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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66화 (66/128)

육군 대위 귀환하다 066화

17. YEO(3)

홍이나가 어이없다는 듯 픽-웃었다.

“죽는다고? 죽긴 누가 죽어.”

“다 들었다며? 2부 시작하고 내가 결투 진행하면 어쩔 건데.”

류세비가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며 눈짓을 하자 뒤에 있는 남자가 굳은 표정으로 나섰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술 향이 이곳까지 퍼지는 게 꽤나 마신듯싶었다.

“이나야. 안타깝게도 여기 있는 헌터는 A급이란다. 그것도 1승만 더하면 황혼에 가입할 수 있는 엘리트 중 엘리트. 낙연 씨가 장난감 하나 달라니까 내줬어. 네가 데려온 남자가 누군진 모르겠지만 얘를 이길 순 없을걸?”

류세비는 성낙연의 이름을 거론하며 자랑 아닌 자랑을 시작했다. 홍이나는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실망이네.”

“뭐?”

“YEO(Young Entrepreneurs’ Organization)? 이름만 거창하지, 이런 유치한 놀이나 하는 줄 알았으면 오지도 않았어.”

“유치하긴. 이제 기업의 미래는 헌터야. 헌터의 행동이 곧 법이고, 도덕의 기준이 되는 세상이 오겠지. 그전에 우리는 이 모임을 통해 헌터 위에 군림하는 법을 배우는 거야. 애초부터 한국을 지배했던 우리 자리를 지키는 거지.”

“까는 소리 하네. 그냥 자격지심에 똘똘 뭉쳐 비겁한 짓이나 하는 년이.”

홍이나의 말투가 거칠어졌다.

반면에 류세비의 표정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본인 뒷배경에 대한 확고한 믿음 때문이겠지.

“쯧, 그 저급한 말투는 여전하네?”

“2부에서 결투할 거면 해. 난 상관없으니까. 언니나 그 뚝배기 조심해. 수틀리면 깨버릴 거니까.”

“큭큭, 너 허세 때문에 좋은 꼴 못 당할 저 남자는 생각 안 하는 거니?”

류세비는 홍이나의 거친 말을 가볍게 넘기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리고 나와 눈을 마주쳤다.

호기심 어린 눈빛.

“이봐. 거기. 이나랑은 무슨 관계야?”

자연스럽게 말을 놓으며 다가오는 그녀.

입에 절로 썩은 미소가 지어졌다.

별로 대화하고 싶지 않은 종류의 사람인데…….

“나 말하는 건가?”

내 대답에 류세비는 잠깐동안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너…… 지금 나한테 반말한 거니?”

“응. 그러면 안 돼?”

“깡 좋네? 나 니 목숨줄을 쥐고 있는 사람이야.”

“네가 편하게 먼저 놨잖아. 그럼, 말 트기로 한 거 아닌가? 내가 군 출신이라 여기 룰은 잘 몰라서.”

난 친근감마저 느껴지는 화법으로 그녀를 대했다. 류세비는 헛기침하며 뒤에 있는 남자에게 위스키 잔을 건넸다. 잔을 채워오라는 표시다.

남자는 고개를 한 번 숙이고, 즉시 뒤로 이동했다. 그녀는 머리칼을 뒤로 넘기더니 양손을 허리에 짚고 날 쳐다봤다.

“하- 지금 홍이나 믿고 그러는 거니? 지금이라도 잘 생각해봐. 혹시 알아? 나한테 잘 보이면 사주기라도 할지.”

“미안한데. 내가 결투에 응해야 할 이유라도 있나?”

“규칙을 어기겠다?

“웃기는군. 애초에 계약서조차 작성하지 않고 허위 초대장을 보낸 건 너 아닌가? 부모 잘 만나서 철딱서니 없게 큰 건 이해한다만 적어도 상식은 지켜야 하지 않겠나.”

“뭐…… 라?”

“하긴, 애초에 사람 목숨을 두고 장난치는 사이코패스들을 상대로 상식을 기대하는 건 무리겠지.”

그녀가 분한 듯 손을 꽉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홍이나는 속이 시원한 듯 활짝 웃었고, 그 모습을 본 류세비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너…… 너 선 넘었어. 이미 이 연회에 입장한 이상 계약 같은 거 없어. 무조건 규칙에 따르는 거야. 그걸 어기면 황혼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걸?”

결국, 황혼을 들먹이며 협박하는 게 다인 건가. 대화 수준이 아직 애새끼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나도 잔에 남아 있는 와인을 모조리 마셨다.

“그나저나 묻고 싶은 게 있다.”

“뭔데.”

