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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67화 (67/128)

육군 대위 귀환하다 067화

17. YEO(4)

“오늘 제일 핫한 헌터는 누굴까? 아직도 류세비네 헌터가 무쌍이야? 저번까지 해서 총 9연승 챙겼지?”

“참, 진짜 너무하다니까. 솔직히 B급 이상 데려오는 애들은 반칙 아니냐? 그 돈 들이면 여기서 얻을 게 뭐 있다고 B급을 끌고 와.”

“황혼에서 항상 5승 이상 하면 B급 결정체 주는 이벤트 하잖아. 그거 노리는 거지 뭐. 베팅 수익도 짭짤하고.”

“별수 있냐. 꼬우면 우리도 B급 구해와야지. 돈이 많던가……. 하- KH 입단만 성공했었으면…….”

“그냥 오늘은 돈이나 따가련다. 류세비한테만 걸면 무조건 따는 거 맞지?”

“그치. 류세비 그년만 잘 피해 다니면 돼. 잘못하다 ‘결투’ 걸리면 아까운 내 헌터만 날리는 거라고. 그리고 소문에 의하면 류세비 헌터 A급이래.”

“미친…….”

아직 2부 행사 시작 전.

연회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오고 있었다.

이미 내려와 있는 인원들은 그들을 기다리며 담소를 나눴다. 반 정도는 결투하겠단 의지가 충만한 사람들이었고, 나머지는 게임 자체에 흥미를 품고 온 사람들이었다.

나 역시 홍이나와 함께 가벼운 스낵과 음료를 먹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류세비에게 막대한 것이 시원했는지 아까부터 기분이 들떠있는 상태였다.

“아마 걔 인생 최대의 모욕이었을 거예요. 단단히 화났을걸요?”

“뭐, 겨우 그 정도로.”

“곱게 자란 애들의 한계죠 뭐.”

“그러는 넌?”

“전 나름 KH 입단에 성공한 사람이라구요! 류세비 데리고 그 시험 치르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아마 1차에서 바로 떨어질걸요?”

“그건 그렇지.”

나도 그녀도 일말의 긴장조차 하지 않았다.

류세비건, 황혼이건, 성낙연이건 KH 앞에서는 달빛 앞에 반딧불 수준이다.

난 그녀의 지속되는 류세비 험담을 들으며, 아까 잠깐 능력 썼을 때를 떠올렸다.

담배 한 모금을 피웠을 때, 선소연에게 감정을 전달했다.

내 능력을 그런 식으로 이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의사가 제대로 전달 됐을지는 함부로 확신하지 못한다.

물론, 딱히 전달 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거고, 혹여나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할지라도 홍이나 하나쯤은 지킬 수 있다.

굳이 유현동을 부른 건, 불가피한 상황에서 1~3팀에 비해 실전경험이 부족한 4팀의 경험을 끌어올리기 위함이기도 했다.

황혼 멤버들이 어찌 구성되어 있는진 모르겠지만, 아마 4팀 정도면 손쉽게 상대 가능할 것이다.

그나저나 난 황혼보다는 이 개념 없는 재벌가 자제들의 생각 궁금했다.

단지 유흥 때문에 본인의 헌터를 구해와 이 연회에 참여한다는 건 조금 빈약하다.

C급 이하 결정체라 해도 그들로선 엄청 큰돈일 텐데…….

듣는 둥 마는 둥 혼자 상념하고 있는 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홍이나가 내 앞으로 고개를 쑥-내밀었다.

“아저씨, 무슨 생각 해요?”

“음……. 그냥 왜 이 애송이들이 YEO에 들락날락하는지 궁금해서.”

내 갑작스러운 궁금증에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한참 고민하다 말을 꺼냈다.

“아마…… 두려움 때문일 거예요.”

“두려움?”

“헌터란 존재들이 여태 재벌가가 그래왔던 것처럼 돈도 통하지 않고, 법치주의 위에 있는 존재들이잖아요. 기업들 입장에선 최대한 많은 결정체 수급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겠죠.”

