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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57화 (57/128)

육군 대위 귀환하다 057화

15. 홍이나(3)

결과적으로 홍이나는 내 정체를 알아보지 못했다.

지원자들은 모두 비각성자일 거라는 강한 믿음이 뇌리에 박혀 있는 탓일 거다.

설마 KH 단장이 직접 지원자 행세를 하고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 했겠지.

우리는 정리를 하고 다시 고지를 향해 올라갔다.

정신 차린 김훈영과 칼을 들었던 남자도 나머지 이름 모를 세 명과 함께 포박된 상태로 이동했다.

꽤나 우스운 광경이었다.

다 큰 성인 남성 다섯 명이 긴 풀뿌리에 줄줄이 엮여 있는 꼴이라니. 그들은 아직도 아래가 고통스러운지 다리를 후들거렸다.

“변태 새끼. 꼴좋다. 근데 왜 이렇게 느려 터졌어? 빨리 안 가?”

“…….”

“귓구멍이 처 막혔냐? 빨리 가라고.”

홍이나는 올라가는 내내 김훈영의 뒤통수를 툭툭 때리며 도발했다.

참고 참았던 그가 마침내 울컥해서 인상을 찌푸리자 홍이나가 되레 눈을 부라렸다.

“하, 인상 안 펴? 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 그렇게 구기니까 토할 것 같잖아.”

김훈영이 무언가 말하려 입을 벙긋거리다 내 모습을 돌아보더니 바로 고개를 숙였다.

완전히 기가 죽은 것이다.

홍이나는 그런 그를 향해 또 한 번 으르렁거렸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지은이 내 옆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다행히도 찢어진 옷은 풀로 둘러 묶어 고정한 상태였다.

“저…… 아깐 정신없어 인사 못 드렸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그쪽이 아니었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어요.”

그녀가 고개를 꾸벅거리며 감사를 표했다. 놀랐던 마음이 많이 안정되었는지 호흡이 편안해 보였다.

난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받았다.

10분 정도 걸었을까,

시야가 확 트였다.

마침내 산 정상에 도착한 것이다.

고지에는 여러 명이 옹기종기 모여 올라오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각자 무기를 들고 경계하는 모습이 묶여져 있는 일행들을 보고 긴장한 것 같았다.

무리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서 김훈영에게 말을 걸었다.

“이,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그는 당황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그에 정지은이 나서서 상황을 설명했고 사람들은 상황을 이해했다.

분노하는 자들도 있었고, 그냥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자들도 있었다.

[남은 시간 15 : 52 : 11]

무던한 크기의 바위에 앉아 시간을 확인하고 있자 등을 조심스레 건드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홍이나였다.

“아저씨.”

“응?”

“세어 봤는데, 우리까지 합하면 딱 32명이에요.”

적당한 수의 사람.

테스트가 시작된 지 벌써 8시간 정도 흐른 것을 감안했을 때 높은 고지까지 올라올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혹여나 있다 해도 대체할 수 있는 인원이 남아 있으니 상관없다. 그 수를 초과한다면 정중히 내려보내거나 쫓아내면 될 일이니.

어쨌든 홍이나의 선택은 완벽했다. 귀찮게 내려갈 일 없이 모든 게 해결되었으니까.

“어떡할까요? 아저씨가 김훈영한테 리더 받으실래요? 30명 채우려면 2명 잘라내야 하잖아요.”

“……너가 처리해. 원하면 죽여버리던지.”

“네……? 정말 죽일까요? 으…… 아니다. 굳이 손을 더럽히고 싶진 않네요. 어쨌든 그럼 제가 알아서 해도 되는 거죠?”

난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 명을 처리해줬으면 됐지, 그 이상 간섭하기 싫었다. 이제 남은 일은 다음 테스트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홍이나는 김훈영에게 리더를 위임받았고, 두 명을 골라 팀에서 제외했다.

고지에 모여 있던 자들도 그녀가 뭘 하든 신경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저 팀에만 속해져 있으면 2차 테스트 합격에는 문제없을 테니까.

