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육군대위, 귀환하다-40화 (40/128)

군단의 침공. (2)

리노-타호 국제공항.

많은 여행객들이 붐비는 푸드코트에 도착했다.

"힘썼더니 배고파요. 간식거리 좀 싸갈까요?"

"힘은 내가 썼던 것 같은데..."

"와- 무슨 그런 섭한 소리를. 치료하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요? 오빠도 해봐서 알잖아요."

맞는 말이다.

육체를 쓰는 것보다 각성 능력을 쓰는 것이 훨씬 힘들다. 바다를 건너도, 잠을 자지 않아도 짱짱했던 체력에 비해 조그마한 불을 지피는 데는 엄청난 정신력이 소모된다.

시간 날 때마다 그녀의 도움으로 각성 능력을 어떻게든 사용해 보려고 노력했었다. 물론 조금의 진전은 있었으나, 물줄기로 축제를 벌이는 그녀와의 차이는 도저히 메꿔지지 않았다.

"너와 난 다르지."

"그래도요..."

"그래그래. 얼른 사서 들어가자."

출국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는 간단한 패스트푸드를 구매한 후 심사장으로 이동했다.

최근 각 공항에는 헌터 전용 심사장을 도입했다. S급 헌터가 늘어남에 따라 보안검사를 면제받는 이들 때문이었다.

구석진 곳에 위치한 심사장.

헌터의 수가 적다 보니 한산할 수밖에 없다.

"안녕하십니까. 여권 있으신가요?"

"여기 있습니다."

홀로 서있는 보안요원이 친절한 표정으로 안내를 도왔다. 우린 아직 SS급 뱃지를 지급받지 못했기 때문에 S급 뱃지를 내밀었다. 그러자 그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저... 죄송합니다. 헌터님. 상부 지침으로 S급 헌터들에 대한 출국금지령이 떨어졌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관리국에서 내린 판단이라 저도 자세한 건..."

"언제 내려진 명령입니까?"

"그... 그게 10분 전에..."

내 목소리가 싸늘해지자 겁에 질린 보안요원이 말을 더듬었다. 뻔한 스토리에 화가 난다기보단 한숨이 나왔다.

하필 지금 S급 헌터들의 출국을 금지시킨다? 의도는 뻔했다. 우리의 복귀를 막는 것이겠지.

피터 잭슨이 분명 보고했을 텐데도 이렇게 나온다는 건 정말 척을 지겠다는 소리. 내 번역을 들은 선소연도 화를 냈다.

"이것들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요."

"아무래도 담판을 지어야겠어."

국제 문제로 번지는 게 귀찮아 자중하고 있었는데 놈들이 내 성질을 긁었다.

분명히 경고했다.

내 복귀를 막는 순간 미국은 멸망을 각오해야 할 거라고. 문제는 백악관과 헌터 관리국이 워싱턴에 있다는 사실. 여기서 뛰어간다 해도 하루가 걸린다.

물론 미국이 막는다고 한국으로 복귀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쿠바에서 바다를 건넜던 것처럼 선소연의 능력을 사용해 태평양을 건너는 방법이 있지만 거리에 부담이 되기도 하고, 혹여 건넌다 해도 미국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 역시 담판을 짓는 게 최선이다

"가자, 워싱턴으로."

***

우리가 공항을 나가려는 찰나,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항 대기실.

커다랗게 달려있는 TV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몰려있었다.

"저게 뭐예요?"

"긴급 속보야. 전국 생중계 같은데?"

"무슨 일이라도 난 걸까요?"

다가가 화면을 보자 여태껏 보지 못했던 거대한 균열이 허공을 찢는 모습이 보였다.

[ 속보입니다! 이곳은 미국 LA 상공. 정체 모를 거대 균열이 나타났습니다. 화면을 보시죠. 오... 마이 갓. 저건... ]

훈련된 아나운서도 당황스럽게 만드는 기괴한 장면. 말도 안 되는 크기의 공룡 대가리가 균열을 찢으며 튀어나오고 있었다.

두두두-

힘의 여파가 이곳 네바다 주까지 오는지 건물이 조금씩 흔들렸다. 등장만으로 지진을 일으키는 압도적인 힘.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저 크기 면..."

"군단장 급이겠네요."

선소연이 내 생각을 빠르게 읽어주었다.

멍하니 화면을 보던 사람들은 건물이 흔들리자 기겁하며 주저앉았다. 공항 안내방송음은 모든 항공편이 취소되었다며 인원들을 대피소로 인도했다. 건물이 붕괴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리라.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울음소리가 뒤섞였다. 화면 속 아나운서도 급하게 발음하고 있었다.

