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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47화 (47/128)

터를 닦아야 집을 짓지. (1)

고작 5일.

전 세계에 출현한 레다와 레프가 처리된 시간이었다. 생각보다 S급 헌터 보유국의 저력은 대단했다. 사망한 헌터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대 이상으로 잘 버텨줬다.

문제는 그 5일 동안 박살 난 국가가 백여 개가 넘는다는 사실. 세계는 초상집 분위기였다. 이번 재앙으로 지구의 인구가 절반으로 줄었다니 말 다 했지.

그러나 이미 일어난 일.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다시 힘내서 재건할 수밖에.

유현동과 문태준도 복귀했다.

둘이서 처리한 놈들만 총 14마리라 했으니, 이 둘도 S급 헌터 타이틀을 받고 많은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못 봤던 가족들과 그간 고생했던 회포를 풀었고, 선소연도 시골로 내려갔다가 오늘 올라오기로 했다. 물론 그 기간 동안 최강수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많은 의논을 나눴다.

관리국 소파에 앉아 눈을 감고 한참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형님!"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목소리.

유현동이 다가와 커피를 내밀었다.

"일찍 오셨네요? 오늘 형님이 전부 소집하셨다면서요? 자. 이거 한잔 드세요."

"고맙다. 이번 파견 그래도 성공적이었다며?"

"다 형님 덕분입니다. 이미 전기 능력으로만 버나드 스미스를 능가하는 것 같아요. 그나저나 오늘 회의 의제가 집단 창설이라면서요? 그럼 이 유현동 마음껏 사용해 주십시오! 의리의리! 앞으로 의리 하면 유현동입니다!"

유현동이 본인의 튼튼한 몸을 자랑하듯 알통을 보이며 수다스럽게 말했다. 난 그 모습이 귀여워 피식 웃었다.

"문태준 씨랑은 많이 친해졌어?"

"아, 아니요... 그 사람 너무 과묵하니 말이 없어요. 같이 다니는데 힘들어 죽겠다니까요. 무슨 사람이 까치 고기를 삶아먹었나 말을 걸어도 단답형에 까칠하니 도저히 친해질 수 없겠더라구요."

"너가 너무 수다스러운 건 아니고?"

"그건 저도 조금은 동의하는 부분이지만, 그래도 사람이 정이란 게 있잖아요. 웃으면서 말하면 얼마나 좋아. 맨날 무뚝뚝해서는..."

불현듯 뒤에서 문태준이 등장했다.

"꼬맹이 다 들린다."

"흐에에엑! 깜짝이야! 아씨! 언제부터 있었어요? 누가 보면 암살자인 줄 알겠네."

"어, 문태준 씨 오셨습니까?"

백화점 사건 이후 처음 보는 그의 모습이었다. 슬슬 회의실에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는 군.

화들짝 놀라는 유현동을 뒤로한 문태준은 날 바라보더니 고개를 90도로 숙였다.

"말 편히 하십시오. 결정체를 주셨다 들었습니다. 덕분에 그 저주스러운 놈들을 찢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평생 은인으로 모시겠습니다."

으음... 이 사람 살짝 오글거리는 스타일이구나. 그것도 나보다 세 살이나 많은 사람이...

"괜찮습니다. 정 돕고 싶다면 앞으로 만들 단체에서 열심히 활동해 주십시오. 불의 종족 침공이 끝날 때까지만..."

"저도 원하는 바입니다. 목숨 바쳐 보필하겠습니다."

그는 다시 한번 고개를 정중하게 숙였고, 유현동이 옆에서 닭살 돋는다는 듯 팔뚝을 쓸고 있었다.

***

시간이 흐르자 회의실에 불렀던 인원이 다 모였다. 구성원은 나, 선소연, 최강수, 유현동, 문태준, 주유라, 구태경, 그리고 강설아까지 총 8명이었다.

"다 모였군요. 시작하죠."

주의 환기용으로 박수를 두 번치며 말하자, 모두가 상석에 앉아있는 나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아시다시피 이번 안건은 공식적인 집단 창설입니다."

지금 있는 회의실은 연합이 사용하는 헌터관리국 건물. 연합이 있는데 무슨 또 집단이냐 하겠지만, 연합과 집단은 성격이 다르다. 연합은 헌터 권익을 보호하는 이익단체일 뿐, 이미 많은 연합 내 헌터들은 따로 집단을 창설하거나, 기업으로 스카웃되어 들어간 상태다.

"여러분들은 제가 만들 집단의 창설 멤버가 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죠?"

내 물음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앞으로 단체의 주축으로서 핵심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그럼 먼저 직책부터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난 왼쪽 근거리에 앉아있는 최강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저씨는 연합 업무와 연계해서 집단의 고문 역할을 맡아주십시오."

