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대위 귀환하다 063화
16. 종족의 순례길(3)
“크으으으…….”
“꺄흑…….”
선소연과 내 입에서 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각자 몸집만 한 쇠구슬을 받쳐 들고 있었다.
온몸의 핏줄이 곤두섰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첫 수련은 심플하고도 간단했다.
쇠구슬 들고 한 시간 버티기.
그 말을 들었을 땐 엄청 쉬울 것 같았다.
인도자도 말했었다.
첫 번째 시련이 가장 난이도가 낮다고.
그러나, 말처럼 만만하지는 않았다.
[이 쇠구슬은 각 그대들의 힘에 맞추어 50분간 버틸 수 있게 만들어졌다. 즉, 명백하게 한계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근데 어떻게 한 시간을 버티라는 거지?”
[각자의 한계를 부숴라. 버티고 버텨내라. 그 과정의 반복 속에서 성장하는 것이 이 시련의 포인트다.]
시작 전에 나눴던 대화였다.
인도자는 쇠구슬을 만든 후, 각자 50분이 지나면 한계를 느낄 정도의 무게를 설정했다.
“50분은 무슨 50분…….”
개소리였다.
들자마자 헉, 소리 나올 정도로 무거웠으니까.
그래도 20분까지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공기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입에서 허연 김이 나오기 시작했으며 살이 에일듯한 추위가 느껴졌다. 손에 있는 근육과 핏줄이 전부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냥 들고 버티는 것도 힘든데 인도자가 악조건을 추가한 것이다.
“꺄악, 더는 못하겠어요.”
쿵-
결국, 선소연이 쇳덩이를 집어 던졌다.
나도 신음을 흘리며 구슬을 내려놓았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얼어붙어 있었고,
눈꺼풀에 서린 얼음에 눈을 뜨기도 힘들었다.
[00 : 23 : 30]
지금까지의 최고기록이었다.
꽤나 많이 도전했는데 아직 반도 오지 못했다.
이 수련은 도중 포기가 가능하다. 차라리 강제로 고통을 받는 거라면 더 쉬울 텐데.
이 시험의 의도는 분명했다. 힘든 사항에서도 끝까지 구슬을 내려놓지 않겠다는 의지. 그 의지를 통한 정신력의 성장.
[체력 상황 및 환경 조건을 다시 초기화하겠다.]
인도자의 말과 함께, 땀이 사라지고 찢어진 근육과 뼈가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얼었던 몸은 순식간에 녹았다. 체력과 육체적 피로도 원상태로 복구했다. 물론 정신적인 피로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게 미칠 것 같았다.
힘을 들인 만큼 근육이 성장한다면 더 쉬워질 텐데, 리셋 하는 순간 다시 최초 조건으로 시작해야 한다.
힘이 아니라 오직 정신력만으로 버텨내야 하는 것이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잠깐 딴생각을 하는 순간, 실수로 힘을 풀었고 구슬을 놓쳤다. 그 후, 곧바로 시야가 암전했다. 동시에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앞이 보이기 시작했고, 울면서 내려다보는 선소연의 모습이 보였다.
나중에 그녀의 말을 들어보니 쇳덩이가 곧장 내려와 내 머리를 깨버렸다고 했다. 피떡이 되고 난 후 인도자가 다시 리셋시켜준 거란다.
인도자는 이곳이 실존하는 세계가 아닌 정신감응 세계라 했다.
즉, 죽어도 진짜 죽는 게 아니란 거다. 비록 죽음에 대한 느낌은 100% 전달된다 할지라도 말이다.
난 한숨을 내쉬었다.
앞에 있는 쇳덩이가 저주스러웠다. 이미 주변은 피와 땀으로 범벅되어 있었다.
“이번엔 몇 분이나 했어?”
“전, 19분이요…… 하아-저도 오빠처럼 빨리 20분 벽 깨야 하는데 맘처럼 안 되네요.”
