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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48화 (48/128)

터를 닦아야 집을 짓지. (2)

본격적인 집단 창설 준비.

균열 안에서부터 막연하게 생각했던 계획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각 멤버들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당장 눈앞의 선소연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새벽 2시에 들어와 아침 7시가 되면 칼같이 나간다. 때문에 우리가 얼굴을 보고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은 출근 전. 아침식사 시간밖에 없었다.

"모집 준비는 잘 돼가고 있어?"

난 모닝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며 근황을 물었다. 바쁘다 보니 요리할 시간은 없고, 전날 빵집에서 사다 둔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운다.

"네.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요. 힘든 부분도 있지만."

"힘든 부분?"

선소연이 빵을 우물거리다 꿀꺽 넘겼다.

"사실 엄청 복잡해요. 각 팀장들마다 생각이 다 다르거든요. 오빠나 아저씨가 딱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데, 그게 안되니까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경우도 많구요."

"다들 해본 적 없는 일이니까."

내가 그들에게 준 임무는 116명의 단원 모집 계획.

말만 들으면 간단해 보이지만,

무엇보다 신중해야 하는 일이다.

값비싼 결정체를 투자하는 일이니.

"그래도 재미있어요. 특히 설아 씨 아이디어 들을 때마다 웃겨 죽겠다니까요."

"강설아? 무슨 아이디어길래..."

그녀가 내 여동생을 떠올렸는지 쿡쿡 웃으며 일어났다. 어느새 식사가 끝났다.

"제일 재밌었던 게 오빠가 용기 있는 사람 좋아한다고, 절벽에서 밧줄 없이 뛰어내릴 수 있는 사람 뽑자는 거예요."

"그럼 죽잖아. 일반인인데."

"그니까요. 무슨 투신자살자 모으는 것도 아니고."

그녀가 낄낄거리며 머릿결을 다듬었다.

외출 준비를 하는 것이다.

빗질을 하는 동안 물줄기들이 돌아다니며 얼굴을 씻기고, 심지어 입까지 헹궈준다. 정말 매일 보는데도 적응 안 되는 능력이다.

"근데, 나쁜 생각은 아니네."

"... 네?"

머리를 묶던 선소연이 멈칫했다.

"진심이세요?"

"뭐, 떨어지는 사람들은 최강수 아저씨가 받아도 되고. 그리고, 문태준 씨 능력... 중력 조절하는 거 아니었어? 그거 잘 이용하면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을 텐데. 변별력도 생길 테고."

유현동이 전기라면,

문태준은 중력 조작계였다.

본인의 중력뿐만 아니라 특정 객체의 중력도 조절할 수 있는 괜찮은 능력이다. 그걸 이용해 절벽 밑에서 낙하하는 사람의 중력을 낮춰주면 되지 않을까? 실험해본 적은 없지만...

"와... 말 되는데요?"

"물론, 그게 정답이란 건 아냐. 잘못하면 엄청난 반발을 일으킬 수 있는 테스트 방법이지. 지원자들은 일반인이야. 목숨 가지고 장난친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휴... 어렵네요."

외출 준비를 마친 그녀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단정하게 묶은 머리에 세련된 화이트-블랙 오피스룩. 마치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 같아 보였다.

그 모습이 뭔가 대견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근데... 그런 거 신경 쓰지 않아도 좋아. 원래 뽑는 사람이 갑이니까. 저번에 말했었잖아. 창의적으로 해도 좋다고."

"그냥 하고 싶은 데로 질러버리란 거죠?"

"그렇지. 더 과격하게 해도 돼."

난 이번에 맡긴 업무들에 대해서는 일체 관여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애초에 나도 전문지식이 없는 마당에, 집단 리더인 내가 참여하면 내 입맛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녀가 낮은 굽의 구두를 신으며 물었다.

"근데 오빠는 뭐 해요? 출근해도 집, 퇴근해도 집. 혹시 그냥 빈둥빈둥 놀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런 게 있다. 그걸 다 알려주면 깜짝 선물이게?"

선소연이 눈을 흘겼다.

"그래도 어떻게 저한테까지 숨겨요."

"조만간 알게 될 거야."

"휴- 알겠어요. 아, 근데 오빠. 집단 이름은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회의할 때마다 이름 없이 집단집단 거리니까 느낌이 이상해요."

아, 이름 지어야지.

깜빡 잊고 있었다.

