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육군대위, 귀환하다-29화 (29/128)

연합의 반란. (3)

"정말로 먹이시게요?"

"살릴 방법이 이거밖에 없다며."

"잘 생각하셔야 해요. 우리 계약했던 거 기억나죠? 이렇게 괴물이 난리 쳐 놓은 이상, 미발견 균열이 아니에요. 제 말은 결정체가 우리께 아니라는 거예요..."

난 선소연의 말을 뒤로하고 주저 없이 결정체를 문태준의 입안에 넣었다.

사르르 녹아들어 가는 붉은 빛.

어느새 의식을 잃은 남자.

"후우- 결국 먹이셨네요."

"세상을 계산적으로 살 필요는 없잖아. 가끔은 마음이 가는 데로 하는 거지."

"계산적인 게 아니라 계약이에요 계약! 벌금에, 자격 정지에, 결정체까지 토해내야 한다구요."

"몰라.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물어주면 되지."

내 뻔뻔함에 그녀는 말을 잊은 듯 입을 벌렸다. 하긴, 결정체를 어찌할지 결정권은 그녀에게도 있었다. 미발견 균열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줬으니. 즉, 내 맘대로 일을 벌여놨으니 설득을 해야 한다.

"너도 이 사람이 하는 말 들었잖아. 그치?"

"그건... 그런데..."

"모르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어. 내 장담컨대 1,000명을 데려다 놔도 이 남자와 같은 선택을 할 사람은 없을 거야."

"알아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오빠의 선택도 존중하구요. 하아-"

그녀와 나는 이곳으로 달려오면서 상황을 전부 파악할 수 있었다. 각성된 청각은 듣고자 하는 부분만 정확하게 캐치해서 들려줬다.

거의 도착해 갈 때쯤, 처음 본 아이와 여성을 지키려 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숨을 아끼지 않고 타인을 지키려 하는 무모한 용기에 감탄했다.

그것 말고도 마음에 드는 부분이 하나 더 있었다. 괴물과 대치 상황에서 그가 보여줬던 눈빛. 목숨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적을 찢어발기겠다는 그 투기. 꼭 강도 높은 훈련과 실전으로 무장한 특수부대 정예를 보는 듯했다.

"내가 딱 원하는 인재상이었어."

"인재상이라니 무슨 대기업 채용팀처럼 말씀하시네요."

"죽게 냅두기 아까웠어."

"그건 그래요."

"국가 입장에서도 이런 사람이 헌터가 되는 게 이득일 거야."

물론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중요한 건 헌터가 되고자 하는 그의 의지다. 그래서 굳이 고통 속에서 말하기도 힘들어하는 남자에게 헌터가 되고 싶냐 물었다.

***

어느새 사람은 다 빠졌고, 경찰과 소방관 그리고 재난 단체에서 백화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신고받고 출동한 헌터들은 상황이 정리됐음을 확인하고 돌아갔다.

"의료팀! 여기 살아있는 자 있는지 확인해. 빨리!"

"이 빌어먹을 괴물들!"

"그것보단 백화점 관리팀들은 뭐 한 거야? 건물 내 균열 있는지 확인도 안 하고!"

아쉽게도 3층에 쓰러져 있는 자들 중 생존자는 없었다. 각 매장들은 송두리째 부서져 있었고 구조대는 처참한 광경에 분통을 터트렸다.

"신분이 어떻게 되십니까?"

정현조 대리와 비슷한 복장의 남자.

헌터 관리국 마포지부 직원이었다.

절차상 나와서 조사하는 듯했다.

"F급 헌터 강현입니다."

"F급 헌터 선소연이에요."

우리는 붉은 뱃지를 보여주며 신원을 밝혔다. 그는 스마트폰에 우리의 이름을 적었다.

"빠르게 처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피해를 최소화했어요."

"별말씀을요. 좀 더 빨리 왔으면 이렇게 참담하진 않았을 텐데..."

"괴물 처치 보상은 따로 나갈 겁니다. 으음... 잠시만요."

그는 비위 좋게도 내가 터트려 놓은 살코기들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흐음...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네요. 혹시, 어떤 종류의 괴물이었는지 아십니까?"

"......"

나는 고민했다.

'사이클롭스 베어' 임을 밝혀야 하나?

그는 내 침묵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

"아, 간혹 어떤 괴물인지 모르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특히 F급 분들이면요. 그나저나 이정도 난리를 칠 정도의 괴물이면... 적어도 C급 이상일 건데..."

