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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51화 (5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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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짓는데 정신을 쏟느라 집단 이름을 지어야 한단 걸 망각하고 있었다. 사실 난 이름 짓는 거에 통 소질이 없다. 그렇다고 대충 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름을 정해야 하는데... 아저씨, 혹시 생각해 두신 거 있습니까?"

"흠, 다 같이 모인 김에 함께 정해보는 건 어떤가."

최강수의 제안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주유라가 싱긋 웃으며 회의를 진행했다.

"그럼 집단명에 대한 의견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각자 자유롭게 던져보세요."

"......"

잠깐의 침묵 후,

유현동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형님들, 누님들 생각났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벌써 생각을? 기대가 됐다.

"의리!"

유현동은 팔뚝으로 알통을 자랑하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의리 어떻습니까! 의리의리! 우리 여덟은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 겁니다!"

"푸웁-"

순간, 강설아가 마시던 물을 뿜더니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문태준이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으음..."

최강수도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침음을 흘렸다. 유현동이 강설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다시 제안했다.

"그럼! 형님! 불방망이는 어떻습니까!"

"꺄하하합!"

강설아가 고개를 숙이고 끅끅대자 주유라가 물었다.

"무슨 뜻으로 한 말입니까?"

"불의 종족으로부터 지구 방어를 소망하는 이능력자들! 줄여서 불방망이! 남자답지 않습니까?"

"꺄으아윽..."

"거참, 설아 누님! 그만 좀 웃어요! 전 진지하단 말입니다."

강설아가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소리를 내자 유현동이 억울해 했다. 그 모습을 본 주유라가 다시 손뼉을 치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자, 단체 이름은 중요하다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유치한 이름은 세계 최고 헌터 집단으로서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아마 단장님 얼굴에 먹칠하게 될 수도 있을 거예요. 다른 의견은 없나요?"

"흠... 제가 말해보겠습니다."

문태준이 진지한 얼굴로 손을 들었다.

오. 그래. 문태준 씨라면 믿을만했다.

저런 눈빛을 가진 남자라면 분명히 집단에 어울리는 이름을...

"지구방위대."

".....?"

"아니면, 8명이서 시작했으니 지구방위대8은 어떻습니까."

"꺄하하핫!"

강설아가 이젠 아예 의자 뒤로 넘어가 버렸다. 시종일관 평정을 유지했던 선소연마저 고개를 돌려버렸다. 최강수와 구태경도 몸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거 형님! 우리가 무슨 '푸레쉬맨'도 아니고 지구방위대가 뭡니까 지구방위대가."

"꼬맹이. 너보단 낫다."

"뭐요! 불방망이가 어때서요!"

유현동과 문태준이 티격태격했다.

하아아, 난 눈을 감았다.

머리가 복잡했다.

이들 작명 솜씨 역시 나 못지않았다.

아니 나보다 더 심한 것 같은데.

"아씨, 누님! 그렇게 웃지만 마시고 그럼 누님이 한번 말해보세요!"

"꺄흑... 흑. 내가?"

거의 울고 있던 강설아가 다시 자리에 앉아 가슴에 손을 대고 호흡을 진정시켰다.

"후우, 후우, 너 깜짝 놀랄걸. 내가 이래 봬도 한 작명하거든?"

"어디 들어나 봅시다!"

다른 이들의 집중이 이번엔 강설아에게 쏠렸다. 자신감 있는 목소리가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큼큼, 집단 이름이란 게 간결하면서도 쉽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또 멋진 의미도 있어야 하고."

"호오, 그래서?"

"뭐, 현동이가 말했던 의리! 하면, 대충 우리는 하나라는 거겠죠?"

"그렇죠! 누님!"

유현동이 동조했다.

"거기에 유라 언니가 말했던 세계 최고 헌터 집단! 즉, 최고라는 뜻을 넣으면 아-주 멋진 단어가 완성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게 뭔데. 뜸 들이지 말고 말해 봐."

내 재촉에 강설아가 헛기침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우리는 하나니까 '일', 그리고 최고라는 뜻의 '베스트' 합쳐서 일베스트! 어때요. 줄여서 일베. 괜찮지 않아요?"

"뭐... 뭔베?"

난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누님, 미쳤어요?"

"하아, 설아야. 그거 안된다."

"그거, 큰일 나요."

다른 대원들도 강설아를 만류했다.

아이고, 머리야. 쟤가 그럼 그렇지.

한참의 소란이 끝나고 진짜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 찰나 구태경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냥 현이 이름 따서 KH는 어떨까요?"

"KH?"

"네, 엔터테인먼트사나, 유명한 단체에서도 본인 이름 붙여서 만드는 경우들 있잖아요."

구태경의 제안에 최강수가 동조했다.