[ 다... 당황하지 마십시오. 미국 전 헌터가 LA 주로 집결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빠르게 도시 방공호로 대피해주시길 바라며... ]

화면 속 LA 건물들이 지진의 여파로 붕괴하고 있었다. 아직 몸 전체가 나오지도 않았음에도 놈의 크기가 도시를 가득 채울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소집된 헌터들이 공격하는 모습이 보였으나 놈의 육체에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는다.

곧이어 또 다른 소식이 도착했다.

[ 속보입니다! 전 세계 곳곳에 A급을 초과하는 균열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크기도 만만치 않으며... ]

균열이 나타나면 1주 후에 괴물이 튀어나오는 게 정석이었다. 그러나 이놈들은 그 상식을 깨부쉈다. 균열 등장과 동시에 커다란 몸체를 강제로 이끌어내고 있었다. 빠른 화면 전환을 통해 각국에 생겨난 수백 개의 균열들을 하나하나 보여주기 시작했다.

"쟤들은... 그 붉은 공룡들이네요?"

"놈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어."

"그럼, 어떡하죠?"

초반에 우리를 공포에 떨게 했었던 커다란 익룡과 공룡들 또한 모습을 드러냈다.

"화면을 보아하니 군단장급은 한 명만 온 것 같아. 똑똑하게 한곳으로 침공하지 않고, 세계 곳곳을 공략하는군. 이러면 막기 힘들어지는데..."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빨라요."

"한가롭게 휴식이나 할 때가 아니었어."

"......"

우리가 균열에서 나온 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았다. 제대로 준비할 시간도 없이 맞이한 놈들의 침공.

순간, 균열에서 만났던 군단장이 떠올랐다.

그 골렘은 분명 총사령관의 존재를 언급했다. 근데 왜 한 마리의 군단장만 침공했을까. 머리가 복잡해졌다.

"저... 저기 봐요! 한국에도 한 마리 나온 것 같아요. 빨리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저긴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태준이나 현동이가 생각대로만 각성해줬다면 충분히 버틸 수 있어."

"그러겠죠...?"

피터 잭슨을 통해 확인했다.

A급 결정체 4개 이상 먹은 인원들 하나하나의 기운이 놈들과 필적했으니, 둘이 협공한다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저놈이었다.

마치 브라키오 사우루스를 보는 듯한 커다란 몸체. 어느새 머리를 다 빼놓고 긴 목을 드러내고 있었다.

[ 이어지는 속보입니다! 놀랍게도 괴물과 헌터들이 의사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본인을 불의 종족 제 5군단장이라 표현한 괴물은 물의 종족은 어디 가고 벌레들만 있는 거냐며 무차별적인 공격을... 파즈즉... ]

카메라가 깨진듯했다.

군단장이 파리처럼 날아다니는 핼리 캠이 거슬렸는지 불을 쏜 모양이었다. 아나운서는 잠깐 당황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 불의 종족이라 했습니다. 이... 이것은 외계의 침공입니다!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는 것일까요. 자랑스러웠던 미국 헌터들도 맥을 못 추고 쓰러져 나가고 있습니다... ]

절망에 가득 찬 목소리.

공항 주변을 둘러보았다.

신을 찾는 사람들.

아직도 도망치는 사람들.

주저앉아 울부짖는 사람들.

아나운서의 말 따라 마치 세기의 종말을 맞이한 듯했다. 내가 눈을 감자 선소연이 내 손목을 부드럽게 감쌌다.

"왜."

"저 군단장, 잡으러 가야겠죠?"

"그래야지. 그때 그 골렘처럼 말이 통하는 놈이야. 분명 알아낼 것도 많을 거다."

"그냥 잡아주시려고요?"

"아니, 그럴 순 없지."

"동감이에요. 바로 도와준다 했으면 말리려고 했어요."

"생각보다 담판을 빨리 지을 수 있겠어."

아직 미국에게 받을 대가가 남아있었다.

미국의 헌터들이 죽어나가는 것은 안타깝다. 그러나 그들을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사명의식 따위는 없었다. 각성 능력이 온전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군단장을 만나는 것 자체가 나한테 큰 위협이기도 하니까.

"그럼 이제 여기서 뭐 하죠?"

"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누가 여기로 와요? 군단장이요?"

"아니, 피터 잭슨한테 리노 공항으로 간다고 말해놨잖아. 그가 보고 했겠지. 미국도 생각이 있으면 저 난폭한 놈을 막을 사람이 우리밖에 없단 걸 알 거야. 혹여나 모르더라도 저 상황에 기댈 사람이라곤 우리밖에 없을 테고."

"아... 그러겠네요."

놈들은 분명히 나를 찾을 것이다.

애써 워싱턴까지 갈 필요가 없게 되었다.

급한 건 미국이지 내가 아니니까.

옆을 보자 선소연이 어느새 복구된 화면에 시선을 계속 고정하고 있었다. 죽어나가는 헌터들과 다급한 앵커의 눈물 젖은 목소리.

