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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65화 (65/128)

육군 대위 귀환하다 065화

17. YEO(2)

“네. 바카라나 포커 같은 그런 수준 낮은 게임이 아닌 더 원초적이고 재미있는 게임이죠. 1부와는 분위기 자체가 다를 거예요.”

“원초적인 게임이라…….”

무슨 헌터들끼리 싸움이라도 붙이려는 건가? 이유진은 술잔을 한 번 기울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도박보다 자극적이고, 마약보다 황홀하죠. 이 연회에 데리고 온 헌터들은 각 주인들의 소유물이에요. 신체에 대한 권한부터 심지어 목숨까지 취할 수 있는. 그게 룰이고, 헌터들도 다 동의한 사항이에요. 그렇지?”

그녀가 뒤에 있는 헌터에게 눈짓을 주자 그가 고개를 숙이며 ‘그렇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애초에 서약서를 작성한 자들에게만 초대장을 발부하거든요. 아마 누군가의 짓궂은 장난으로 괜히 당신만 피 보게 생겼네요.”

홍이나는 별도의 서약 없이 초대장을 받은 것이다.

제대로 된 규칙에 대해 들은 것도 없이. 아마 그녀의 직감대로 그 류세비라는 여자가 꾸민 일이겠지.

“왜 굳이 그런 장난을 치는 걸까요? 무슨 이득이 있다고.”

“음…… 글쎄요. 보통 파트너라 하면 본인이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오게 마련이잖아요. 아마 결투를 신청해서 절망감을 보여주려는 거 아닐까요? 물론 이건 그냥 추측일 뿐이에요.”

결투 그건 또 뭘까?

난 계속 이유진과 대화하며 정보를 얻어냈다. 그녀는 내 질문에 친절하게 답변하며 알려줬다.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의 헌터를 대할 때와 날 대할 때의 태도가 완전히 달랐다.

이유진에게 얻은 정보를 정리해보자면…….

1. 이곳 헌터들은 각 기업과 계약하고 결정체를 먹인 C급 이하의 헌터들이다.

간혹가다 B급 이상의 헌터들도 보이는데 아주 드문 일이라 했다. B급 이상 결정체는 기업에서도 철저하게 관리할뿐더러 장난감으로 쓸 정도로 간 큰 자제는 없을 테니까.

대부분의 기업가 자제들은 빚이 많은 자들이나 노숙자들을 섭외해 하급 결정체를 먹여 통제한다 했고, 이유진의 헌터는 본인의 지원으로 찾아왔다고 했다.

어떻게든 헌터가 되기 위해 본인의 신체까지 포기해가며 지원하는 자들도 있는 것이다.

혹시 연회에 입장한 후 건물 밖으로 도망가거나 통제에 따르지 않는 헌터들은 어떻게 처리하는지 물어보자, S급 헌터 ‘성낙연’이 운영하는 조직에서 철저하게 관리한다고 했다.

심한 경우 계약 위반으로 그 자리에서 헌터들을 척살한다니 결속력이 생길 수밖에 없다.

2. 게임이 시작되면 각 주인들은 상대에게 ‘결투’신청을 할 수 있다. ‘결투’는 거절할 수 없다. 거절하는 순간, 본인의 헌터를 상대에게 내어주고 연회장 밖으로 나가야 한다.

헌터의 소유권이 상대에게 넘어가 버리는 것이다.

‘결투’를 받아들인다면 각 헌터들은 목숨을 걸고 싸운다. 이 싸움에서 질 경우 적지 않은 보상금을 내놓아야 한다.

말 그대로 개망신을 당하는 것.

사실 보상금이 문제가 아니란다. 각 기업 자제들마다 특유의 자존심이 있고, 다들 그게 부서지는 걸 극적으로 싫어한다 했다.

이유진은 그 외에도 기업 간 사업 계약 시 답이 안 나오는 부분들을 결투로 해결하는 등 다양한 이유가 존재한다고 말해줬다.

3. 헌터 육체에 관한 모든 소유권은 주인에게 있다. 괜히 남녀로 이루어진 팀이 많은 게 아니었다.

주인이 원하면 목숨 걸고 싸워야 할 뿐만 아니라, 주인 성격에 따라 밤 시중까지 들 수도 있다고 했다.

말 그대로 노예와 다를 바 없었다. 물론 이것은 연회 내에서만 적용되는 계약이다.

4. ‘결투’에서 10번 이상 승리한 헌터는 연회에 출입할 수 없으며, 성낙연이 조직한 ‘황혼’(twilight)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고 한다. 낮은 등급의 헌터 입장에선 그게 최고의 신분 상승이라고 했다.

