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육군대위, 귀환하다-46화 (46/128)

심해 속으로. (4)

"심해에서 수련하는 게 아니었어?"

[ 기다려 보거라. ]

크라켄이 다리를 사방으로 확 펼쳤다.

놈의 다리들은 이 공간을 꽉 채울 정도로 거대해 전부 확인할 수조차 없었다. 데구르륵, 눈알을 굴려봐도 네 개의 다리와 몸체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엄청나네."

"뭐... 하시는 거예요? 크라켄님."

고요했던 심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수압이 한 곳으로 끝없이 집중됐다.

[ 말하지 않았나. 물의 종족은 창조를 관장한다고. ]

구르릉, 물이 압축되고 압축되기를 반복하자 심해에 눌린 조용한 폭발 소리와 함께 빛이 번쩍였다. 그리고 우리의 앞에 둥둥 떠있는 하나의 목걸이. 주먹에서 나오는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났다.

[ 내핵 에너지를 이용해 탄소를 나노 단위로 압축한 금강석이다. 너희들이 알고 있는 다이아몬드나 티타늄보다 수백 배 단단할 거다. 거의 일 년에 한 번 밖에 사용 못 하는 능력이지. ]

"예쁜 보석이네요."

"근데, 이걸로 뭘 어쩌란 거지?"

[ 이 목걸이를 사용한다면, 밖에서도 내 힘을 끌어다 쓸 수 있을 것이다. 이왕 능력을 쓴 김에 선물을 하나씩 만들어주지. 아직 조금 더 만들 수 있거든. 원하는 무기가 있으면 한 번 떠올려 보거라. ]

선물이라...

무기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

선소연이나 투척할 때 대검이나 표창을 썼지, 난 여태껏 맨손으로만 적을 상대했으니까.

역시 남자는 주먹이었다.

그래도 만들어준다는 데

뭐, 쓸만한 거 없을까?

번쩍-

내 고민이 끝나기도 전에,

크라켄이 또 한 번의 마법을 부렸다.

[ 사용시간에 제한이 있어, 급히 떠올린 대로 만들어 봤다. ]

내 앞에 떠밀려오는 무기는 건틀릿이었다.

"흐음... 손 보호할 필요는 없는데."

그래도 성의가 있으니.

오른손을 뻗어 가볍게 착용했다.

딱 맞게, 착- 감겨오는 부드러운 촉감.

목걸이와 같은 보석으로 이루어져 있는 심플한 디자인. 심지어 주먹에 실린 불빛까지 밖으로 투영시켜주었다.

"마음에 드네."

[ 이걸 끼고 있는 순간은 어느 정도 정신력을 보정해줄 것이다. 각성 능력 사용 시 녹초가 되는 부작용을 줄여주겠지. 그리고 여자는... ]

선소연 앞에는 벨트형으로 이루어진 10개들이 투척용 단검 세트가 있었다. 역시 그녀는 내가 알려줬던 투척술을 떠올렸나 보다.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에 단검집마저 강도 높은 금강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어디 가서 돈 주고도 못 만들 무기였다.

[ 회수하기 편하도록 던지면 자동으로 단검집으로 소환되는 마법을 걸어두었다. 대신 여기엔 정신력 보정 마법은 없다. ]

던지고 던져도 다시 채워지는 무기라니...

파격적으로 편리한 무기였다.

이거, 생각보다 능력 있는 친군데?

"정말 마음에 꼭 들어요. 감사합니다."

"고맙군. 쓸모없다는 말은 사과하지."

[ 아니다. 왕의 힘을 이어받은 자들이여. 그대들이 지구를 놈들로부터 지켜내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 도울 것이다. 내 약속하지. ]

시간이 많이 흘렀음일까, 벨트를 급하게 두른 선소연이 내 손을 잡았다.

"이제 진짜 가봐야 해요. 이제 딱 절반 남았어요. 더 늦으면 힘들 거예요."

"그만 가보도록 하지. 기회 되면 또 보자고."

[ 그러지. 머지않아 또 보게 될 거다. ]

나는 목걸이를 챙긴 후, 그녀의 등을 꽉 끌어안았고 서서히 위로 떠올랐다.

그나저나 조만간 또 본다고? 궁금증이 일었지만, 그녀가 급해 보였기에 굳이 물어보진 않았다.

"아!"

그리고 선소연이 깜빡했다는 듯,

"크라켄님. 아까 죽인다고 한 건 미안해요. 대신 앞으로 문어숙회는 안 먹을 게요!"

