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육군대위, 귀환하다-34화 (34/128)

금지의 땅. (4)

"말도 안 돼요!"

"그 녀석들 옆에 꼭 붙어 있기만 하면 돼."

"회장님도 너무 과잉 믿음이라구요! 아무리 S급 헌터라지만 거긴 악명 높은 금지의 땅이에요!"

"걱정하지 마. 그 녀석들 나 같은 거 수천 명이 덤벼도 옷깃 하나 못 건들 정도로 강하니까."

"... 농담하지 마시구요."

"허어, 유라야. 이건 기회야. 한국 연합이 세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 내가 아무렴 너를 위험한 곳에 보내겠느냐. 다 확신이 있으니까 보내는 거야."

나는 회장님이 아무리 말씀하셔도 반신반의했다.

말이 안 됐다.

최강수는 연합이 인정하는 최강의 남자다. 비록 언론을 통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가 지도해준 A급 헌터만 몇 명인가. 일이 바빠 균열 사냥이 뜸해져 B급 헌터에서 승급은 못 했지만, 실력만큼은 분명 S급 헌터 못지않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수천 명이 있어도 감당하지 못할 자라고? 과장이 심했다.

아무리 그 남자가 싸이클롭스 베어를 한 방에 잡을 수 있다 해도, 금지의 땅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왜 전 세계 헌터들이 그 땅을 포기했겠는가. 수많은 A급 괴물들이 몰려다니고 길가는 족족 균열들이 발견되는 곳.

그런 곳을 단둘이서 해결하러 간다니.

그건 욕심이자 오만이다.

"D급 헌터 다섯 명, 지원으로 붙여줄게."

"네? 거길 가는데 D급 헌터를 데리고 가라고요? 그것도 고작 다섯 명?"

"응. 속도에 특화된 놈들로 추려놨어. 결정체 수거하는 데 도움 될 거 같아서."

"회장님. 솔직히 말해보세요. 제가 마음에 안 드셔서 그러시는 거죠? 이거 좌천 보내시는 거예요? 아니면 살인 청부라도 받으셨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믿을 사람이 너밖에 없어서 그래."

"......"

난 한숨을 내쉬었다.

굳이 많은 연합원 들을 내버려 두고 나를 보내는 이유가 있긴 했다.

연합 총무로써, 누구보다 빠르게 결정체의 등급을 분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 많은 결정체를 다뤄야 하기에 신뢰가 가는 사람을 뽑아야 했겠지. 블랙마켓을 통해 수많은 결정체를 거래하면서도 단 한 번도 구멍 낸 적이 없었으니까.

결국 내가 최선의 적임자란 얘긴데...

"유라야. 부탁 좀 하마. 응?"

"후우- 알겠어요."

"하하, 잘 생각했어."

난 속없이 웃는 회장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명령이 아니라 부탁이라 하셨죠?"

"... 그렇지."

"그럼 제 부탁도 하나 들어주셔야 해요."

"어떤 부탁?"

"그건 제가 무사히 복귀했을 때 말해드릴게요."

***

처음 비행기에서 그 남자가 파이어 드래곤 두 마리를 한 번에 잡았을 땐 다시 보긴 했다.

아니 엄청 놀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긴 것도 맞다.

그래도 '금지의 땅'을 한 달 만에 처리하는 것은 무리라 생각했다. 최소한의 안전은 보장해 줄 수 있겠구나 생각했을 뿐.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반신반의했던 마음은 완벽히 사라졌다.

S급 헌터?

이건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저 두 남녀는 그런 수치로 등급으로 매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회장님이 과장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줄여 말했다.

금지의 땅에 착륙하자마자 두 사람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채 일 분이 지나지 않아 결정체 20개를 들고 나타났다.

세상에.

일 분 만에 결정체 20개라니. 이게 전부 F급이라 가정해도 최소 400억이다.

"공항은 대충 정리한 것 같으니 다음 지역으로 넘어갑시다."

"빨리빨리 가요. 신나요."

우리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일분 만에 이 넓은 공항을 다 정리했다고? 그러면서 숨 하나 껄떡이지 않는다. 오히려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는 지도를 펼쳐 경로부터 짜기 시작했다. 도시 '관타나모'부터, 쿠바의 수도였던 '아바나'까지 섬 전체를 돌 계획이라 했다.

그는 마치 숙련된 지휘자처럼 우리에게 각자의 업무를 지정해줬다.

기장과 D급 헌터 두 명은 비행기를 지킨다. 나와 나머지 세 명의 수집꾼들은 그들을 따라가며 결정체를 모은다.

남자가 괴물을 사냥하기로 했고, 여자가 우리를 지키면서 결정체를 끌어다 주기로 했다.

처음엔 그게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몰랐다. 그냥 따라가기 바빴다.

머지않아 괴물들을 만나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비행기에서 장담했던 대로 놈들은 우리를 건들 수조차 없었다. 신기하다 못해 경악스러웠다.

