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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43화 (43/128)

심해 속으로. (1)

놈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간 후 핵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커다란 식도를 정신없이 타고 내려가고 있는 도중 각성 능력이 활성화되었고, 동네 뒷산에서 균열의 위치를 알았던 것처럼 단숨에 놈의 핵을 감지할 수 있었다.

내부는 외부 표피처럼 단단하지 않았다.

난 주먹을 휘두르며 응집된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정신없이 찢고 들어갔다.

놈이 발광하는 게 느껴졌다.

마침내 목표에 주먹이 닿는 순간,

모래처럼 부스러지는 커다란 핵과 함께 몸에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심장이 아려올 정도로 빠르게 뛰었다.

응집된 군단장의 힘이 내 심장으로 꾸역꾸역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 이놈은 결정체가 따로 없는 건가? 왕을 잡았을 때처럼 먹는 형식이 아닐 수도 있다.

"응?"

감각이 기묘했다.

그동안 능력 발현 시마다 느껴졌던 어색한 감각이 완벽하게 사라졌다. 이제서야 완전히 각성 능력을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냥 본능적으로 알게 됐어요. 눈부실 때 눈 감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선소연이 균열에서 물을 다룰 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녀의 말이 드디어 이해가 됐다.

눈을 감고 그녀가 했던 것처럼 불줄기를 만들어 내보자 생각하는 즉시, 시퍼런 불이 허공에 생성됐다. 정말 내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 같이 자연스러웠다.

앞, 뒤, 위, 아래...

내 마음대로 통제가 가능했다.

쿠그그긍-

5군단장의 몸이 점점 붕괴되기 시작했다.

"주먹에 불을 실어볼까?"

여태껏, 주먹으로 놈의 외피를 뚫을 수 없었다. 선소연이 각종 장비에 물의 기운을 버프 형식으로 덧씌우는 것처럼, 내 주먹에 불의 기운을 넣는다면 놈의 외피를 뚫을 수 있지 않을까?

핵을 잃은 놈은 곧 있으면 완전히 부스러져 모래가 될 것이다. 그전에 실험해 봐야 한다.

화르륵-

됐다.

내 의식과 동시에 주먹에 붉은 기운이 담겼다. 나는 낼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주먹에 응축시켰다. 이제 가보자.

"타핫!"

놈의 내벽을 밟아 힘껏 뛰어오르며 주먹을 위로 내질렀다. 부드럽게 찢겨나가는 놈의 장기와 뼈, 그리고 마침내 외피를 뚫고 하늘로 솟구쳤다.

그와 동시에 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제 군단장 급에게 공격이 먹히는군."

어차피 핵을 부수면 놈들을 죽일 수 있다.

그러나 매번 목숨 걸고 놈들의 내부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놈들의 내부에 핵이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골렘처럼 내부 통로가 없는 놈일 수도 있다. 외피를 뚫을 수 있다면 앞으로 놈들을 더 편하게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걱정이었다.

이번엔 군단장 한 명만 와서 다행이었지, 오늘 같은 상태에서 놈들 전부가 몰려왔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각성 능력이 발전하긴 했지만, 과연 이 능력으로 총사령관을 상대할 수 있을까? 그것도 확신할 수 없다.

"흐음..."

허공에 떴던 몸이 서서히 중력에 이끌리기 시작했다. 난 떨어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LA의 참혹한 현장.

그와 대조적으로 푸른 하늘.

부서진 건물의 잔해들.

불타는 수풀림.

처참한 광경이었다.

"오빠!"

떨어지고 있는 나를 선소연이 날아와 와락 껴안았다. 우리를 부드럽게 감싸는 물방울과 함께 허공에 붕 떴다.

"괜찮으세요?"

"응. 덕분에. 호오, 이제 하늘까지 날 수 있는 거야?"

5군단장을 통쾌하게 잡아냈다.

나를 꽉 붙잡고 있는 그녀의 손길을 느끼며 칭찬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녀의 눈살은 찌푸려져 있었다.

"걱정했잖아요! 사귄 지 하루 만에 헤어지는 줄 알았다구요! 왜 이렇게 항상 무모하세요."

"아... 아?"

