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대위 귀환하다 058화
15. 홍이나(4)
[대기실에 입장하셨습니다.]
[3차 테스트가 마무리될 때까지 대기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20분 이내에 포기하신 분들만 합격. 정원 1,000명 달성 시 조기 종료합니다.]
[현재 합격자 539 / 1,000명]
[남은 시간 00 : 09 : 38]
고지였던 광경이 순식간에 낯선 공간으로 바뀌었다. 여긴 또 어디일까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동그란 원형의 홀.
벽은 석재로 둘러싸여 있었고,
사방엔 수십 개의 문이 존재했다.
마치 이집트 고대의 왕들이 묻혀 있을 것만 같은 고풍스러운 분위기.
석실은 적어도 수천 명은 수용할 수 있을 만큼 거대했다. 그 안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뭐, 뭐야. 포기했는데 왜 합격이라 뜨는 거야?”
“모르겠어요. 저도 그냥 균열로 들어온 건데, 도대체 어떻게 돼가는 건지…….”
“기다려보면 알겠죠.”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사람들부터.
“살인은 함정이었나 보네요.”
“와-. 그래 말이 안 되지, 무슨 범죄자 뽑는 집단도 아니고.”
대충 상황을 파악한 사람들까지 시끌벅적했다.
인원들은 대강 두 부류로 나뉘었다.
혼자 들어왔는지,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며 대기하는 사람. 또는 같은 팀이었는지 모여 앉아 두런두런 얘기하는 사람.
나는 전자였다.
이번 테스트 동안 홍이나를 제외한 누구와도 접점이 없었고, 먼저 다가가는 성격도 아닌지라 적당한 위치의 벽에 기대어 앉아 대기했다.
지금도 3차 합격자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었고,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이들 중 116명은 이제 곧 KH 단원이 되어 목숨 걸고 함께 싸울 전우가 될 것이다.
느릿하게 주변을 둘러보던 내 시야에 한쪽 구석에서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홍이나가 잡혔다.
합격했으면 기분이 좋을 법도 한데, 무언가 불편한 안색이었다.
이윽고 내 시선을 느낀 걸까,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빙긋 웃으며 손을 들자, 홍이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신속하게 달려왔다.
“뭐야! 아저씨. 뭐예요?”
놀라움과 반가움이 섞인 목소리였다.
“그 푸른 균열로 들어오신 거예요?”
“그래.”
“……혹시 사람은?”
“이유 없이 사람 죽이는 취향 같은 거 없다.”
내가 미소 지으며 말하자, 그녀가 감탄했다.
“우와아아! 진짜 다행이에요.”
불편했던 표정이 순식간에 안심했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홍이나는 자연스럽게 내 옆에 쪼그려 앉아 말을 이었다.
“균열 들어오고 나서 진짜 깜짝 놀랐어요. 똥폼 잡고 포기했는데 갑자기 합격이라는 거예요. 순간 아저씨가 떠올라서 얼마나 미안했는지.”
“그게 왜 미안할 일이야.”
“약속했었잖아요. 합격시켜드린다고.”
쓴웃음을 보인 그녀가 검지로 엄지손톱 옆을 긁었다.
“원래 설득해서 같이 포기하고 싶었었는데, 그게 좀 주제넘는 것 같아가지고 말 안 했었거든요. 오히려 살인하라고 부추기는 말도 했던 것 같아서 오자마자 씁쓸했어요.”
“신경 쓰지 마라. 어차피 선택은 본인이 하는 거고, 그에 따른 책임도 본인이 지는 거니까.”
난 그녀의 어깨를 톡톡 토닥였다.
“어쨌든 잘했다. 아무리 명예가 좋다 해도 사람임을 포기하면 안 되는 거야.”
내 칭찬에 홍이나가 다소곳이 웃었다.
어린 나이에 원하는 것은 뭐든지 얻었을 재벌 3세였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도를 넘지 않았다.
그것이 대견스러웠다. 그녀가 푸른 균열로 들어가길 내심 기대했던 것도 있었고.
“근데 아저씨.”
“응?”
“머리는 왜 기르는 거예요? 짧으면 더 멋있을 것 같은데.”
홍이나가 은연중에 내 얼굴을 곁눈질하며 물었다.
“사연이 있어서.”
“잉? 무슨 사연이요?”
그녀가 곤란한 질문을 할 때, 마침 두 명의 지원자가 벽에 기대어 있는 우리에게 다가왔다.
한 쌍의 남녀였다.
먼저 남자는 180㎝ 정도의 키에 선한 인상을 가졌고, 특이한 점은 나와 같은 건틀릿을 끼고 있었다.
여자는 단정한 단발머리에 등에는 활, 허벅지엔 화살집을 매고 있었다.
이 역시 흔하지 않은 무기 조합이었다.
남자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네?”