기업에 졌던 채무관계나 계약관계는 황혼에서 전부 해결해 준다. 재벌가 자제들도 이 계약에는 흔쾌히 승낙했다.

황혼에서 상당히 후하게 값을 쳐주기도 했고, 아무리 날고기는 기업이라 해도 헌터 조직을 상대로 불만을 표시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녀의 설명을 들은 나는 황당했다.

말 그대로 정말 유흥을 위한 돈 많은 애송이들의 수준 낮은 놀음.

갑자기 역겨움이 치밀어 올랐다. 누구는 인류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누구는 사람 목숨 가지고 장난치며 놀이를 즐기고 있다니.

“성낙연이라…….”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다.

첫 헌터 자격증을 따러 관리국에 갔을 때 이세영이 말해줬던 인물.

별명은 ‘균열 청소기’

과거 한국 랭킹 1위라더니 이런 유치한 조직이나 만들어 놓고 놀고 있었다니. 한 번 손봐줘야 하나?

“그래도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이 피와 고통이 넘치는 축제에도 헌터들이 살아갈 방법은 마련해 뒀거든요.”

“그게 뭡니까.”

“헌터를 상품으로 해서 각 주인들끼리 거래가 가능해요.”

헌터 거래.

이 연회 내에서만 가능한 거래방식으로, 기업 자제들은 본인의 헌터를 사고 팔수가 있단다.

단, ‘결투’가 있기 전에 거래해야만 하며, 그동안의 승리 전적은 모두 초기화된다고 한다.

“그쪽 주인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적이 많은 사람일 거예요. 보통 그런 사람들의 헌터는 오래 살아남을 수 없죠. 저에게 넘어오시면 훨씬 안전할 거예요.”

“글쎄요. 우리 주인이 좀 다혈질적인 성격이긴 하지만, 적이 많을 스타일은 아닌 것 같은데…….”

일단 장단에 맞춰줄 생각으로 홍이나를 주인이라 칭했다.

어쨌든 이 여자에게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다 얻은 것 같았다.

그녀가 날 원하는 것 같았지만 난 이런 저급한 놀이에는 관심 없다.

“조언 참고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주인에게 가보도록 하죠. 아무래도 가여운 우리 주인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것 같거든요. 친절한 설명 감사했습니다.”

난 이유진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후 뒤로 돌아섰다. 그러나 그녀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등 뒤로 가까이 붙더니 손으로 내 엉덩이를 꽉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귀에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정말 누구보다 예뻐해 줄 자신 있어요. 제 치마폭 속으로 들어오시면, 명예와 부. 다 약속드릴게요.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어요. 저 돈 많거든요.”

“…….”

한숨이 나왔다.

이년이 지금 어디에 손을 대는 거야.

그녀의 손모가지를 태워버려야 하나 짧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 손 떼지 못해요?”

붉게 상기된 얼굴의 홍이나였다.

그녀의 매서운 눈초리에 이유진은 급하게 손을 뗀 후 뒷걸음쳤다.

“히익!”

“지금 제 파트너에게 무슨 짓이죠?”

“태, 태현그룹 홍이나?”

그녀들의 높은 목소리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했다.

신기하게도 이유진은 홍이나의 얼굴을 단번에 알아봤다. 나름 정보력을 갖추고 있는듯했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흥미롭게 쳐다보는 사람들.

“쟤가 태현그룹 장녀 홍이나 인가 봐.”

“모임에는 처음 나타난 건가?”

“그러니까 파트너라는 소리 하겠지. 와-간도 크다. 도대체 누가 태현그룹 자제한테 장난질을 쳤을까.”

“예쁘네. 가슴도 빵빵하고, 저건 수술한 건가?”

작게 수군거리는 목소리.

홍이나는 듣지 못하는 것 같지만 내 귀에는 또렷이 들렸다.

가벼운 소란에도 뜨겁게 입에 오르내리는 것 보니 사교계의 핫 아이콘 중 하나인가 보다.

난 이유진에게 따져 물으려는 홍이나의 손목을 잡아 멈춰 세우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일단 관심과 집중에서 벗어나는 게 먼저다.

“이나야. 볼일은 다 봤어?”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그녀가 당황했지만 곧이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네…… 네? 아니요. 이리저리 찾던 중에 아저씨를 발견해서 왔는데.”

“왔는데?”

“저년 눈빛이 불순해 보였어요. 욕망에 가득 찬 더러운 눈빛이었어요. 어딜 감히 단장님께…….”

“이나야.”