“이 공간이 결정체 수급에 도움이 된다는 건가?”

“네. 제가 아까 들은 바로는 5승 이상만 하면 황혼에서 B급 결정체를 지급해 준대요. 또 본인의 C급 이하 헌터로 10승을 했다? 그럼 대박인 거죠. 황혼에서 B급 결정체로 C급 헌터를 사간다는 거니까.”

“그런 말도 있었나?”

“네. 아저씨 담배 피우고 계실 때 이것저것 주워들었죠.”

“그래도 본인 소속 전투력 높은 C급 헌터가 B급 결정체 하나보다는 낫지 않을까? B급이 능력은 높다 해도 어떤 능력이 나올지는 모르는 거니까.”

“아니죠. 그 C급 헌터는 연회 내에서만 결속력 있을 뿐, 밖으로 나가면 언제 어떤 짓을 할지 모르는 골칫덩어리잖아요. 그것보단 B급 결정체 하나 얻어와서 자기 핏줄한테 먹이는 게 훨씬 안전하겠죠. 또 각성 말고 성장하는데 사용할 수도 있는 거구요.”

그렇군.

황혼이 어떤 짓을 벌이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재벌들의 두려움을 잘 건드리고 있었다.

KH와 연합을 제외하고 국내 결정체 수급의 주축을 담당하는 황혼.

연합과 KH는 주야장천 해외에 팔아댔으니 기업들이 별수 없이 황혼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 심심한데 지하나 둘러볼까요?”

“그럴까?”

잡생각은 그만하고 우선은 이 상황을 즐기기로 했다.

그녀와 나는 공간을 거닐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커다란 지하 내부에는 수십 개의 경기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각 경기장 위에는 어떤 용도로 사용될지 모르는 커다란 전광판이 달려 있었고, 옆에는 마치 카지노 딜러처럼 보이는 직원들이 테이블에서 칩을 정리하고 있었다.

“남들 결투에 돈을 걸 수도 있나 봐요. 본인한테 걸 수도 있으려나요?”

“궁금하면 가서 물어보렴.”

“그래요. 그럼.”

홍이나가 선뜻 말했다.

본인한테 돈 거는 게 가능하다면, 아마 잔잔한 용돈 벌이 수준은 가능할 거다.

상대로 누가 나오든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으니.

몇몇 사람들 또한 딜러들과 대화를 나누며 칩을 교환하고 있었고, 우리도 구석진 곳에 있는 한 여성 딜러 쪽으로 이동했다.

홍이나가 딜러에게 다가가 상큼하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이곳은 뭐 하는 곳인가요?”

딜러는 이곳에서 자신에게 반말하지 않는 사람을 처음 본다는 듯 눈이 동그래졌지만, 프로페셔널하게 다시 본인의 안색을 되찾았다.

“처음 오셨나 보군요. 아가씨.”

“네.”

“그럼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앞에 보이는 경기장은 헌터들끼리의 ‘결투’가 치러지는 곳입니다.”

딜러는 정중한 포즈로 손짓을 해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경기장 둘레로는 구경꾼들이 위치하게 되는데, 그들은 칩을 이용해 베팅을 할 수 있습니다.”

“칩이요?”

“네, 최소 10억부터 최대 50억 분량의 칩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수수료는 총 10%이며, 영업 방침상 카드 결제가 안 돼서 기업 신용에 따라 1개월 동안 무이자, 그 이후로부터는 월 20%의 복리 이자로 대여해 드리니 혹시 빌리실 거라면 빠른 시일 내에 갚으실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와-빡센데요?”

황혼은 연회를 통해 자잘한 불법 배팅 사업까지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극을 원하고, 쾌감이 커질수록 지르는 돈의 단위가 달라진다.

황혼은 그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들의 욕망을 찌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다.

굳이 1개월 후에 월 20%라는 말도 안 되는 복리 이자를 책정한 이유는 본인 여유 한도 내에서만 구매하라는 거겠지.

