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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59화 (59/128)

육군 대위 귀환하다 059화

15. 홍이나(5)

과학적으로 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이건 각성자라 해도 예외가 아니다.

외부 물체에 반사되는 빛을 받아들여야 망막에 상이 맺히고, 시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되는 거니까.

순간, 궁금해졌다.

혹시 불의 능력으로 가시광선에서 적외선만 추출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적외선을 눈에서 쏘아낼 수 있다면?

아무 빛이 없는 공간에서 은신한 상태로 사물을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야간 투시경도 달빛이 희미할 때 적외선을 쏘아 빛을 증폭시키지 않는가.

물론 불만 피우면 이 공간을 전부 비출 수 있겠지만, 그냥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눈을 감고 이미지를 그렸다.

아니, 그릴 필요도 없었다. 곧바로 심장이 반응했으니까.

기운은 단순히 주변을 보고 싶다는 내 의지를 알아들었다는 듯 활발하게 눈으로 움직였다.

신비한 경험이었다.

분명 눈 안쪽에 자그마한 불이 지펴졌고,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빛 중 적외선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굴절되어 허공으로 스러진다.

나 말고 아무도 볼 수 없도록.

곧이어 주변이 환해졌다.

대낮처럼 자세하진 않았지만, 확실히 보였다. 역시 왕의 힘은 연구만 하면 무궁무진했다.

난 여유롭게 주변을 훑었다.

이곳은 그냥 대리석 바닥으로 이루어진 적당한 크기의 공간이었다.

입구에서 앞으로만 쭉 가면 출구에 도달할 수 있게끔 설계된 복도.

다만 거의 정사각형을 이룰 정도로 폭이 넓어, 벽에 기대어 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장애물도, 함정도 없었다.

입구에 비해 출구도 엄청나게 컸다.

딱히 방향감각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냥 겁먹지 않고 앞으로 가면 될 뿐.

결국, 홍이나의 말이 맞았다.

“……난리가 따로 없네요. 정말.”

주변은 가관이었다.

엉금엉금 기어서 앞으로 가는 사람.

팔을 휘저으며 천천히 앞서가는 사람.

공포에 떨며 비명을 지르는 사람.

심지어 울면서 욕하는 사람까지.

“보여?”

“아뇨. 들리잖아요.”

홍이나는 내 손을 잡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단순한 긴장감인 걸까, 공포를 억지로 견디고 있는 걸까.

후들거리는 그녀의 손과 다리가 느껴졌다. 표정 역시 불안해 보였다.

그녀는 세 걸음 후 멈추고,

다시 세 걸음 후 멈추고.

꾸준히 반복했다.

난 그녀와 속도를 맞춰주었다.

“조심하세요. 걷다가 쟤들이랑 부딪치면 골치 아파져요.”

“왜. 시비 걸릴까 봐?”

“그것보단 공포에 잠식된 사람들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안 그래도 무기들 가지고 있는데 함정인 줄 알고 막 휘두르면 어떡해요.”

그럴 걱정은 없었다.

속도가 나름 준수해, 금방 선두를 차지했으니까.

한참 떨어진 곳에서 한동엽과 신주예도 티격태격하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손을 잡는 대신 팔짱을 꼈다.

“주예 씨. 우리 잘 따라가고 있는 거 맞겠죠?”

“아읏, 똑바로 좀 걸으세요. 그쪽 아니잖아요.”

“거참…… 여자애 목소리가 저기서 들리는데 무슨 소리예요.”

그들은 홍이나의 목소리를 나침반 삼아 방향을 잡고 있는듯했다.

뭐, 저 페이스만 유지하면 출구에 가볍게 도달할 것이다.

출구까지 도달하는 데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복도 끝 자체가 벽이나 문이 아닌 균열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냥 지나가면 되는 것 같았다.

물론, 홍이나는 눈앞에 출구가 앞에 있는지도 모르고 계속 앞으로 전진했다.

***

번쩍이는 시야와 함께 공간이 이지러졌다. 갑작스러운 빛에, 어둠에 익숙해졌던 동공이 수축했다.

“아씨- 눈부셔.”

홍이나가 급히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난 별다른 고통 없었지만, 그녀는 일반인.

인상을 찌푸리며 적응하는 시간을 가졌다.

옮겨진 곳은 커다란 원형의 굴이었다.

그 가운데는 뜨거운 열기가 흘러나오는 시뻘건 용암 호수가 들끓고 있었고, 사방은 막혀 있었다.

그 안에는 백여 명 정도의 사람들이 용암을 보며 숙덕거리고 있었다.

먼저 도착한 인원들이었다.