나는 주변을 쓰윽 둘러봤다.

CCTV가 건재하다.

어차피 알려질 사실 빨리 밝혀야겠지.

"아마, 사이클롭스 베어였을 겁니다."

"네에?"

그 말에 조사원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헌터 분 죄송하지만, 사이클롭스 베어는 A급 중 최강의 생물체입니다. 곰같이 생긴 외형에  뿔 2개 달리고, 기형적인 이빨을 가지고 있는 놈인데... 혹시 다른 놈이랑 착각하신 거 아니신가요?"

"그쪽 말에 따르면 정확한 외형이네요."

"허... 참... 뭐, 알겠습니다. 조사해보면 나오겠지요."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라는 표정으로 쳐다본 조사원이 스마트폰에 자꾸 뭔가를 적었다. 역시나 믿지 않는 것 같았다. 한참을 무언갈 적던 그가 다시 날 쳐다봤다.

"혹시 나온 결정체는 없습니까...?"

"......"

올 게 왔다.

일을 저지르고 보니 골치 아프다.

나는 말없이 쓰러져있는 문태준을 가리켰다. 그는 선소연이 만든 물에 둘러싸인 채 편안하게 자고 있었다.

"뭐...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설마?"

"네. 생각하시는 게 맞을 겁니다."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짧은 침묵.

어이없는 표정을 짓던 조사원이 기분 나쁜 한숨을 푹 쉬고 잠시 통화를 하러 나갔다. 아마 상부에 보고하는 거겠지.

난 귀를 닫고 자리에 앉았다. 선소연이 쓰러진 문태준을 안아 들며 날 쳐다봤다.

"거봐요. 이제 골치 좀 썩으시겠어요?"

"자꾸 얄밉게 말하지 마. 각오한 일이야."

"전 잠깐 의료팀에 다녀올게요. 이분 넘기러."

"알겠어. 다녀와."

***

조사원은 별다른 말없이 우리를 보내주었다. 조사가 끝난 후, 관리국에서 소환장을 보낼 거라고만 했다. 문태준은 인근 병원으로 실려갔고, 우리는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팔아요."

"뭘?"

"오빠 SUV, 솔직히 필요 없잖아요. 뛰어다니는 게 더 빠르고."

그녀는 식탁 위에 앉아 양손으로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이미 수십 번 잡아뜯었는지 마치 숫사자 털같이 헝클어져있었다.

"집도 더 좁은 데로 이사 가고, 미발견 균열도 더 찾아내요. 최대한 아껴야 해요. 그래야 다 갚죠."

"아껴서 될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사이클롭스 베어' 결정체 시세 100억 달라.

한화로 하면 약 10조.

벌금은 최소 100억이라 했다.

10조에 100억을 더하면 블랙마켓 시세로 했을 때 A~B급인 최상급 결정체가 약 20개 정도 필요하다. 즉, 푼돈 아껴서 해결될 일이 아니란 것이다.

"최대한 아껴야죠. 집도 구하기로 했는데 다 망했네."

"내가 알아서 할게."

"알아서 한다구요? 뭘, 어떻게요!"

그녀의 목소리가 커졌다.

따지고 보면 내 일인데, 그녀는 왜 자신의 일처럼 흥분하는 걸까?

"어차피, 그에게 먹인 것도 나고 사냥한 것도 나야. 춤을 춰도 내가 춘거고 떡을 먹어도 내가 먹은 건데... 나만 처벌받으면 될 일이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오빠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처벌을 받아요. 백화점에 우리가 없었으면 사람들 다 고깃덩어리 됐을걸요? 헌터들도 다 죽어나가고. 보상을 해줘도 시원찮을 판인데!"

"그... 건 맞는데..."

"그리고 미발견 균열 찾을 때마다 제가 도와드려야 하는데, 어떻게 오빠 혼자만의 일이에요."

그것도 맞다.

돈을 갚으려면,

돈을 벌려면,

집단을 만들려면,

그녀가 필요하다.

내가 너무 공수표를 날렸다.

그녀와 제대로 상의했어야 하는 건데.

그리고 옆에서 성심껏 돕고 있는 사람한테 알아서 한다니... 할 말이 없었다.

"미안해."

"후우... 오빠..."

"응?"

"우리 그냥 귀화할까요?"