그러나 마약과, 술, 섹스에 빠져 있는 재벌가 자제들의 ‘자제력’이 굳건할 거라곤 생각지도 않는다.

분명 본인이 갚을 수 있는 한도 외의 칩을 구매하는 자들이 있을 테고, 황혼은 그걸 무력으로 받아낼 거다.

최대 50억이라는 한도를 만들어 놓은 것은 아마 최대한 무리했을 때의 변제능력을 따져놓은 걸 거다.

빈 벌집을 쑤신다고 꿀이 나오는 게 아닐 테니까.

홍이나는 입맛을 다시며 재차 물었다.

“그럼 혹시 본인한테 걸 수는 없는 건가요?”

“물론 가능합니다.”

“오오오…….”

그녀는 흥분한 듯 몸을 부르르 떨며 나를 쳐다봤다.

얘도 누구나 그렇듯 돈 벌 생각에 신난 듯했다. 승률 100%를 확신하는 검투사가 눈앞에 있다는 건가?

“아저씨, 아저씨, 저 아저씨한테 걸어도 돼요?”

“으음…… 난 결투에 임한다고 한 적 없는데?”

“……아앗?”

내 말을 들은 홍이나는 잠깐 경직하더니 마치 병든 새끼고양이처럼 축 늘어졌다.

그러더니 곧이어 자신의 머리를 콩-하고 세게 때렸다.

“……죄송해요. 제가 혼자 너무 신났죠?”

그녀 혼자 신난 건 아니었다. 나 역시 이 시스템을 보는 순간 용돈 벌이를 할 생각이었으니까.

나로선 푼돈이라 해도 어차피 피 묻은 돈, 황혼이나 재벌들의 손에 들어가느니 내가 가져가서 헌터 복지 사업에 조금이나마 보태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뭐, 복지 단체에 기부를 해도 될 것이고.

그러나, 난 딜러에게 칩을 대여할 수가 없다.

KH의 신용으로 돈을 땅기는 순간, 딜러를 통해 황혼의 귓속으로 틀어갈 테고 소문도 급격하게 퍼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배당이 낮아지게 되고, 수익도 바닥이겠지.

그 말인즉슨, 홍이나의 뒷배경인 태현그룹의 신용으로만 투자해야 하는데, 그녀와의 수익 비율을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해 가벼운 쇼를 한 것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이득은 홍이나가 취하게 둘 순 없으니까.

“8:2라면 생각은 해볼게.”

“……네?”

내 제안에 홍이나가 벙찐 표정으로 쳐다봤다. 전혀 예상 못 했다는 반응으로.

“누, 누가 8인데요?”

“당연 나지.”

“와-초기 보증금이 얼마나 큰데, 이거 다 날릴 위험은 생각 안 하시는 거예요?”

“넌 내가 이길 거란 걸 100% 확신하고 있잖아. 싫으면 관두던가.”

“으아…… 각박해.”

사실 그녀는 9:1로 하자 해도 따라가야 할 판이다. 무조건 따는 게임에 배당률도 높을 테니까.

“어떡할래?”

“에이씨- 콜 할게요. 어차피 아저씨가 결투 안 하고 깽판 치면 다 말짱 꽝인 건데…….”

“현명하네.”

그녀는 딜을 받아들였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라. 여기서 번 돈이 다 어디로 가겠느냐. 다 결정체 사업이나 단원들의 복지에 쓰이겠지.

물론 이곳에 있는 돈을 다 합친다 해도 앞으로 KH가 벌어들일 돈에 비하면 발톱의 때만도 못하겠지만.

“칩! 빌릴게요.”

홍이나가 딜러에게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아가씨. 절차상 신분증이 필요하고, 소속도 말해 주셔야 합니다.”

“여기요. 이름은 ‘홍이나’고 태현그룹 소속이에요.”

그녀가 신분증을 내밀었고 딜러의 눈이 잠깐 커졌다.

태현그룹은 아직까지 명실상부 재계 1순위.