아직 창설 전이긴 하지만 정식 등록을 하기 위해서는 집단 이름이 필요하다. 그러고 보니 주유라 씨는 잘 하고 있으려나?

"그건 아저씨랑 상의해 볼게. 어여 가 곧 7시다."

"네에. 고럼 여기."

출근하는 가장 흉내라도 내는 것일까.

선소연이 얼굴을 쭉 내밀며 검지로 아랫입술을 두들겼다. 저번 출근 때 한번 해줬더니 맛들렸단 말이지. 난 웃으며 가볍게 입술을 부딪쳤다.

***

상쾌한 아침 공기가 폐를 시원하게 청소했다. 선소연을 보내고 동네 앞 카페로 나왔다.

강설아가 아르바이트했었던 곳.

오픈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 한 명 없이 한적했다. 카운터로 가자 보기 드문 미인인 카페 사장이 방긋 웃으며 반겼다.

유니폼 이름표에 달린 '김희수'라는 이름.

동생에게 몇 번 들은 적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주문하시겠습니까?"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큰 걸로 주세요."

"네에. 잠시만요."

그녀가 결제를 위해 전자기기를 두들겼다.

그러면서 나를 자꾸 힐끗 쳐다본다.

계산을 마치고 호출기를 받아 자리로 가려는 찰나, 그녀가 날 조심히 불렀다.

"저기..."

"네?"

"혹시... 설아 오빠분 아니세요?"

"알아보시네요?"

그녀와 난 초면이다.

나와 선소연이 영웅이다 뭐다,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리는 건 맞지만, 실제로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유튜브 백화점 CCTV 영상이나, LA 방송에 출연했던 모습은 작고 흐릿해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고, 우리의 강력한 요청으로 각종 SNS에 올라와 있는 사진들이나, 미국에서 찍혔던 사진들을 다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알아보는 사람들이 간혹 있긴 했지만...

"설아가 사진들 가끔 보여주면서 자랑했었거든요. 실물이 훨씬 나으시네요."

"감사합니다. 저도 여기 커피 맛있다고 들었습니다."

"설아도 요즘 엄청 바쁘다고 그러던데, 잠깐 휴식하러 오신 거예요?"

"아, 간단한 미팅이 있어서요."

단원들에게 말했던 깜짝 선물. 오늘이 그 선물을 위한 첫걸음을 떼는 날이다.

선물의 정체는 바로 단원들을 위한 고급 주거 단지였다. 거기에 멋들어진 단체 건물도 추가해서 집단의 본거지를 만들 생각이었다.

언제까지 헌터 관리국 사무실을 빌려 회의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 선소연도 나도 좁아터진 오피스텔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으니까.

이왕 지을 거 스케일 크게 가기로 마음먹었다. 단원들 가족들까지 전부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

현재 헌터들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불안감은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갑작스런 괴물의 출현으로 가족들을 잃을 수 있다는 거다. 나도 그랬고, 선소연도 매일 불안해했다.

앞으로 목숨을 내놓고 불의 종족과 싸워야 하는 단원들이다. 비상시 대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여 그들의 불안감을 줄여주고 싶었다.

선소연이 출퇴근하며 일할 동안 나는 건물을 짓기 위한 방법을 이곳저곳에서 알아봤다. 그리고 알아낸 게 시행사, 설계사, 시공사를 전부 아우르는 대한민국 최고의 건설사인 코리아 건설이었다. 어제 회사 홈페이지에서 건축 컨설팅 신청을 하자마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음날 이쪽으로 오겠다고 연락이 왔다.

"여기 맛있는 커피 나왔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 미팅하실 거면 2층으로 올라가셔서 왼쪽 끝으로 가보세요. 저번에 확장공사하면서 룸 하나 마련해뒀거든요."

"호오, 그런 자리도 있습니까?"

"네, 조용하고 깔끔하게 해뒀어요. 마음에 꼭 드실 거예요."

***

도로 위를 달리는 검은색 스포티지.

한 30대 중반의 남자가 운전대를 잡고 있었고, 조수석에는 연륜 있어 보이는 40대 여성이 앉아있었다.

"후우, 조 팀장님. 오늘 일정도 하난데, 대박일까요?"

"대박은 무슨 대박. 타국은 건설 붐이 불었다는데. 우리나라만 불경기야. 뭐, 빌라 신축급이기만 해도 소원이 없겠다."

