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의 반란. (4)
김원호 차관의 표정이 살짝 경직되었다.
최근 급속도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최강수는 그라고 해도 쉽게 상대할 인물이 아닐 것이다. 나와 선소연이 벌떡 일어나자 그도 마지못해 일어섰다. 이세영은 꾸벅 인사하더니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
"오랜만이네요. 아저씨."
"조금 늦었네. 잘들 지냈나."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로..."
"소식 듣고 급히 올라왔지. 자네들이 소환당했다는데 내 가만히 있을 수 있나."
그는 국장을 앞에 두고 우리에게 먼저 인사했다. 김원호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멀뚱히 서있자 그제서야 최강수는 소탈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아, 처음 뵙겠소. 연합회장 최강수요."
"헌터 관리국장이요."
둘의 기세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관리국에서 연합, 특히 최강수의 존재를 껄끄러워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사익집단이 아닌 단순한 이익단체를 강제로 제한할 수 도없는 노릇이고 속만 태우고 있었겠지.
분위기는 무거웠지만, 행위는 간단했던 가벼운 인사가 끝나고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최강수는 소파 상석에 앉자마자 다리를 꼬았다.
헌터 관리국장이면 차관급 인사다.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 상석에 앉았다는 건 애초에 시비를 걸 생각인 것이다.
김원호는 당황한 듯 주먹을 부르르 떨더니 우리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나 별다른 말은 하지 못했다.
상대는 초인.
그것도 자신에게 비호의적으로 대하는 사람이다. 시비 걸어서 좋을 게 없단 걸 알았겠지. 애초에 상석에 앉았다는 이유로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겠지만.
"그래서. 현이가 지불해야 할 금액이 얼마라구요?"
"국가는 5조 원으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세상에 3번밖에 출현하지 않았던 결정체입니다. 그 가치가 어마어마해요. 이도 엄청나게 많이 깎아준 겁니다. 국가적인 손실과 국민의 목숨을 구한 것을 책정해서..."
"참나- 순, 도둑놈들이구먼."
최강수가 코웃음치며 말을 끊었다.
김원호는 참았던 것을 폭발시키듯 말을 이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십니까! 특히 이번의 강현 씨 같은 경우는 결정체를 고의적으로 먹였습니다. 분명히 계약에 명시되어 있었는데...!"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였겠지요. 이번에 현이가 살린 사람들은 국가의 시민권자들입니다. 그리고 국민들의 목숨을 구한 것을 가격으로 책정했다고요? 국가가 국민의 목숨에 가치를 부여합니까? 그래서 그 목숨의 가치가 도대체 얼맙니까? 어디 들어나 봅시다."
김원호는 할 말을 잃었다. 딱히 책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다음으로 계약서에 나와있는 조항은 미발견 균열을 몰래 처리했을 때를 말하는 거였죠. 그래서 현이가 몰래 처리해서 결정체를 꿀꺽한 겁니까? 오히려 누구보다 빨리 나서서 괴물을 처리해준 영웅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그 괴물 현이가 아니었으면 처리하기도 힘들었을 겁니다. 현이 덕분에 국가 안보를 지키고 많은 국민들과 헌터들의 목숨을 구했는데 과중한 금액으로 옭아맬 생각을 하다뇨. 애초에 계약부터 잘못되었습니다. 사이클롭스 베어를 맨손으로 잡는 사람한테 F급 계약서가 뭐람. 쯧."
"하지만 국가 입장도 이해해 주십시오. 피해자들 보상에, 헌터들 보상금 지급도 해야 하고, 결정체도 부족해서 수입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어느새 김원호의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입장을 이해해달라는 말까지 나온 것을 보아 이미 승세는 최강수 쪽으로 기운 듯했다. 최강수는 준비해온 듯 가방을 뒤져 서류를 꺼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군요. 국가는 헌터들의 보상을 지급할 필요도 없고, 결정체로 헌터를 굳이 늘릴 필요도 없습니다."
"네?"
"읽어보시죠."
