격할 필요 있습니까? 왕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해도 한낱 벌레들일 뿐, 군단장들만 가도 충분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마치 티라노사우루스를 100배 키워놓은 것 같은 우람한 괴물. 4군단장 ‘티라노 킹’이 의문을 품었다.
[쯧쯧, 잊었느냐. 물의 종족 수가 적다고 방심했다가 우리가 어떤 꼴을 당했었는지. 5군단장을 봐라. 방심하다 벌레한테 한방에 골로가지 않았느냐.]
붉은 파충류 형상에 거대한 날개를 가지고 있는 괴물. 3군단장 ‘레드드래곤’이 핀잔을 줬다.
[5군단장은 군단장이라는 이름에도 부족한 자였습니다. 경험도 적고, 나이도 어린……. 그저, 지구 정찰용으로 선발한 놈이었지요.]
[그렇다 해도 한낱 벌레한테 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 뭐합니까. 전 멍청한 5군단장 따위 100마리가 덤벼도 다 찢어발길 수 있습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지 않으냐. 마음 놓지 마라. 아무리 벌레라 해도 왕의 기운을 가진 자. 충분히 변수가 될 수 있다.]
두 군단장이 티격태격하자,
[그만하라.]
총사령관의 웅혼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그러자 두 군단장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녀에겐 음성만으로 공간을 압도할 수 있는 정체 모를 힘이 있었다.
[너희는 느끼지 못했겠지만, 지구에서 또다시 순례길이 열렸다.]
[……종족의 순례길.]
모든 군단장의 눈빛에 이채가 흘렀다.
총사령관이 낮은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물의 종족 잔당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아마 놈들이 왕의 기운을 제대로 끌어내기 위해 수를 쓰는 거겠지.]
[그럼 어찌합니까.]
[그들은 걱정하지 마라. 내 장난질을 쳐뒀으니……. 너희들이 할 일은 절대 방심하지 않고 심혈을 기울여 지구를 점령하는 것이다. 기억해라. 이번에 내핵 에너지를 얻지 못하면 우리 종족의 미래는 없다는 것을.]
***
크라켄의 말을 듣고, 잠깐 생각해봤다.
4단계 탈피라. 지금까지 3단계 탈피를 완료했으니 한 꺼풀만 벗어내면 막을 수 있다는 건가?
[그마저도 확실하지 않다. 그들이 도착할 때까지 4단계 탈피를 이뤄낼 수 있단 보장도 없을뿐더러, 만약 총사령관의 능력이 과거 왕의 기운을 넘어섰다면 그것마저도 부족할 수 있다.]
“그럼 뭐, 어쩌라는 거냐.”
[하늘에 맞기고 수련해야지. 현재로썬 그것밖에 방도가 없다. 정신력도 어느 정도 성장한 것 같으니 순례길 시간제한도 풀어주겠다.]
크라켄의 음성에 간절함이 서렸다.
왕도 죽은 마당에 마치 지구를 지키는 것에 사명감마저 가지고 있는듯했다.
난 선소연을 힐끔 쳐다봤다.
괜찮은 척하지만 아직까지 잠에 들지 않은게, 많이 피로해 보였다.
나도 경험해봐서 안다.
12시간 풀 수련 후의 정신적 피로를.
“알겠다. 준비되면 다시 부르지.”
[한시가 급하다. 그대들만이 지구의 희망이다.]
“보채지 않아도 최선을 다할 생각이야.”
지구의 희망이라니 살짝 간지러운 이야기를 하는 크라켄을 역 소환시킨 후 선소연에게 물었다.
“피곤하지?”
그녀가 잠깐 뜸을 들이더니 당차게 말했다.
“아니요! 지금이라도 더 수련할 수 있어요! 급하잖아요.”
“……굳이 나한테 거짓말할 필요 없어. 내가 바보도 아니고. 다 알지.”
“사실…… 아까부터 많이 졸려요.”
“이제 시간제한 풀렸잖아. 제대로 휴식하고, 할 때 제대로 해보자.”
“미안해요. 괜히 저 때문에 늦어져서.”
사과하는 그녀의 머리를 헝클었다.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날 돕겠다는 이유로 꿈까지 포기하고 한 달 내내 그 고통을 감수해놓고는.
“너무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혹시나 실패하더라도…….”
“…….”
“우린 열심히 노력했으니까. 하늘의 뜻이려니 해야지…….”
다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정리해주자 그녀의 눈이 서서히 감긴다.
“여기서 자지 말고, 얼른 들어가.”
“오빠는요?”
“난, 많이 잤어.”
우선, 그녀를 보낸 후 먼저 순례길에 들어가 볼 생각이다. 어차피 할 일도 없고, 어떤 테스트일지 잠깐 둘러보는 차원에서.
그녀에게 잔잔한 미소를 지어주자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아니라.”
“그럼?”
“재워주세요.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녀가 붉어진 얼굴로 내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이게 갈수록 앙탈이 늘어간다. 무얼 원하는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나중에. 지금은 할 일이 있어서.”
“치-”
“대신, 재워주는 거 말고 깨워주는 건 어때? 그럼 더 열심히 깨워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거라면 좋아요.”
선소연이 그제야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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