"......"

***

다음날 오후 1시.

오랜만에 보는 정현조 대리가 우리를 국장실로 안내했다.

대한민국 헌터 관리국 국장 김원호 차관.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게 잔뜩 벼르고 있는 듯했다. 그래. 우리 부대 여단장님이 저런 눈빛이었지.

나름 특임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나도 정부 고위직은 처음 만나봤다. 임관식 때 봤던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소파에 앉자 그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사실 긴가민가 했습니다."

"무엇을요?"

"이세영 사원에게 능력 측정 10단계를 통과했다고 보고받았을 땐 믿지 않았거든요."

역시 그녀가 상부에 보고했었구나.

그는 놓여진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한번 홀짝이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데 사이클롭스 베어를 맨손으로 때려잡을 수 있는 능력일 줄이야. 상부에서도 지금 난리가 났습니다."

"힘을 속일 생각은 없었습니다."

"인정합니다. 관리국의 측정 방법이 잘못되었던 거죠. 이번 기회에 싹 다 갈아엎을 예정입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어떻게 처리되는 겁니까?"

김원호가 테이블 앞에 놓인 서류들을 뒤적였다.

"CCTV 확인 결과 결정체를 문태준 씨에게 먹였더군요."

"그렇습니다."

"많은 회의를 거쳤습니다. 원래라면 계약에 따라 결정체 시세만큼을 지불하셔야 하는데..."

"흠..."

"큰 피해를 조기에 처리해준 점, 강현 씨가 국내 유일무이한 헌터라는 점을 감안하여 최단 가로 책정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가격이 얼맙니까."

"5조 원입니다."

"......"

예상은 했지만 직접 듣고 보니 충격이 느껴지는 액수였다. 살면서 1억을 모아본 적이 없는데 그 5만 배의 돈이라니...

시작부터 꼬인 느낌.

미발견된 사이클롭스 베어를 찾으면 되긴 한데 그것마저 계약에 묶여있다.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선소연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침묵하자 그녀가 나섰다.

"저희는 그럴 돈이 없는데요?"

"국가로서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 결정체의 가치는 무궁무진합니다. 현존하는 모든 결정체의 왕이라고 불릴 정도에요. 타국에서도 관심이 많은 결정체를 한낱..."

"제 귀에는 꼭 국가가 그 괴물을 잡은 것처럼 들리네요?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 버는 사람은 따로 있나요?"

"계약이지 않습니까."

"계약이 말이 계약이지. 겨우 생존한 사람 붙들어 놓고 불이익 준다 만다 협박한 다음에 종이에 싸질러 놓게 하는 게 계약인가요? 협박이지."

어느새 선소연의 목소리가 커졌다.

김원호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협박이라니... 거, 말씀이 점점 지나치십니다."

"뭐, 제가 틀린 말이라도 했나요?"

"저 밖을 보세요! 그 계약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습니다!"

"우린 생존자예요! 국가에게 결정체 지원받은 것도 없고, 우리 힘으로 사지를 극복했어요!"

둘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나는 일단 중재키로 했다. 군 장교일 때 버릇이 남아있어 고위직 사람들만 보면 기가 죽는데 그녀는 속이 시원해지도록 쏟아붓는다.

솔직히 멋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말싸움보단 정확한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이다.

"일단 진정하세요. 소연이 너도 그만해."

"......"

서로 흥분을 가라앉힐 동안 난 커피 한 모금을 마신 후에 나직이 말했다.

"저희는 5조 원을 모을 힘이 없습니다. 특히 계약에 묶여 있는 한은 영원히요."

"후우-, 그래서 국가도 방안을 준비했습니다."

"그게 뭡니까."

"B급 이상의 균열 50개만 클리어해주시면 빚을 탕감해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선소연이 또 펄쩍 뛰어올랐다.

"우리가 무슨 국가한테 결정체 가져다 바치는 노예인가요?"

"노예라니요! 국가를 위해서 한 몸 불사르는 걸 노예라고 합니까!"

둘의 설전이 또 시작되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느새 커피가 다 식어갈 찰나-

"허허- 비켜주게."

"저... 이곳에 함부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밖에서 실랑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똑-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리고,

"실례하겠소."

철컥-

한 남자의 팔을 질질 잡아끄는 이세영 사원. 그 앞에는 복귀 이후 처음 보는 최강수 아저씨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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