홍이나가 즉답했다.
“혹시 두 분이 팀이셨나요?”
“그런데요?”
“저희도 팀이었는데, 저번 시험에서 우리 둘만 포기했었거든요. 보니까 다들 뭉치고 있는 것 같은데 혹시 함께하실 생각 있으세요?”
다음 테스트가 어떤 것일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유리해지기 위해 다들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혹시나 2차 테스트처럼, 빠른 팀원을 모집하는 시험이 나올 수도 있는 거니까.
내가 그의 건틀릿과 그녀의 활을 번갈아 바라보자 곧바로 반응해왔다.
“사실 건틀릿 끼고 있는 분들이 거의 없기에 반가워서 다가온 겁니다.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 거잖아요? 아 참, 전 한동엽이라고 합니다. 과거 복싱 프로였어요.”
“전, 신주예라고 해요. 양궁 국가대표였어요. 지금은 백수지만.”
둘 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양궁엔 관심이 없었고, 복싱은 해외 챔피언들 몇 명만 알았다.
애초에 각성자들이 등장한 이후 사장되어가고 있는 비운의 종목이기도 했고.
난 일어나서 마주 인사했다. 먼저 걸어오는 인사를 받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홍이나예요.”
내가 인사하자, 홍이나도 곧바로 일어났다.
김훈영 때처럼 날 서 있지 않은 게 그녀가 보기에 나쁘지 않은 사람들인가 보다.
파즈즛-
때마침, 시야에 이미지가 흔들렸다.
테스트가 끝난 것이다.
[남은 시간 00 : 00 : 00]
[3차 테스트가 종료되었습니다]
[총합격자 : 820명]
[마지막 테스트를 시작합니다]
“이제 시작인가 봐요.”
홍이나가 침을 꿀꺽 삼켰다.
한동엽과 신주예도 몸에 힘을 빡 준 상태로 귀를 기울였다. 다들 긴장한 상태였다.
[큼…… 큼큼]
곧이어 목 가다듬는 소리가 홀을 울렸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다행히 유현동은 아니고, 강설아였다.
[안녕하세요. KH 팀장 강설아입니다. 먼저 지원자분들의 3차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강설아가 누구지?”
“팀장이래. S급 헌터겠지 뭐.”
사람들이 숙덕거리기 시작했다.
S급 헌터는 기본적으로 다 유명하다.
그러나, 강설아나 구태경은 한 번도 언론에 오르내린 적이 없었다.
KH 내부에서 결정체 다섯 개를 먹었을 뿐이니.
[공지에 앞서, 여러분들에게 전파할 사항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살인이나 사망에 관련하여 걱정이 많으실 텐데, 사실 여태 지원자들 중 사망자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탈락자들 모두 무사히 귀가 조치 되었으며, 앞으로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강설아는 지원자들을 안심시켰다.
이제, 인성에 관한 테스트는 끝났다는 거다.
혹여 잔인했던 시험 방식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응시를 포기해 버릴까 미리 알려주는 것 같았다.
[자, 이제 드디어 마지막 테스트를 목전에 두고 있는데요. 저희는 강력한 신체조건보다는 인성이나 각오, 용기 등 헌터의 기본적인 요소들만을 측정해 왔습니다. 솔직히 여기까지 합격하신 분들 모두 KH와 함께하고 싶을 정도로 대단한 인재들임을 인정합니다. 자격도 있고요. 그러나 아쉽게도 남은 자리는 116개뿐. 별수 없이 선착순 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럼 여러분들의 무운을 기원하며 테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이야…… 이제 진짜 경쟁인 건가?”
“경쟁률 7:1이면 해볼 만하지.”
“제발…….”
‘선착순’이라는 단어에 사람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모두들 귀를 열어 다음 안내에 대비했고, 혹여 메시지가 띄워질까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곧이어-
띠링-
[4차 테스트 : 목적지 도달]
[석실에는 총 50개의 문이 있습니다. 어떤 문을 통과하든지 통로와 장애물은 똑같이 주어집니다]
[미로형식이 아닙니다. 그대로 직진하시면 됩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합격. 범죄를 저지르는 분들은 자동 탈락입니다]
[모든 통로는 동일한 목적지로 연결됩니다]
[선착순 116명. 제한 시간 없음]
심플한 내용이었다.
홀에 있는 문들 중 아무거나 하나를 열고 들어가서 그곳을 통과하면 된다.
어떤 장애물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선착순이니 누구보다 빨리 가야 했다.
주변의 반응은 다양했다.
메시지가 뜨는 즉시, 혼자 움직이는 사람. 이미 얘기가 된 건지 팀 단위로 들어가는 사람. 경계하며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
“어떡하실래요?”
한동엽이 나를 바라봤다.
함께 할 거냐는 뜻이겠지.
