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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60화 (60/128)

육군 대위 귀환하다 060화

15. 홍이나(6)

“푸하하-장난치지 마세요. 아저씨가 강 현 님이라고요?”

난 그를 바라보며 박장대소했다.

말이 안 된다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감히 연락도 하지 못했던 남자.

공포 그 자체였던 군단장을 주먹 하나로 박살 낸 남자.

그런 남자가 KH에 지원자로, 그것도 테스트 초반부터 나랑 함께해 왔던 이 아저씨라니.

“머리는 사정이 있었다더니만 가발이었네요? 와-그러고 보니 진짜 닮기는 닮으셨네요.”

KH에 지원하기 전, 강 현에 대해 조사했었다.

그가 짧은 기간 이루어낸 말도 안 되는 이력들. 균열 속 6개월 생존, 백화점 사건, 금지의 땅 정리, LA 군단장 처리…….

세계적인 영웅이라 그런지, 조금만 서핑해봐도 백과사전 수준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철저히 숨겨져 있었다.

너무나 많은 허위 사진들 때문에 누가 진짜인지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

공식적인 사진은 전부 모자이크 처리되어 있었고, 유튜브 영상으로는 체형 정도밖에 확인하지 못했다.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다.

곧바로 태현그룹 대외협력실 정보 수집 전담 부서를 찾았다.

실랑이 끝에 겨우 구했던 그의 특전사 시절 사진 한 장.

비슷했다.

지금 내 앞에 서서 미소 짓는 아저씨랑.

순간,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분명 그는 말수가 적고 진중한 사람이었다.

즉, 이런 장난을 칠 사람이 아니다.

생각해 보니 김훈영 패거리가 범죄를 저지를 때를 제외하고는 그가 직접 나선 적이 없다.

항상 뒤에서 따라오기만 했다.

모든 결정권을 나에게 넘기고 지켜보기만 했다. 마치 날 시험하는 것처럼.

내가 답을 내놓을 때마다 만족하는 표정을 지었었으니까.

“진…… 짜예요?”

“……그럼.”

“즈, 증거를 보여 봐요.”

그래도 긴가민가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 않는가.

그 유명한 사람이 고작 나 하나를 따라다니면서 테스트한다는 게.

내 요구에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건틀릿을 벗었다. 그리고 손바닥을 펴 앞으로 내밀었다.

화르륵-

피어오르는 불.

각성자라는 증거였다.

이건, 믿을 수밖에 없었다.

“마, 말도 안 돼. 아저씨가…… 아니, 강 현 님이…… 아, 뭐라 해야 하지. 죄송해요.”

“그냥 평소처럼 아저씨라 불러도 돼.”

정신이 없었다.

하고 싶은 말들, 물어볼 말들은 많은데, 입에서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도 아저씨의 불을 봤는지 웅성거리면서 모여들기 시작했다.

“뭐야, 각성자잖아?”

“불의 능력인데?”

“그, 그럼 혹시?”

그때였다.

동굴 안에 하얀 빛줄기가 쏟아 올랐다. 숲에서 유현동이 등장했을 때와 동일한 빛이었다.

또각-또각-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웨이브 진 검은 머리칼에, 신비로운 바다색 눈동자.

KH 로고가 새겨진 오피스룩에 높은 힐.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답고 우아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내가 있는 방향으로 다가왔고, 아저씨가 먼저 말을 걸었다.

“소연아. 무슨 일이야?”

“모니터링하고 있었는데 지원자들이 너무 안 들어와서요.”

“내가 개입하려 했는데.”

“안 그래도 오빠가 기운을 흘리는 거 느꼈었어요. 고생하셨어요. 이제 제가 마무리 지어도 될까요?”

“그러든지.”

난 멍하니 둘의 대화를 들었다.

KH에서 소연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라면?

그것도 아저씨한테 자연스럽게 오빠라고 부를 수 있는 여자라면?