처음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자가 남자한테 돌멩이를 던졌다.

그리고 나서는 남자가 돌변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보이는 괴물들을 다 주먹으로 터트렸다. 홍길동이 살아돌아온다고 해도 저렇게 빠르진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균열을 발견하면 잽싸게 들어갔다가 대략 10초도 안 돼서 다시 나온다. 웃긴 건 그게 무슨 등급 균열인지 파악도 안 하고 입장한다는 것. 분명 A급 균열도 있었을 텐데, 그에겐 무조건 10초 컷이었다. 그래. 이건 사냥이 아니라 학살이었다.

여자도 대단했다.

우리를 지키며 가만히 서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각성 능력을 다루고 있었다. 하늘에 수많은 물방울들이 모여 떨어지는데 처음엔 비가 내리는 줄 알았다.

그런데 비가 아니라 그 물방울들 사이에 결정체가 하나씩 담겨져 있었다. 그녀는 여태껏 남자가 사냥했던 결정체들을 각성 능력으로 잡아놨던 것이었다. 우리는 보이지도 않는데, 그녀는 저 남자의 움직임이 다 보이나 보다.

그녀의 환한 웃음.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결정체의 비.

마치 가을에 추수한 황금빛 곡식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는 농부를 보는 것만 같았다.

가끔 가까이 오는 괴물들도 있었지만, 그녀의 간단한 투척 한방에 결정체가 되어 사라졌다. 그중에는 놀랍게도 파이어 드래곤도 있었고, 사이클롭스 베어... 도 있었던 것 같다.

"이... 이건 미쳤어."

한 도시를 끝내는 데 하루면 충분했다.

그들의 의욕은 대단했다.

남자는 작전을 바꿨다.

생각보다 결정체가 많아져서 들고 다니기 힘들어진 것이다.

결국 그의 지시에 따라, 나는 비행기 앞에서 기장들과 결정체를 분류하는 임무를 맡았다. 나머지 D급 헌터들은 그자가 정해준 도시 포인트에 쌓여진 결정체들을 비행기까지 나르는 역할이었다.

하루하루 흐를 때마다 눈과 입술에 수분이 말라갔다. 측정기를 이용해 가져온 결정체를 A~F급으로 분류하는 일. 분류하고 분류해도 결정체는 계속 쌓여만 갔다.

겨우 끝내놓고 지쳐서 한숨 자고 나면 또 결정체들이 작은 모래산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은 결정체 지옥이었다.

"이... 이젠 못하겠어."

"헉, 헉, 너무 힘들어요."

대원들도 지쳐가기 시작했다.

난 앉아서 분류하는 게 다지만, 얘들은 하루 종일 도시와 공항을 왕복하고 있었다. 갈수록 베이스캠프에서 멀어져 가는 도시에 피로가 누적될 수밖에 없었다.

"교대로 휴식해 가면서 해. 그래도 잠은 자야할 거 아니야."

"와, 주 총무님 저분들 사람도 아니에요. 처음엔 그래도 비행기로 돌아와 숙면을 취했잖아요. 이제는 아예 식량 싸 들고 나가서 들어오지를 않으시네요? 완전 강철 체력 아니에요?"

그러고 보니 그렇다.

요즘엔 통 얼굴을 비친 적이 없었다.

"거리가 좀 되니까, 도시에서 주무시는 거 아닐까?"

"그... 게 아닌 것 같아요. 밤에도 계속 결정체가 쌓이는데... 잠을 안 자는 것 같던데요?"

"그럼, 그런가 보지... 난 이제 그 사람들 상식선에서 생각하길 포기했어."

어쩐지.

결정체 쌓이는 속도가 평소보다 빨라지긴 했다. 그들이라면 잠 안 자고도 충분히 팔팔할 것 같기도 했고.

에씨- 이런 고행일 줄 알았으면 인원을 더 많이 대려오는 건데. 회장님도 분명 이 정도일 줄은 예상 못 했겠지.

"우리 좀 더 힘내자... 나도 미칠 것 같아. 이게 다 돈이니까 좋아 보여야 하는 건데. 해결하고 해결해도 쌓이는 서류를 처리하는 기분이야. 그냥 공장 기계가 된 것 같다구."

"후우... 총무님도 고생 많으시네요. 그나저나 진짜 많이 모였네요?"

"그러니까. 나도 믿기지가 않는다."

난 모아온 결정체 더미에 몸을 던졌다.

이러고 있으니 돈벼락 맞은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아니 이미 부자인가?

회장님께서 2% 약조하셨으니까.

그나저나 복귀해서도 문제다.

이 많은 결정체를 다 어떻게 처분한담.

내가 멍 때리며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결정체의 감촉을 느끼고 있자, 수집꾼 중 한 명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얘 이름은 조의진.

이곳에 있는 동안 많이 친해졌다.

"주 총무님. 이거 몇 개 슬쩍해도 모르겠는데요?"

"......"

뭐라? 쟤 지금 뭐랬냐.