홍이나도 나름 빨랐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었다.

“히익- 이게 몇 명이야.”

어느새 적응을 완료한 홍이나가 그 인원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막, 도착한 한동엽과 신주예를 비롯해서 지금도 사람들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이거 점점, 합격이랑 거리가 멀어지는 느낌이네요.”

“아무래도 문 안에 있던 출구가 모두 이곳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

“그럼…….”

홍이나가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여기가 공지에서 말했던 마지막 장소라는 건가요? 그렇다기엔 좀 많이 이상한데…….”

“어떤 부분이?”

“사람들은 계속 늘고 있고, 선착순 테스트인데 있는 거라곤 저 지옥 입구같이 생긴 불구덩이밖에 없잖아요. 그렇다고 공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앞서 모여 있는 사람들도 웅성웅성하며 토론하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용암 앞으로 섣불리 다가가지 못했다. 가끔 몇 명이 기웃거려 봤지만 느껴지는 거센 열기에 바로 뒷걸음쳤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자,

뒤에서 신주예가 다가왔다.

“저 알 것 같아요.”

그녀의 말에 홍이나가 즉각 반응했다.

“뭘요?”

“저 용암이요. 알면서도 못 가게 해 놓은 거네요.”

“역시 그렇겠죠?”

그녀도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딱 봐도 저 불구덩이로 뛰어들라는 거죠. 직진하면 저곳이니까요. 지금까지 테스트로 비추어 봤을 때 다분히 의도적인 무대에요. 몇 명은 분명 눈치챘을 텐데도 못 가고 있는 거고요. 아니,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저긴 못 들어가죠.”

그 말에 옆에 있던 한동엽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말도 안 돼요.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거라니, 설마 끝없이 직진하랬다고 저기까지 간다는 건, 좀 많이 나간 것 같은데…….”

그의 말에 홍이나가 고개를 흔들며 반박했다.

“아니죠. 지금 인원 대충 세어봐도 116명 훌쩍 넘잖아요. 이 공간에 있는 거라곤 저 용암뿐이고. 강설아 팀장님인가? 그분이 말했었죠? 이번 테스트 간 사망자는 아무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근데 눈앞에 누가 봐도 들어가면 죽을 것 같은 용암이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있다? 거기에 통제도 하지 않는다? 뻔하죠. 들어가란 거예요.”

“그렇긴 하지만…….”

한동엽이 자신 없어 하자 신주예가 먼저 나섰다.

“그럼 제가 먼저 할게요.”

“주…… 주예 씨가요?”

“네. 근데 열기가 너무 거세서 웬만한 참을성 가지고는 절대 못 들어갈 것 같거든요? 동엽 씨가 좀 도와주세요. 그냥 같이 손잡고 근처에서 힘껏 밀어주시면 돼요. 같이 들어가 주면 더 좋구요.”

“……네? 왜 하필 제가…… 이건 저에겐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인데…….”

그녀는 지금껏 함께했던 정 때문인지 한동엽을 성심껏 설득했다.

왜일까 꽤 오랜 기간 정성 들이는 것 같았다. 30분이 지났을까 그는 마지못해 승낙했다.

웃긴 건, 그 시간 동안 아무도 용암에 뛰어든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준비됐어요?”

“저, 죽으면 주예 씨가 책임져야 합니다.”

한동엽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자 신주예가 웃었다.

“KH 단원 되시면 한턱쏘기나 해요.”

“아- 씨. 몰라. 달립니다?”

“고고.”

결국, 그들은 같이 달려나갔다.

모여 있는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용암에 가까워졌을까 목청이 터져나가라 기합을 지른 한동엽이 신주예를 힘껏 던졌고, 곧이어 뒤따라 투신했다.

“꺄아아악!”

“으아아악!”

소름 끼치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어서 충격적인 장면이 보였고, 모든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그들의 몸이 적나라하고도 잔인하게 녹아버렸기 때문이었다.

뽀글뽀글-

불과 5초도 걸리지 않았다.

다리부터 떨어진 하체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잠깐의 허둥거림에 곧 온몸의 피부가 녹았다.

그다음은 슬라임처럼 형체가 일그러지더니, 뼈만 남아 둥둥 떠올랐다. 곧이어 그 뼈도 사르르, 녹아 없어졌다.

“…….”

그 후 용암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잠잠해졌다.

모든 사람들의 입이 벌어졌다. 그와 그녀가 질렀던 짧은 비명이 아직도 동굴을 돌아다니며 울리고 있었다.

“미, 미친?”

“쟤네들 갑자기 왜 저런 거야?”