“너무 조급해하지 마. 어떻게 첫술에 배부르겠어.”
“그래도…….”
“처음보단 많이 늘었잖아.”
내 최고기록은 23분 30초.
그녀의 최고기록은 19분.
처음엔 둘 다 5분도 못하고 내려놨었다. 그래도 다음은 적응했는지 10분 이상 버틸 수 있었다.
이게 10분쯤 지나면 근육이 서서히 찢어지기 시작하고 뼈에 무리가 온다. 수십 번 시도해 봐도 그건 변함없다.
다만 신기한 건, 뇌가 고통에 적응하고 있는 건지, 정신력이 느는 건지, 하면 할수록 버티는 시간이 는다는 거다.
“다시…… 시작해야지?”
“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쇠구슬을 들려는 찰나, 인도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아쉽게도 제한이 끝났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후우, 좀 쉬어야겠어요. 몸은 괜찮은데 머리가 아프네요.”
그녀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벌써 12시간이 지났다니,
집중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정신적 피로도는 있었지만, 이 정도면 할 만했다. 크라켄이 괜히 걱정했나 싶을 정도로. 점점 성장해간다는 것에 대한 쾌감도 있었다.
“꼭 시간제한을 걸어야 하는 건가? 더 할 수 있는데.”
[음…… 가능은 하지만 추천하는 바는 아니다. 그대는 느끼지 못하겠지만, 현재 쌓인 정신적 피로도가 상당하다. 휴식 또한 수련의 일부.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런가?”
“이럴 땐 전문가 말 따르는 게 나아요.”
일리 있었다.
적어도 수천 년을 살아오며 영혼의 성장을 돕는 존재. 우리의 상태는 누구보다 잘 알 거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인도자의 소리가 들렸다.
[그럼 내일 12시간 후 다시 보도록 하지.]
순간 공간이 번쩍임과 동시에 눈을 떴다.
시야에는 대리석 바닥과 식탁 다리, 그리고 누워 있는 선소연이 보였다.
뺨이 바닥에 닿아 있는 채로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선소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몸이 이동하는 게 아니라 잠깐 잠에 빠지는 형식인가 봐요.”
“빌어먹을 문어 자식. 말 좀 해주고 보내주지.”
“다음부턴 침대에 누워서 해야겠어요.”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막혔던 기운도 돌아왔고,
신체 능력도 다시 복귀했다.
“그런데…… 피곤하네?”
인도자의 말이 맞았다.
몸은 괜찮은데 정신적으로 지쳐 있었다.
간만에 수면욕이 찾아 왔다.
“오빠. 오늘 몇 번 죽었어요?”
“세보진 않았는데 한 20번은 넘게 죽지 않았을까. 넌?”
“저도 20번 정도요.”
“후우…… 많이도 죽었네.”
쇠구슬을 제자리에 놓는 거랑 끝까지 버티다가 죽는 거와는 차원이 달랐다.
전자는 한계를 느끼고 본인이 포기한 거고, 후자는 절대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거다.
당연, 후자가 더 효과적이었다. 그 이후, 버티는 시간이 조금씩이나마 늘었으니까.
난 셔츠를 마저 벗고, 식탁에 마련되어 있는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너무 졸렸다. 빨리 자고 싶었다.
“주무실 거죠?”
“응. 같이 잘까?”
“……그럴까요?”
우린 선소연의 능력으로 간단하게 씻은 후, 침실에 마주 보고 누웠다.
그녀의 얼굴 또한 피곤해 보였다.
“보통 수련이 아닌가 봐. 이런 느낌 오랜만이네. 졸리다니.”
“그게 보통 인간들은 죽음 직전까지 경험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겪는다잖아요.”
“PTSD 말하는 거야?”
“자세한 용어는 모르지만, 우리 오늘 계속 죽었잖아요. 그것도 끔찍한 고통을 겪어가면서. 비록 그때 푸른 새 발톱에 찢겼을 때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도, 아픈 건 아픈 거니까요. 아마 그것 때문에 피곤한 걸 거예요.”
