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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64화 (64/128)

육군 대위 귀환하다 064화

17. YEO(1)

“확실히 늘었어.”

3차 탈피의 성장 효과는 대단했다.

이미지의 형상화가 더 쉬워졌다고 해야 할까? 과거보다 더 정밀한 컨트롤이 가능해졌고, 피로도의 체감도 확 달라졌다.

‘골렘 펀치’

선소연이 지어준 귀여운 이름.

태평양 한가운데서 즉흥적으로 펼쳤던 공격기술이다.

그 당시에는 한 번 사용하고 피로도가 극에 달했었는데, 이제는 10번 사용해야 지칠 정도로 발전했다.

물론 그 이상의 힘도 실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아직 실험해 보지는 않았다.

아직까지 불의 왕의 힘을 전부 사용하는 것은 무리였다. 심장에 자리 잡고 있는 힘이 바다라면, 지금 통제할 수 있는 힘은 강 정도의 수준.

그래도 초반에 비하면 많이 발전한 것이다.

이제 2단계의 탈피만 남은 셈.

가진 힘을 전부 통제할 수 있다면 얼마나 강할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너무 욕심부리지 말자.”

아무리 바쁘고 급하다 하더라도 성급하게 정신력을 끌어올리다 보면 탈이 날 수 있다.

뱀이 괜히 큰 먹이를 삼킨 후 며칠 동안 꼼짝하지 않는 게 아니지.

선소연의 성장 속도도 준수한 편이니까, 며칠만 기다리면 함께 다음 테스트에 도전할 수 있을 거다.

그동안 성장한 힘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로 했다.

“아저씨?”

고개를 돌리자,

조수석에 앉아 있는 홍이나가 보였다.

“아까부터 제 말은 안 듣고 자꾸 뭐라고 중얼거리시는 거예요?”

“아, 잠깐 생각 좀 하느라.”

선소연은 1차 통과 시까지 혼자 수련하기로 했고, 난 홍이나의 부탁을 들어주러 차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 면허가 없는 그녀를 위해 직접 운전까지 해주는 수고를 들여가며.

저녁에 만난 그녀의 모습은 힘을 빡 준듯했다.

단정한 레이스 원피스에 그리 튀지 않는 루비 브로치, 액세서리 장식 몇 개, 세련된 브랜드 가방.

얼굴도 입단 테스트 때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쨌든 저는 이런 사교계 모임 극혐이에요. 온갖 정치질에 신분에 따라 패거리를 나누기도 하고, 막장 개망나니처럼 구는 애들도 있거든요.”

“그런데 왜 굳이 간다는 거야?”

“말했잖아요. 결정체 사업 때문에…….”

“그런 애들한테 사업 정보를 얻어봐야 쓸모가 있을까?”

내 말에 홍이나가 잠깐 고개를 숙이고 작게 기침했다.

“크흠-그만큼 잘난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그래도 나름 이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리더들이 모이는 자린데요. 사업 트렌드에 대한 식견이 있고, 여러 방면에서 지성이 넘치는 ‘진짜’ 도움이 될 사람들을 찾아야죠.”

아무래도 어린 나이에 헌터들이 득실거리는 파티에 간다니 긴장되는 것일까, 대답하는 그녀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근데 표정이 왜 그래.”

“네? 아…….”

“무슨 문제라도 있어?”

내 질문에 그녀가 한참 뜸 들이다 말을 꺼냈다.

“사실 류세비라고 아는 언니가 있어요. 그 사람 눈빛이 불안했어요. 뭐, 아저씨가 있으니 큰 걱정은 없지만…….”

“또 그놈의 직감이야?”

“네, 그런 거죠.”

“항상 느끼는 건데, 그 직감 결국 맞춘 적은 없잖아.”

“아니거든요. 아저씨랑 관련된 것만 그랬지. 꽤 정확하다구요.”

과연, 재벌 3세라 그런지 적이라도 있는 것일까.

부자들의 알력다툼이라, 외계인이 판치는 세상에서 미래를 이끄는 리더니 뭐니 신분을 나눈다는 게 우습기만 할 뿐이었다.

난 그녀에게 건성으로 웃어준 후 계속 운전했다.

***

홍이나의 안내를 받아 하남시에 위치한 3층짜리 폭넓은 저택에 도착했다.

누군가의 별장인지, 오로지 사교 파티를 위한 장소인지 간판도 없는 외딴곳에 홀로 서 있는 건물이었다.

“여기네요. 저도 이곳은 처음이에요.”