또 하나의 SS급 헌터이자, 영상이나 언론에서 항상 강 현 님과 함께 언급되는 여자. 선소연 뿐이다.

난 그녀를 바라보며 넋을 잃었다.

영상을 봤을 때 어느 정도 예쁘실 거라 예상은 했었는데, 실물은 차원이 달랐다.

비현실적인 몸매에 마치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인 것 같은 새하얀 피부. 혼자 천상에서 내려온 것 같은 미모.

순간, 등산 중에 아저씨한테 했던 망언이 떠올랐다.

-그러다 사귀게 되면 더 좋구요. 솔직히 저 정도 외모면 어디 가서 밀리는 건 아니잖아요?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저런 존재가 옆에 떡하니 있는데, 자신감을 부렸단 말인가. 그것도 당사자인 줄도 모르고 사귀니 마니 했으니 얼마나 우스워 보였을까.

그뿐이랴.

KH 단장이신 줄도 모르고 맨날 합격시켜주겠다고 호언장담까지 했었다. 거기에 더해 세계 최고의 갑부한테 돈 많다고 자랑까지 했으니.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래도 당분간 이불킥 각이다.

***

선소연의 등장에 지원자들이 열광하며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고, 그들을 바라보던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절로 따라 웃고 싶게 만드는 싱그러운 미소였다.

“안녕하십니까. 선소연입니다.”

선소연의 낭랑한 목소리가 동굴을 울렸다.

마치 연예인이 등장한 것처럼 흥분하던 지원자들의 이목이 그녀에게 집중했다.

소란으로 가득했던 동굴이 다시금 고요해졌다. 그녀는 손으로 뜨겁게 불타고 있는 용암을 가리켰다.

“사실, 이번 테스트는 이곳 불 속으로 뛰어드는 거였어요.”

그녀의 말에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실행은 못 했지만, 다들 짐작은 했었던 것이다.

선소연은 태연하게 용암 앞으로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들은 본능적으로 이 용암이 위험하단 걸 감지하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제 이름을 걸고 말하건대, 이곳은 명백히 안전합니다.”

그러고는 보기만 해도 뜨거워 보이는 불구덩이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뺐다. 녹지 않고 멀쩡한 손에 지원자들이 탄식했다.

“여러분들이 느끼고 있는 것, 보고 있는 것. 전부 이 공간이 만들어 낸 환상입니다.”

한동엽과 신주예가 끔찍하게 죽어가던 모습 또한 환상이었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다.

유난히 그녀가 매고 있는 푸른 목걸이가 빛나 보였다.

크라켄의 힘.

이 공간을 유지하고 있는 것 또한 그녀의 상상력일 거다. 선소연은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오며 하나의 구절을 읊었다.

“군단장을 보는 순간 그 압도적인 공포에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그럼에도 우린 싸워야 했다.”

침묵 속에 울려 퍼지는 그녀의 당당한 음성이 귀에 또렷하게 박혔다. 묘하게 청중들을 집중시키는 목소리였다.

“아시다시피 불의 종족 군단장과 싸웠던 미국 헌터 피터 잭슨이 언론을 통해 밝혔던 내용입니다. 사실 이 용암 호수에 몸을 던지는 것 정도의 공포는 군단장을 직접 마주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거예요. 여러분들은 그 공포를 이겨낼 각오가 되어 있으신가요?”

그녀가 하는 말에 의도는 명백했다.

군중들에게 용암 호수 속으로 들어갈 것을 권하는 것이다. 목숨 걸고 싸울 수 있을 만한 기량과 용기가 있는 사람만 뽑겠다는 의지였다.

반응은 떨떠름했지만 한 명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중들은 약 사백 명 정도, 이제부터 진짜 선착순이었다.

눈 한번 딱 감고 뛰면, 헌터로 신분 상승이 가능하다. 그것도 S급 헌터 집단인 KH의 단원으로.

그들의 용기에 어느 정도 열기가 피어올랐다.