“으음…….”
“얼른 주무세요.”
푸른 새라.
그게 할만하다 생각했던 이유일까.
쇳덩이에 깔려 죽는 것.
그것은 균열에서 겪었던 고통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도 나도, 그 사건 이후 이미 인간의 정신력을 넘어선 것 같다.
그래도 오늘은 만족스러웠다. 12시간 만에 뺀 진도치고는 상당히 빠르다고 생각하니까.
맞은편을 바라봤다.
어느새 내 손을 꼬옥 붙잡고 잠에 빠져 있는 선소연. 그녀를 바라보며 나도 점점 의식을 놓아갔다.
***
반복되는 하루였다.
저녁 8시 입장하고, 아침 8시 퇴장했다.
퇴장 후에는 곧바로 침실로 향한다.
10시간 후 잠에서 깨면, 2시간 동안 간단한 식사 및 준비를 마치고 다시 입장한다. 그리고 또다시 반복…….
우리가 버티는 시간은 점차 늘어갔다. 못해도 하루에 3분 이상씩은 꼭 갱신해냈다.
처음 40분을 통과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난 그때를 떠올렸다.
20분 돌파 시 바뀌었던 환경처럼, 40분을 기준으로 조건이 또 한 번 바뀐다.
그건 바로 쇠구슬과 땅바닥 온도가 급격하게 올라가는 것.
미치는 줄 알았다.
손바닥과 발바닥이 불에 덴 것처럼 익어갔다. 그전에 얼어 있던 피부여서 그런지 작열통이 배로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날이 갈수록 지쳐갔다.
선소연은 수련 도중 울다가 토하기까지 했다.
들고, 죽고, 밥 먹고, 자고, 다시 들고…….
우린 점점 말을 잃어갔다.
벌써 2주가 넘게 흘렀다.
첫날, 죽어도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안 이후에 우리는 절대 쇠구슬을 내려놓지 않았다.
끝까지 버티고 버티다가 죽었다.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미 통증에 익숙해졌기에-피부가 데여가고, 근육이 파열됐으며, 뼈에 금이 가기 시작했음에도 끝까지 버틸 수 있었다.
위에 있는 쇠구슬이 휘청거렸다.
덩달아 심장도 철렁거렸다.
“끄아아아!”
힘찬 기합을 내질렀다.
정신 차려야 한다.
얼마 남지 않았다.
여기서 의식을 놓는 순간 모든 게 리셋이다.
난 젖먹던 힘까지 뽑아내 팔을 지탱했다.
결과는 셋 중 하나.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거나,
쇠구슬에 머리를 부딪치거나,
아니면…….
“오빠. 얼마 안 남았어요!”
선소연의 응원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43분을 기록하고 포기한 상태. 다시 도전하기 전에, 잠깐 내 상황을 봐주고 있었다.
이윽고 얼굴 근육까지 동원해 가며 버티고 있는 찰나, 쇠구슬의 무게가 사라졌다.
“어……?”
[01 : 00 : 00]
드디어 1시간을 채워냈다.
그와 동시에 몸이 휘청거렸다.
온몸에 힘이 없는 것이다.
손과 발 또한 뜨거운 열기에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나를 선소연이 다가와 받아냈다.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이 눈꺼풀에 걸려 눈을 적셨는지, 그녀의 모습이 흐릿하게 번져 보였다.
“허억, 허억, 고마워.”
“끄, 끝난 거예요?”
“그런 것 같은데…….”
[믿을 수 없군. 둘 다 말도 안 되는 성장세이긴 하지만, 고작 2주 만에 1차 테스트를 통과할 줄이야.]
인도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의 확인을 받자,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이 들었다. 불과 2주 전에 비하면 엄청난 성장을 이루어 낸 것이다.
