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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33화 (33/128)

금지의 땅. (3)

기장실 내부.

잔뜩 긴장한 듯 굳어있는 두 기장.

나와 선소연, 주유라는 그 뒤에서 상황을 확인했다.

시야가 훤히 보이는 전면 유리창에 붉은 익룡 두 마리가 보였다. 아직 육지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비행기 소리를 듣고 마중 왔나 보다. 고도를 높이고 있는데도 열심히 따라온다.

"빌어먹을. 파이어 드래곤이에요! 그것도 두 마리라니!"

주유라가 비명을 질렀다.

저게 그렇게 대단한 놈인가?

균열에서 봤던 놈들이랑은 크기 자체가 다르다. 그 익룡들의 축소판 같은 느낌.

일단 중요한 건 위압감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세히 보면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옆에 내 팔을 잡고 서있는 선소연을 봤다. 자다 깨서 그런지 하품을 크게 하고 있었다.

"우린 다 죽었다고요! 세상에, A급 괴물 두 마리를 허공에서 만날 줄이야."

"호오, 저게 A급입니까?"

시작부터 A급이라니 정말 노다지잖아.

내가 태연하게 말하자 주유라가 답답하다는 듯 머리를 쥐어뜯었다.

"제발. 뭐라도 좀 해봐요! 지켜주신다면서요! 제기랄. 제기랄!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어느새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그녀의 말에 기장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조금 진정시켜줄 필요가 있었다.

"다들 걱정하지 마세요. 기장님은 고도를 다시 낮추고 착륙 준비해주십시오."

"네... 네? 하지만..."

"그냥 저놈들은 없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까 기체에 놈들의 날갯짓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 속도로 저놈들이랑 살짝 스치기만 해도 비행기는 폭발할 거예요! 고도를 계속 높여 놈들이 못 따라오게..."

"아니요. 그대로 진행해주세요."

그 말을 들은 주유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 당신 미쳤어요? 저놈들 불을 뿜는다구요! 비행기 터지면 우리 다 죽는단 말이에요! 아무리 당신이라도 이번 일은..."

"주유라 씨."

"... 네?"

"너무 흥분하셨습니다. 들어가서 쉬시던가, 아니면 조용히 해주세요."

"......"

단호하게 말하자 입을 오므리고 가만히 있었다. 주유라의 부정적인 말들이 기장들을 더 긴장시켜 중요한 상황에서 실수를 초래하도록 할 수 있기에 빠르게 차단시킨 것이다.

주유라는 그래도 불안한지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기장님?"

"네... 알겠습니다. 헌터님."

기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조종을 시작했다. 다시 고도를 낮추고 착륙 준비를 하는 것이다.

파이어 드래곤들의 속도는 대단했다.

시속 700km로 활공하는 비행기를 지지 않고 따라왔다. 그중 한 마리가 비행기 옆으로 바짝 붙어 입을 벌렸다.

"으... 으아아아..."

주유라는 그 모습에 질렸다는 듯 손잡이를 꽉 부여잡고 고개를 숙였다. 기장들도 눈을 질끈 감았다.

"소연아!"

"네에."

화르륵-

괴물이 불을 뿜는 순간,

선소연이 손을 뻗었다.

기체를 둥글게 감싸는 물의 보호막.

워터 실드였다.

놈이 뿜는 불은 실드에 닿는 즉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주유라가 경악했다.

"세... 세상에, 각성 능력을 어떻게 저렇게... 읍..."

내가 한번 쓱 쳐다보자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들어가서 쉬기는 싫었나 보다.

그래도 선소연의 능력을 본 그들은 다시 눈빛에 활기가 돌았다. 희망이 생긴 것이다.

우리는 하루 전 출발을 앞두고 다양한 연습을 했다. 나는 여전히 능력의 발전이 없지만, 그녀의 물 활용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그중 하나가 보호막이었다.

"생각보다 간단하게 막네요."

"그러게. 공격할 수는 있겠어?"

내 질문에 그녀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무리에요. 아직까지 그 정도로 숙련된 건 아니어서. 보호막 유지가 한계에요."

"이대로 착륙할 때까지 방어 가능하겠어?"

"아니요. 기체가 너무 커서 점점 집중하기 힘들어져요. 이렇게 크게 해본 적은 처음이라."

파이어 드래곤 두 마리는 번갈아가며 공격을 시도했다. 5분이 흐르자 선소연이 식은땀을 흘리며 외쳤다.

"착륙까지 얼마나 남았죠?"

"십... 십오분 정도 남았습니다."

선소연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자 다시 긴장하는 기장들. 그녀의 땀을 옷깃으로 닦아주며 말했다.

"아무래도 떨어뜨려야겠지?"

