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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39화 (39/128)

군단의 침공. (1)

앞에 서 있는 열 명의 남자.

그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서자 다들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났다. 아무래도 그가 이 무리의 리더인듯했다. 탄탄한 육체와 강인한 인상의 사내.

"안녕하십니까. 미스터 강. 나 피터 잭슨이오. 그대의 팬이기도 합니다."

"호기롭게 막아서 놓곤 통성명이라니, 피차 시간 낭비하지 말고 덤비려면 덤벼라."

가려는 자와 막아서는 자 사이에 무슨 말이 필요하랴. 난 관절과 근육을 풀어주며 그에게 일침을 가했다.

한창 S급으로 인정받고 자신감에 가득 차있을 텐데 더 큰 세계가 있다는 걸 보여줄 필요도 있었다.

사실 궁금하기도 했다.

최강수에게 말로만 들었던 S급 헌터들의 수준이 어떻게 되는지. 이들을 상대해보면 답이 나오리라.

내가 공격하려는 낌새를 보이자,

그가 급하게 두 손을 앞으로 들었다.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뭐지?"

"당신이 가려던 걸 막은 건 단지 오해를 풀고 싶었을 뿐이오. 다들 어서 뒤로 물러나라!"

"썰!"

그의 외침에 나머지 헌터들은 당연하다는 듯 뒤로 물러섰다. 눈빛에 리더에 대한 존경심이 담겨있다.

흥미로웠다.

헌터들을 주지사가 통제하는 게 아니었나? 그리고 같은 등급의 헌터들을 저렇게 자연스럽게 다루다니?

피터 잭슨의 갑작스런 돌발행동.

뭐 하는 행동이냐 물어보려는 찰나 멀뚱히 서 있던 주지사가 선수쳤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피터 잭슨. 당장 저들을 제압해라!"

"아가리 닥치시오. 산도발."

"뭐... 뭐라? 지금 감히 관리국의 뜻을 어기겠다는 건가?"

"미스터 강이 있는 자리라길래 온 거지. 이런 불편한 자리인 줄 알았으면 애초에 응하지도 않았을 거요."

"억지 부리지 마라! 왜. 갑자기 저들이랑 싸우려니 두렵기라도 한 것인가?"

"길가는 어린애를 붙잡고 물어보시오. 누가 억지를 부리는 건지. 미국이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소수를 핍박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전 세계가 비웃을 것이오."

주지사가 흥분해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자 잭슨이 눈짓을 했고, 헌터들 중 한 명이 그의 목을 쳐 기절시켰다. 깔끔한 솜씨였다.

선소연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한 듯 날 바라보았다.

"쟤들은 또 왜 저래요?"

"몰라. 이제는 또 갑자기 보내주겠다는 것 같은데..."

"우와, 생존 본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있나 보죠?"

"일단 기다려보자."

잠깐의 소란이 끝나고,

피터 잭슨이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대신해서 사과드리겠습니다."

"당신이 사과한다고 해서 미국의 입장이 바뀌는 건 아닐 텐데."

"알고 있습니다. 다만 미국의 결정이 미국 시민 전체의 결정이 아니란 것만 알아주십시오."

"그렇다 해도 미국은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미국은 분명 가해자였다.

피터 잭슨이 아니었다면 분명히 공격받았을 것이고, 내가 힘이 없었다면 부당한 처우를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까.

눈앞의 애송이들을 죽이거나 병신으로 만드는 것?

이들은 잘못이 없다.

국가가 잘못한 것은 의사결정을 내린 지도층들이나 국가 자체가 책임을 져야지 일개 시민들을 상대로 복수할 만큼 치졸하지는 않았다.

물론 주제도 모르고 덤볐으면 반쯤 병신으로 만들려고 했었다. 추후에 큰 전력이 될 수 있다 해도, 한 달에 터져 나온 S급 헌터만 100명이라지 않는가. 선소연의 손짓 한방이면 처리될 애송이 10명쯤이야 없어도 그만이었다. 피터 잭슨의 선택이 이들의 운명을 바꿨다.

"물론입니다. 저... 방금 사건과 별개로 개인적인 부탁이 있습니다."

"뭔데."

"A급 결정체 다섯 개를 먹은 이후, 아직까지 제 상대가 되는 헌터를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미스터 강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습니다. 가능하다면 한 수 배워보고 싶습니다."

대결 요청이라.

나쁘지 않았다.

A급 결정체 다섯 개면, 현 인류가 성장할 수 있는 최대치로 각성한 사내라는 것. 유현동과 문태준을 만나기 전에 한번 확인해보고 싶었다.

