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me up. (2)
다음 날 아침.
강설아의 집 문을 두들기자,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뭐야. 왜 거기서 와."
"아. 오빠. 벌써 와있었네?"
계단으로 올라오는 강설아의 모습이 보인다.
"밤샌 거야?"
"응응. 바쁘다. 빨리 들어가자."
그녀가 문 앞 기기에 눈을 가져다 댄다. 홍채인식을 통해 거주자를 판단하는 최첨단 출입 시스템이었다.
[ 삐빅- 확인되었습니다. ]
아침 댓바람부터 그녀의 집에 들른 이유는 딴 게 아니었다. 테스트 참가 전 혹여나 알아보는 사람을 방지하기 위한 간단한 메이크업을 위함이다.
"밤샌 사람치고는 너무 멀쩡한데."
"뭐래. 나도 각성자라고. 하룻밤 안잔 거로는 아무 문제 없어."
"그러냐."
내가 자리에 앉자,
그녀가 화장품 파우치를 들고 왔다.
사실 얼굴에 스킨로션을 제외하고 무언가 발라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갑자기 불안해졌다.
"너무 진하게 하지는 말고. 가볍게 인상만..."
"하이고, 걱정 마세요. 오라버님,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그나저나 오빠."
"왜?"
"진짜. 대박이야. 새벽에 문어로 몇 가지 실험해봤는데... 무슨 가상현실 게임하는 줄 알았다니까?"
어제 새벽 선소연이 다시 달려오길래 목걸이를 건네줬는데, 그걸로 테스트 방식을 다시 짠 모양이다. 크라켄의 위대함에 대해 흥분하며 떠드는 강설아의 손길을 느끼며 창문 밖을 바라봤다.
KH타워 앞에 모여있는 수많은 사람들.
아침부터 줄이 얼마나 긴지 타운 내부를 가득 채우고도 공간이 부족해 밖으로 뻗어나가 있었다. 단체 건물 앞에는 커다란 푸른빛 균열이 생겨져 있었다. 저게 문어가 만든 거겠군.
"오빠도 테스트받아보면 깜짝 놀랄걸?"
"그 정도야?"
"응. 그간 골머리 아프던 게 한 번에 해결됐어. 잠깐! 이제 말하지 마. 입 부분 해야 해."
화려한 손놀림으로 내 얼굴을 두드리는 그녀를 뒤로하고 다시 창밖을 쳐다봤다.
접수대는 총 30개.
새로 뽑은 사무직원들이 앉아서 지원자들에게 무언갈 설명하고 있었고, 설명을 들은 그들은 두 가지 행동 중 하나를 선택했다.
푸른 균열 속으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뒤로 돌아가거나.
근데 여기까지 와서 뒤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뭐지? 막상 균열을 보니까 무서운 건가?
"아씨- 움직이지 마. 제일 중요한 게 눈이란 말야."
"......"
"으음... 인상은 좀 부드럽게 해줘야지..."
어느새 쉐도우를 꺼내 들고 눈꼬리를 살짝 내려 칠하는 그녀. 시선을 다시 집중하고 있는 여동생의 얼굴로 향했다.
감회가 새로웠다.
귀엽기만 한 애였는데 벌써 한 집단의 팀장이 되어 열심히 하는 모습이라니.
처음엔 감싸주려고만 했었다.
설아가 필요하다는 최강수 아저씨의 말만 아니었으면 아직도 평범한 대학생이었겠지. 아니 평범한 건 아니고 좀 많이 센 대학생.
"괜찮아?"
"뭐가."
"헌터 생활 제대로 시작한 거. 위험할 텐데."
"헹, 날 뭘로 보고. 나 오빠 찾는다고 아무런 능력도 없을 때에도 괴물들 사이를 누빈 사람이야."
그녀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사실 그녀의 신체 능력이라면 크게 걱정할 건 없다. 단, 한 가지만 빼고는.
"하나만 약속해."
"뭘?"
"군단장급 이상 나오면 무조건 도망치겠다고. 이건 앞으로 뽑을 네 팀원들한테도 적용되는 거야."