“집이 굉장히 화려하네.”

“KH 주택만 하겠어요? 어? 저기 봐요.”

주차하고 문 앞으로 가자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두 남자가 서서, 방문객들의 신분을 검사하고 있었다.

“신분 검사 하는 거?”

“아니요. 방문객들이요. 분명 이성 파트너만 데려오라고 했는데…….”

난 고개를 돌려 그들을 확인했다.

생각보다 큰 행사인지 아직 시간이 안 됐음에도 50명이 넘는 인원이 줄을 서 대기하고 있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들 전부가 남녀로 구성된 팀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남남 혹은 여여로 이루어진 팀들도 간혹가다 분명히 있었다.

“아무래도 그 언니가 장난친 것 같아요.”

“뭐하러 그런 장난을 쳐.”

“그니까요. 내가 남자를 구해와야 한다 하면 못 올 거라 생각한 건가? 어쨌든 미안해요……. 본의 아니게 거짓말한 것처럼 되어버렸네요.”

홍이나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별 상관없었다.

이성이건 아니건 그게 뭐 중하리. 단지 팀장급 이상으로 경호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것뿐이다.

입장은 간단했다.

초대장이 애초에 2인용인지, 아니면 특별한 초대장인 건지 별다른 신분 검사 없이 곧바로 들여보내 줬다.

저택 1층은 굉장히 넓었다.

사방을 가득 채운 뷔페식 먹거리들과 가운데 큰 홀, 그리고 화려하게 세팅된 식탁들.

우아하게 흘러나오는 클래식한 음악은 분위기를 한껏 고풍스럽게 만들어주었다.

공간은 넓었지만, 그 공간이 비좁아 보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전부 와인잔 하나를 든 채 먹거리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는 게, 그냥 평화로운 파티의 모습이었다.

“별다른 위협요소는 없는 것 같은데?”

“그, 그러네요? 제가 너무 예민했나 봐요. 옛날에 사교모임에 대해 들었을 땐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었는데.”

“난 신경 쓰지 말고 볼일 봐라. 주변 좀 둘러보고 있을 테니까.”

“알겠어요.”

일단 그녀를 보내줬다.

이 많은 사람들 중 그녀가 원하는 사람을 찾으려면 바쁘게 움직여야 할 테니까.

난, 곧바로 와인잔 하나와 그릇을 집어 들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은 그간 고생했던 수련에 대한 보상을 즐겨야겠다.

배도 고팠고, 무엇보다 뷔페 음식이 끝내주게 맛있어 보였기 때문에 기대가 됐다.

주변을 돌아다니며 음식들을 동내기 시작했다. 미슐랭에서 인증한 호텔 요리사가 직접 만들어서 그런지 맛이 괜찮았다.

내가 아무리 비우고 비워내도 계속 쏟아지는 질 좋은 음식이 마음에 들었다.

양과 질을 동시에 추구하다니, 이런 자리인 줄 알았으면 선소연도 데려왔어야 하는 건데.

값비싼 와인을 5병쯤 비웠을 때였다.

취기도 적당히 오르고 기분도 좋아져 갈 때쯤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저기요.”

뒤를 돌아다 봤다.

한 쌍의 남녀가 보였다.

화사한 핑크색 드레스에 반짝이는 구두, 누가 봐도 귀티나 보이는 처자와 그 뒤에 똑바른 자세로 서 있는 검은 정장의 남자.

이 사내는 파트너인가?

근데 왜 날 부르지?

내가 궁금증에 눈을 껌뻑이며 쳐다보자 그녀가 빙긋 웃었다.

“아까부터 봤는데 여기 있는 음식…… 입맛에 맞으신가 봐요. 잘 드시네요.”

그녀의 대꾸에 갑자기 이게 무슨 오지랖일까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먹는 모습을 왜 지켜본단 말인가. 그리고 그걸 굳이 나에게 말하는 이유는? 대답 없이 쳐다보는 내 모습에도 그녀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사실, 그쪽이 너무 빨리 드셔서 제가 먹고 싶은 메뉴를 못 먹고 있거든요.”

“아…….”

남들은 두런두런 대화하며 먹는데 내가 너무 먹는 데 집중했었나 보다.

“이런……. 죄송했습니다.”

어쨌든 피해를 준 것에 대해 사과를 하며 고개를 숙이자 그녀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푸흡-장난이에요. 먹으라고 해 놓은 건데 맛있게 먹으시면 좋죠. 전 한성실업의 이유진이라고 해요. 그냥 심심하기도 하고, 가벼운 담소나 나누고 싶어서 말 걸어본 거예요.”

