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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56화 (56/128)

육군 대위 귀환하다 056화

15. 홍이나(2)

다섯 명.

적당한 숫자였다.

신체 능력을 쓸 필요도 없었다.

난 몸을 통제해 최대한 감각을 죽였다.

본래 힘을 쓰면 홍이나가 바보가 아닌 이상 각성자라는 걸 알아볼 테니까.

“이 X발새끼가!”

내가 천천히 다가가자 김훈영이 창을 내질렀다. 정직하고도 굼벵이처럼 느린 찌르기가 정확히 보였다.

긴장조차 되지 않았다.

난 발을 한 번 굴러 한 뼘 사이로 피하는 동시에 놈의 안면에 카운터펀치를 먹였다.

뻐억-

수박 깨지는 소리와 함께 놈이 뒤로 날아갔다.

뒤로 넘어가는 동작 또한 선명했다. 눈동자의 실핏줄이 터지는 모습까지 정확하게 보였으니까.

“뭐…… 뭐야!”

주변 남자들의 당황한 소리가 들려왔다.

김훈영은 거의 열 발자국 이상 날아가 나무 기둥에 부딪힌 후 그대로 무너졌다.

나름 힘을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비각성자가 낼 수 있는 괴력은 아니었다.

이거 더 약하게 쳐야겠는데……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턱을 옆으로 떨구고 미동을 멈췄다. 기절한 것이다.

“도, 동시에 조지자!”

어떤 남자가 소리쳤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칼과 방패를 든 남자가 나에게 돌진하고 있었고, 칼을 주먹으로 상대하는 대인 기술은 내 전문이니까.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놈의 검을 땅에 떨어뜨림과 동시에 팔꿈치로 턱을 가격했다.

놈은 그대로 쓰러져 얼굴을 능선 흙바닥에 처박았다. 역시 움직임이 없었다.

두 놈을 처리하는 데 5초나 걸렸다.

내가 한숨을 쉬고 주먹을 털자, 모든 사람의 동작이 정지 화면처럼 멈췄다.

남은 세 명은 마치 석고상이라도 된 듯 몸이 굳었고, 홍이나와 정지은도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후- 좀 더 맞아야 하는데, 맷집이 많이 약하네? 겨우 한 방 맞고 나가떨어지다니.”

내 중얼거림에 남은 놈들의 떨림이 느껴졌다.

수적으로 우세함에도 이미 기세를 잃은 것이다. 이미 승기는 나에게로 넘어왔다.

내가 한 놈을 향해 걸어가자 놈이 ‘으아아아’ 하면서 혼자 뒤로 넘어졌다.

남은 두 명도 무기를 버리며 투항했다. 완전히 겁에 질린 것이다.

“사, 살려주세요!”

“잘못했습니다!”

불과 몇 초전과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그 모습이 역겨워 혀를 찼다.

“쯧. 버러지 같은 새끼들.”

***

1분도 안 돼서 모든 상황은 종료되었다.

항복한 놈들은 나에게 딱 두 대씩 맞았다.

복부에 한 대, 그리고 그곳에 한 대.

배를 한 대 맞은 놈들은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게워냈고, 곧이어 말하지 못할 통증에 눈물을 뽑아냈다.

난 이어 기절해 있는 김훈영과 칼 든 남자의 남성도 박살 냈다.

놈들은 강간 미수범에, 내 목숨까지 위협하려 했다.

본래 균열이었다면 그대로 죽였을 테지만, 지금은 죽일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크흐으으…….”

“커흑, 크흐흑…….”

고통 어린 비명을 지르는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홍이나가 나에게 다가왔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과 놀란 듯 커져 있는 눈동자가 볼만했다.

“아, 아저씨 뭐예요?”

“뭐가.”

“대단해요! 진짜 일반인 맞아요? 무슨 주먹 한 방에 사람이 종잇장처럼…….”

“내가 질 거라며. 이번엔 너 감각이 틀렸네?”

“진짜…… 인정이요. 전 아저씨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인 줄 몰랐어요. 이렇게 되면, 헌터 되셨을 때 고용비를 더 늘려야 되는데…….”

아서라.

내 몸값이 얼만데. 지금도 못 낼 거다.

그녀가 수준 이상의 능력을 보여줘서 호기심에 따라다니는 거지, 돈 때문에 따라다니는 건 절대 아니었다.

저기 멍하니 울고 있는 정지은처럼 행동했으면 진즉에 버렸을 거다.

굼벵이처럼 꿈틀거리는 남자들을 벌레 보듯 바라보던 홍이나가 나를 향해 물었다.

“묶어두는 게 낫겠죠?”