아직 인류는 군단장급을 감당할 준비가 안 됐다. 누가 됐든, 놈들이 출현하면 그 자리에서 벗어난 후 나나 선소연에게 알려야 한다. 다만, 여동생이 누굴 닮아 그런지 앞뒤 안 가리고 덤벼들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이 든다.
"오빠나 잘하셔. 나 걱정 말구. 자. 다 됐다. 이제 여기에 가발만 딱 쓰면..."
장발의 가발을 가져와 내 머리에 끼운다.
"완성! 자, 거울 봐봐."
거울을 보자 평소 날카로웠던 인상이 순하게 바뀌어 있었다. 신기했다. 분명히 나인데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
"흐음... 내 스타일은 아닌데."
"무슨 소리야. 훨씬 잘생겨졌거든. 됐으니까 이제 빨리 가. 나도 바로 가봐야 해."
"알겠어. 어쨌든 내 경고 잊지 말고."
"응응. 걱정 마."
***
집을 나와 지원자들 대열 끝에 합류했다.
앞선 사람들이 많이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뒤에 사람이 끊임없이 달라붙었다. 도착한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씨, 씨발 저게 뭐야! 균열이 뭐 저렇게 커."
"사람들 막 들어가는데? 난... 절대 못해. 저게 뭔 줄 알고 들어가."
압도적으로 큰 균열의 위압감에 지레 겁먹고 뒤로 돌아서는 자들도 있었고,
"와- 집 봐봐. 합격하면 이런 곳에서 사는 거야?"
"난 이번이 진짜 마지막 기회야."
합격을 꿈꾸며 기다리는 자들도 있었다.
난 지원자들을 하나하나 구경하며 줄이 빠지길 기다렸다. 십 대 꼬마들부터, 반쯤 벗겨진 머리를 지닌 중년, 심지어 지팡이를 들고 있는 노인까지 정말 다양했다. 시간이 흐르자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 사무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십니까. 지원자분. 많이 기다리셨죠? 혹시 성함이?"
얼마나 떠들었는지 목소리가 벌써 쉬어있었다. 그럼에도 밝은 미소를 유지하는 게 주유라가 페이를 잘 챙겨주나 보다. 어쨌든 난, 내 이름에 대충 떠오르는 성을 가져다 붙였다.
"최강현입니다."
"그러시구나, 다름이 아니라 앞에 있는 테스트 균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서약서에 동의를 하셔야 합니다."
"서약서요?"
"네, 여기 천천히 읽어보시고 동의하시면 서명이랑 지문 남겨주세요."
서약서의 내용은 간단했다.
대충 균열 안은 목숨을 잃을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공간이고, 사망 시 집단에선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안에서 일어난 일은 어떠한 경우에도 함구해야 한다는 것.
대단한 협박이었다.
여기에 동의하고 들어가는 사람이 제정신 아닐 정도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뒤로 돌아가고 있었다.
제법이네.
이걸로 허수들을 거르겠다는 건가? 아니면 벌써부터 깡다구를 테스트하겠단 건가.
난 가볍게 지장을 찍고,
균열을 향해 몸을 던졌다.
***
중력이 사라지는 기분.
처음엔 북한산 암벽에서 떨어졌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 등록 완료. 223,132번째 KH 지원자입니다. 서버 E-332로 이동되었습니다. ]
기계음이 울려 퍼지며 눈앞에 이미지가 튀어나왔으니까. 강설아가 말한 가상현실 게임이란 게 이런 거였나.
[ 대기인원 : 92/100 ]
[ 건물 안으로 입장하세요. ]
[ 100명이 차면 테스트를 시작합니다. ]
눈앞에는 방향이 한곳으로 나있는 오솔길과 '대기실' 이라고 적혀있는 하얀 건물이 보였다. 뭐야. 엄청 가깝네. 그냥 들어가면 되는 건가?
드르르륵-
앞으로 다가가니까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건물 안은 먼저 와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천천히 들어서자 시선이 나에게로 쏠렸다. 바닥에 앉아있는 자들부터 벽에 기대고 서있는 자들까지. 그러나, 그들은 곧 관심 없다는 듯 시선을 돌렸고 다시 적막에 빠졌다.