“그렇군요.”

“으음…… 처음 보시는 분 같은데, 어디서 오신 건가요?”

아무래도 이 처자가 나에게 관심을 가진 것 같다. 마침 배도 찼겠다 무시하지 않고 반응해줬다.

“그냥 별 볼 일 없는 헌터입니다.”

“헌…… 터?”

내 질문에 그녀의 표정이 묘해졌다.

웃음을 멈추고 턱을 오른쪽으로 살짝 빼는 게 마치 예상 밖이라는 표정이었다.

뭐, 문제라도 있는 건가? 홍이나에게 듣기로는 이 파티에 헌터들도 모인다고 했는데.

“당신 헌터라구요?”

“그렇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내 대답을 들은 그녀의 눈빛이 이채를 띄었다. 나에 관한 관심이 한층 짙어진 느낌이었다.

“재밌네요. 그렇담 당신의 주인은 누구죠?”

“주인?”

갑자기 주인이라니.

무슨 골때리는 소리지?

헌터가 노예라도 된다는 말인가?

그녀의 목소리도 공경하는 말투에서,

살짝 낮추어 보는 듯한 말투로 바뀌었다.

“주인 그런 건 모르겠고, 파트너는 있습니다.”

“파트너요? 꺄하하하!”

이유진은 ‘파트너’라는 말에 입을 가리고 고개를 젖혔다. 난 갑자기 박장대소하며 터진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도대체 뭐가 웃긴 건지 모르겠군요.”

“파트너라니…… 참 낭만적인 표현이잖아요.”

이거…… 뭔가 있구나.

홍이나는 모르고, 이들만이 아는 정보가.

구리구리한 냄새가 났다.

솔직히 불쾌하다는 느낌보단 호기심이 일었다. 내가 가만히 있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간혹가다 있어요.”

“어떤 게요?”

“파트너라 부르는 사람들이요. 딱 보면 각 나오죠. 장난질에 당한 거예요. 처음 오는 재벌가 자제들한테 쇼크를 좀 주려고 하는 거죠. 그쪽 주인, 아니, 파트너분이 원한 관계가 많으신가 봐요?”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알아듣게 좀 설명해 보시죠.”

“좋아요. 그쪽이 마음에 드니까 알려주는 거예요.”

이유진은 대화를 마치고 돌아보더니 가벼운 눈짓을 했다.

그러자 아까부터 뒤에 서 있던 사내가 앞으로 다가왔다. 인제 보니 D급 헌터 뱃지를 차고 있다.

“엎드려.”

이유진은 단호한 목소리로 사내에게 명령했고, 남자는 신속하게 무릎을 굽히고 엎드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그녀는 사내의 등에 살포시 걸터앉았고,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허어, 이년 봐라.

이게 뭐 하자는 행동이지?

마치 헌터를 의자처럼 사용하고 있는 모습.

너무 자연스러워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봤다.

이런 괴기한 행동에도 사람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몇몇만 흥미로운 표정으로 쳐다볼 뿐, 아무도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없었다.

“갑자기 무슨 짓입니까?”

내가 표정을 구기며 묻자,

그녀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아마 누군가 초대장에 장난질을 쳐놨을 거예요. 사교모임 YEO에는 룰이 있어요. 처음 오는 사람들은 잘 몰라서 제대로 설명해 주게 마련인데…….”

“룰?”

“네. 모두 각자의 장난감을 하나씩 가지고 들어오는 거죠. 그걸 누군가 파트너라고 말해준 거구요.”

장난감이라…….

부잣집 도련님, 따님들이 미쳤나 보군.

세상이 어느 때인데 소중한 전력인 헌터를 장난감으로 사용하다니.

“웃기는군요. 보아하니 그냥 음식이나 먹고 담소나 나누는 자리인데.”

난 그녀에게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굳이 계속 상대를 해줬다. 장난감으로 뭘 한다는 건지 궁금했으니까.

내 말에 그녀가 상큼하게 웃더니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일어났다.

그러자 깔려 있던 사내가 다시 똑바로 일어서며,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쟤는 자존심도 없는 건가?

헌터라 하면 나름 상류층 반열에 들었다는 건데, 겨우 재벌가 딸 앞에서 죽을 못 쓰고 있는 모습이 이상했다.

“지금은 아직 1부라서 그래요. 진짜 파티는 2부부터죠.”

“2부?”

“네. 2부에선 다들 대화를 멈추고 게임을 해요.”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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