난 그곳에 완벽하게 불을 지펴주기로 했다. 그들이 완전히 믿을 수 있게 먼저 보여주는 것이다.

“이나야.”

홍이나를 불렀다.

“네? 넵!”

“같이 뛰자.”

***

홍이나와 나는 불구덩이로 함께 뛰어들었고, 호수 아래는 놀랍게도 균열 밖이었다.

최강수를 포함해서 각종 팀장들이 합격자들을 축하하기 위한 팡파르를 준비하고 있었고, 한동엽과 신주예 역시 그들과 함께 있었다.

나머지 선착순 116명이 차례로 나오는데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KH의 입단 테스트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아쉽게 탈락한 자들은 소정의 테스트비를 지급한 후, 연락처만 받고 돌려보냈다.

기약은 없지만, 추후 2차 모집 때 우선권을 주기 위함이었다.

선소연과 각 팀장들은 합격자들을 강당에 모아놓고 입주 설명과 결정체 지급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을 했다.

팀 지정은 추후 각성 능력이 나온 후, 효율적으로 조합해서 구성하기로 했다.

각자 계약서 작성부터, KH 유니폼 주문 제작, 합격자 각성 능력 파악, 팀 구성까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잠깐 이나랑 어디 좀 다녀올게.”

난 간담회를 뒤로하고, 근처 국밥집으로 향했다. 홍이나와 따로 결정체 사업 관련된 얘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테스트 기간 동안 제대로 된 음식도 먹지 못했다.

우선 밥을 사 먹여야 했다. 물론 메뉴는 내가 원하는 대로.

“흐아아-”

그녀가 국밥을 기다리며 죽는소리를 했다.

“왜.”

“으아…….”

아까부터 얼굴이 벌게진 상태로 저러고만 있다.

“왜 그러는데.”

“하아……. 저 완전 바보 같았겠네요. 분명 첨엔 경호원 이랬으면서…….”

“그건 너 혼자 확신한 거 아니었나.”

그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

“흐으으……. 그래서 지금 미칠 것 같아요. 여태까지 제가 했던 말들 다 잊어주시면 안 돼요?”

“뭐, 고용하겠다고 했던 거?”

“네. 그거랑 사귄다니 뭐니 했었던 말이요.”

“그런 말도 했었나?”

내가 센스있게 모르는 척하자 그녀가 격하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요! 그런 말 한 적 없었죠! 하하하-”

그러고는 급하게 다른 주제로 넘겼다.

“와-그나저나 소연 님 실제로 보니까 진짜 예쁘시더라구요.”

“그럼, 정말 예쁘지.”

“진짜 나 같은 건 상대도 안 될 정도예요.”

“그걸, 말이라고.”

내 즉답에 홍이나가 눈을 새초롬하게 흘겼다. 그러고는 후련한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그래도 합격해서 기분은 좋네요. 빨리 밥 먹고 집 가서 발 뻗고 쭉 자고 싶다.”

무리도 아닐 거다.

일반인이 벌써 하루가 넘도록 잠도 못 자고 있으니.

다른 인원들은 그래도 테스트 기간에 조금씩 선잠이라도 잔 것 같은데, 그녀는 나와 함께 있으면서 단 1분도 잠에 빠진 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대단한 체력이었다. 아니면 대단한 독기겠지. 원하는 것을 꼭 이루겠다는 독기. 이런 애라면 뭘 하든 믿고 맡겨도 될 것 같다.

“결정체 사업. 하고 싶다 했었나?”

“아. 그, 그게.”

내 정체를 모를 때, 단원 역할을 열심히 하겠다고 했었으나 난 분명히 느꼈었다. 사업적으로 할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손녀의 욕망을.

“음…….”

그녀의 머뭇거림에 물끄러미 응시하자-

“아니요! 절대 아니에요. 지금 당장에라도 불의 종족 때려잡고 싶은데요? 저 꼭 KH 단원 할거예요.”