그녀는 내 기대와 달리 허공에서 끝없이 잔소리를 퍼부었다. 제대로 된 상의 없이 급박한 상황에서 놈의 입속으로 몸을 던진 것을 꾸짖는 거겠지. 그 당시 그녀도 마땅한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동의했겠지만, 그 방식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나 보다.

그래도 땀으로 흠뻑 젖어있는 그녀의 옷을 보니, 내 몸을 보호하려고 얼마나 집중했는지 알 수 있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거였어요. 만약 군단장 몸속에 핵이 없었으면 어쩔뻔했어요. 그리고, 제가 조금이라도 실수했으면..."

"고마워."

"아니, 말 끊지 마시구요으으읍?!"

난 그녀의 시끄러운 입을 입으로 막았다.

놀라서 움찔거리며 밀어내던 그녀가 서서히 몸에 힘을 풀었다. 한참 시간이 흐르고 입을 떼어내자 볼이 붉어진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하여간... 이런 상황에서 그러고 싶어요?"

"응. 그러고 싶은데? 일단, 저기 불타는 것들 좀 정리하자."

"휴우- 알겠어요."

선소연은 한숨을 쉬고는 허공을 날아다니며 물줄기를 쏘아댔다. 그녀의 손짓마다 건물이나 숲에 번진 화재가 진압되었고, 부상당한 생존자들이 회복하기 시작했다. 땅에 있는 사람들은 그녀가 등장할 때마다 환호성을 내질렀다.

"우와- 날아다니는 성녀가 따로 없네..."

"놀리지 마세요. 빨리 정리하고 복귀해야죠. 그나저나 결정체도 놓고 왔는데 주지사가 잘 지키고 있을까요? 가지고 도망간 거 아니에요?"

"음, 목숨이 아깝지 않다면 그러겠지?"

***

재난 상황을 빠르게 마무리 짓고 다시 공항으로 이동했다.

주지사는 약속을 지켰다.

놓고 갔던 결정체와, 추가로 요구했던 결정체까지 깔끔한 가방에 옮겨 담아 보존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처음엔 내가 찾아온 곳이 공항이 맞나 의심했었다. 해외 인기 스타 콘서트라도 찾아온 듯 수많은 인파가 공항 내외부를 가리지 않고 북적거렸으니까.

"미스터 강! 강! 강!"

"미스 선! 선! 선!"

이건 또 웬 뜬금없는 사태야.

그들은 박수 소리에 박자를 맞춰 우리의 성을 외치고 있었다. 우리의 이름을 삐뚤삐뚤하게 한글로 적어 팻말을 가지고 온 사람들도 있었다. 옆에서는 주지사가 결정체 가방을 열어 숫자를 정확하게 세고 있었다.

"갑자기 이 사람들은 다 뭘까요...?"

"우리가 놈을 처리하는 모습이 방송을 탔나 봐."

"와... 우리가 이쪽으로 올지 어떻게 알고..."

셈을 마친 주지사가 가방을 건네며 말했다.

"결정체는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SNS를 통해 미스터 강이 리노 공항에 있었단 사실이 퍼졌나 봅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서 다른 곳에서 뵈려 했는데... 자리를 벗어나면 또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것 같아 여기서 계속 기다렸습니다."

"......"

그건 맞지.

이곳에 주지사가 없었으면 미국도 군단장의 절차를 밟았을 것이다.

그는 모여드는 주민들 때문에 우리가 불편할 것을 고려했는지 경호인력을 미리 배치해 놓았다. 그 사이로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밀어 우리의 모습을 찍고 있었다.

난감했다.

이들이 좋아하는 건 이해하겠는데, 빨리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런 경험이 없어 얼굴이 낯 뜨거웠다.

"그럼 이제 복귀해도 되겠지?"

"아... 비행 편은 퍼스트 클래스로 두 자리 예약해 두었습니다. 근데... 그게..."

"뭐,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 정산은 끝난 것 같은데. 깔끔한 거래였으니 감사하단 말은 필요 없..."

"아니, 그... 게 아니라. 아! 저기 이제 도착하셨네요."

주지사가 어물쩍 대답하며,

손가락으로 한 쪽을 가리켰다.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양옆에는 황금빛 S급 뱃지를 건 헌터 두 명이 그를 경호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들이 우르르 몰렸다.