“아무래도 소수보단 다수가 낫지 않을까요?”
신주예도 등에서 활을 꺼내 들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두 남녀는 개인으로 움직이기보다 팀 단위로 움직이는 걸 선호하는 듯했다.
어차피 난 테스트를 보는 게 아니라 지원자들을 지켜보는 게 목적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홍이나도 당연하다는 듯 내 옆에 붙었다.
“아저씨, 저도 같이 가는 거죠?”
“난 뭐든 상관없어.”
“그럼 빨리 이동하죠. 어디 문으로 들어갈까요? 어디든 상관없는 것 같은데.”
사실 봐둔 문이 있었다.
대략 두 팀 정도가 들어간 문. 그쪽으로 가면 지원자들의 상황을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나머지 셋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이 길지 않아 좋았다.
***
문을 열고 들어섰다.
넷이 모두 들어오자 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그와 동시에 홀에서 비추던 빛이 완전히 사라졌다. 통로 안은 금방 어두컴컴해졌다.
“아씨-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이거 어떻게 가란 걸까요?”
홍이나와 한동엽이 한마디씩 던졌다.
각성한 내 눈에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시야를 제한시켜놓기라도 한 공간처럼. 곧이어 귓속에 음성이 울렸다.
[이 공간에서는 시야가 제한됩니다]
[각종 함정을 피해 출구를 찾으세요]
보이진 않았지만,
주변에 많은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어디야…… 다들 어딨어!”
“꺄아악, X발. 깜짝이야. 너 누구야!”
“그쪽은 누구 신데요?”
아까 들어간 팀원들이 이 안에서 헤매고 있는 모양이었다.
툭, 툭, 몸끼리 부딪치는 소리도 들렸고 울먹이는 사람도 있었다. 공간은 각종 욕설과 고함으로 난무했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엄청난 공포다.
길에서 눈을 감고 열 발자국 이상만 걸어보면 알 수 있다.
방향감각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주변에 무언가와 부딪칠 수 있을 거란 공포에 쉽사리 걸음을 내디딜 수가 없다.
그 공포를 교묘히 이용해 목적지까지의 이동시간을 늘리는 것 같았다. 난 지원자들이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기대했다.
“아저씨.”
홍이나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들리세요?”
“응.”
“지금부터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요. 일단 절대 움직이지 마세요. 안 움직였죠?”
호오, 무언가 떠오른 것일까?
그녀가 속사포로 내뱉자,
한동엽과 신주예가 반응했다.
“뭐, 짐작 가는 거라도 있습니까?”
“저도 일단 움직이지 않고 있어요.”
순간 누군가 팔을 툭, 툭 건드렸다.
들어오기 전 내 옆에 있던 사람은 홍이나 뿐이었다. 한동엽과 신주예는 뒤따라 들어왔기에 우리 뒤에 있을 거고.
“이거, 아저씨 맞죠?”
“응.”
“손잡으세요.”
그녀는 내 팔을 더듬어 손을 찾더니 꽉 잡았다. 나름 긴장한 건지 손바닥이 축축했다.
“어쩌려고.”
“아까 들어왔을 때 정면 바라보고 서 있었죠?”
“그랬지.”
“저도 그래요. 이제 천천히 앞으로 움직일 거예요. 잡은 손으로 서로 정확하게 앞으로 가고 있나 확인해주세요.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쟤네들처럼 미아 되니까 조심하구요.”
홍이나는 과감하게 직진을 선택했다.
그러자 뒤에서 한동엽이 물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상태에서 그대로 직진하겠다고요?”
“네. 방향 모르시겠으면 어깨라도 빌려드릴 테니 방향 잡으실래요?”
홍이나의 말에 그가 당황했다.
“아, 아니, 그게 아니고.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앞에 뭐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함정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후우, 저기요.”
“네…… 네?”
“따라오시려면 따라오고, 말려면 마세요. 이거 선착순이라 바쁘거든요?”
“그, 그게. 잠시만.”
“아저씨. 걸어가요.”
두 남녀를 내버려 둔 채 홍이나는 과감하게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이 앞으로 이동하는 걸 느끼며, 나도 속도를 맞추었다.
나야 각성한 몸이라 뭔가 부딪치더라도 아무런 위험이 없다지만 홍이나는 일반인이다.
“용기 있네?”
“든든한 경호원이 옆에 있는데, 뭐, 걱정할 거 있나요.”
“날 믿고 가는 거다?”
“아뇨. 사실 그건 아니고.”
“그럼?”
내 물음에 홍이나가 목을 가다듬었다.
“시야 제한해 놓고 함정 피해가라는 건 말도 안 되죠. 딱 봐도 페이크 같지 않아요? 테스트 공지에서도 미로형식 아니라고 그냥 쭉 직진하라 했으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것뿐이에요. 설마 죽기야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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