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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72화 (72/128)

육군 대위 귀환하다 072화

19. 함정(1)

황혼과 YEO를 해체한 지 2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대참사라 불릴 정도의 학살극이었음에도 각 그룹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주유라가 황혼과 자제들이 벌여왔던 불법행위에 대한 자료를 정리해 ‘협박’했기 때문이었다.

법 앞에 주먹이 있었고,

KH는 그것을 행동으로 보였다.

본인이 가지고 있던 기득권을 버리고 KH의 잘못을 따질 용기 있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언론들 또한 입을 다물었다.

굳이 KH의 미움을 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으리라. 그렇게 사건은 조용히 묻혔다.

선소연은 목걸이를 가지고 자신의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50분의 벽을 넘었다고 했으나, 아직 테스트를 완료하진 못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50분을 넘었으면 금방이다. 불에 대한 적응을 어느 정도 완료했다는 뜻이니.

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집단 건물에 출근했다. 연습실에서 불의 기운을 컨트롤 하기 위함이었다.

“단장님!”

“어, 주유라 씨. 오랜만에 보네요?”

건물 1층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서류 가방을 챙겨 든 주유라가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불쑥 나타났다.

그녀의 모습은 살짝, 아니, 많이 초췌해 보였다. 안 그래도 다크써클을 타투처럼 달고 다니는 사람인데, 요즘 들어 더 심해졌다.

거의 집단 총책임자의 역할을 부담하고 있으니 정신적으로 피로할 만도 하지.

황혼 사건 이후에도 난 훈련에만 전념할 뿐, 집단 내부의 일에 관해서는 일체 보고도 받지 않았으니, 그녀 혼자서 모든 걸 책임지고 결정해왔던 것이다.

“고생하시네요.”

내 격려에 그녀가 빙긋 웃었다.

“아니에요. 다 인류를 위한 일인걸요.”

“그렇게 생각해 준다니 제가 다 고맙군요.”

“그나저나, 이번에 나간 1, 2, 3팀이 생각보다 잘 해주고 있는 것 같아요.”

“오, 그렇습니까?”

“네. 이거 보실래요?”

그녀가 스마트폰을 뒤적거려 집단 홈페이지에 접속하더니 나에게 내밀었다. 그곳에는 KH에 대한 세간의 반응들이 담겨 있었다.

└KH 해외 파견 이후, 멸망했던 국가들이 하나하나 재건하고 있다네요. 계속 늘어나는 괴물들 때문에 불안했는데 이제 발 뻗고 잘 수 있겠어요.

└춥고, 더운 나라에서 열심히 고생하시는 우리 한국인들. 안쓰럽ㅜㅜ

└다 결정체 벌려고 하는 거겠지.

└??? 결정체 줄 테니까 니가 잡아줄래? 저 사람들도 목숨 걸고 하는 건데 말이 심하네.

└줄 능력은 있냐? 줘봐. 다 쓸어줄게.

└응. 다음 KH 입단 테스트 탈락자.

└KH 파이팅. 더 열심히 일해라! 괴물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고작 90명이서 전 세계를 커버하고 있어요. 몸이 열 개여도 불가능한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돈이 문제였으면 한국이나 주변 나라에서 A급 균열 몇 개만 해결했겠죠. 그것만 해도 평생 먹고살 돈 벌 텐데. 마땅히 존경받아야 할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KH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짐에 따라, 홍보팀에서 관리하는 공식 홈페이지에 들락거리는 사람들 또한 하루가 다르게 늘어갔다.

악의적인 비난을 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에 대해 반박하는 사람들 덕분에 빠르게 묻혀갔다.

“반응이 엄청 뜨겁죠?”

“엄청나네요.”

“저번에 개설한 홈페이지 트래픽 용량에 무리가 갈 정도라 이번에 서버 컴퓨터까지 새로 구입했어요.”

“그 정돕니까?”

“네. 전 세계 사람들이 들어오거든요. 평균 동시접속자(ACCU) 수만 거의 1,000만에 육박해요. 창설 한 달 만에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는 거죠.”

“후우- 단원들이 고생하네요.”

누구의 말 따라 정말 몸이 열 개여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KH의 각 팀은 WHO(세계헌터기구)의 버나드 스미스와 합작해 해외 지원을 돕기로 했었다.

1팀은 북, 남아메리카 전역.

2팀은 아시아, 러시아 전역.

3팀은 유럽, 아프리카 전역.

4팀은 한국 전역 및 휴식.

물론, 무작정 가서 균열을 처리하는 건 아니었다.

각 정부에서 인원 부족이나 난이도로 인해 처리하기 힘든 균열이 발생하면 WHO로 지원요청을 보내고, 그에 맞추어 KH 팀이 출동한다.

대가는 균열에서 나오는 결정체.