"그러지."

이 부분은 이미 대화가 된 상태였다.

"그리고, 주유라 씨."

"네. 단장님."

그녀가 굽어있던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대답했다.

"주유라 씨는 오늘부터 연합 총무 직위를 해제합니다. 앞으로는 집단의 행정 전반 업무를 총괄할 겁니다."

"연합회장에게 들었습니다. 아직 전문적 지식은 지니지 못했지만, 성심성의껏 일할게요."

그녀가 폐지된 압존법까지 사용해가며 깍듯하게 대답했다. 연합회장에게 '께'가 아니라 '에게'를 사용하는 것. 그간 모셔왔던 최강수를 순식간에 내 아래로 바꾸는 게 상당히 프로페셔널한 모습이었다.

"혼자 하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재무팀, 법무팀, 지원팀 등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전문가들을 고용해서 지휘하세요. 믿어도 되겠습니까?"

"아, 그건 자신 있습니다! 저, 근데 질문 하나만 해도 될까요?"

주유라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난 고개를 끄덕거렸다.

"본의 아니게 딱딱한 회의 분위기가 된 것 같은데, 질문 있으시면 누구든 가감 없이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음... 이것저것 고용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혹시 집단 자본금은 얼마로 하실 생각이세요? 재산 대장 정리부터 하려구요."

괜한 걱정이었다.

지금 가진 게 돈밖에 없는데.

"아직 처리하지 못한 제 결정체 있죠?"

"네! 정확히 C급 257개, D급 565개, E급 715개, F급 1060개 남아있네요. 주된 업무라 거의 외우고 있습니다."

"그거 가져다 쓰세요."

"네... 네?"

모두의 눈이 동그래졌다.

대략 36조 어치의 결정체.

막 창설하는 집단의 자본금으로는 턱없이 큰 액수였으니까.

"물론 말 그대로 자본금입니다. 혹시 더 투자하실 분 계십니까? 비중만큼 지분을 인정해 드리겠습니다."

이것도 최강수와 미리 나눴던 얘기 중 하나였고, 의례상 묻는 말이었다.

여기 있는 이들은 전부 최상급 결정체를 무상으로 지급받는 대신 단원이 되기로 한 거다. 즉, 집단의 지분은 100% 나와 선소연이 가지기로 이미 약조했다.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지분이 없다 해도 손해 볼 것은 없다. 어떤 집단에도 지지 않을 최고의 보수와 복지로 대우해줄 생각이었으니까.

"다음은..."

투웅-

난 밑에 내려놨던 묵직한 결정체 가방 두 개를 탁자 위로 꺼내 올렸다. 잠금장치를 풀자 툭- 하는 소리와 함께 가방이 열렸고, 붉은 보석처럼 빛나는 결정체들이 그들의 앞에 펼쳐졌다.

꿀꺽-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태준 씨, 현동이, 태경이, 설아의 역할이 남았는데... 우선 이걸 보십시오."

난 쌓여있는 결정체를 손가락으로 쓸며 말을 이었다.

"여기 있는 결정체는 A급 76개, B급 504개입니다. 전 이것을 모두 단원 각성을 위해 사용할 생각입니다."

누군가가 감탄을 했다.

아무리 요즘 최상급 결정체의 가격이 많이 내려갔다지만, 저 정도 숫자면 나라 하나는 우습게 살 정도로 엄청난 값어치이기 때문일 거다. 그걸 팔지 않고, 전부 각성에 쓰겠다니 놀란 거겠지.

"여러분 네 명은... 음? 문태준 씨. 질문 있습니까?"

문태준과 유현동이 아까부터 서로를 쳐다보며 눈짓하더니, 결국 문태준이 손을 들었다.

난 말하려던 걸 그만두고,

그에게 발언권을 넘겼다.

"질문은 아니고,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이번 파견에서 얻어온 레프, 레다 결정체 14개도 기부하고 싶습니다. 현동이와 서로 동의한 내용입니다."

아, 그것도 있었구나.

문태준이 밑에서 커다란 자루를 꺼내더니 탁자 위에 들이부었다. 그러자 수박만 한 크기의 아름답고 굵은 결정체들이 후두둑- 쏟아졌다. 어떻게 먹으라고 저렇게 큰 거야.

다 비워낸 문태준이 자루를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

"놈들을 잡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돈 같은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단장님처럼 조금이나마 보태고 싶습니다."

"으음...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네요."

난 쓴웃음을 지었다.

현 지구에서 레다, 레프의 결정체는 연인이 말하는 밤하늘의 별과 같다.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한단 소리다. 또 다른 군단의 침공이 있지 않은 한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결정체니까.