"그래. 국내보단 세계에서 더 많이 활동할 텐데 영어로 쓰는 게 더 친근할 것 같긴 하구나. 난 찬성하겠네."

"집단 명이 은인의 이름이라니. 그런 거라면 전 무조건 찬성입니다."

문태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 나온 이름보단 확실히 이게 낫네요."

"하루 종일 회의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저도 찬성이요!"

단원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솔직히 뭐든 상관없었다.

내 이름이 집단명이라는 게 좀 간지러웠지만 그렇다고 내가 더 좋은 제안을 할 수도 없는 상황. 머리도 아픈데 이만 마무리 짓자.

"그럼 그렇게 합시다."

***

처절했던 회의가 종료되었다.

주유라는 KH Team이라는 이름으로 집단 등록을 완료했고, 모든 단원들은 주거 단지로 이사했다.

'KH 타운'

주거 단지 이름도 심플했다.

나와 선소연의 가족들도 일주일 내로 입주하기로 약속했다. 실제 전투 단원들의 편의를 위해 가족들은 타운 외곽에 배치하기로 했다. 중앙에 있는 집단 건물에 올 일은 거의 없을 테니까.

6일 동안 바쁘게 흘러갔다.

주유라는 행정 도우미들을 추가 고용했고, 단원 모집 공고를 작성해 게시했다. 선소연과 각 팀장들은 시험 장소를 정하고, 마지막으로 계획을 더 촘촘히 다듬었다.

난 업체를 불러 각 주거 단지에 최고급 가구들과 전자제품들을 배치했다. 오피스텔에선 딱히 가져올 것도 없었다. 이미 집 안에 모든 게 갖추어져 있었으니.

똑똑-

야심한 밤.

냉장고에서 맥주를 하나 꺼내려던 찰나 옥상 창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선소연이구나.

그녀는 항상 퇴근하면 본인 집으로 안 가고 이곳으로 온다. 그것도 정문이 아닌 옥상으로.

난 맥주 하나를 더 꺼내 들어 올라갔다.

역시나 유리창 밖으로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반기고 있었다.

"퇴근한 거야? 일은?"

"다 마무리 지었지요. 하으음- 찌뿌둥해."

한껏 기지개를 펴고 내가 건네는 캔을 받아든 그녀가 털가죽 소파 위에 앉았다. 가끔 라스베가스 테라스가 생각나 밤하늘을 볼 수 있게끔 배치해 둔 거다.

"후우- 오빠는 준비됐어요? 내일이잖아요."

"내가 뭐 준비할 게 있나?"

"이것 봐. 제가 이럴 줄 알았어요. 마무리하면서 이것저것 수정했는데 한 번도 확인 안 했죠?"

테스트들을 말하는 거다.

내일 대대적인 단원 모집이 이루어짐에 따라 보고했던 테스트 방법을 조금씩 수정했나 보다.

"어차피, 나도 지원자로 참여하라며. 가서 부딪치면 되지 뭘. 자 캔이나 부딪치자 짠-."

독일산 맥주의 부드러운 목 넘김이 느껴졌다.

"크으... 그래도 기본적인 건 아셔야죠. 단장 오빠."

"당연히 알지."

"호오, 그래요? 그럼 지원자 총 몇 명인지 아세요?"

"......"

"시험장 위치는요?"

"......"

사실 집 인테리어 하느라 신경 쓰질 못했다.

내가 말이 없자 그녀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자요. 그럴 줄 알고 공고 올려둔 거 가져왔어요. KH 공식 홈페이지에요."

"오, 이런 것도 있었어? 난 그냥 관리국 게시판에 올린 줄 알았는데."

"지금 난리도 아니에요. 해외 뉴스에도 실시간으로 기사 나가는 중이라니까요. 문의사항이 얼마나 빗발치는지 유라 언니가 이번에 사무직원 100명 더 뽑았잖아요. 우리도 오늘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알아요?"

"잠깐만."

난 그녀의 핸드폰을 받아 공고를 읽었다.

심플한 공고에 비해 댓글 창은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언론에 일부러 흘린 것도 아닌데 이렇게 핫하다니 새삼 놀라웠다.

공고의 내용은 이러했다.

< KH team 단원 모집 공고 >

S급 헌터 집단 KH에서 아래와 같은 사람을 모집합니다.

●수행 직무 : 헌터 활동. (불의 종족 출현 시 무조건 전투 참여.)

●자격 요건 : 일반인 누구나. (기존 헌터 지원 절대 불가.)