"그렇게 해주실 수 있어요?"

"해볼게."

난 주유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주유라 씨 밖에서 던질만한 식칼이나 날붙이 좀 구해오십시오."

"네... 네?

"빨리 부탁드립니다."

"다... 당신 설마? 일단 알겠습니다!"

주유라는 궁금할 텐데도 묻지 않고 잽싸게 밖으로 나갔다.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래. 조그마한 희망이라도 붙들고 싶겠지.

"양종현 기장님?"

"... 네. 헌터님."

"비행기 밖으로 나갈 겁니다."

"안됩니다! 문 여는 순간 과여압 때문에 Explosive decompressions 현상이 발생할 겁니다. 비행기가 폭발한다구요!"

기압은 항상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비행기 내부는 여압장치로 인해 높은 기압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문을 여는 순간 내부에 있는 모든 것이 바깥으로 빨려나가게 된다. 그 압력으로 인해 기체가 변형을 이루게 되고, 폭발사고까지 이어질 수 있다.

"알고 있습니다. 여압장치 끄시고 산소마스크 쓰세요. 고도 더 낮추시구요."

"아... 이해했습니다!"

기장은 노련하게도 내가 무얼 하려는지 바로 캐치했다. 고도를 낮추고, 여압장치를 끔으로써 내외부의 기압차를 줄인다. 강하 훈련 때도 많이 하는 것이다.

다만 조심해야 한다.

헌터들은 신체능력이 발달되어 크게 타격을 입지는 않겠지만, 일반인들이 여압장치를 끈 상태로 하강을 하게 되면 고막에 큰 통증이 온다. 또 산소가 부족해지고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지게 된다.

그래도 지금은 괜찮다.

높은 피트에서 갑작스레 압력을 낮추면 타격이 심하지만, 저공비행하면 일반인들도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정도다. 게다가 기장실 내부는 별도의 장치가 되어있어 안전하다.

"헌터님. 출구는 위쪽에 있습니다! 김진솔 기장이 안내해줄 겁니다!"

"알겠습니다. 소연아 잘 부탁해."

"알겠어요."

나는 주유라가 가져다준 휴대용 쇠나이프 두 개를 받아 위층으로 올라갔다. 남자 헌터들은 주유라의 지시에 따라 기장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김진솔을 따라 천장 부분으로 오르자 미닫이문이 보였다.

호오- 천장에 문이 달려있다니...

그럼 처리하기 더 쉬워진다.

[ 헌터님. 여압장치 작동 해제했습니다. ]

양종현 기장의 방송음이 들려왔다.

선소연이 얼마나 버틸지 모르니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

"헌터님 여기 산소마스크 있습니다."

"아, 저는 괜찮습니다."

어느새 산소마스크를 끼고 있는 김진솔.

이제는 안전벨트로 본인의 몸을 꽉 동여매고 있었다. 긴장된 표정으로 옆에 있는 벨트를 건넨다.

"헌터님은?"

"그거 매면 어떻게 밖으로 나가라고요. 문은 어떻게 열면 되죠?"

"저기 빨간색 OPEN 버튼 보이시죠? 그걸 누르시면 되기는 한데... 안전벨트 하셔야..."

지체 없이 빨간 버튼을 눌렀다.

피쉬이이-

커다란 기계 작동음과 동시에 문이 천천히 열린다. 시원한 바람이 몸을 때렸다. 난 왼손으로 문 손잡이를 꽉 잡고 기체 상부에 올랐다.

키아아아-

파이어 드래곤 두 마리가 그 모습을 보고 다가왔다.

나는 집중했다.

오른손에 있는 나이프 두 개.

한 마리당 하나씩.

한 번에 던진다.

그러나 소연이 펼치고 있는 보호막이 있으면 맞추기 힘들다.

"소연아!"

큰 소리로 외치자, 기체를 두르고 있는 커다란 보호막이 사라졌다. 멀리 있는 기장실에서도 내 목소리를 정확히 듣고 의도를 캐치한 것이다.

세게 던지면 안 된다. 놈들을 뚫는 게 아니라 스핀을 주어 터트려야 했다.

그래야 결정체가 떨어지니까.

목표는 놈들의 몸통 중앙.

나는 눈을 부릅떠 놈들의 움직임을 읽었다.

지금이다!

오른손을 휘둘러 두 개의 나이프를 동시에 던지면서 손목을 빠르게 비틀었다. 빠른 속도임에도 궤도를 그리지 않고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나이프.

쓔아앙- 펑! 펑!

정확히 두 놈의 몸체에 명중했다.

커다란 구멍이 뚫려 순식간에 즉사한 괴물. 그리고 날아오던 가속도 그대로 추락하기 시작한다.

좋았어.