서류에 적힌 내용은 간단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간단하지 않았다.
1. 모든 헌터들의 계좌로 들어오는 돈은 종합소득세에 포함하지 않는다. 다만 비헌터의 탈세나 비자금 용도로 쓸 수 있으니 전산상 세무조사는 허용한다.
2. 더 이상의 정부 통제는 없다. 정부의 관리국과 아카데미 유지는 자유지만 균열에서 획득하는 결정체의 소유권은 헌터에게 있다.
3. 지금껏 헌터들에게 행해왔던 모든 불공정한 계약들을 취소한다.
단 10초 만에 서류를 읽은 김원호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최강수는 여유롭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이미 국내 상위헌터 80%가 서명을 마쳤습니다. 정부는 이 두 가지 조항만 지켜주시면 됩니다."
"이게 무슨..."
"정부가 받아들여주지 않으면 모두 타국으로 귀화하겠다 약조했습니다. 아시죠? 타국은 땅덩이가 커서 그런지 더 많은 헌터들을 필요로 합니다. 아주 좋은 조건으로 데려가겠다더군요. 계약서 위약금까지 전부 대납해 주겠답니다."
"말도 안 되는! 그대들은 애국심도 없단 말입니까?"
"국가가 제대로 된 보장을 해주지도 않고 헌터들을 노예처럼 부려먹는데, 있던 애국심도 사라지겠습니다."
"......"
"아, 그리고 시민들에게는 정부의 폭리로 인해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기사화되어 나갈 겁니다."
"지금 협박하시는 겁니까?"
"협박은 그간 국가가 헌터들에게 해온 부당한 계약을 말하는 거겠지요. 아, 이 결정은 여기 있는 현이에게도 해당되는 겁니다."
최강수는 그간 벼르고 있었다는 듯 퍼부었다. 김원호는 어느새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하긴, 지금 최강수는 상대가 논리적으로 받아칠 수 없도록 기습공격을 하고 있다. 나와의 친분으로 갑작스레 나타나서 전국 헌터들을 대변해 몰아세운다. 애초에 준비되지 않은 자리에 참석한 김원호가 밀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간 취해왔던 폭리에 대해 보상하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정부도 살 길이 있어야겠지요. 기한은 내일 까지 입니다."
최강수는 거기에 기한을 둠으로써 협박의 종지부를 찍었다.
"이... 이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오."
"이건 제안이 아니라 통보입니다. 잘 회의해 보십시오. 정부 입장에서는 '미숙한 통제로 헌터 대거 귀화' 라는 시나리오보다 '헌터 권익 보호와 발전을 위한 개선' 이라는 시나리오가 월등하게 좋지 않겠소?
"......"
말을 마친 최강수가 일어났다.
"이만 나가지."
"그럽시다."
"아, 다음에 만날 때는 커피라도 대접하는 예의를 보여줍시다. 이거 뭔 차관이란 사람이 기본도 안 돼있고 말이야... 쯧-"
우리는 머리를 싸매고 있는 김원호를 두고 관리국을 나왔다.
역시 단체의 장을 맡고 있는 사람은 다르다. 하마터면 아무 말도 못 하고 부당한 처우를 당할 뻔했다. 처음으로 최강수가 든든하게 느껴졌다.
***
세상은 난리가 났다.
백화점 CCTV 영상이 유튜브를 타고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사이클롭스 베어'를 혼자 잡는 헌터가 등장했다는 사실에 세계 각국도 대한민국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ㄴ emam7930 : God, after watching this i'm asking myself if he is really a human.
ㄴ seougi99 : he is such a S rank hunter.
ㄴ 트수 : 미쳤다. 주먹 한방에 형체도 남지 않은 거 보소.
ㄴ 쉰다리 : This is Korean :)
ㄴ 무에노 : 강현 왈 "결정체 보기를 돌같이 하라." 리스펙 하고 갑니다.
ㄴ ksj_9080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백화점 희생자 유가족 여러분들 마음으로나마 위로합니다.