크라켄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 ...... ]

본인과 문어를 비교해서일까, 크라켄 머리 부분에 미약하게 주름이 잡혔다. 근데 뭐, 문어 맞잖아.

***

철컥-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오랜 기간 비운 탓인지 쾌쾌한 냄새가 났다. 짐을 내려놓고 창문을 열어 환기부터 시켰다.

"휴우- 정말 길고 알찬 여행이었네요."

심해에서 벗어난 후 우리는 북서쪽 방향으로 계속 이동했고, 일본과 제주도를 건너 서울까지 도착했다. 지금이 새벽이니 바다를 건너는 데만 꼬박 이틀이 걸린 것이다.

선소연은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난 결정체 보관함 안에 모셔뒀던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여러 문자들이 와있었고, 난 가장 위에 있는 최강수의 문자를 터치했다.

[ 최강수 : 첫 결정체 정산금 입금해뒀네. 반 정도 팔았고, 나머지는 천천히 풀 생각이야. 아, 그리고 도착하면 연락 꼭 주게나. 첨부 : '결정체 처리 내역.txt' ]

벌써 반이나 팔았나?

의자에 앉아 무심하게 첨부파일을 클릭했다.

"허어-."

내역을 확인하고 나서 깜짝 놀랐다.

복잡한 숫자들의 나열은 무시하고 95%만큼 입금된 금액만 확인했는데, 그 금액이 무려...

[ 36조 3,300억 원 ]

거기에 미국으로부터 받은 130억 달라가 15조 3,800억 원으로 환전 입금되었으니 통장엔 총 51조 7,100억 원이 있는 것이다.

물론 실질적으로 가진 것에 비하면 푼돈이다. 애초에 연합이 다 판 것도 아니었고, 결정체 보관함에 있는 상급 결정체들 일부만 팔아도 저 정도는 거뜬히 나올 테니까.

"뭘 그리 뚫어져라 쳐다봐요?"

"아, 이거 봐봐."

속으로 돈 계산을 하고 있자, 간단하게 정리를 마친 그녀가 다가왔다. 난 폰뱅킹 계좌에 입금되어 있는 금액을 보여줬다.

"으응...? 이거 공이 몇 개야. 하나. 둘, 셋..."

"51조야."

"그래요? 너무 많으니까 현실감이 떨어지네요. 뭐, 부자인 건 알았다만..."

생각보다 태연한 선소연은 맞은편 의자에 앉아 식탁 위에 정리하지 못한 물건들을 펼쳐놨다.

결정체 가방, 건틀렛, 단검 세트, 그리고 목걸이였다. 난 그중 목걸이를 집어 들었다.

"이제 어떡하실 거예요?"

"뭘, 어떡해."

난 보석 부분을 손가락으로 둥글게 굴리며 응답했다.

크라켄이 말했지.

이걸 사용하면 수련 공간이 생길 거라고.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궁금했다.

"밤도 늦었는데 주무실 거예요? 아니면..."

"피곤해?"

하긴, 지금까지 바다를 건너왔는데 정신적으로 많이 피로할 거다. 육지에서는 같이 뛰었다지만, 바다는 오로지 그녀의 능력으로만 이동했으니.

"피곤하면 먼저 자."

"오빤 뭐 하시게요?"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랬다고, 빨리빨리 해결해야지 일단, 요 목걸이 좀 자세히 알아보려고."

"지금 수련 공간 들어가 보시려고요? 이 늦은 새벽에?"

"응. 어차피 원할 때 바로 나올 수 있다고 했으니까, 어떻게 발동하는 건지 그리고 어떻게 생겼는지만 확인해 볼 거야."

딱히 피곤하지도 않았고,

궁금증은 바로 풀어야 하는 성미라.

그녀도 관심이 생겼는지 입맛을 다시며 가까이 붙었다.

"근데 이거 어떻게 사용하는 거지? 아무리 만져봐도 그냥 예쁜 보석일 뿐인데..."

"손에 기운을 흘러 넣어보는 건 어때요?"

"오케이."

그녀의 말대로 불의 기운을 천천히 목걸이를 든 손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우우웅-

보석이 기운을 일정량 흡수하더니 푸른빛을 띄기 시작했다. 호오, 작동하는 건가?

뽀글뽀글-

순간, 탁자 위에 물거품들이 뭉치기 시작하면서 무언가 천천히 만들어졌다. 내 주먹보다 조금 큰 정도의 문어였다.

"뭐야. 수련공간은 어디 가고 웬 문어야?"