“이나는 재계 1순위인 태현그룹인데 도대체 무슨 깡으로 건드는 건가. 감당할 수 있겠나?”

“흥. 문경그룹이 결정체 사업으로 태현그룹 따라잡은 지가 언젠데. 우린 황혼이랑 계약맺고 있다고. 태현그룹이 KH랑 계약맺지 않는 이상 우리 그룹을 다시 추월할 일은 없어. 그리고 전 세계의 콜을 받는 KH가 겨우 태현그룹에 붙어먹을 일은 전혀 없겠지.”

물론, KH는 태현그룹이건 문경그룹이건 관심 없다. 그냥 신경 거슬리게 하면 홍이나 말 따라 다 뚝배기 깨버리면 될 일이니.

류세비는 당당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즉, 대한민국 헌터 집단 중 KH를 제외하곤 황혼을 거스를 수 있는 집단은 없단 소리야. 이제 이해했니?”

“황혼? 이런대서 애송이들이랑 붙어먹는 그 버러지들이 모인 집단 말인가.”

“뭐…… 라고?”

“성낙연. 그 한심한 작자의 얼굴도 한번 보고 싶었는데 마침 잘됐군.”

“하- 이것들이 쌍으로 돌아버렸네. 안 되겠어. 각오해.”

류세비는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붉어진 채로 휴대폰을 꺼냈다.

성낙연에게 전화하는 듯했다.

그녀는 화난 목소리로 ‘오빠. 1부 종료하고 당장 2부 이벤트 열어주세요!’라고 외치며, 마침 위스키 잔을 들고 다가오는 A급 헌턴지 뭔지 하는 사내에게 달려갔다.

생각보다 싱거운 말싸움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1부를 빨리 종료한다니 다행이다. 사실 조금 지겨웠거든.

“아저씨. 괜찮으세요? 괜히 저 때문에…….”

홍이나가 미안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맨날 이런 모욕을 당했던 거냐?”

“아, 아니요. 그건 아니긴 한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저렇게 유치하고 치졸한 편이죠. 그래서 이런 데 오기 싫었던 거예요.”

“그렇군.”

“저 안 참아도 되는 거죠?”

“그럼. 넌 태현그룹 장녀가 아닌 KH의 사업팀장이다. 절대 기죽을 필요도 숙일 필요도 없다.”

“……고마워요.”

***

곧이어 장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안내 말씀드립니다. 아쉽게도 1부 파티는 여기서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참석하신 여러분들은 이후 진행되는 YEO의 꽃인 2부 파티를 위해 천천히 지하로 입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시작하나 봐요.”

“2층이나 3층에서 하는 줄 알았는데, 지하에서 하나 보네?”

“음…… 그러게요. 아무래도 2, 3층은 헌터들이 도망치기 쉬우니까 그런 거 아닐까요?”

“그런가?”

홍이나와 나는 지하 계단을 통해 내려가면서 계속 담소를 나눴다.

“용서 안 하실 거죠?”

“뭐를?”

“여기 있는 애들이요. 사람 목숨을 단순히 놀잇거리로 쓰는 애들. 헌터를 무슨 로마제국 검투사들처럼 다루잖아요.”

“글세…….”

아직까진 아무 생각 없다.

헌터들이 황혼에 의해 강제로 이 연회에 참석한 것도 아니고, 그들이 계약에 정당하게 합의한 상태로 이 행위를 벌이는 거라면 굳이 개입하고 싶진 않았다.

다만, 성낙연의 꼬락서니를 한번 보고 싶을 뿐.

“혹시 몰라요. 여기 있는 헌터들도 사기나 불공정계약에 끌려와 어쩔 수 없이 노예 생활을 하고 있는 걸지도. 해봐야 C급 이하일 텐데, 헌터 조직에서 각 잡고 막으면 지들이 어쩌겠어요. 그냥 당하는 거지.”

그녀의 추측도 일리 있었다.

문득 홍이나가 오기 전부터 불안해하던 원인이 이 아래에 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건 내려가서 지켜봐야 알 것 같다. 만약 그런 거라면 정신들 차리게 해줘야지.”

법치국가라는 말은 옛말이다.

헌터라는 초능력자들이 범죄를 저지르면 그것을 통제하고 응징할 사람 또한 헌터뿐이다.

개인화기도 통하지 않는 헌터를 일반 군경이 어떻게 구속하겠는가.

지하는 넓었다.

솟아 있던 저택의 10배 정도 크기.

저택 1층의 연회는 정말 단순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하는 화려했다.

수많은 환풍기가 돌며, 지하의 공기를 순환시키고 있었고, 에어컨 바람이 내부 공기를 시원하게 했다.