일각에선 결정체를 KH가 쓸어가면서 타국 헌터 경쟁력을 낮출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었으나, 걱정과 다르게 지원요청은 수없이 빗발쳤다.

일단 경쟁력도 살아야 갖출 수 있는 거니까. 그렇게 조금씩 각 팀들은 실전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있었다.

“각 팀장들이 정말 잘해주고 있어요. 아직 사망자도 없고요.”

“음…… 2주 후엔 어느 팀이 국내로 옵니까?”

한 달 주기 로테이션을 통해 한 팀은 국내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조치했으니, 4팀도 2주 후면 파견을 가야 했다.

“4팀은 3팀이랑 교체할 겁니다. 한 칸씩 내려서 교대하기로 했어요. 아무래도 1팀과 3팀에 비해 2팀이 좀 쉬워서 그대로 지역을 고정하면 불만이 나올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메리카 지역엔 균열 출현 빈도가 높은 ‘금지의 땅’이 있고, 아프리카 지역은 전 지역이 멸망하다시피 했다.

비교적 헌터 강국들이 모여 있는 2팀 지역에 비해 업무 강도가 셀 수밖에 없었다.

“그렇군요.”

받았던 휴대전화를 다시 건네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유라는 그것을 냉큼 받아 들었다.

“안 그래도 단장님께 말씀드릴 게 있었는데, 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나요?”

“음……. 그럼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단장실로 올라가죠.”

“네, 사실 그럴 줄 알고 미리 준비해놨어요.”

***

손나연은 비서실에 앉아 다리를 꼰 채 하품을 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오늘은 여기서 뭘 하지?’

한 달 전 KH 최종면접에서 합격하고 입사했을 땐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초봉 8,000에 대기업에 준하는 복지. 그리고 엄청난 명예.

무려 헌터집단 단장 비서직이다.

그것도 그런저런 헌터집단이 아니라 세계 최강의 집단인 KH다. 부모님도 기뻐하셨고, 친구들에게도 자랑했다. 본인이 아는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했다.

그런데 막상 와서 하는 일에 놀랐다.

초창기 집단이다 보니 인수·인계받을 사항도 없었고, 다들 바쁜지 아무도 신경 쓰지도 않았다.

웃긴 건 무려 단장님 비서직인데 인원이 본인 한 명이었다.

‘하아…….’

모름지기 비서란 각종 자료를 수집, 정리하여 단장님이 편안하게 업무수행 할 수 있도록 보좌해야 하는 건 줄 알았다.

그러나 여기서 하는 일은 고작 커피 타기와 청소.

그것도 2주 전부터는 단장님이 오시질 않으니 청소만 주구장창 했다.

세상에 월급루팡도 이런 루팡이 없었다. 본인이 비서인지 청소부인지 구분이 안 갈 찰나에 문자가 도착했다.

띠링-

[주유라 총무님 : 곧 단장님 데리고 올라갈 거니까, 메일에 보내놓은 서류 좀 뽑아 놓으세요.]

“허억!”

정신이 번뜩 들었다.

풀어헤쳤던 정장을 빠르게 정리한 후 거울을 보고 화장을 고쳤다.

그와 동시에 마우스를 움직여 메일을 확인했다. 그러자 보이는 하나의 서류.

[팀별 최상급 결정체 수익 현황]

[1팀] A급 52개, B급 66개

[2팀] A급 23개, B급 41개

[3팀] A급 42개, B급 82개

[4팀] A급 5 - 5 = 0개, B급 19개

[총] A급 117개, B급 208개

“이…… 게 뭐야.”

손나연은 멈칫하더니 눈을 굴려 서류 끄트머리에 있는 기간을 확인했다.

고작 2주.

이게 2주 만에 벌어들인 결정체 수익이라고?

아무리 세계 최강의 헌터그룹이라지만 이건 너무 밸런스 붕괴였다.

B급 이상 결정체 하나 구하려고 발버둥 치는 그룹이 쌔고 쌨는데 2주 만에 300개 이상을 구하다니.

그렇다면 C급 이하 결정체는 또 얼마나 벌었다는 말인가.

눈이 핑글핑글 돌았다.

결정체가 많이 풀렸다지만 아직도 A급 결정체의 가치는 하늘을 뚫는다.

아마, 전 세계인이 헌터가 될 때까지 수요는 계속될 것이다.

“아차, 빨리 출력해야지.”

출력버튼을 누르고,

재빨리 커피를 타고 있자,

띠링-

엘리베이터 소리가 울렸다.

그곳에서 내리는 남자와 여자.

단장님과 총무님이었다.

손나연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아, 나연 씨. 서류 들고 단장실로 들어와 주세요.”

“……네!”

***

2주 만에 보는 단장실.

