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대위 귀환하다 071화
18. 황혼(4)
“저게 뭐야!”
“피해!”
“끄아아악! 사, 살려줘.”
고작 30명.
KH의 단원들은 사방 각지로 펼쳐나가 각자의 능력을 쓰기 시작했다.
어떠한 전략도, 연계기술도 없었다.
그저 양떼 목장에 풀린 늑대들처럼 학살할 뿐.
그들은 단호했다.
붉은 옷을 입은 자들 혹은 반항하는 자들은 거리낌 없이 죽였으며, 재벌가 자제들이나 그들의 헌터들은 단장의 명대로 팔 하나씩 뽑아버렸다.
비명을 지르든 항복하겠다고 애원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해야 하는 일을 한다는 듯 기계적으로 이행할 뿐이었다.
입단 테스트에서 검증했듯이 단원들은 애초에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명분이 주어지면 그 누구보다 잔혹해질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아마 그들의 뇌 속에는 이미 이들을 사람이 아닌 쓰레기로 인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성낙연은 정신이 없었다.
“한 놈씩 타겟팅해! 이 머저리 같은 놈들! 도망 다니지 말고 공격을 하란 말이다!”
애초에 싸움 자체가 되질 않았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전열을 갖추려 해봤지만, 황혼 헌터들은 압도적인 각성능력에 밀려 도망가기 바쁠 뿐 도저히 통제되질 않았다.
‘이게 어떻게 키워낸 인원들인데.’
분통이 터졌다.
류세비 그년은 하필 건드려도 KH를 건든단 말인가. 그것도 들어보니 팀장급 인사를 건든 모양인데. 정민우가 당할 때 알아챘어야 했다.
‘안 되겠어.’
성낙연은 용수철처럼 몸을 튕겨 공중으로 떴다. 항상 마지막 수단으로 사용하던 에너지 빔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하루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대신,
평범한 S급을 아득히 웃도는 파워.
KH 단원들 역시 본인과 동일한 S급이지만 에너지 빔을 맞고 살아남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황혼 멤버들과 이 건물 역시 동시에 날아가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단 나부터 살아야지.’
그는 기운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지막 음절이 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복부가 터져나갈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입에서 찐득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이어 몸이 날아가더니 뒷벽에서 느낌이 왔다. 온몸이 부서질 듯한 거대한 충격!
“크어억-”
초점이 흐릿해졌다.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허리와 척추뼈가 전부 박살 난 것 같았고, 찢어진 대흉근을 통해 튀어나온 하얀 갈비뼈마저 보였다.
성낙연은 그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두 개의 검은 그림자가 자신에게 다가옴을 느꼈다.
눈을 부릅떠 간신히 그 정체를 확인했다.
홍이나와 그녀가 데려왔던 남자. 역시 그놈이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입을 벌렸다.
허파에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힘겹게 하고 싶은 말을 내뱉었다.
“사, 살려…….”
그러나 말을 전부 뱉어내지 못했다.
남자가 주먹을 뻗었기 때문이었다.
스트레이트.
간단하고도 흔한 복싱 동작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간단하지 않았다.
복부에 마치 대포라도 맞은 듯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겨우 버티고 있던 육체가 옆으로 무너져 내렸다.
간신히 보였던 시야마저 컴컴해졌다.
“한 놈은 처리했고…….”
미약하게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를 인식하며 그는 허무하게 즉사했다.
“꺄아악!”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류세비가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다. 눈에서는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홍이나와 그 남자가 있던 곳 반대 방향으로 정신없이 내달렸다.
‘KH라니……. KH라니! 홍이나 이 여우 같은 년. 남자 없다고 하더니 KH 사람을 꼬신 거야? 얍삽한 계집애.’
그녀는 공포에 가득 찬 눈으로 홍이나를 저주했다.
성낙연에게 내동댕이쳐졌을 때만 해도 이 정도로 절망적이진 않았다. 적어도 목숨에 위협은 없었으니까.
주변을 둘러다 봤다.
양손에 전기를 뿜어내는 남자를 포함한 10명의 헌터들이 황혼 헌터들을 도륙하고 있었고, 남은 20명 이선 경기장 외곽을 돌아다니며 양팔을 가진 자들의 팔을 뜯어내고 있었다.