그녀가 기겁하며 손사래를 쳤다.

KH에 입단할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떠보는 건 줄 알았나 보다. 난 곧바로 그녀의 오해를 풀어줬다.

“해도 좋아.”

“네?”

“단, 헌터 활동도 겸해서.”

난 은근슬쩍 제안했다.

“그게…… 무슨?”

“결정체 사업건. 하고 싶었다며. 해봐. 할 거면 확실하게. KH에서 지원해 줄 테니까.”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저, 정말요?”

“응, 관련 자료 준비해서 보고해. 할아버지 정도는 가볍게 이길 정도로.”

“…….”

해볼 만할 거다.

KH의 신규 사업팀장 직급이면, 태현그룹 회장보다 위에 있다고 본다. 물론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국밥 나왔습니다.”

그녀가 고민하는 도중 아르바이트생이 음식을 서빙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뼈해장국이었다. 당직이나 야근 후, 국밥은 진리다.

그녀는 멍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배고픈지 곧바로 뼈 하나를 들고 고기를 씹었다.

그러면서도 무언가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으음…….”

“싫어? 취소할까?”

“아뇨! 할게요! 잘할 수 있어요! 쿨럭, 쿨럭.”

급하게 삼키다 말했는지 사레가 들렸나 보다. 난 물을 건네며 말했다.

“천천히 먹어.”

“아. 가, 감사합니다.”

홍이나가 물을 한 모금 마신 후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그럼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무슨?”

“이게 사실 사업이랑도 관련된 건데, 그…… 저희끼리 하는 사교모임이 있거든요.”

“저희끼리가 누군데.”

“그, 있잖아요. 잘 나가는 기업 아들 따님들.”

“아…… 그런 것도 있나?”

재벌 3세들의 모임.

드라마나 영화로는 많이 봤었는데, 실제로 있다고 하니까 기분이 묘했다.

“다 그런 거죠. 뭐, 17세기 유럽을 먹었던 합스부르크 제국의 근친혼 뺨칠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게 한국의 상류층이라잖아요. 전 원래 걔네들이랑 잘 안 어울렸는데……. 사실 요즘 기업들이 개나 소나 다 결정체 사업에 발을 담그니까. 거기 참여하면 정보 좀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부탁이 뭔데?”

“그 모임에 저랑 같이 가주세요!”

그녀가 무슨 고백이라도 하듯 붉은 얼굴로 빠르게 내뱉었다.

“거기에? 왜 나를?”

“그게……. 진짜 재수 없는 놈들이 많거든요. 재벌들이라 일단 기본적으로 본인이 헌터들이고, 경호원들도 무시무시해요. 가끔 시비 털릴 때마다 짜증 났었는데……. 한 번만 도와주세요. 지원해 준다고도 했고.”

“…….”

뭐, 소녀의 판타지 같은 건가?

내 명성을 이용해 그동안 무시했던 자들을 깔아뭉개려 하는?

“그건 기각.”

“네? 왜요!”

“시간이 얼마 없어. 할 게 많거든.”

일주일 후, 수련도 시작해야 하고

전체적인 KH의 내실을 다져야 한다.

놈들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일이니.

그렇다고 KH의 결정체 사업팀장을 아무 능력도 없는 채로 혼자 보낼 수는 없다.

그건 자존심의 문제였다. 태현그룹에서 붙여주는 경호원이라 해봐야 낮은 수준의 헌터일 거다. 즉, KH의 수준에 맞지 않는다.

물론 그녀가 직접 S급 헌터가 된 후에 가면 좋겠지만, 아직 그녀를 위한 최상급 결정체의 재고가 없다.

“대신, 팀장급으로 한 명 붙여줄게.”

“정말요?”

“그래. 원하는 대로 해줄 테니 한번 날뛰어 봐라. 네가 날뛸 수 있는 환경은 제공해 줄 테니.”

“우와-감사합니다. 그럼 날짜 잡히면 알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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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종족의 순례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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