당연히 여기도 있을 건 다 있었다.

각종 스낵, 음료, 술, 그리고 비싼 담배.

선소연과 균열에서 지냈던 이후 끊었던 담배에 호기심이 생겨 하나 챙겨 들었다.

“흡연자셨어요?”

“원래는. 지금은 끊었어.”

“그런데. 왜요?”

“각성 이후 한 개도 안 폈거든. 지금도 피고 싶어지나 보려고.”

각성 이후 니코틴 중독증상이 완벽히 사라졌다. 신체 발달로 인해 독한 담배 연기 또한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을 거다.

“으……. 저 이래 봬도 미성년자라구요.”

신속하게 멀어지는 홍이나를 바라보며 손을 튕겼다. 불의 능력이 있는데 굳이 라이터를 쓸 필요는 없지.

화르륵-

난 불붙은 담배 한 개비를 꼬나물었다.

빠르게 연기를 흡입한 후,

천천히 뱉어내며 말했다.

“후우- 됐어. 딱 한 모금만 필 거야.”

***

그 시각.

저녁 9시 45분.

선소연은 잠옷을 입은 채로 침대에 누워 목걸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15분 후에 크라켄을 불러내 순례길에 들어서야 한다.

아직까지 최고기록은 43분. 오빠가 깬 기록에 비하면 17분이나 부족하다.

그녀는 괜히 미안해졌다.

본인 때문에 오빠의 수련이 늦어지는 게 아닌가 하고.

“오늘은 무조건 50분 돌파할 거야.”

눈을 감고 마음을 다잡으며 목소리로 다짐한 내용을 읊었다. 옛날부터 생각하는 것보다 직접 소리를 내뱉으며 각오를 다지면, 그 각오가 더 단단하게 다져졌다.

무엇이 문제일까.

오빠보다 부족한 것이 무엇일까.

그녀는 천천히 고민했다.

솔직히 40분이 지나서부터 쇠구슬이 뜨거워지는 게 제일 힘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심한 고통이 작열통(灼熱痛)이라고 하지 않는가.

오빠는 그래도 불에 어느 정도 친숙함이 있는지 잘 견뎌냈지만, 그녀는 그게 제일 어려웠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는 도중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오빠가 5군단장을 잡을 때부터 느껴졌던 감각.

“또, 이 느낌이네.”

순간, 주변 정보가 눈앞에서 보이는 것처럼 전달됐다.

홍이나. 이유진.

류세비. 황혼…….

있었던 일, 대화, 시야뿐만 아니라 오빠의 감정까지도 마치 직접 그 앞에서 느끼는 것처럼 스며들어왔다.

마지막으로 붙이는 담뱃불의 모습까지. 오빠가 불의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느껴지는 감각이었다.

심지어 위치까지 정확히 느껴졌다. 이곳에서 남동쪽 75도 방향, 거리는 25㎞ 정도면 하남시쯤이다.

“아……?”

오빠가 담배를 피우는 척하면서 그녀에게 감정을 보내고 있었다.

[아직 수련 들어가기 전이지? 직접 올 필요는 없고 4팀을 보내라. 이곳 통신이 안 잡혀.]

수련까지 남은 시간은 약 5분.

류세비란 여자애가 말했던 정보만 들어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 가능했다.

선소연은 급히 휴대폰을 들었다.

그 후 스마트폰 지도를 통해 오빠가 있는 위치의 주소를 대충 외운 후, 발신자에 유현동을 찍었다.

띠리리리-툭-

-엇, 누님! 무슨 일이십니까. 이제 곧 수련 들어가실 시간 아니십니까?

“너, 어디야?”

-지금 부산에서 일보고 올라가는 중입니다. 다들 첫 실전이었는데 수준급이에요. 아마 곧 기사 뜨는 거 볼 수 있을 겁니다. 와 그나저나 누님 그거 아세요?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사람들 시선이 쫘악-집중되는 게…….

“잠깐만 쉿! 누나가 좀 급하거든?”

선소연이 유현동의 수다를 끊었다.

수련시간은 이제 3분밖에 남지 않았다.

1분이라도 놓치기 싫은 그녀로서는 유현동의 수다를 받아줄 상황이 아니었다.

“말할 시간 얼마 없으니까 빨리 받아적어 봐.”

-어떤? 잠시만요!

“경기 하남시 하남대로 656 근처. 그쪽으로 지원 좀 가줘.”

-갑자기 무슨 일이신데요?

“별일 아닌데, 오빠의 호출이야. 아마 실전 경험은 부산보다 거기가 훨씬 더 넘칠걸?”

-아…… 알겠습니다.

“응. 미안해. 얘기는 다음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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