"문어라기엔, 너무 괴상하게 생겼는데요?"

[ 생각보다 빨리 소환했군. ]

갑자기 흘러나오는 목소리.

불과 어제 들었던, 익숙한 음성이었다.

"크라켄이냐?"

"요 쪼끄만 게요?"

[ 그렇다. 본체는 아니고 패밀리어 마법을 이용한 것이다. 목걸이만 있으면 그 장소에서도 내 힘을 쓸 수 있다. ]

허어, 꽤나 편리한 기능이었다.

푸른 새도 그렇고, 크라켄도 그렇고 물의 종족은 전투보단 마법에 특화된 종족인 걸까. 생각해보면 그 균열도 참 말도 안 되는 마법이지 않은가.

난 식탁에서 느물거리는 녀석을 빤히 응시했다. 크라켄 본체의 모습을 축소한 듯싶었다. 그때는 너무 커서 제대로 못 봤었는데, 나름 귀엽게 생겼다.

"목걸이가 통로 역할을 하는 거였군. 그래서 조만간 또 본다고 한 거였어."

"그럼, 여기에다 직접 수련공간을 만들어 주시는 거예요?"

[ 아쉽게도, 너희 무구 만드는 데 모든 힘을 다 써버렸다. 다시 힘을 모으고 있는 중이지. 수련공간은 한 일주일쯤 지나면 그때 만들어 주마. 그때쯤이면 기본적인 창조는 다시 할 수 있으니. ]

나노 금강석은 일 년에 한 번 만들 수 있다 했었지. 일주일 만에 기본적인 창조가 가능하다면, 일 년 치의 힘이 들어간 이 무기들은 얼마나 단단할 것일까. 특수한 능력도 있다고 했으니 아침에 성능도 파악해봐야겠다.

"그나저나 기본적인 창조는 정확히 뭘 말하는 거지?"

[ 금강석은 아니더라도, 힘과 재료만 있다면 원하는 무기나 물체들을 만들 수 있다. 그것도 일주일 후에 직접 확인시켜주지. ]

자신감 어린 음성이었다.

크라켄이 원격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생각보다 더 쓸모 있어진다. 우리가 불의 종족을 적대하는 한 무한정 도와준다 했으니.

"고맙군. 그럼 어떻게 복귀시키면 되나?"

[ 간단하다. 목걸이에 보냈던 기운을 빼기만 하면 된다. ]

"그럼 일주일 후에 보도록 하지."

난 목걸이에 넣었던 기운을 흡수했고 작은 문어 형상은 다시 물거품으로 화했다. 본의 아니게 문어를 펫으로 기르는 느낌이 들었다.

"목걸이는 끝났네요?"

"그러게. 그래도 대단한 기연을 얻었어."

"이제 할 것도 없는데..."

아까부터 선소연의 얼굴이 묘하게 붉었다.

몸도 배배 꼬는 게 이거 시그널 보내는 건가?

아까부터 계속 잘 거냐고 묻는 게 100%다.

"요 엉큼한 꼬맹이가."

"갑... 갑자기 뭘요?"

"뭐긴, 이리와!"

쑥스러워 하는 모습이 꽤나 귀엽다.

그래. 저번에 아저씨 전화 때문에 흐름 한 번 끊긴 이후로 못했으니.

난 그녀의 허리를 잡아들어 매트리스 위로 부드럽게 옮긴 후 입을 맞추었다.

"으음..."

역시나 아무런 저항 없이 몸을 맡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밀고 들어왔다.

난 혀를 돌리며 조심스럽게 선소연의 육체를 만졌다. 가녀려 보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근육 때문인지 피부가 탄력감으로 꽉 차있었다.

입을 떼고 자연스럽게 옷을 벗겼다.

눈부시게 하얀피부와 적당한 가슴.

질리도록 봤음에도 근사한 모습이었다.

여태껏, 이걸 어떻게 참아온 건지...

내가 만지작거리는 것에 대한 반항감인지, 그녀도 살포시 웃으며 바지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순간 최강수의 문자가 떠올랐다.

"아... 맞다. 아저씨한테 복귀했다고 연락 줘야 하는데. 문자 달랬거든."

"지금 새벽이잖아요. 아침에 연락하면 되죠. 이 시간에 연락하는 거 매너 아니거든요?"

"알았어, 알았어. 이따 연락할 게"

선소연은 내 말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물줄기를 뻗어내 집안의 등을 모조리 꺼버렸다. 그렇게 우리의 숨은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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