"여기서?"

"자리를 안내해드리겠습니다."

***

안내를 받아 널찍한 공터로 이동했다.

주위 이목을 신경 써 보는 눈이 없는 공간으로 골랐나 보다.

나와 그는 서로 열 발짝씩 물러나 대치했다. 피터 잭슨은 긴 장검을 사용하는 듯했다. 살짝 무릎을 굽히는 동시에 날을 천천히 내 방향으로 겨냥하며 말했다.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일 대 일이라.

비행기 출항 시간까지 3시간...

그리 넉넉하진 않았다.

시간 내에 그들 전부의 실력을 보고 싶었다.

"바쁘니까 전부 덤비는 거로 하지."

피터 잭슨은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미스터 강. 그대를 존경한다고는 하지만 제가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군."

"우리 팀은 인류 최강이라 자부합니다. 아무리 당신이라 해도..."

콰앙-

더 이상 말로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다리를 살짝 박차 놈에게 다가갔고,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려 땅에 매쳤다. 걸린 시간은 대략 0.1초. 죽지 않을 정도로 힘 조절했다.

"커... 커헉."

"더 이상 날 자극하지 마라. 내가 너희들을 살려두는 이유는 저자세로 나왔기 때문이었지, 반감이 줄어들어서가 아니다. 너희가 약자를 핍박했던 쓰레기 같은 국가의 국민이란 건 변함없어."

"......"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전력을 다해서 상대해라. 알겠나?"

입에서 피를 뿜어낸 그가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땅은 갈라져 있고, 등이 반쯤 박혀있었다. 나머지 헌터들도 놀란 듯 경직되어 있었다.

"말... 말도 안 돼."

"대장이 한방에?"

조금 과하게 힘을 썼다.

격차를 보여줘야 진심을 다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난 옆에서 흥미롭게 구경하는 선소연에게 말했다.

"소연아. 치료해줘."

"네에."

그녀가 만든 물줄기가 피터 잭슨을 덮었다.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고 뼈가 붙었다. 말도 안 되는 치료 능력에 그의 입이 떡 벌어졌다.

"What... what the..."

"이봐요. 브레드 피트 닮은 아저씨. 뭐라시는 진 잘 모르겠지만 우리 오빠 화나게 하지 말아요."

"What is she saying to me?"

상태가 호전되자 난 그에게 손을 뻗었다.

얼빠진 표정이었던 피터 잭슨은 금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내 손을 마주 잡고 일어났다. 생각보다 적응력이 빨랐다.

"어때. 제대로 할 생각이 들었나?"

"그렇습니다. 제가 우물 안 개구리였단 걸 느꼈습니다. 사죄의 의미로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그와 팀원들은 내 전방 10m 앞에 일렬로 배치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목이 바싹 마를 정도로 긴장하고 있는 표정들. 마음에 들었다.

피터 잭슨이 대원들을 향해 경고했다.

"아까 봤지? 경거망동하지 마라. 상대는 괴물이다."

"알고 있습니다. 대장 어떻게 할까요."

그가 수신호를 보내며 명령했다.

"Type B 포지션."

"라져! Type B!"

그의 말에 복창한 대원들이 진형을 펼쳤다. 난 일단 그들의 전투 방식을 지켜보기로 했다.

짧은 침묵 후,

그가 외쳤다.

"제임스부터!"

"라져!"

휘이이잉-

순간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 능력인가? 싶을 찰나 투명한 표창 세 개가 나비 날개처럼 부드럽게 날라왔다. 물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바람 능력에 물의 능력을 조합한 것 같았다.

방향은 좌, 우, 뒤.

머리통에 꽂히지 않으려면 앞으로 피하란 건가? 잡아서 걷어낼 수 있었지만 일단 그들의 의도대로 따라줬다. 한 발짝 걷자 칼날이 아슬아슬하게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였다.

콰르르릉-

내가 앞으로 오길 기다렸다는 듯 땅이 꺼졌고, 갑작스레 중심을 잃고 떨어졌다. 흙을 다루는 능력자가 있는 것 같았다.

"호오, 제법이군..."

깊이는 20m 정도.

제법 깊었다.

나는 허공에서 중심을 잡은 후,

옆벽을 가볍게 박차 위로 튀어 올랐다.

순간 공간이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피부가 차갑진 않은데 입김이 강하게 흘렀으니까. 온도를 낮춰 몸을 둔화시키는 능력인가 보다.

동시에 공기에 은은히 이는 화약 냄새.

콰아아앙-

강력한 폭발과 함께 땅에서 솟아 나온 나무뿌리가 내 몸을 감싸 묶었다.

