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육군대위, 귀환하다-50화 (50/128)

터를 닦아야 집을 짓지. (4)

뽀글뽀글-

허공에서 하얀 물거품이 피어올랐다.

내가 손바닥을 펴자 그 위로 작은 크라켄의 패밀리어가 소환되었다.

"와, 오빠 어떻게 한 거야?"

"형님. 이게 뭡니까? 오징업니까? 문업니까?"

"허어, 이게 선물인가. 귀엽게 생겼구먼."

단원들이 내 손바닥 위에 있는 크라켄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보는 사람도 있었다. 요놈 본체 보면 그럴 생각 전혀 못 할 텐데.

살짝 떨어져 있는 조민아와 박중호도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봤고, 선소연도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 인간들. 난 오징어도 문어도 아니다. 크라켄이다. ]

갑자기 들려오는 음성에 모두들 기겁하며 떨어져 나갔다. 유현동은 뒤로 나자빠지기까지 했다.

"허억, 문... 문어가 말을!"

"꺄악! 깜짝이야!"

"문어의 지능이 높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말까지 할 줄은..."

단원들이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던지자 '문어'라는 말에 민감한 크라켄의 머리 부분에 또 주름이 잡혔다.

"여러분들. 진정하세요. 크라켄은 소연이와 제가 연이 닿아 만난 물의 종족입니다."

"물... 의 종족이요?"

"네, 우리가 싸우는 놈들의 대척점에 있는 존재지요. 앞으로 많은 도움을 줄 겁니다."

난 숙덕거리는 그들을 뒤로하고 크라켄과 함께 도면을 쌓아둔 공간으로 이동했다. 많이들 놀란 것 같은데 아직 이걸로 놀라기엔 이르단 말이지.

"크라켄. 이 정도 도면이면 가능한가?"

깔끔하게 쌓아져 있는 수천 장의 종이들과 책들. 얼마나 무거운지 바람에 날리지도 않는다. 크라켄은 그 많은 도면들과 관련 서류들을 동시에 촤르륵, 넘기며 대략 1분 만에 스캔했다.

[ 으음... 인간의 기술력이란 대단하군... 물론 충분히 가능하다. 바로 시작하면 되겠는가. ]

"응. 부탁할게."

내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크라켄의 형체가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쿠 그 그 그-

땅이 흔들렸다.

자재들이 허공으로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30만 평에 달하는 지형에 물방울들이 덮이기 시작했다.

땅이 파이고,

물을 가득 채운 호수가 만들어진다.

나무가 심어지며 공원이 생기고,

아스팔트가 굳으며 활주로가 생긴다.

"저... 저게 뭐야."

"말도 안 돼!"

비정상적인 시공 장면을 본 단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콰 르 르 르-

허공을 휘날리는 자재들이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면서 천천히 건물의 형체를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시멘트가 자동으로 반죽되어 몰탈이 되고, 자재들 사이에 스며들어 굳는다.

"조팀장님. 이거 꿈 아니죠?"

"이... 이게 문어... 쇼?"

"저거, 말도 안 되는 사업 아이템인데요?"

"확실히... 저 문어만 있으면 진짜 떼돈 벌겠는데."

조민아와 박중호도 눈을 자꾸 비비며 쳐다봤다. 주거 단지가 완성되는 데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딱 내 상상 속에 있던 주거 단지였다.

[ 완성했다. 또 일주일은 꼼짝없이 쉬어야겠군. ]

"수고했어. 고맙다."

아쉽게도 수련공간이 일주일 또 미뤄졌지만 괜찮았다. 집 짓는데 몇 년씩 소비하는 것보단 훨씬 나으니까.

기운을 흡수해 문어를 돌려보내고 단원들을 쳐다봤다. 입을 떡 벌린 채로 주거 단지를 감상하고 있는 그들.

난 그들 하나하나에게 집을 소개해주며 위치를 지정해줬다. 물론 단체 건물과 가장 가까운 위치로. 가족이 있는 자들은 가족 집까지 제공해줬다.

연신 감사해하긴 하는데, 눈은 날 바라보는 게 아니라 400평짜리 고품격 주택을 바라보고 있다. 하긴, 라스베가스 로얄 스위트에서 머물렀던 내 눈으로 봐도 매력적인 공간이니.

말 붙이기도 미안할 만큼 집중하며 구경하는 그들을 뒤로하고 선소연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팔짱을 끼고 있었는데 분위기가 심상찮다.

"이게 선물이었어요?"

"응. 맘에 들지? 집 필요했었잖아."

"......"

응? 왜 대답이 없지?

별로 기뻐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왜? 마음에 안 들어?"