그녀는 괜찮을까?

눈빛에 조금의 흔들림도 없다.

그래... 그럼 됐다.

***

역시 예상대로였다.

헐레벌떡 달려오는 네바다 주지사의 얼굴이 보였다.

"허... 헉, 헉 미스터 강."

"불편한 얼굴 자주 보는군. 산도발. 어디 목은 괜찮나?"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품위 있는 노신사의 모습을 했던 그는 이제 발바닥이라도 핥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내 앞에서 경호원들은 쓸모없다는 걸 느꼈는지 혼자 찾아왔다.

"괘... 괜찮습니다."

"그래. 내 경고를 귓등으로 흘러듣더니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는 뭐지?"

"죄송합니다. 잭슨에게 얘기 들었지만, 상부에서 혼선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정합니다. 그대의 능력을 잘못 판단했습니다."

"그럼 이제 복귀해도 되는 건가?"

"상부에서도 지침이 바뀌었습니다. 그... 대에게 어떻게든 도움을 요청하라는...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저 괴물을 막아주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주지사가 무릎을 꿇었다.

"이제 좀 대화의 기본자세가 되어있는 것 같군."

"네... 네... 미국이 사람을 몰라뵙..."

"됐고, 미국이 내 복귀를 막은 순간부터 내가 도와줄 이유는 사라졌다. 멸망하던 말던 내 알 바 아니지."

"제... 제발..."

"근데 멍청한 관리국 때문에 죄 없는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건 나도 안타까워."

"맞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좋아, 그럼 제대로 대화를 해보지."

어차피 군단장은 내가 막을 계획이었다.

발전 없는 각성 능력.

나도 남들처럼 결정체를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먹지 않고 버틴 것도, 그 다섯 개라는 한계치 때문. 드디어, 내 능력의 실마리를 풀어줄 군단장이 나왔다.

아마, 미국이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평화롭게 해결했을 것이다. 납득이 되게 권리를 요구했으면 들어줬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물욕 같은 것은 없었으니까.

그러나 놈들이 먼저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내 표정이 아직도 굳어있는 걸 본 노신사는 어울리지 않게 계속 굽실거렸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도와만 주신다면 미국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대우를 해드리겠습니다."

"아니, 저 괴물에 대한 보수는 받지 않겠다. 놈의 결정체의 권한만 인정한다면..."

"헉,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원래 헌터가 잡은 괴물의 결정체는 헌터 소유다. 놈들은 과한 욕심으로 그 룰을 어겼을 뿐이고.

"공평한 거래 이전에 맺었던 앙금은 풀고 가야겠지?"

"그렇습니다. 뭐든 맞춰드리겠습니다."

"먼저 미국이 나에게 불합리하게 요구했던 결정체들. 그만큼을 사과에 대한 보상으로 받아야겠어. 원래 전부 받아내려 했지만 반성하는 모습을 참작하여 A, B급 결정체만 받아내도록 하지. 소연아 그럼 총 몇 개지?"

선소연이 가방 안에서 종이를 꺼내 삐뚤삐뚤 써져있는 주유라의 글씨체를 읽었다.

"음... A급 결정체 38개, B급 결정체 252개네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나에게 대우했던 대로 되갚아준다.

내가 정확한 수량을 일러주자 주지사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 그 정도나..."

"거기에 내 옷이 찢어진 대가 10억 달러."

"......"

"불필요한 정신적 피해에 대한 추가금 10억 달러."

"무... 무슨?"

"S급 헌터 10명 치료비 10억 달러."

"잠... 잠깐."

"음... 거기에 우리의 즐거운 휴식시간을 방해한 대가..."

난 멀뚱히 앉아있는 선소연에게 물었다.

"소연아. 우리의 휴가를 가치로 매기면 얼마쯤 하려나?"

"글쎄요. 그걸 가치로 측정할 수가 있을까요?"

그렇지.

우리의 몸값이 얼만데.

앞으로 휴식시간이 얼마나 있을지도 모르고.

"그렇다는군. 그럼 깔끔하게 100억 달러로 하지. 해서 결정체 290개와 총 금액 130억 달라가 입금되는 순간 움직이겠다."

"그...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주지사는 굴욕감을 참기 힘들었는지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말도 안 된다고? 그게 당신들이 했던 행동이야. 당장 저 화면을 봐라."

TV에는 어느새 커다란 몸체를 드러낸 군단장이 건물을 부수고 불을 뿜으며 헌터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도의적 책임이 있다면 저들을 구하기 위해 그 정도는 지불해줄 수 있지 않은가?"

"......"

본인이 불과 3시간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는지 주지사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상... 상부에 연락해보고 오겠습니다."

"빠른 결정을 내리는 것이 좋을 거야. 내 수중에 금액이 떨어지기 전까지 단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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