느껴졌다.
공간을 휘어감은 긴장감과 초조함이.
난생처음 보는 신비로운 공간에, 목숨을 건 서약까지 했다. 이들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나저나, 이게 크라켄의 능력이라니 말이 안 나올 정도로 대단하다.
"우리 여기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기다림이 지루했는지 한 남자가 말문을 텄다. 각진 외모와 탄탄한 몸, 그리고 얼굴에 난 상처는 꽤나 삶을 험난하게 살아온 듯싶었다.
"인사나 합시다. 나 김훈영이라 하오."
간단한 자기소개에 사람들의 이목이 단번에 집중됐다.
호오, 뭐 하는 거지?
난 구석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봤다.
"거기 꼬마는 이름이 뭐니?"
남자의 타깃은 십 대 후반쯤 되었을까 살짝 앳되어 보이는 소녀였다. 단아한 이목구비와 갸름한 계란형 얼굴이 여러 소년들의 마음을 뺏었을 것 같은 출중한 외모였다.
그러나 소녀는 들은 체 만 체 차갑게 무시했다. 보는 내가 다 민망할 정도로. 김훈영은 멋쩍은 미소를 지은 채 머리를 긁적거렸다.
"다들 긴장한 것 같은데. 몸 좀 풉시다. 친해져서 나쁠 거 없잖아요. 같이 합격하면 팀이 될 텐데."
그의 시선이 이번엔 다른 여자에게 꽂혔다. 20대 중반쯤 되어보이는 외모에 어색하게 미소 짓고 있는 여성. 이 공간에 있는 여자라고는 그 둘뿐이었다. 이제 보니까 말 트는 척하면서 여자한테만 찝쩍거리는구만.
"그쪽은 이름이 뭡니까?"
"전, 정지은이라고 해요..."
"지은 씨군요. 혹시 몇 살이세요?"
"아... 27살이요."
"오오- 한 다섯 살은 어려 보이시는데요? 아,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여성.
본인에게 주는 관심에 바로 마음을 연듯싶었다. 그 모습에 김훈영이 미소를 쓰윽 지었다. 모든 사람들이 두 남녀의 대화에 시선을 집중했다. 나랑, 그 소녀를 제외하고는.
"그럼 말 편하게 해도 되지? 오빤 31살이거든. 나만 믿고 따라와. 내가 밖에서 운동을 좀 했거든."
"우와- 무슨 운동이요?"
"유도. 너는 무슨 운동한 거 있어? 꽤 밸런스 있는 것 같은데."
두 남녀가 떠들기 시작하자 긴장됐던 분위기가 어느 정도 풀렸는지 다른 사람들도 서서히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어느새 시간이 흐르고,
나머지 8명이 들어왔다.
[ 대기인원 : 100/100 ]
[ 총지원자 수 382,120명 전원 입장 완료했습니다. ]
시야에 이는 글자와 함께 기계음이 울려져 왔다. 역시 백만 명이 넘는 지원자들 중 푸른 균열에 발을 못 들인 사람은 절반이 넘었다.
그래도 38만 명이라니,
생각보다 용기 있는 사람이 많은데?
순간, 기계음이 아닌 여성의 목소리가 홀을 울렸다. 아침에도 들었던 익숙한 목소리. 강설아의 목소리였다.
[ 지원자분들 안녕하세요. KH 팀장 강설아입니다. 많은 분들이 저희 집단에 관심을 가져주셨고, 저희는 116명을 가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강도 높은 테스트를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영상을 보시죠. ]
순간 시야에 글자가 사라지고 영상이 흘러나왔다. 정글 속, 붉은빛을 띤 괴물들이 흉포한 괴성을 지르며 인간들을 물어뜯고 있는 모습이었다. 순식간에 찢어지고 갈라지는 사람들의 모습에 홀 안에는 다시금 긴장감이 피어올랐다.