●근무 조건 : 정규직, 팀 결정체 수익 10%(세부사항 참조)

●근무 지역 : 전 세계 균열 / 본사 : 서울 수서동 KH타운

●복리 후생 : KH타운 주거시설 2장소 대여 / 4대 보험 적용 / 근무 중 사망 시 가족에게 1,000억 지급 및 주거 단지 제공

●전형 절차 : 116명이 남을 때까지 테스트(비공개) / 장소 : 신청 시 통보 / 기간 : 내일

●기타 사항 : 각오가 된 자만 지원 / 문의사항 폭주로 이용 불가(수정)

현재 지원자 수 : 920,432 명

ㄴ 트수 : 와 자격 요건 이렇게 심플한 집단은 처음 봄;;

ㄴ 쉰다리 : 근데, 왜 헌터들은 지원 불가능합니까? 어이가 없네.

ㄴ 곰먹고쉽 : 잘보셈. S급 헌터 집단인데, 일반인만 모집한다? 그리고 수행직무는 헌터 활동이다? 뭘 의미하겠음. S급 헌터로 만들어 준다는 소리임. 난 무조건 지원 간다.

ㄴ 노벨컬렉터 : 이곳이 그 유명한 강 현, 선소연이 있는 곳이랍니다. 믿으셔도 됩니다.

ㄴ dlacks : 경쟁률 1 : 7,935이다. 되는 순간 그냥 로또 당첨되는 거임.

ㄴ Akie : 윗댓, 저걸 로또랑 비교하네...

ㄴ 충팔 : ㅋㅋㅋ KH타운 알아보니까 한 가구당 400평이란다. 그거 두 개에, 일반인들 평생 되고싶어도 못하는 헌터로 만들어 준다. 거기에 결정체 수익까지 배분해주는데 로또? 로또 실수령액이 얼만진 알고 하는 소린가. 게다가 헌터는 세금도 안 떼던데...

ㄴ dlacks : 말이 그렇다는 거지. 새퀴들아.

ㄴ M. I. C : 저 지원서 넣습니다. 윗분들 내일 봐요.

ㄴ 천기파랑 : 222 이건 직장인이건 뭐건 연차 쓰고 지원해야 함.

난 다른 건 몰라도 지원자 수 때문에 놀랐다.

"공고 올린 지 하루밖에 안 되지 않았어?"

"맞아요. 그것도 테스트 날짜 바로 다음 날로 잡았는데도 이 정도에요. 저희도 엄청 당황했어요."

"거의 백만 명인데 어떻게 다 수용하려고."

"그거 때문에 오늘 난리 난 거예요. 다시 서류로 기본적인 건 심사하잔 얘기도 나왔고, 아예 끊어서 한 달 동안 나눠보자는 말도 있었구요."

한숨이 나왔다.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는데."

"시간차로 10만 명씩 불러서 충격요법으로 걸러내기로 했어요. 지원자 수를 확 줄일 수 있는 설아 씨 아이디어..."

"아니야, 아니야. 그거 아니야. 그거보다 좋은 생각이 났어."

난 강설아 아이디어란 말에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식으로 뽑을 거면 차라리 서류심사를 하는 게 더 편할 거다.

"뭔데요?"

"우리 내일이면 집 지은 지 딱 일주일째 되는 거지?"

"그쵸? 6일 지났으니까."

"우리의 만능 문어 씨한테 물어보자. 왜 그 푸른새도 말도 안 되는 균열 잘 만들어냈는데 문어라고 못할 거 있어?"

"......!"

선소연의 눈이 동그래지더니 '이 오빠 천잰가?' 하는 눈빛을 보냈다. 물론 그냥 물어보자는 거지, 확신할 수는 없다.

난 착용하고 있는 목걸이를 만져 크라켄을 소환했다. 이번엔 선소연이 두 손을 모아 폈고, 그 위에 패밀리어가 떨어졌다.

[ 무슨 일인가. ]

"이봐. 크라켄 창조 능력으로 우리가 떠올리는 공간이나 괴물들도 만들 수 있나? 그 우리 수련공간 느낌처럼."

난 백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널따란 공간을 떠올렸다. 뭐, 정확한 테스트 장소는 선소연이나 팀장들이 알아서 할 테니...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는지만 확인하고 싶었다.

[ 으음... 가능하다. 다만, 이 정도... 크기라면 여자의 힘을 좀 빌려야 할 것 같군. ]

"저... 정말요?! 그게 된다고요?"

"거봐. 만능이라니까."

"와... 그럼 진짜 무궁무진해요. 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테스트 방법들도 다 할 수 있다고요! 오빠. 저 잠깐 어디 좀 다녀올게요."

"어디?"

"팀장들 다시 소집해야겠어요. 더 좋은 테스트 방법이 떠올랐거든요!"

"잠... 잠깐."

선소연은 말을 마치고 그대로 옥상에서 단체 건물로 뛰어갔다. 그 모습을 나와 크라켄은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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