[축하한다. 그대는 이미 한 단계 탈피한 것과 다름없다.]
“탈피? 겨우 이걸로?”
[겨우라니. 이는 대단한 업적이다. 처음 설정한 50분은 인간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정신력을 발휘했을 때 버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금 그대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다.]
“으음……”
하긴, 겨우는 아니지.
하루 만에 군단장을 잡고 탈피했던 나에겐, 지금 수련이 훨씬 더 어려웠으니까.
하여튼 후련했다.
인도자는 내 몸을 다시 리셋시켰고, 2차 시련 도전 조건이 충족되었음을 알려줬다.
[어찌할 것인가. 다음 시련에 도전하겠는가.]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2시간 정도 남았군.]
“애매하네…….”
그동안 열심히 달려왔다.
아무리 바쁘다 해도 조금은 휴식을 취해도 되겠지. 옆에서 선소연이 거들었다.
“먼저 쉬고 계세요. 전 마저 하다가 나갈게요.”
“그럴래? 그럼 먼저 나가서 그간 못 챙겼던 KH 상태 좀 둘러보고 있을게. 탈피했다니까 힘도 확인해야 봐야 하고.”
“알겠어요.”
선소연은 다시 쇠구슬을 들었고,
난 번쩍임과 동시에 밖으로 이동했다.
***
오랜만에 집단 건물로 출근했다.
KH는 우리 없이도 잘 돌아가고 있었다.
4팀을 제외하고는 전부 해외로 실전 투입되었고, 주유라 또한 전문경영인을 고용해 내부를 다져갔다.
때문에 내가 할 일이 딱히 없었다. 그냥 각성능력이나 확인해야겠다.
벌써 3단계 탈피였다.
균열 속에서 하나, 5군단장을 통해 하나, 순례길을 통해 하나.
과연 얼마나 성장했을지 기대됐다.
단장실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기운을 흘려보내려는 찰나-
띠리리리-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홍이나였다.
“왜.”
-아저씨. 오랜만이에요.
“그래. 무슨 일이야?
-저번에 말씀하셨던 거 기억하시죠? 팀장 하나 내주신다던 거! 근데 알아보니까 팀장들 전부 서울에 없던데요?
“아, 해외파견 가버렸지. 그래도 현동이는 있을 텐데?”
-제가 듣기론 오늘 부산에 A급 균열 열려서 팀원들 실전경험 시켜 준다고 내려갔대요. 저 어떻게요? 아무래도 아저씨가 가주셔야 할 것 같은데…… 아니 가주시면 안 돼요? 제발 제발…….
홍이나가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묘했다.
팀장들이 없어서 걱정된다는 느낌이 아니라 오히려 잘됐다는 듯 신난 느낌.
난 한 호흡 쉬고 물었다.
“모임이 언젠데.”
-오늘 저녁 17시요. 와 주시는 거예요?
“아니, 주유라 씨 붙여줄라…….”
-안 돼요! 꼭, 남자여야 해요.
그녀가 말을 끊었다.
근데 왜 남자여야 한다는 거지?
“남자?”
-네. 사실…… 좀 꼬였어요. 주최자가 파트너 한 명 꼭 데려와야 초대장을 준다고 해서…….
“파트너?”
-그, 그게. 아마 별거 없을 거예요. 그냥 형식적인 행사 같은데, 굳이 연인행세 같은 건 안 해도 되고…… 으음…….
홍이나가 말을 얼버무렸다.
사실 다들 바쁜데 여자애 하나 경호하라고 주유라 씨나, 최강수 아저씨를 보내기엔 조금 미안했다.
어차피 시간도 남겠다. 저번에 썼던 가발 하나 쓰고 가주지 뭐.
“알겠다.”
-꺅! 정말 가주시는 거예요?
“가기 전에 연락 줘.”
차라리 잘됐다.
안 그래도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는데, 잠깐 나들이나 다녀온다고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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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YE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