[ 지금 영상에 나오는 괴물들은 여러분들이 곧 만나게 될 실존하는 존재들입니다. KH의 공식적인 첫 번째 테스트는 이 영상 속 정글에서 생존하는 겁니다. ]
강설아의 음성을 들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자신감 있게 말했었던 김훈영의 낯빛도 어두워져 있었다.
"미... 미쳤나 봐. 지금 저기서 살아남으라고?"
"에이, 말도 안 되지. 우리가 각성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쟤들이랑 싸워."
[ 여러분들은 각자 원하시는 무기들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습니다. ]
그녀의 말과 함께 영상은 사라지고 시야에는 다섯 개의 선택지가 이미지로 보여졌다.
[ 검, 방패 ]
[ 활, 화살 10개 ]
[ 건틀릿 ]
[ 단검 5개 ]
[ 창 ]
호오, 신기하군.
난 당연히 건틀릿을 골랐다.
남자는 주먹이니까.
그러자 허공에 빛이 번쩍이며 무기가 떨어졌다.
파파팟-
주변에도 무기를 골랐는지 빛이 번쩍였다. 그러나 몇 명 뿐이었다. 대다수는 몸이 굳어 패닉에 빠져있었으니까.
"뭐야. 이게..."
"씨... 발, 진짠가 봐. 난 못해."
"돌려보내 줘! 이 미친놈들아! 사람 목숨 가지고 테스트를 하는 집단이 어딨냐!"
[ 우리 집단은 세계 최고의 헌터 집단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특히, KH는 불의 종족으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것이 목적인 집단입니다. 그들은 위험하고도 강한 존재. 목숨을 걸겠다는 각오가 없으면 상대하기 힘듭니다. 공고에도 분명 각오가 된 자들만 오라고 했고요. ]
이곳 말고도 다른 공간에서도 항의가 빗발치는지 강설아가 부연 설명을 시작했다.
"각오가 목숨을 거는 건 줄은 몰랐지!"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공포에 질려 울기까지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확실히 균열 앞에서 서약할 때와는 느낌 자체가 달랐다. 잔혹한 영상을 보여준 후에 막상 실제 무기를 쥐여주니 느껴지는 공포감이 차원이 다른 것이다.
난 주변을 돌아다봤다. 여기서도 과연 평정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김훈영은 복잡한 얼굴이었고,
정지은은 떨고 있었다.
대다수가 허공에 욕을 하거나 울고 있었고 딱 한 명 그 이름 모를 소녀만 나와 비슷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녀와 잠깐 눈이 마주쳤고,
내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혹시라도 들킬까 봐.
그나저나 이 상황이 두렵지 않은 건가?
호기심이 일었다.
앞으로 좀 더 눈여겨보기로 하는 순간,
지이잉-
중앙에 푸른빛 균열과 붉은빛 균열이 동시에 나타났다.
"으... 으아악, 뭐야!"
"다들 물러서요!"
사람들은 기겁하며 건물 모서리로 붙었다.
[ 마지막으로 포기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도전하실 분은 붉은색, 포기하실 분은 푸른색 균열로 입장해 주시길 바랍니다. 여기서 도전하게 될 경우, 더 이상의 포기 기회는 없고, 목숨을 잃게 되더라도 저희 측은 책임지지 않겠습니다. ]
"......"
짧은 침묵이 흘렀다.
다들 공포에 빠진 상황에서 빠른 판단이 안 서는 것이다. 먼저 한 노인이 나섰다.
"다들, 수고하시오. 난 도전해봐야 개죽음일 것 같구려. 이만 가보겠소."
푸른색 균열로 몸을 이동함과 동시에,
[ 대기인원 : 99/100 ]
[ 도전인원 : 0 ]
시야에 상황이 표시되었다.
난 직감으로 알아챘다.
이 상황 자체가 시험이라는 것을.
흥미로웠다.
"나도 못 해. 아무리 돈이 좋고, 헌터가 되고 싶다지만 목숨까지 걸 순 없어."
"KH 개새끼들. 비인간적인 새끼들!"
대다수의 사람들이 무기를 집어 던지고 푸른색 균열을 향해 뛰어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KH의 첫 테스트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