"아뇨. 마음에 들어요."

"진짜?"

"그럼요. 고마워요. 엄청나게 감동했어요. 제가 가족들 걱정했던 거 듣고 생각하신 거예요?"

"뭐, 겸사겸사지. 근데 표정이 왜 그래."

내가 그녀의 머릿결을 쓸며 묻자 팔짱을 풀고 내 옷깃을 살짝 잡는다. 표정이 안절부절못하는 게 뭔가 말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뭔데. 말해 봐. 괜찮으니까."

"... 저희 이제 떨어져 지내는 거예요? 안 그래도 요즘 바빠서 같이 못 있었는데."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아까 집 정했잖아. 바로 옆 동네인데 무슨."

"......"

빌라 5층이 펜트하우스까지 겸하고 있어 우리 여덟은 각자 꼭대기 층을 차지했다. 그녀를 생각해서 나와 가장 가까운 빌라 5층을 내어준 건데.

그동안 동거하면서 같이 있었던 것 때문일까, 내가 본인의 집을 지정해 주는 게 싫었나 보다.

"옥상으로 뛰어다니면 바로 옆방인데 뭐가 문제야. 놀러 오면 되지."

"... 정말요?"

"그럼, 안 놀러 오려 그랬어?"

"언제든지요?"

"응. 언제든지. 너 원할 때마다."

선소연이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참, 단순하기는.

우리는 입주 자리 선정과 간단한 단지 구경을 마치고 단체 건물로 향했다.

조팀장과 박과장은 정중히 인사한 후 퇴근했다. 아마 오늘 본 말도 안 되는 장면들을 회사에 떠벌리고 다니겠지.

짝짝-

"자, 구경은 나중에 하고 모여보게나."

최강수가 손뼉을 치며 정신 팔려있는 단원들을 끌어모으려 했다.

그럼에도 유현동은 강설아와 함께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건물 구경에 여념이 없었고, 문태준과 주유라도 얼굴이 상기된 채로 이곳저곳을 흘기고 있었다.

새로 만들어지는 단체의 창설 멤버가 된 데다가, 그 건물이 끝내줬고 멋들어진 집까지 얻었으니 설레겠지.

하지만 벌써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만날 천날 구경만 할 수는 없는 노릇.

"이 보게들! 다들 기분이 들떠있는 건 이해한다만, 오늘 모인 목적을 잊지 말게!"

아저씨가 꾸짖자 다들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미안한 빛으로 고개를 꾸벅 숙이며 사과했다.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최강수가 날 바라봤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회의실로 이동하시죠."

회의실 상석에 앉자, 단원들은 이것저것 서류를 정리하며 브리핑 준비를 했다.

제일 먼저 나온 건 강설아였다.

"보고할게요. 단장님!"

"응, 보고해봐."

당찬 목소리가 귀여웠기에 웃으며 답했다.

강설아가 목을 한번 가다듬었다.

"소연 언니와 4명의 팀장들은 이 주 동안 단원 모집 계획을 세웠습니다. 일단 공정하게 하기 위해 지원자는 수만 명이 오던 수십만 명이 오던 다 현장 테스트를 할 생각입니다. 또, 나이나 성별, 힘, 체력, 학벌 등은 고려하지 않고 전부 모집할 생각입니다. 어차피 결정체 먹으면 다 똑같으니까요."

"그거 마음에 드네."

"따라서 테스트는 깡, 인성, 그리고 전투 자세. 딱 3가지 컨셉만 잡고 볼 예정입니다. 인원 116명이 나올 때까지 계속 진행할 예정이구요. 그에 대비해 수십 가지의 테스트 방식을 마련해 봤습니다. 한 번 보시겠습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PPT 파일을 넘기며 하나하나 설명했다. 꽤 기발한 방법도 있었지만 좀 이상해 보이는 것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송곳으로 볼 뚫기'

'칼로 사람 찌르기'

이게 무슨 과거 스페츠나츠 입단 테스트도 아니고, 이건 깡다구가 아니라 사이코패스를 뽑는 수준이었다. 다행히 그것 빼고는 다 마음에 들었다.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그녀가 씩씩하게 마무리했다.

"이상입니다. 단장님!"

고개를 꾸벅하고 들어가려고 하자 내가 손을 들었다.

"잠깐, 설아야."

"네...? 네! 단장님."

"보고 마지막엔 질문이나 피드백을 받고 들어가야지."

그녀가 허둥지둥 달려와 똑바로 섰다.

미숙했지만 여동생이 직장을 다녀본 것도 아니고, 대학교에서도 주야장천 메이크업만 했을 텐데 귀여운 수준이었다. 강설아가 다시 물었다.