영국에서 세계 헌터 기구를 이끄는 최초의 헌터 버나드 스미스도 '대한민국 작은 영토에서 위대한 영웅이 탄생했다.'며 격려했다. 특히 100억 달라 가치의 결정체를 주저 없이 먹이는 모습에 사람들은 감동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등급인 S급 헌터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나왔다.
국내도 시끄러웠다.
마포구 백화점 사건의 영웅의 정체가 알려지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 북한산 생존자 두 명. 그들에겐 어떤 일이 있었을까. ]
[ S급 헌터를 F급 헌터 취급. 헌터 관리국 등급 측정 과연 신뢰할 수 있을까. ]
[ 헌터 관리국장 김원호 차관 "헌터 메커니즘 이해 못 해." ]
결국 정부는 연합에게 두 손을 들었다. 부당했던 계약은 취소되었고, 나도 결정체의 소유권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현 대통령은 최강수를 헌터 관리국장으로 두는 강수(强手)를 두었다. 헌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자가 헌터를 관리하면 불협화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었다.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관리국이 생긴지 고작 3개월, 헌터 중에는 딱히 국장을 맡을만할 인물이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헌터가 국장을 맡게 되면 균열 사냥에 뛰어들 수 없게 되어 자연스럽게 정보에 도태된다. 즉, 누가 국장이 되던 불협화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냥 어쩔 수 없이 임시방편으로 세웠던 사람이 김원호 차관이었던 것이다.
정부 입장에선 국내 대부분의 헌터를 통제할 수 있고, 경험도 많은 최강수가 적임이었다. 오히려 최강수에게 감사함을 전하면서 여론을 잠재웠다.
그간 발로 뛰며 헌터들을 규합했던 최강수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
마포구 고급 레스토랑 앞 도로.
감각적인 라인을 뽐내는 빨간 스포츠카 한 대가 웅장한 배기음을 내며 멈춰 섰다. 차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딱 봐도 비싸 보였다.
문이 열리더니 선글라스를 끼고 한껏 멋을 낸 최강수가 내렸다. 수염 난 아저씨가 그러고 있으니 진짜 부자 같았다.
"와 성공하시더니 차도 좋은 거 끌고 다니시네요."
"흐흐, 소식 들었나?"
"네. 근데 저 차는 나이대랑 너무 안 어울리시는데..."
"맥라렌 720s 스파이더 일세. 하나 구매했지. 예쁘지 않나?"
최강수가 차 키를 한번 누르자 날개형으로 펼쳐진 문이 자동으로 닫쳤다.
"아저씨는 오빠가 쓰는 SUV같이 중후한 차가 어울려요. 이게 무슨 주책이에요."
"소연아. 아저씨한테 주책이라니. 이제 헌터 관리국장님이신데."
"끌끌- 괜찮네."
친근하게 대하는 선소연의 농에 소탈하게 웃은 최강수가 차 키를 내 앞으로 내밀었다.
"어차피 이차는 이제부터 자네 거야."
"네?"
"선물일세. 이제 S급 헌터신데 격에 맞는 차를 타고 다녀야지. 젊을 때 이런 차 타보지 나처럼 늙으면 '주책' 이란 소리 나 듣는다고."
최강수는 '주책'이란 단어를 강조했다.
선소연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다.
"아이 아저씨, 농담이죠. 잘 쓸게요."
그녀는 애교를 부리며 최강수의 마음을 풀어줬다. 난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딱 2인승이라 둘이 타고 다니기 편할 거야. 그 SUV는 좀 팔고."
"흐음... 차 쓸 일이 없기는 한데... 감사히 받겠습니다."
"왜 차 쓸 일이 없나."
"곧 한국을 뜰 생각이거든요."
내 말에 그녀와 최강수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동시에 외쳤다.
"그게 무슨 말인가?"
"그게 무슨 말이에요?"
동시에 외치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미소가 절로 나왔다.
"자세한 건 들어가서 이야기하시죠."
"아, 그러지. 오랜만에 시간 냈으니 들어가세. 내 한턱 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