류세비는 이곳이야말로 지옥이라 생각했다.
‘죽기도 싫고 그렇다고 팔이 뜯기기도 싫어.’
너무 두려웠다.
살아 있는 사람의 생팔을 잡아 뜯다니 너무 잔혹하지 않은가. 그녀는 본인이 ‘결투’ 속에서 죽어 나가는 헌터들을 바라보며 즐겼었던 과거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야 해.’
그 남자가 분명 경기장 안에 있는 인원들은 건들지 말라 했었다.
그러나 모든 경기장 주변에는 커다란 나무기둥과 뿌리들이 촘촘하게 덮혀 있었다.
아무래도 KH 단원 중 하나가 경기장 내부 인원을 보호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그녀는 음식이 모여져 있는 구석 식탁 쪽으로 향했다. 기어서 슬금슬금 밑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식탁보를 이용해 몸을 감추고 숨소리마저 내지 않았다. 류세비는 온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저벅- 저벅-
발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심장이 펄떡펄떡 뛰었다.
“여기 숨어 있으면 모를 줄 알았나.”
소름 끼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콰드득-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사라진 식탁.
톱밥 가루가 그녀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이, 이젠 어쩔 수 없어. 싹싹 비는 수밖에. 이나보다는 남자가 좀 더 무자비해 보이니까…….’
류세비는 그녀가 해야 할 일을 빠르게 판단했다. 어쩌면 도박일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부들부들 떨며 홍이나의 앞으로 기어갔다. 그러고는 그녀를 애처롭게 올려다봤다.
“이…… 이나야. 언니야.”
“응. 알고 있어.”
“기억나지? 우리 옛날엔 사이좋았었잖아.”
“그러게. 그런데 왜 이렇게 변했을까?”
남자는 이 상황이 지겨운지 입을 벌리고 하품하고 있었고, 홍이나는 천천히 그녀의 앞에 쪼그려 앉아 눈을 마주했다.
류세비는 눈을 밑으로 내리깔았다. 그리고 허리를 있는 대로 굽히고 두 손을 모았다.
“미, 미안해. 내가 잠깐 미쳤었나 봐. 우리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봐달라고?”
홍이나가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그녀의 눈은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제발.”
“아까는 가만 안 둘 거라며?”
“잘못했어. 내가 실수했어.”
“아니, 아니 그것까진 다 괜찮아.”
“그…… 그럼?”
“언니는 단순히 장난으로 내 지인을 죽이려 했어. 그리고 그 말도 안 되는 범죄조직은 뭐야? 언니가 사람이야? 언니는 그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갈 때 한 번이라도 살려주려고 노력해봤어?”
“그건…….”
“닥쳐. 더는 변명하지 마. 그 가증스러운 입부터 찢어버리고 싶어지니까.”
홍이나는 싸늘하게 말한 후 일어섰다.
“아저씨.”
“아, 얘기 끝났나?”
“네, 이만 가요. 우리.”
“그래.”
두 남녀는 홀 중앙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류세비는 멀어져가는 그들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뭐지? 살려주는 건가? 나 산 거야?’
순간, 그녀는 안도했다.
성낙연을 머뭇거림 없이 죽였던 남자가 홍이나의 말 한마디에 뒤돌아 갔으니 살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수치심도 올라왔다.
그동안의 삶 속에서 처음 받아보는 대접이었다.
문경그룹의 딸. 그리고 황혼의 안주인으로 있으면서 항상 누군가를 꿇려봤지 본인이 무릎을 꿇는 것은 처음이었다.
류세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를 갈며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두고 봐라.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홍이나 저년만큼은 어떻게든 복수할 거야.’
그녀는 속으로 복수를 결심하느라, 남자가 단원 한 명을 붙잡아 놓고 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
“쟤는 구제 불능 쓰레기니까 그냥 죽이도록.”
***
4팀이 들어온 지 고작 30분 만에 모든 상황이 종료됐다.
처참했다.
지하 공간 전체가 피바다로 변해 있었다.