문태준과, 유현동은 크라켄의 말에 따르자면 이미 탈피 다섯 단계를 전부 완료한 상태다.

즉, 더 이상 효과를 볼 수 없다는 말.

이걸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하려면...

"아저씨, 균열에서 복귀한 이후 아직 결정체 하나도 안 드셨죠?"

"그렇다만..."

"레다, 레프 결정체는 아저씨와 태경이, 그리고 설아가 섭취하세요."

구태경과 강설아도 균열을 통한 신체능력만 각성한 상태지 결정체는 먹은 적 없으니까. 싸이클롭스 베어를 잡을 수 있는 상황에서 레다, 레프의 결정체 5개를 먹으면 얼마나 강해지려나?

"아니, 어떻게..."

그들이 반발하려는 낌새가 보이자,

즉시 손을 들어 제지시켰다.

"이건 명령입니다. 지금은 미안하다거나, 부담스럽다는 그런 감정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어떻게든 효율적으로 각성해서 놈들을 상대해야 한단 것을 잊지 마세요."

내 단호한 말에 그들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래. 이제 이건 됐고.

"이제 다시 본 주제로 돌아와서 태준 씨, 현동이, 태경이, 설아는 각 팀의 팀장이 될 겁니다."

"팀... 장이요?"

"우리 집단은 총 네 개의 팀으로 굴러갈 겁니다. 현 결정체로 각성하지 않은 일반인들만 모은다고 가정했을 때 결정체 580개를 5로 나누면 총 116명의 단원을 모집할 수 있습니다. 이걸 또 4로 나누면 각 29명씩 맡게 되겠죠. 본인들까지 포함해서 총 30명씩 한 팀으로 나눌 겁니다."

S급 헌터 이상으로만 이루어진 전 세계 유일무이한 집단이 되는 것이다.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넷은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으로 나와 선소연은 집단 전반 업무와 함께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바로 끊임없이 수련하는 것.

사실상 우리 집단의 목적은 차후 밀려올 불의 종족을 효율적으로 막기 위함이고, 그러기 위해서 가장 핵심이 되어야 할 역할이 바로 군단장을 상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 이제 직책 분담이 완료됐으니 앞으로 2주 동안 해야 할 일을 지시하겠습니다. 아저씨와 주유라 씨는 아까 말했던 전문가 고용과 앞으로 고용할 헌터들 계약서 그리고 집단 내규를 작성해주세요."

"알겠네."

"알겠어요."

이 둘에겐 가타부타 말할 필요도 없다.

알아서 잘 해주겠지.

"선소연과 각 팀장분들은 116명을 어떻게 뽑을 건지 서로 상의한 후 계획을 짜서 보고하세요. 아마 수많은 일반인들이 지원할 겁니다. 그러니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공정하면서도 창의적으로 뽑을 방안을 마련해 오세요. 이 역시 전적으로 여러분들을 믿겠습니다."

"네! 단장님!"

나머지 다섯은 힘차게 즉답했다.

난 일부로 단원 모집 임무에 선소연도 포함시켰다. 나 혼자 따로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 제가 할 말은 끝났습니다. 혹시 질문 있으신 분?"

"저요!"

내가 쳐다보자,

주유라는 들었던 손을 내리며 말을 이었다.

"우린 계약서 같은 거 안 만드나요?"

"네. 초창기 멤버는 제가 믿기 때문에 굳이 종이 쪼가리로 구속해두지 않으려 합니다. 주유라 씨는 앞으로 고용할 인원에 대한 계약서만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 알겠습니다."

임무 분담을 완료했다.

이제 회의를 마무리할 때가 왔다.

날 쳐다보는 그들의 눈빛에서 잘 해보고자 하는 의욕이 보여 마음에 들었다.

"자! 그럼, 2주 후에 이곳에서 다시 보는 걸로 하고, 회의를 마치겠..."

"잠깐!"

강설아가 내 말을 끊으며 손을 번쩍 들었다. 모두의 이목이 그녀에게 향했다.

"오빠는 뭐 할 건데?"

순간,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나머지 멤버들이 강설아에게 찌릿- 눈길을 보내며 눈치를 줬다. 이제 집단이니 공식적인 회의 자리에선 격식에 맞추라는 의미인가 보다.

난 쓴웃음을 지었다.

꼭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뭐, 나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비록 여덟 명이지만, 앞으로 규모가 커지면 규칙과 규율은 분명히 필요할 테니까.

"다... 단장님은 뭐 할 건데요?"

여동생이 눈치를 보며 존대했다.

난 다시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저는 그동안 단원들을 위한 깜짝 선물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아마 기대해도 좋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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