“응. 주변에 질긴 풀들이 있을 거야. 어디 도망 못 가게만 해둬.”

“알겠어요.”

역시 그녀는 판단력이 좋다.

당장의 복수심에 김훈영을 해코지할 생각보다는 다음 테스트를 생각하고 있는 거다.

분명 고지에 30명이 넘게 있다고 했다.

그 인원이 몇 명인진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들을 바로 죽여버리기보다 사람이 부족할 것을 대비해 팀에 끼워 넣을 수 있는 예비책으로 남겨둬야 한다.

만약, 인원이 이들 포함 31명이었으면, 죽이는 순간 빠른 팀 결성은 물 건너가는 거니까.

홍이나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정지은 옆에 자라 있는 기다란 풀을 찾았다.

그녀가 그곳으로 이동하려는 찰나, 앉아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정지은이 갑자기 단검을 집어 들었다.

“이…… X발새끼들…… 다 죽어!”

그러고는 쓰러져 있는 남자들한테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앞에 있던 홍이나가 날랜 움직임으로 그녀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꺄악!”

나자빠진 그녀의 손에서 잽싸게 단검을 뺏어낸 홍이나가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언니 미쳤어요?”

“흐…… 흐흑.”

두 팔을 뒤로 꺾어 양손으로 꽉 붙잡고 있는 게 역시나 어디서 운동 좀 한 것 같았다.

정지은은 흙에 얼굴을 박은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하, X발…… 누가 보면 진짜 당한 줄 알겠네. 이딴 멘탈로 어떻게 KH에 도전한다고 지랄인 건지.”

“…….”

무기도 뺏겼겠다, 그녀의 거친 말에 갑자기 두려워진 건지 정지은이 울음을 멈췄다.

홍이나는 그녀를 일으켜 세우며 충고했다.

“잘 들어요. 언니. 구해줬으면 감사함부터 표시하는 게 인간의 도리에요.”

“고…… 고맙습…….”

“뭐, 내가 구해줬어요? 고마움은 아저씨한테 표해야지 뭐 하자는 거예요.”

“아.”

“이건 뭐, 엎드려 절 받는 것도 아니고…… 후우, 됐고, 고지에 몇 명 있는지나 말해봐요.”

“저, 저 포함해서 딱 서른일 거예요.”

음? 서른이라고?

아까 전엔 분명 30명이 넘어간다고 했었는데.

홍이나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나 보다.

“거짓말하면, 언니 안 데리고 갈 수도 있어요?”

“저, 정말이에요! 원래 더 있었는데 팀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은 급히 산 밑으로 내려갔어요. 지금도 꾸준히 올라오고 있구요.”

“알겠어요. 믿을게요. 그럼 고지에 나 있는 오솔길이 몇 갈래에요?”

“음…… 한 여덟 개 정도? 아니다. 아홉 개쯤 있었던 것 같아요.”

높은 고지임에도 생각보다 넓나 보다.

오를 수 있는 등산로가 그렇게나 많이 마련되어 있다니, 아마 팀장들이 그렇게 기획한 걸 거다. 고지로 오르거나, 하산하거나 선택할 수 있도록.

[남은 시간 16 : 24 : 32]

아직 시간은 널널했다.

나와 홍이나는 정지은을 달래고, 다섯 남자들을 깨워 양손을 꽉 포박했다.

채비를 마치고 무기를 챙겨 다시 고지로 오르려는 찰나, 갑자기 하늘에서 빛무리가 떨어져 내렸다.

“뭐, 뭐야.”

홍이나의 당황하는 소리에 맞춰, 우리는 걸음을 멈추고 빛을 쳐다봤다.

짧은 시간이 흐른 후, 그곳에서 걸어 나오는 세련된 KH 단원복을 입은 남자.

“허억, 아, 아저씨 저분 유현동 아니에요?”

“그…… 런 것 같네.”

이건 뭐, UFO 연출도 아니고.

유현동이 어깨를 활짝 위풍당당해 보이는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끔찍한 소리.

“형니임!”

저게, 지금 뭐라는 거야.

기껏 메이크업까지 해놨더니.

여기서 다 망치려는 건가?

내가 눈을 부라리자 그제야 정신 차린 유현동이 재빨리 말을 바꿨다.

“아, 아니 지원자분들. 반갑습니다. 잠시 이분이랑 할 이야기가 있어서 좀 빌리겠습니다.”

“네? 네…….”

홍이나가 벙찐 표정으로 대답했고, 다른 이들도 어벙하게 나와 유현동을 번갈아 쳐다봤다.

이거, 아무래도 이미 늦은 것 같은데…… 한숨이 나왔다.

내 찌릿한 눈빛에 유현동이 침울한 표정으로 오른 손가락을 들어 착용한 반지를 눌렀다.