드나들지 않음에도 먼지 없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내가 소파에 앉자 주유라도 맞은편에 앉았다.

“깨끗하네요?”

“그렇죠? 저 친구가 청소하나는 기깔나더라구요.”

“그래요?”

“네. 면접 당시 대기실에서 보이는 쓰레기란 쓰레기는 다 줍더라고요. 뭐, 뻔히 보이는 행동이긴 했는데 어차피 주 업무가 단장실 정리라 냉큼 뽑았죠. 인상도 좋았구요.”

“그, 그렇군요.”

주 업무가 단장실 정리라니.

집단일을 돌보지 않는 나를 겨냥한 느낌에 땀이 삐질 흘렀다. 얼마 있지 않아 비서가 서류 한 장을 들고 조심스럽게 단장실로 들어왔다.

“서류 가져왔습니다.”

“이리 주세요.”

주유라가 서류를 받았고,

손나연은 꾸벅 인사한 후 다시 나갔다.

“앞으로 업무 보실 일 있을 때 저 친구를 사용하세요. 그래도 4개국어까지 사용하는 학벌 좋은 앤데 아마 요즘 일이 없어서 회의감에 빠져 있을 거예요.”

“그, 그렇죠.”

내 대답에 그녀가 싱긋 웃더니 서류를 건넸다.

“이게 뭐죠?”

“2주 동안의 결정체 수익 보고입니다.”

난 서류를 쓰윽 훑었다.

예상만큼의 수익이었다. 아무래도 각 국가가 맡기 힘든 곳 위주로 처리하다 보니 최상급 결정체 위주로 얻어낸 모양이었다.

“괜찮네요. 4팀은 황혼에서 얻어낸 수익인가 보죠?”

“그렇습니다. 단장님 명대로 홍이나 씨한테 5개 지급했습니다.”

“잘했습니다.”

“저…… 단장님.”

주유라가 조심스레 물었다.

“말씀하세요.”

“자금관리 관련해서 C급 이하 결정체들은 대부분 현금화하고 있는데, 남은 금액을 전부 배당으로 할지 유보로 할지 몰라서 일단 유보로 책정했습니다. 혹시 개인 돈 필요하시면…….”

“아니요. 괜찮습니다. 돈이 필요하면 따로 말씀드릴 테니 남은 돈은 전부 회사발전이나 기부에 사용해 주세요. 결정체 사업 건도 있고 하니…….”

“알겠습니다. 분기마다 재무제표 작성해서 올리겠습니다.”

집단의 지분은 100% 나에게 있기에 자금 사용에 있어서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손나연에 대해 이야기한 것도, 그녀의 월급이 빠져나가는데 아무 일도 안 하고 있으니 괜스레 나에게 미안해졌기 때문일 거다.

결국은 내 돈을 지불하고 있는 것이니.

물론, 난 상관없었다.

돈은 부족함 없이 충분히 벌리고 있었고, 내 신경은 오로지 불의 종족에 쏠려 있기 때문이었다.

그저 내가 볼 재무제표만 만들어서 보여주면 된다.

자본금을 투자자들에게 받는 주식회사도 아니기에, 국제 규정에 맞는 양식이 아닌 내가 보기 편한 양식으로.

“그나저나, 홍이나는 잘하고 있습니까?”

“아, 그것도 설명해 드리려 했어요. 홍이나 씨가 몇 건 물어오긴 했는데 단장님이 바쁘셔서 제가 검사해보고 승인했습니다. 괜찮죠?”

“그럼요. 유라 씨가 어련히 잘 판단했겠죠.”

“간단하게 말씀드릴게요. 카이스트 연구팀에서 찾아왔는데 결정체로 무기를 만들 수 있다 하더라구요.”

“무기요?”

내가 관심을 보이자 주유라가 말을 이었다.

“네, 결정체를 이용해서 본인의 능력을 증폭할 수 있게 만들었더라고요. F급 결정체 하나로 간단한 반지를 만들어 왔는데 실제로 실험해 보니 미량이나마 능력이 증폭되더군요.”

“오?”

“물론, 좀 더 연구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 안에 담긴 기운을 전부 이끌어내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하급 결정체 몇 개를 더 지원해줬습니다.”

나나 선소연에게 증폭 무기는 쓸모없다.

어차피 심장 안에 담긴 기운을 전부 컨트롤하기도 힘든 상황이니.

그러나 단원들에게는 쓸모 있을 수 있었다.

그들은 5차 탈피를 전부 이룬 상태. 조금이나마 힘을 더 증진시킬 수 있다면 투자할 만하다.

“좋습니다. 성과 나오는 대로 보고해주세요. 연구비도 두둑하게 지원해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그 외의 자잘한 건은 지금처럼 제 판단하에 직접 처리하겠습니다.”

“믿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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