“네?”

“흥분 가라앉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냐.”

황혼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아직 정체를 드러내선 안 된다.

또한 이건 이유진에게 보내는 일종의 모션이기도 했다.

그래도 나에게 호의를 보이고 정보를 알려준 그녀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신호.

난, 홍이나와 종속적인 관계가 아니니 눈치껏 물러나라.

“그, 그럼 실례했습니다. 저는 이만…….”

내 태도에 눈을 동그랗게 뜬 이유진은 말을 더듬으며 신속하게 물러났다.

그저 하룻밤 놀기 좋은 장난감이라 생각했던 자가 알고 보니 국내 재계의 진골 중의 진골과 친밀한 관계인 걸 확인했으니 놀랐겠지.

상당히 운이 좋은 처자였다.

안 그래도 짜증이 치밀고 있는 상태였는데 선을 넘지 않았다. 엉덩이를 잠깐 만진 것? 그 정도까진 용서해줄 수 있는 범위의 행동이다.

“일단 자리를 옮기자.”

아직까지 주변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다. 일단 자리를 벗어나는 게 나도, 그녀에게도 좋을 것 같았다.

그녀도 눈치를 챘는지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우리는 사람이 비교적 적게 모여 있는 구석으로 이동했다.

난 이유진에게 들었던 정보들을 차근차근 홍이나에게 설명했고, 그녀의 표정은 점점 기괴하게 변해갔다.

마치 화난 표정과 미안한 표정이 섞인듯한 얼굴이었다.

“죄송해요. 이런 자리인지도 모르고…… 어쩐지 좀 이상했어요. 꼭 둘이 같이 다니는데 한 명은 말없이 서 있기만 하더라구요.”

“그래서 이제 어떡할 거지?”

“나가요. 차라리 공모전을 열거나 대학원을 방문해야겠어요.”

홍이나는 이 자리가 불편한지 빨리 벗어나고 싶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어쩌나. 난 끝을 보고 싶은걸. 오랜만에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아니, 나가지 않는다.”

“네?”

“2부의 실체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거든. 성낙연의 얼굴도 한번 보고 싶기도 하고.”

“괜…… 찮으시겠어요?”

“이 공간에서 도망치면 무시당하는 건 너 아닌가?”

“전 그런 거 상관없어요.”

“내가 상관있다. 단장으로서 단원이 무시당하는 걸 보고 넘길 순 없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들어온 지 1시간이나 흘렀다.

난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홍이나에게 말했다.

“2부가 언제 시작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걱정하지 마라. 아니, 어디 날 믿고 한 번 제대로 날뛰어 봐라.”

“고, 고마워요. 그리고 죄송해요.”

류세비란 여자의 진위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장난이 악랄했다.

홍이나야 괜찮겠지만, 속아서 들어온 헌터들은 뭣도 모르고 당했을 거다.

혹시나 내가 일반인이었다 해도 F급 결정체 하나 강제로 먹인 다음 헌터로 만들면 명분 또한 사라진다.

그게 괘씸해서라도 확실하게 도와줘야겠다.

“어? 이나, 여기 있었네?”

“언니?”

한참을 구석에 서서 기다렸을까.

나름 예쁜 미모이지만 몇 번 칼질을 한 듯 부자연스러움이 있는 얼굴을 가진 여자가 다가왔다.

눈치로 알아챘다. 저 여자가 아마 류세비겠지. 그녀는 나에게 눈을 한번 찡긋하고 홍이나에게 다가갔다.

“진짜 파트너 구해 온 거야? 누군데. 너, 남자 없다며.”

류세비의 말에 홍이나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좀 더 엄숙하게.

“언니. 나 다 들었어.”

“뭘?”

“YEO에서 어떤 짓을 벌이고 있는지.”

“아아…… 벌써 들어버렸구나. 치-재미없게 됐네.”

류세비는 별거 아니라는 듯 웃었다. 홍이나의 얼굴이 다시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게 끝이야?”

“좀 아쉽긴 해. 2부에 데려가서 진실을 알았을 때의 표정도 한번 보고 싶었는데.”

류세비는 계속 홍이나를 어설프게 도발했다.

너무 어설퍼 화도 나지 않는 미숙한 도발. 그러나 홍이나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제대로 먹힌 것 같았다.

“……그 말 나한테 선전포고하는 거라고 봐도 되겠지?”

“푸흡-선전포고는 무슨…… 불쌍한 우리 이나. 지금 본인이 처한 상황도 모르고…… 네가 데려온 저 남자는 오늘 여기서 죽는 거야. 바로 너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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