난 그 광경을 보며 소연의 센스를 기대했다.

그녀는 역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터진 시체 사이로 푸르게 생성되는 물방울.

그리고 건져 올려지는 두 개의 시뻘건 결정체.

그렇다.

하루 전 우리가 연습했던 능력은 보호막 말고 하나 더 있었다.

그녀는 밥을 먹고 설거지할 때,

식기를 물에 헹구고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다.

충격적인 건,

그 행동을 손 하나 쓰지 않고 매트리스 위에 누워서 한다는 것. 선소연의 컨트롤이 날로 느는 것을 확인하고, 즉흥적으로 고안해 낸 능력이다.

바로, 결정체 집기.

'금지의 땅'에서 우리가 뛰어다니면,

수집꾼들이 그 속도를 따라올 수가 없다.

그녀가 잡은 후에 물방울로 결정체들을 집어 한곳에 모아둔다면, 수집꾼들이 편하게 수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연습했던 건데 이곳에서 쓸 줄은 몰랐다.

난 소연이 끌어다 준 결정체를 오른손으로 집은 후 비행기 문을 닫았다.

"버... 벌써 끝난 건가요?"

안전벨트를 매고 있음에도 의자를 꼭 붙잡고 있던 김진솔 기장이 물었다.

문을 연지 30초나 흘렀을까,

다시 내려와 닫으니 당황한 것이다.

"네. 상황 종료됐습니다. 내려가시죠."

"......"

***

"와, 진짜... 믿을 수가 없네요."

김진솔과 함께 막 기장실에 들어온 나를 보며 주유라는 탄식했다.

"방금 장면을 그대로 영화에 내보내도 사람들이 분명 욕하면서 별점 테러할 거예요."

"왜요?"

"현실감 없다고요. 요즘 기술 좋아졌다고 난리일걸요? 당신 정말 사람 맞아요?"

"글쎄요."

"......"

나는 그녀를 향해 빙긋 웃어주며 말했다.

사실 나도 그게 궁금했다. 이런 힘을 가진 사람을 사람이라 부를 수 있는지.

뭐 사람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그 무시무시한 균열 속에서 다짐하지 않았는가. 괴물들을 잡기 위해선 나도 괴물이 되는 게 오히려 편할 거라고.

난 선소연에게 결정체를 넘겼다. 그래도 그녀 덕분에 벌써 A급 결정체 두 개를 획득했다.

"잘했어."

"이게 얼마짜린데요. 절대 포기할 수 없죠."

선소연은 결정체 보관용 금고형 배낭에 조심스레 넣고 소중한 것을 다루듯 껴안았다.

나도 동의했다.

그대로 바다에 빠트렸다면 많이 아까웠을 거다. 난 그녀의 머리를 강하게 쓰다듬었다. 잘했어, 정말 잘했다고.

좁은 기장실에는 열 명이 모두 모여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출발할 때와 다르게 밝아 보였다. 이제 좀 믿음이 생겼나 보다.

"양기장님. 얼마나 남았나요?"

"이제 곧 도착입니다. 저기 보이시죠?"

전면 유리창에는 어느새 커다란 육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곳이 '금지의 땅' 쿠바.

폐허가 된 도시의 모습이 보였다.

건물 대다수가 무너져 있고, 도로에는 자동차 하나 다니지 않았다. 숲과 도로에는 개미처럼 작게 보이는 각종 괴물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그래도 생각했던 것만큼 우글거리지는 않았다.

"을씨년스럽네요. 꼭 쥬라기공원 영화 초입부 같아요."

주유라가 팔에 난 닭살을 문지르며 말하자 선소연이 응답했다.

"언니, 저 그거 재밌게 봤어요. 과학자들이 공룡 DNA 추출해서 만들어다 부자들한테 파는 이야기잖아요."

"그... 그렇긴 한데, 초점이 뭔가 엇나간 것 같은데요. 쥬라기공원은 등장인물들이 공룡들을 피해 생존해나가는 아포칼립스 물이라구요.

"제 눈이 이상한가 봐요. 전 저게 다 돈으로 보이는데..."

"......"

우리가 붕괴된 도시를 감상하며 떠들던 중 양종현 기장이 고도계와 기상레이더를 점검하며 말했다.

"이제 곧 공항입니다. 다행히 활주로에 장애물은 안 보이네요."

"좋아요. 착륙하세요."

"네, 하강하겠습니다."

콰드드드-

힘찬 엔진음 소리와 함게 전세기가 착륙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공항 주변에 괴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뭐, 보여도 상관없고.

드디어 '금지의 땅'에 도착했다.

나는 열 명의 대원들을 향해 힘차게 말했다.

"자, 이제 결정체를 쓸어 담을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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