그들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정신없이 날라오는 각기 각종의 공격들.

피할까? 생각하다 그냥 맞아보기로 했다.

콰과가강-

큰 타격은 없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인정하고 있었다.

대충 보니 이들 하나하나의 능력과 파워가 균열에 있었던 익룡이나 공룡들과 비슷했다.

또, 이들의 합이 괜찮았다.

하나하나 튀는 공격 없이 물 흐르듯 이어진다.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없으면 나올 수 없는 팀워크였다.

어느새 옷이 다 찢어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선소연이 감탄했다.

"와- 연계 괜찮은데요?"

"그러게, 우리도 이런 식으로 훈련시켜야겠어."

"근데, 옷 다 찢어졌어요. 그거 비싼 건데..."

"또 사면 돼."

후드득-

공격이 끝나자, 묶여있던 나무뿌리를 뜯어내고 땅에 가볍게 착지했다. 몸에 상처 하나 없는 걸 본 그들의 표정이 구겨졌다.

"잘 구경했어. 나름 쓸만하더군."

"......"

피터 잭슨 아랫입술을 잘게 씹었다.

"왜 제대로 상대하시지 않는 겁니까!"

"이 정도 했으면 답이 보이지 않나? 왜, 더 해볼 생각인가?"

"......"

그는 말없이 수신호를 내렸다.

다시 내 주변을 감싼 대원들.

공격에 직접 맞아주기까지 했고 타격이 없는 것을 확인했음에도 쓸데없는 호승심을 부렸다.

간혹 이런 자들이 있다.

압도적으로 꺾어주지 않으면 끝없이 도전하는 자들. 나나 구태경 역시 그런 과였고, 그런 성향은 빠른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

난 선소연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힘 조절하기 귀찮은데..."

"제가 치료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도 너무 심하게 하진 마시구요."

이제 알아볼 건 다 알아봤다.

빠르게 끝낸다.

피터 잭슨의 명령과 함께,

또다시 날라오는 표창.

저들의 공격을 무시하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눈에 힘을 집중하니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느리게 이동하는 표창과 연계 공격을 준비하는 헌터들.

우선 앞에 있는 두 놈의 배를 살짝 때렸다. 너무 세게 때리면 몸이 터져나갈 것이다. 가벼운 충격과 함께 놈들의 입가가 비틀어지는 걸 느꼈다.

휴- 다행이군.

바로 옆으로 내달려 양손으로 놈들의 목을 한 대씩 살짝 쳐줬다. 부러지지 않게.

원을 그리며 한 바퀴를 돌며 공평하게 한 대씩 두들겨준 후 마지막 피터 잭슨 앞에 섰다. 수신호로 명령을 내리고 있었는지 아직도 팔이 천천히 뻗어지고 있었다. 본인의 부하들이 이미 한 대씩 처맞은 것도 모르고.

난 그의 목을 부여잡고 다리를 살짝 걷어차 땅으로 메친 후 눈에 감각을 풀었다. 다시 정상적인 시간으로 돌아간다.

"커... 커억? 무... 무슨?"

"살짝 때리는 것도 힘들군. 이제 만족하나?"

"......"

아직도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듯 어벙한 표정을 짓는 피터 잭슨. 목을 풀어주자 급하게 주변을 돌아다본다. 배를 부여잡고 피를 토하고 있는 두 놈과 기절한 채 쓰러져 있는 일곱 명의 대원들을 확인했는지 눈이 부릅떠졌다.

"마... 말도 안 돼."

"소연이 치료하면 금방 회복할 수 있을 거다."

"......"

선소연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물줄기로 대원들을 감싸고 있었다.

장내에 흐르는 묘한 정적.

그러나 침묵도 잠시, 넋 잃은 얼굴로 앉아있던 그가 마침내 고개를 내렸다.

"... 인정합니다. 완벽하게 졌습니다."

"관리국엔 따로 전해라. 곧 대가를 받으러 가겠다고. 그리고 경고하지. 한 번 더 내 복귀를 막으려 한다면, 그때는 미국의 멸망을 각오해야 할 거야."

"아... 알겠습니다. 바로 떠나시는 겁니까?"

난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항 면세점을 이용하려면 빨리 가야 한다. 아직 첫 해외여행의 쇼핑을 마무리하지 못했으니까. 어느새 치료를 완료한 모양인지 가방에서 재킷 하나를 꺼내 들은 선소연이 다가왔다.

"이거라도 걸치세요."

"상태들은 괜찮아?"

"네. 아주 멋있는 힘 조절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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