"하아... 뭔데 또."

익숙한 얼굴.

TV에서 가끔씩 봤었던 미합중국 대통령이었다.

골이 아파졌다.

대통령까지 찾아오다니.

워싱턴에서 이곳까지 오려면 시간 꽤나 걸렸을 텐데... 그는 우리 앞으로 다가오더니 고개를 90도로 숙였다. 동시에 카메라의 플래시가 터지고 사람들이 정숙하며 박수치기 시작했다.

"미 대통령 제리 브라운이라고 합니다. 미국을 구해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원하는 만큼의 보수를 받았으니 감사할 필요 없습니다."

"아니오, 아니오. 미스터 강, 미스 선 그대들은 우리 미국의 은인입니다.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식사를 대접하고 싶습니다."

"아닙니다. 자국으로 복귀해야 해서요. 여기서 이러실 게 아니라, LA에 가셔서 희생자들을 먼저 돌보시길 바랍니다."

버나드 스미스라면 모를까,

미국 대통령이랑 식사를 할 이유는 없다.

내키지도 않았고.

"알겠습니다. 미스터 강. 저는 새로운 영웅에게 걸맞는 대우를 해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다음 번 방문 시 꼭 연락 주십시오. 우리 미국은 앞으로도 영원히 대한민국의 든든한 우호국으로 남을 것입니다!"

대통령의 정중한 인사를 가벼운 목례로 답한 후 선소연과 출국 심사장을 통과했다. 사고가 사고인지라 한산할 줄 알았던 내부도 마찬가지로 시끄러웠다.

"여기도 난리네요."

선소연이 혀를 내둘렀다.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하나 둘 붙기 시작했다.

"저... 저기 미스터 강! 사진 한 장만!"

"와, 미스 선! 너무 예뻐요!"

빌어먹을...

***

[ 이륙 30분 전, OZ832 항공기를 이용하실 고객분들은 서둘러 탑승해 주시기 바랍니다. ]

결국 우리는 이륙 30분 전까지 도망 다닐 수밖에 없었다. 유명해진다는 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깨달았다. 힘을 숨길 생각은 없었는데, 밝히니 생각보다 부작용이 컸다.

"피로해... 죽겠어."

"그러게요. 이런 게 바로 스타의 삶일까요?"

"그럼 스타 안 할래."

나와 선소연은 구석에서 딱 마지막 시간대에 맞추어 들어가려고 숨어있었다.

"근데 저기도 예사롭지 않네요."

"....."

우리가 저 항공기를 탄다는 사실이 알려졌는지 스튜어디스 전원이 나와 일렬로 정렬하고 있었고, 심지어 기장까지 밖으로 나와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비장했다.

눈동자를 굴리는 게 마치 먹잇감을 찾는 표범을 보는 듯했다. 그 모습이 군단장보다 무섭다.

"원래... 비행기 탈 때 저런 거야?"

"그럴 리가요. 우리 저거 타도되는 거 맞아요?"

"......"

나는 머뭇거리며 생각해봤다.

저 비행기를 탔을 때의 미래가 그려졌다.

비행시간은 무려 10시간.

그동안 내부 여행객들과 스튜어디스들에게 시달릴 것이다.

또 국내에 도착해도 마찬가지겠지.

수많은 기자들과 국내 사람들이 공항부터 기다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대로는 안되겠어."

"그럼 어떡하시려구요."

"그냥 바다로 건너가자."

"네에?"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차라리 조금 피곤하더라도 태평양을 건너는 게 낫지. 아무래도 당분간은 사람들을 피해 숨어 다녀야겠다. 뜨거워진 냄비가 식을 때까지.

"너도 능력 연습할 겸. 태평양 한 번 건너보자. 나도 건너면서 이번에 발전한 각성 능력 좀 실험해 보게."

"으음, 힘들 것 같은데..."

"우리 신체 능력에 죽기야 하겠어?"

"좋아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뭔데."

"간식 많이 사들고 가야해요. 이게 정신력 소모가 엄청나거든요. 가다가 당 떨어지면 큰일 날 수도 있어요."

"콜. 일단 이 지옥 같은 곳을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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