그녀는 인원을 적절히 분배해 사주경계를 시켰고, 남은 인원들을 휴식시켰다.

식량도 없고, 식수도 없었다.

그저 잠을 자는 것만이 에너지를 보존하는 최선책이었다.

밤이 없다는 설정인지 시간이 흘러도 날은 어두워지지 않았다.

많은 인원들이 잠에 빠져들었지만, 그녀는 끝끝내 잠에 들지 않았다.

내가 앉아 있는 장소 옆으로 와 드러누워 눈을 뜬 상태로 시간을 보냈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30명이 차 있다 해도 처음 본 사람들을 전부 신뢰할 수 없는 거니까.

“아저씨는 안 졸려요?”

“별로.”

“역시 대단하시네요…….”

홍이나의 표정은 지쳐 보였다.

험준한 산길을 물 한 방울 없이 오르고 땀까지 쏟아냈으니 탈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발바닥 물집은 이미 터져 벌건 상처를 드러내고 있었다.

게다가 쑤셔오는 근육통도 있을 테고, 배고픈 데다가 땀이 말라 춥기까지 할 테니.

19세의 소녀가 견디기엔 가혹한 시험이었다. 그럼에도 꿋꿋이 버텨내는 모습이 대견했다.

그리고 마침내.

[남은 시간 00 : 00 : 00]

[2차 테스트가 종료되었습니다.]

[총합격자 : 9,600명]

[탈락자들은 균열 밖으로 송출됩니다.]

테스트가 종료되었고, 그와 동시에 홍이나가 찍었던 김훈영과 칼을 들었던 남자가 사라졌다.

[3차 테스트를 시작합니다.]

[테스트에 앞서 지원자들의 모든 부상을 회복시키겠습니다.]

허공에서 물방울들이 생겨 사람들의 몸을 감쌌다. 오랜만에 느끼는 선소연의 기운이었다.

물방울들은 옷과 몸을 씻기고, 발바닥에 난 상처를 치유했으며, 부족한 수분도 공급해 줬다.

“으……으아아 살 것 같아요.”

홍이나가 기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도 느껴졌던 갈증을 한순간에 해소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참았던 고통이 사라지자 환호성을 지르며 중앙으로 모여들었다.

“가요. 우리도.”

“그러지.”

다들 긴장된 표정으로 다음 메시지를 기다렸다. 나도 궁금했다. 지금까지의 테스트는 모두 내가 알던 방향과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으니까.

이윽고 묘한 기류가 흐르더니 고지 중앙에 푸른빛 균열이 나타났다. 강설아가 유현동을 통해 전했던 그 균열인 듯싶었다.

“뭐, 뭐야. 이건 또.”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건가?”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동시에 시야에 이미지가 떠올랐다. 감싸고 있던 물방울들은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3차 테스트 : 힘의 증명과 각오]

[주변에 있는 사람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 명 이상 죽일 경우 합격]

[테스트 포기 가능. 푸른색 균열로 들어갈 경우 밖으로 이동되며 테스트에서는 자동으로 탈락됩니다.]

[남은 시간 02 : 00 : 00]

“잠깐……! 뭐라고?”

“X…… X발. 무슨 시험이 이래!”

사람을 죽이라니.

지원자들이 보기엔 어처구니없는 시험 내용일 거다.

그러나 난 강설아가 왜 푸른 균열로 들어가라 했는지 깨달았다.

재미있게도 이 시험은 포기해야 합격인 것이다.

KH는 무료로 균열을 제공해 S급 헌터를 만들어주는 집단이다.

헌터가 된다는 건 일반인은 절대 넘보지 못할 엄청난 힘을 쥐여주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엔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

파스칼은 힘없는 정의는 무능력이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라 했다. 힘을 가진 자는 정의로워야 하며, 본인의 힘에 취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초인인 헌터들이 범죄를 일으킨다면 일반인들 입장에선 막을 방도가 없다.

살인 청부를 받든, 방화를 저지르든, 강간을 하든 충분히 정부의 시선 밖에서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팀장들의 취지는 간단했다.