그러자 물로 이루어진 푸른 막이 우리를 감쌌다.

[차단막이 발동합니다.]

다른 이들이 듣거나 볼 수 없도록 음성과 시야를 차단한 것 같았다. 난 그에게 바로 따져 물었다.

“아니, 현동아. 너 제정신이야?”

“아, 아니 형님!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반가운 마음에 그만…….”

“하아, 그래서 무슨 일인데…….”

“그게 이곳에 볼일이 있어서 왔는데…….”

답답했다.

날 찾아온 것 같은데, 왜 하필 촐랑대는 유현동이 찾아온단 말인가.

문태준 씨도 있고 구태경도 있고 강설아도 있는데. 아니, 그리고 애초에, 채팅 시스템이 건재한데 그걸로 필요한 내용만 전달하면 안 되는 건가?

유현동은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 팀장들 전원이 23,000명 정도를 모니터링하다 보니까 엄청 바빠요. 살인사건은 문제없는데, 방금 같은 강간 사건들을 막기 위해서 제가 순차적으로 투입되고 있는 거구요. 강간미수범들은 전부 모니터링 기록과 함께 경찰에 넘기고 있거든요.”

아, 날 찾아온 게 아니라 강간 사건 때문에 나타난 거다? 아니, 그전에 유현동의 말에서 뭔가 께름칙한 부분이 있었다.

“근데…… 살인은 문제가 없다고?”

“네. 애초에 죽음에 가까운 피해를 입으면 균열 출구로 튀어나가게끔 설계해 놨거든요. 그렇게 된 사람들은 밖에서 소연 누님이 깔끔하게 치료해준 다음 달래서 귀가시키고 있어요. 그리고 살인을 저지른 놈들도 최종 합격자 명단에선 제외될 예정이구요.”

아, 그런 거였나.

어쩐지 계획된 것보다 좀 과격하다 싶었는데 그런 시스템이었다니.

하긴, KH 테스트에서 사망자가 다수 나왔다는 사실이 퍼지면 살인 집단으로 여론의 폭격을 받을 것이다.

다수의 여론 앞에서 비밀유지 서약서는 종이쪼가리일 뿐이니까.

“그럼, 저 다섯 놈들은 다 탈락인가?”

“네. 원래는 그런데, 형님이 이미 도 넘게 폭력을 사용하셔서…….”

“절대 소연이한테 치료하지 말라고 해.”

“당연하죠. 그래도 싼 놈들인데…… 그럼 쟤네는 어찌 처리할까요?”

“일단은 냅둬. 내가 잡아뒀으니까 굳이 관리자 측에서도 개입할 필요는 없잖아?”

“그…… 렇긴하죠……. 알겠습니다, 형님.”

유현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관리자가 나서는 상황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범죄현장이 벌어졌을 때다.

지금은 관리자 개입 없이도 충분히 처리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럼 볼일은 끝난 건가?”

“네. 형님.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설아 누님이 형님한테 전해 달래요.”

“뭘?”

“3차 테스트에서 무조건 푸른색 균열로 들어가라고.”

음?

그건 무슨 말이지?

내가 물으려는 순간 유현동이 급하게 막을 걷었다.

표정을 보니 또, 사건이 터진 듯싶었다. 그래. 빨리 가라.

걷힌 차단막 뒤로 무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유현동이 그들을 향해 빙긋 웃었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지원자분들. KH에서 뵙는 날이 오길 바랄게요.”

“어? 네! 네!”

홍이나와 정지은이 동경 어린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반응했다.

유현동은 꾸벅 인사하더니 아까와 동일한 빛무리를 통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두 여자들이 중얼거렸다.

“와…… 유현동을 눈앞에서 보다니…….”

“사인이라도 받을걸…….”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자 홍이나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마치 ‘나는 이미 다 알고 있다’라는 영민한 표정을 지으면서.

“아저씨…… 저 다 들었어요.”

“뭘…….”

“유현동한테 형님 소리 듣는 거요.”

결국 들킨 건가.

어쩔 수 없었다.

홍이나는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테스트를 재개한다.

라고, 판단을 내리는 순간 그녀가 말했다.

“진짜…… 유현동이랑 형님 아우 하는 사이였다니. 아저씨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네요! KH랑 인맥이 있었으니 제가 재벌 3세라 했을 때도 대수롭지 않았던 거구요. 맞죠?”

“…….”

“어쨌든 KH에 연이 있으신 분이니. 합격하기 더 쉬울 수도 있겠네요. 우리 같이 잘해봐요.”

저번부터 느꼈던 거지만 그녀는 이런 데엔 전혀 감이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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