“방금 죽은 거 맞지? 그런 거지? X발. 나도 들어가려 했었는데.”

대다수가 뒷걸음치며 용암으로부터 떨어졌다.

“우욱. 우웁.”

“……괜찮으세요? 저도 토할 것 같아요.”

속이 울렁거리는지 헛구역질하는 자들도 있었다. 난 옆에 있는 홍이나를 쳐다봤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아저씨.”

“왜.”

“저 믿어요?”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눈빛은 단호했고, 표정은 자기 확신으로 가득했다. 역시 저 잔인했던 모습도 페이크라 생각하는 듯했다.

내가 그녀를 좋게 보는 이유가 저거다. 상황 판단이 빠르면서도 정확하다. 그러면서 남들의 반응에 휩쓸리지도 않는다.

분명히 한동엽과 신주예의 기운은 호수 밑쪽에 있었다. 아마, 방금 광경은 문어가 만들어낸 환상이었을 거다.

“우리 같이 뛰어요.”

그녀의 당돌한 제안에 난 고개를 저었다.

이제 마지막 테스트다.

굳이 먼저 들어갈 필요도 없고,

정체를 숨길 필요도 없었다.

지원자들을 바라봤다.

앞선 두 명 말고는 그 누구도 뛰어드는 사람이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신주예와 홍이나가 제정신이 아닌 거지, 오히려 남은 이들이 정상이다.

고작, 공지에 나오는 말만 듣고 목숨을 걸기엔 정보도 부족했고 누가 봐도 무모한 행동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두 여자는 왜 그랬을까?

KH에 대한 믿음이었을까.

본인이 생각한 것에 대한 확신이었을까.

직감이었을까.

이 중 하나였든, 셋 다였든, 그로 인해 KH의 단원이 된 것이다.

“왜요? 같이 가야 되는데, 가면 무조건 합격인데…… 직감이 그러라고 하는데…… 아저씨, 저 한 번만 믿어보세요.”

“아니, 그 직감. 또 틀렸어.”

“……네?”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

팀장들이 택한 시험이지만 너무 과격했다.

이대로는 한나절이 걸려도 정원을 채우지 못할 거다. 난 집단의 리더로서 방관을 깨고 개입을 선언하기로 했다.

“넌 그냥 합격이야.”

“……그게 무슨?”

“그동안 잘 해줬다. 홍이나.”

***

앞으로의 계획은 이러했다.

먼저, 지원자들에게 내 정체를 밝힌다.

그 후, 이 시험에 대한 설명을 친절히 해준다.

그래도 내가 말해 주면 신뢰가 있을 테니 누군가는 용암 속으로 뛰어들 거다.

물론 못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 후에 선착순으로 뽑으면 될 일이다.

또, 내 직권으로 홍이나를 116명 범주에 넣지 않기로 했다.

부족한 최상급 결정체 5개 정도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구할 수 있으니까. 난 그녀가 원하던 바를 이뤄줄 생각이었다.

그건 바로 ‘결정체 사업’

KH는 앞으로 연합을 능가해 압도적인 결정체 수급이 가능해질 것이다.

기존 연합에서 제공했던 결정체 대다수가 내 수중에서 나왔던 거니 말 다 했지.

그녀와 대화하다 문득 들은 생각이었다.

굳이 KH가 결정체 보급만 할 필요가 있을까. 대다수 수요가 결정체 섭취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태현그룹이 최강수를 원했던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연구도 하고, 개발도 하면서 결정체 산업을 확장할 계획이었을 거다.

그렇다면 굳이 태현그룹에서 할 필요 없지 않겠는가. KH가 직접 진행하면 된다.

태현그룹 정도야 동네 가게 수준으로 만들 정도의 자본력과 결정체 독점력, 그리고 무력이 있으니.

그녀가 본인을 무시하던 집안 남자들을 구워삶든, 도와주든 상관없었다.

그저 불의 종족과의 전쟁을 대비한 결정체 연구개발을 효과적으로 진행만 해주면 된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갑자기. 그동안 잘해줬다니. 그럼 저 혼자 뛰라는 거예요?”

홍이나가 당황한 낯빛으로 말을 이었다.

“다시 잘 생각해 보세요. 이건 분명히 기회…….”

“아니.”

그녀가 오해하고 있기에 말을 끊었다.

“넌 뛰지 않아도 합격이란 거다.”

“…….”

내 진지한 말투에 그녀가 살짝 당황했다.

그러고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뭔 소리래요. 아저씨가 뭔데요.”

“니가 최강수 아저씨 대신에 그토록 찾았던 사람.”

난 미소를 지으며 가발을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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