황혼 전 멤버는 다양한 모양의 고깃덩이로 변해 있었으며, 팔 하나씩 잘린 인원들과 경기장 위에 올라왔던 인원들은 홀 중앙에 모여 있었다.
“끄으으으…….”
“으흑, 으흑.”
고통 속에 울부짖는 자들.
조용히 눈물 흘리는 자들.
미쳐버린 건지 실성한 자들.
그러나 불쌍하진 않았다.
그들이 행한 악독한 짓거리의 대가를 받았을 뿐.
홍이나 역시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형님, 인원들 다 정리했습니다.”
유현동이 팀원들을 정렬시킨 후 나에게 다가왔다.
하얀 단복을 입은 그들의 옷엔 붉은 피하나 묻어 있지 않았다. 그 많은 인원을 처치하면서도 여유를 부린 것이다.
피터 잭슨에게 고작 2주 훈련받은 것 치고는 대단한 성과였다.
“고생했다.”
“건물 지하까지 싹 수색해서 자금이랑 여분 결정체들을 털었습니다. 결정체들은 유라 누님한테 감정 돌리겠습니다.”
“결정체만 정확히 반납하고, 나머지 자금들은 4팀끼리 나눠. 너 재량으로. 회식에 쓰든지 해도 좋고.”
“으헛- 알겠습니다.”
유현동이 씩씩하게 답했다.
뒤에서 듣고 있던 4 팀원들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입단 후 첫 수익일 테니.
“건물이랑 시신들은 전부 철거하고, 남은 인원들은 돌려보내. 혹시 불만 있는 자가 있다면 KH에 직접 항의하라 해라. 혹여 시답잖은 거로 항의할 경우 그만한 각오를 해야 할 거라고도 하고. 난 피곤해서 먼저 가보마.”
벌써 자정이 다 되어 갔다.
조금 피로했다.
순례길에서 1차 합격을 한 이후 한 번도 자지 못했으니. 선소연은 잘 버티고 있으려나.
“네! 형님!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믿는다.”
유현동의 어깨를 두 번 두들겨줬다.
4팀에 뒤처리를 맡기고 홍이나와 함께 건물을 빠져나왔다.
주차장은 한산했다.
이제는 대부분 주인을 잃었을 슈퍼카들 사이로 최강수가 선물해 줬던 내 차가 보였다.
이 많은 차는 어찌 처리해야 할까.
뭐, 유현동이 주유라와 컨택해서 알아서 하겠지. 이곳에서 있었던 대형 참사에 대한 사후처리까지 깔끔하게.
“저, 아저씨…….”
차를 타러 가려던 찰나,
홍이나가 쭈뼛거리며 말을 걸었다.
“응?”
“미안해요. 괜히 저 때문에 손에 더러운 피를 묻히셔서.”
“난 괜찮아.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니. 너 잘못도 아니고.”
홍이나가 남들과 다르다고는 하나 19살의 어린 소녀일 뿐이다.
오늘 저녁에 있었던 대학살극은 그녀에게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남기에 좋을 만큼 충격이 컸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견뎌내야 한다.
F급 균열에서 선소연에게 노인을 죽이라고 시켰을 때와 같은 이유로.
쓰레기들을 상대로 사람 대우해줘 가며 법적으로 처리하기엔 KH는 너무 바쁘다.
“고마워요.”
“고맙긴.”
“헤헤- 결정체 사업은 제가 따로 조사해 볼게요. 국내든 해외든 명문 대학이든 뭐든 다 뒤져서 구해낼 거예요. 두고 봐주세요!”
홍이나가 주먹을 꽉 쥐고 당차게 외쳤다.
“그냥 KH 이름만 대. 몰려들 사람 엄청 많을 거야.”
“아……?”
그녀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왜 여태 내가 구할 생각만 했지?”
“이제부터라도 인식해라. 너도 KH라는 거.”
“……네에.”
아마 아직까지 본인이 태현그룹 즉, 을의 처지인 줄 알았을 거다. 쯧. 하루빨리 A급 결정체 5개 구해다 먹여야지 안 되겠어.
===================
<-- 19. 함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