"질문 있으십니까 단장님?"

나는 목을 가다듬었다.

"으음... 좋아요. 다들 준비하느라 고생 많았어요."

우선 고생한 팀장들과 선소연에게 격려를 해주고,

"근데 설아야, 혹시 테스트 방식 중에 사람 찔러보는 거랑 볼 뚫는 건 누구 생각이야?"

그녀에게 궁금한 걸 질문했다.

"......"

내 질문에 팀장들과 선소연이 다 강설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얼굴이 붉어진 상태로 고개를 숙였다. 역시 그럼 그렇지. 너 아니면 누가 그런 과격한 생각을 하겠어.

"그게... 칼로 찌르는 건 현동이한테 옛날 F급 균열 사건 듣고 생각했던 거고, 볼 뚫는 건 인터넷에서 찾아본 건데... 깡다구 확인하는 데 최고일 것 같아서 제안했었어요. 어차피 소연 언니가 다 치료해줄 수 있잖아요."

F급 균열 사건?

아, 선소연한테 살해당한 노인을 말하는 건가? 그거랑 이건 완전 별개의 문제지.

난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이게 테스트엔 명분이란 게 필요한데, 우리는 불의 종족이란 주적이 있잖아. 깡을 확인하는 건 좋은데 자해나 살해 쪽은 너무 나간 것 같네. 우리가 살인자를 뽑는 건 아니잖아."

"그럼 이 부분은 뺄게요..."

시무룩해져 있는 여동생.

사실 팀장들을 믿고 맡긴 일이라, 보고사항만 듣고 굳이 간섭할 생각은 없었는데... 그래도 너무 과격한 건 수정해 줘야한다.

"그 외 나머지 부분은 괜찮아. 보고도 깔끔하니 잘했고."

"감사합니다..."

강설아가 풀죽은 목소리로 꾸벅 인사하고 들어갔다.

"하여튼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어차피 116명은 각 팀장이 이끌어나갈 사람들을 뽑는 겁니다. 팀장들끼리 잘 진행해서 알맞은 사람으로 뽑아주세요. 그럼 이 안건은 마무리하는 거로 하고, 혹시 질문 있습니까?"

"저 좋은 아이디어 떠올랐는데요."

선소연이 손을 들었다.

"응, 말해 봐."

"팀장들이 각자 단원들을 뽑으라는 오빠의 말엔 저도 동의하는데요. 사실, 팀장들은 이것저것 통제할 것도 많고, 많은 사람이 모이다 보면 인성 부분에서 분명 놓치는 게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오빠가 지원자인 척 들어가서 한 번 쭈욱, 확인해줬으면 좋겠어요. 태준 씨 결정체 먹인 것도 눈빛이 마음에 들었던 것처럼 놓치는 원석들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으음...

리더인 내가 지원자로?

주변을 돌아보자 다들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내 얼굴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아마 극소수일 거에요. 그리고 설아 씨가 메이크업 조금만 해주면 아무도 못 알아볼걸요?"

사실, 지원자 뽑는 동안 수련공간에 대해서 좀 알아보려 했었는데, 주거 단지를 짓느라 힘쓴 크라켄이 1주간 휴식 단계에 들어섰다. 즉, 내일부터 1주일 동안 할 것도 딱히 없는 상태.

"후우, 알겠어. 그럼 그렇게 하는 거로 하지."

"의견 수렴 고마워요."

"그럼 다음 안건 진행하겠습니다."

다음은 주유라의 보고 타임이었다.

강설아와 다르게 마치 임원 앞에서 PPT 발표하는 이처럼 또박또박 걸어와 정자세로 섰다.

"저는 집단 발족을 위해 전반적인 행정 업무를 끝내두었습니다. 즉, 관리국 집단 창설 서비스에 전자등록만 하면 되는 상태입니다."

한 템포 쉬고,

"또 그동안 장&김 로펌에서 경력 있는 변호사 10명, 일삼 회계법인에서 시니어급 회계사 FAS팀 5명, 감사팀 5명씩 스카우트 제의를 보낸 상태고, 집단 창설되는 즉시 넘어오기로 약속받은 상태입니다. 다 업계에서 인정받는 실력자들만 모집했고요."

또박또박한 목소리.

옆에서 강설아의 감탄 소리가 들려왔다.

"고생하셨습니다. 어려움은 없었나요?"

"네.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연봉 협상 시 기존 봉급의 10배 불렀거든요."

"......"

역시, 돈이면 안 되는 게 없지.

그래도 실력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게 쉬운 건 아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유라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뭔데요?"

"바로 단체 이름을 정하는 일입니다."

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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