"에이, 좋게 생각하셔야죠. 타국은 망했고, 우리나라는 헌터 강국이라 그런 건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번 달에도 이 정도 실적이면 더 이상 진급은 무리야. 회사 밥만 축내는 기분이라고."

남자는 박중호 과장, 여자는 조민아 팀장.

코리아 건설의 민간영업팀이었다.

박과장은 '이 정도 실적'이란 말에 곧바로 받아쳤다.

"이 정도 실적이 아니라 실적이 없잖아요. 공공수주팀이나 특수영업팀은 그래도 매번 뭐 하나씩 물어오던데. 우리는 한 달 동안 아무런 요청도 없었잖아요. 회사에 끈끈이라도 설치해야겠어요."

"갑자기 웬 끈끈이?"

"사무실에 파리만 날리잖아요."

"이게, 콱- 운전이나 똑바로 해."

박중호 과장이 핸들을 돌려 코너를 돌자, 조민아 팀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이제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야. 작은 별장을 짓는 졸부던, 상가 건물을 만드는 땅주인이던 뭐라도 따내야 해."

"와... 우리 팀 많이 죽었네요. 원래 빌딩급 아니면 쳐다도 안 봤었잖아요. 저 어제 깜짝 놀랐다니까요."

"뭐가."

"컨설팅 신청 문자 오자마자 어떤 사업할 건지 묻지도 않고, 상담 잡아버리셨잖아요. 전 팀장님이 그렇게 순발력 좋은 사람인지 몰랐습니다."

"한 달 만에 첫 손님인데 당연하지. 어, 요기 카페였나?"

마포구 동교동에 위치한 2층짜리 대형 카페. 의뢰자가 원하던 컨설팅 장소였다.

"네. 여기 맞는 것 같네요. 주차 들어갑니다."

박과장이 주차를 완료했고, 둘은 설레는 마음으로 카페 내부로 들어갔다.

그리고 2층에 올라 의뢰자를 만나는 순간, 그 설레던 마음은 완전히 박살 났다.

지금껏 비투씨 민간수주 컨설팅을 의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나 부티 나는 사람들이었다. 그것도 국내 최고인 코리아 건설에 의뢰하는 사람이라면...

그러나 눈앞에 있는 남자는 너무 어려 보였다. 게다가 입고 있는 옷도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반팔 티와 츄리닝. 몸은 엄청 좋아 보였지만, 돈은 없어 보였다. 딱 봐도 어디 대학교 건축학과에서 인터뷰 과제라도 나온 것 같았다.

조민아는 후회했다.

없는 실적에 너무 급한 나머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일정을 잡았다. 박과장이 '이번 건은 조졌네요'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래도 별수 있나?

허름한 옷 입고 다니는 돈 많은 재벌 2세이길 바라야지. 조민아는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남자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코리아 건설 영업팀장 조민아라고 합니다. 의뢰자분 맞으시죠?"

"아, 네. 반갑습니다."

차례로 악수를 한 둘은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박과장이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짓고 있자 조민아가 그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이게 프로페셔널 하지 못하게'라는 신호를 담아서.

"저희 건설사는 국내 최고의 규모를 가지고 있으며, 수많은 전문가들이 의뢰자 분께서 원하시는 최고의 건축 디자인을 뽑아낼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혹시 생각하시는 건물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을까요?"

제발... 제발...

인터뷰 요청만 아니어라.

조민아는 형식적인 상담을 시작하며 속으로 빌었다.

"제가 주거 단지를 하나 짓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라서요. 견적 좀 보려고 합니다."

"... 네?"

뭐라? 그녀는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박과장의 눈도 동그래졌다.

주거 단지는 보통 거대 건설회사에서 비투비로 의뢰한다. 10년의 수주팀 생활을 하면서 개인이 주거 단지를 짓겠다고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조민아는 다시 한번 물었다.

"주거용 건물이 아니라 주거 단지요?"

"네, 음... 한 400가구 정도 들어갔으면 좋겠고, 단지마다 방공호와 지하대피시설도 지으려 합니다. 서울 근교였으면 좋겠고, 별도로 큰 빌딩하나도 필요합니다. 각종 교육 시설과 체육시설도 있어야 하고, 상가들도 주상복합식으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아! 활주로도 있어야 하구요. 제가 이것저것 조사해본 바로는 한 30만 평 정도의 규모였으면 좋겠네요."

"잠... 잠깐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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