눈앞의 예의 바른 아가씨가 그 정도의 신분일 줄은 몰랐을 거다.

또 그녀 옆에 있는 내가 범상치 않음을 느낀 것일까, 여성 딜러는 눈을 굴리며 내 모습도 스캔했다.

“음……. 아가씨는 총 50억까지 구매할 수 있으십니다. 수수료 포함 총 55억 청구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전부 대여할게요.”

“알겠습니다.”

딜러는 화려한 손놀림으로 칩을 정리하더니 정중하게 홍이나에게 건넸다.

“여기 10억짜리 검은 칩 5개입니다.”

“고마워요. 딜러님.”

칩을 챙겨 든 그녀가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언제 불만이 있었냐는 듯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간만에 제대로 휴가 나온 느낌이었다.

선소연과 라스베이거스에 다녀온 이후로 처음이지 아마.

“이제 잘해봐요. 동업자 아저씨. 헤헤-”

발랄한 홍이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피식-웃어줬다.

***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저녁 22시 30분.

1층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내려왔는지 계단에 있는 문이 닫혔다.

지하가 얼마나 넓은지, 1층을 가득 채웠던 인원이 전부 내려왔음에도 북적여 보이지는 않았다.

순간, 웅장하면서도 익숙한 클래식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검투사들의 입장(Entry of The Gladiators)’

프라하 출생의 체코 작곡가인 율리우스 푸칙(Fucik)이 만든 곡.

대중적이면서도 이곳 분위기에 어울리는 리듬이었다.

본인들의 유흥을 위해 싸우는 헌터들을 검투사에 비유한 것일까. 그와 별개로 음악 자체는 좋았다.

이미 조금씩 취한 참석자들은 흘러나오는 리듬에 맞추어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곧이어 음악이 끝나자, 안내방송이 퍼졌다.

[YEO 2부 행사에 참석하신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동안 정성을 다해 새롭게 단장한 공간에서 여러분들이 고대하시던 파격적이고, 화끈하고, 자극적인 헌터들의 전투를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역시 5승 이상 채우신 주인들에게는 B급 결정체를 상품으로…….]

전문 MC가 유쾌한 목소리로 진행을 시작했고, 사람들은 각자 끌리는 경기장으로 본인의 헌터를 데리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익숙한 얼굴, 이유진이 7번째 경기장에 보였고 류세비도 마지막에 들어왔는지 경기장 한쪽에 자리를 잡고 두리번거리는 모습도 보였다.

누가 봐도 애타게 우리를 찾고 있는 모습이었다.

“저기 봐. 5번째 경기장.”

“네? 왜요?”

“네가 싫어하는 애 있다.”

“어! 정말이네요.”

순간,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벌써 한쪽에서 ‘결투’가 시작된 것이다.

‘죽여라, 죽여라’를 외치는 게 딱 로마의 콜로세움의 한 장면을 보는듯했다.

“이나야.”

“네?”

“류세비한테 가기 전에 딱 한 마디만 할게.”

“어떤…….”

“내 추측이 맞다면 오늘부로 YEO는 해산일 거다. 앞으로는 이런 모임 없이 KH 신규 사업에만 몰두해.”

“무, 물론이죠. 그래도 옛날엔 이런 모임에서도 품격이라도 챙기려고 했다던데……. 지금은 후우…… 아무리 결정체가 중하다지만.”

홍이나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맞다. 지금은 그냥 사교를 빙자한 불법 도박판의 모습이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잔인하고 천박한 짐승보다 못한 연놈들의 모임.

일단은 홍이나가 기대하는 대로 결투를 진행할 거다. 아직 4팀이 오기까진 시간이 좀 남은 것 같고, 딱히 할 것도 없으니.

돈을 번 후에 황혼이 어떤 짓을 벌이고 있는지 낱낱이 파헤칠 생각이다.

혹시나 홍이나의 말대로 불쌍한 일반인들의 목숨을 갉아먹고 있는 사업이라면, 그때는…….

다 뒤지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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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황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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