"아서라, 너 큰일 날 소리 하지 마라. 측정기는 폼으로 뒀냐? 앙? 걸리면 빼도 박도 못해. 그리고 연합이랑 저분들의 거래에서 제일 중요한 게 신뢰야 신뢰. 여기 있는 거 5%만 떼도 천문학적인 숫잔데. 너 괜한 걸로 욕심부리다 거래 초 치면 알아서 해라."

"어휴, 당연히 농담이죠. 뭐 그리 정색하세요."

"말도 조심하란 거야. 도와줄 거 아니면 빨리 들어가서 자."

난 그를 비행기 내부로 보내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기지개를 쭉- 폈다.

"흐아아암- 다시 시작해 볼까."

다시 결정체 측정 머신이 될 시간이다.

***

"보고할게요. A급 결정체 총 38개, B급 결정체 252개, C급 결정체 513개, D급 결정체 1,130개, E급 결정체 1,430개, F급 결정체 2,120개 해서 총 5,483개 모았네요."

주유라의 똑 부러지는 목소리와 함께 감탄하는 대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간이 지난 만큼, 또 사냥에 성공한 만큼 첫날에 보여줬던 긴장감은 다 사라지고 없었다.

"저게 다 합치면 얼마야?"

"내 머리로는 도저히 계산이 안되는데..."

그들이 놀란 것처럼 나도 그리고 선소연도 놀랐다. 그간 정신없이 사냥만 했지, 이렇게 직접 숫자로 들으니 실감이 안 났다.

"다 세고 한 번 더 세느라 시간 엄청 잡아먹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믿을게요."

"감사해요. A, B급 결정체는 소연 씨 가방에 담아두었고 나머지 결정체는 우선 비행기 창고에 실어놓았어요."

"좋습니다. 결정체는 연합에서 알아서 처분해 주십시오."

"네. 연합에 빌렸던 결정체 8개 값을 제외하고 다 처분해서 정확히 95% 입금시킬게요."

"이자는요? 두둑이 챙겨주기로 했었는데."

"그건... 안 받아도 충분할 것 같아요."

생각보다 연합에서 그녀의 권한이 센 것 같았다. 아니면 최강수가 애초에 이자 받을 생각이 없었다던가.

하긴, 이 정도 수량이면 연합이 전 세계 블랙마켓을 휘어잡는 것도 한순간일 것이다. 물론 이 정도의 수량이 갑자기 시장에 풀리면 가격이 확 낮아질 수도 있다. 그래도 세계 인구가 몇인데 여전히 수요는 많을 거라 생각한다.

뭐, 전문가인 주유라가 알아서 조정하겠지. 난 그냥 믿기로 했다.

비행기 앞에서 둥그렇게 앉아 휴식을 취하는 대원들을 바라보았다. 모두들 판다가 된 것 마냥 눈에 진한 다크서클이 피어있었다. 마치, 길고 길었던 행군이 끝난 후 주둔지에 도착해서 쉬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 같았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애초의 계획은 한 달.

그러나 쿠바 전 지역을 청소하는 데는 채 20일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빨리 움직인 것도 있었지만, 이들의 피나는 도움이 없었다면 이 정도의 속도를 내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동안 고생하신 여러분들을 위해 각자 C급 결정체 10개씩 보너스로 드리겠습니다. 물론 기장님들도 포함입니다."

내 말이 끝나자 대원들은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내질렀다.

"역시 S급 헌터라 그런지 배포가 남다르셔!"

"난 영상 봤을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그릇이 달라 그릇이..."

"나 신기해, 벌써 피로가 다 풀려버렸어."

어느새 날 편하게 대하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런 분위기를 원했다.

'금지의 땅'은 오늘로 마무리되었다.

쿠바 지역에 숨어있던 생존자들은 찾을 수 없었다. 지하나 쉘터에 꽁꽁 숨어있겠지.

어쨌든 난 이곳에 있는 모든 괴물들을 처리했다. 앞으로도 균열이 계속 생기겠지만, 난 할 만큼 해줬다. 그들에게 따로 보상받을 생각도 없었고, 결정체를 얻었다는 것에 만족했다. 다른 곳으로 이주했던 쿠바 주민들이 어떻게 할지는 그들이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겠지.

하여간 다들 고생했다.

그간 열심히 움직였던 터라 나도 피로를 회복하고 싶었다. 난 아직도 흥분에 쌓여있는 대원들을 뒤로하고 피곤에 찌들어 있는 주유라에게 다가갔다.

"주유라 씨 남은 식량이랑 시원한 맥주 남아있습니까?"

"네. 조금 남아있어요. 맥주는 바빠서 입에 댈 시간도 없었구요."

"그럼 복귀전 간단하게 술 한잔 어떻습니까?"

내 말을 들었는지 흥분했던 대원들은 더 불타올랐다.

"좋습니다!"

"한 잔 합시다!"

복귀를 앞두고 우리는 조촐한 파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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