본인의 이득을 위해 타인을 해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사람의 인성을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1차 테스트를 통해 용기를 판단했고.

2차 테스트를 통해 의사소통 능력을 판단했다. 그 과정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자는 전부 탈락 처리되었다.

이젠 3차 테스트를 통해 미래 범죄 가능성이 있는 자들을 과감하게 제하고 가겠단 거다.

시킨다고 살인을 하는 놈이라면, 나중에 어떻게 변할지 모를 테니까.

“……빌어먹을!”

사람들은 제각기 본인의 무기를 쥐어 들고 서로 떨어졌다. 고지 밑으로 피신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제한 시간은 2시간.

고지를 내려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일단 도망치고 보는 사람들도 무조건 탈락이겠지.

나에게 맞았던 남자 세 명과 정지은 역시 서로 떨어졌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특히 나를 경계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게 테스트에 미련이 남은 표정들이었다.

“나, 난 포기하겠소.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죽이는 건…….”

“난 절대 포기 못 해!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비록 소수였지만, 3차 테스트를 포기하고 균열로 들어가는 자들도 있었다.

“후우…….”

홍이나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테스트 공지를 들었음에도 내 옆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날 얼마나 봤다고 철석같이 믿는 걸까. 미련한 건지, 아니면 이것도 직감인 건지.

하여튼 특이한 여자애였다.

“아저씨.”

“왜.”

“……미안해요.”

그녀가 돌연히 사과했다.

“뭐가?”

“꼭 합격시켜드리겠다고 했는데…… 전 여기까지인 것 같네요.”

“포기하려고?”

“……정말 아쉽지만, 사람을 죽여서까지 KH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아요.”

그녀의 서글픈 표정에 잔잔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홍이나는 균열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그동안 즐거웠어요. 비록 강 현 님과는 만나지 못하겠지만, 아저씨를 볼 수 있었던 거로 만족할래요.”

“…….”

“아, 가기 전에 하나만 부탁해도 돼요?”

“뭘?”

“꼭 사람을 죽여야 한다면 저 새끼로 부탁해요.”

홍이나가 강간 미수범 중 한 명을 가리키자 그의 안면이 경직됐다.

그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비명을 지르며 고지 밑으로 쏜살같이 사라졌다.

그 모습을 킥킥거리며 바라보던 그녀가 다시 자세를 바르게 하고 꾸벅 인사했다.

“그리고 그간 지켜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감사는 무슨.”

툭 내뱉은 답변에 그녀가 살며시 미소를 그렸다.

“KH 합격하셔도 저한테 잊지 말고 연락해야 해요. 보수 받아 가야 하잖아요.”

“내 몸값 감당 못 할 텐데.”

“아씨! 저 돈 많다니까요. 뭐 가지고 싶은 거라도 있어요? 말해 봐요. 다 사 줄 테니까.”

“그래. 기대하지.”

홍이나의 넘치는 자신감에 내가 웃으며 대답하자 그녀도 마주 웃으며 뒤로 천천히 걸어나갔다.

“그럼, 담에 봐요.”

그녀는 마지막 인사와 함께 푸른빛 균열에 등을 가져다 댔고, 곧이어 스르륵- 사라졌다. 다음에 보긴, 아마 곧 볼 거 같은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다른 곳은 한창 싸우고 있는지 시끄러웠다. 이제 더 이상 균열에 들어갈 지원자는 없는 건가?

정지은과 남자들도 다른 곳으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나서기 전에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간 듯싶었다.

포기하지 않은 걸 보니 누구 한 명을 죽일 계획인가 보다. 앞으로도 나와는 평생 볼일 없겠지.

그나저나 세상에 타인의 목숨을 함부로 생각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이번 테스트가 아니었으면 절대 몰랐을 거다.

난 입맛이 씁쓸해지는 것을 느끼며 홍이나가 들어간 균열 속으로 몸을 던졌다.

[남은 시간 01 : 51 : 09]

[3차 테스트에 합격하셨습니다.]

[마지막 테스트 대기실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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