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육군대위, 귀환하다-28화 (28/128)

연합의 반란. (2)

"꺄악- 살려줘!"

"도망가!"

문태준은 혼란스러웠다.

운동복을 사기 위해 백화점에 들렀을 뿐인데, 눈 앞에 보이는 것은 갈기갈기 토막난 사람들의 시체였다. 매장 벽에는 피가 벌겋게 칠해져 있었고 옷가지를 널어놓은 진열장들이 쓰러져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비릿한 공기가 코를 찔렀다.

보기만 해도 구역질 나오는 상황.

아비규환(阿鼻叫喚)이 따로 없었다.

우선 최선을 다해 도망가야 했다.

헌터가 되기로 결심했던 그날 이후, 그는 미발견 균열에 대한 행동요령과 괴물들의 종류들을 숙지하고 있었다.

그래, 빛살같은 속도로 학살을 벌이고 있는 저 괴물은... '사이클롭스 베어'

현존 최강의 생물체로 알려져 있었고, 국내에는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지만, 나왔다 하면 수많은 희생자를 내는 악명높은 괴물이었다.

생존을 위협받는 사람들의 행동들은 실로 신속했다. 이미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남은 사람들은 비상구와 에스컬레이터로 우르르 도망치고 있었다. 자리가 비좁다보니 각종 욕설과 고함을 토해내며 앞사람들을 재촉했다.

"비켜! 이 굼벵이 새끼들아! 나오라고!"

"앞 사람이 앞으로 안가는 걸 어떡하라고요!"

"온다, 온다아아! 온다고 빨리 가. 이 개새끼들아!"

일대는 혼돈의 도가니였다.

균열에서 괴물이 튀어나왔을 때는 큰 소리를 내면 안된다고 배웠다. 높은 데시벨의 소리는 괴물들을 자극해 표적이 되기만 할 뿐, 조용히 피신하는 게 상책이다.

문태준은 자연스레 사람들의 무리와 떨어져 매장 구석에 몸을 숨겼다.

'지금은 건물 밖으로 도망가는 것보단 은신하는게 더 안전하겠어.'

심장이 미칠듯이 뛰었지만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본인이 TV에서 봐왔던 존경스런 헌터들은 저런 괴물들을 상대로 침착하게 대응하고 싸워 이겨냈으니까. 물론 저놈은 다른 괴물들과 격이 다른 존재이긴 하지만 말이다.

자세를 최대한 낮추고 유리창을 통해 맞은편 매장을 바라봤다. 그쪽의 상황도 참혹했다.

쾅- 쾅- 쾅-

"문열어. 이 새끼들아! 너네만 살겠다고?"

매장 창고 문을 잠그고 숨어버린 사람들.

그 문을 두들기며 살려달라 외치는 남자.

순간, 부드러운 비단을 단숨에 찢는 듯한 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남자는 쩌렁쩌렁한 비명소리와 함께 세로로 찢겨져 나갔다. 죽기 직전까지 얼마나 살고싶었는지 토막이 난 상태로도 부들부들 떨었다.

한참 사람들을 쫒아다니며 살육을 벌이던 놈이 벌써 이곳까지 왔다. 사람들이 닫아 놓은 문쪼가리는 그 괴물에겐 종이조각이나 다름없었다.

발톱 한번에 찌그러지는 창고 문.

실로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매장 안에 사람이 꽤나 많았는지 끊임없는 비명과 울음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불과 50m 정도 밖에 안되는 거리에서 벌어지는 상황이었다. 문태준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지금 도망쳐야 하나?

아니야. 이대로 숨어있으면 헌터들이 구조오지 않을까?

애초에 구조가 온다 해도 가능성이 있을까? A급 헌터 수십명이 달려들어야 겨우 상대해볼 만 하다는 흉포한 놈인데.

수많은 생각이 문태준의 머릿속을 흔들었다. 아직 비상구와 에스컬레이터에서 아우성 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태껏 빠져나가지 못한 것이다.

역시 지금은 대기해야 하는 것이 맞다.

숨도 쉬지않고 웅크려 있는데, 왼쪽 매장에서도 웅성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망가야해! 다들 도망가야 한다고!"

"어이, 아저씨. 그냥 조용히 숨어 있어요. 괜히 어그로 끌어서 다 죽이지 말고."

"뭐? 어그로? 니 눈깔은 장식이냐. 맞은편 상황 안보여? 숨어있다가 다 뒈지는거."

"뭐라고? 아저씨 말 다했어?"

두 남자의 말싸움과 말리는 사람들의 소리. 짐작컨데 10명 이상이 숨어있다.

결국 도망가는 것을 선택했는지 단체로 튀어나오는 무리들. 오른쪽 에스컬레이터 방향으로 달려나간다.

좋은 판단이다. 시끄럽게 싸우고 있을 바에야 도망가는게 훨씬 더 낫다.

유리창을 통해 그 모습을 보던 중, 여자 아이를 업고 있던 한 여성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하필 문태준이 숨어있는 매장 앞이었다.

"으아아앙. 엄마."

"도... 도와주세요."

쓰러져 도움을 요청하는 여성과 힘차게 울어재끼는 아이. 그녀는 발목을 접질렀는지 쉽게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도망가기 바쁜 사람들은 그녀를 못 본 채 했다.

"제... 제발."

"으아아앙."

위험했다.

저렇게 계속 소리를 내면 괴물을 자극하게 된다. 즉, 다음 표적은 저 아이와 엄마가 될 확률이 높다. 어떡해야 하지?

"도, 도망가 지은아."

"싫어. 엄마 같이가."

울면서 여성을 잡아 끄는 아이.

아이를 밀며 먼저 가라고 보내는 엄마.

그 모습이 문태준의 눈에 밟혔다.

'구해주자.'

깊게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문태준은 웅크려 있던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아직 괴물은 반대쪽 매장에서 학살 중이고 충분히 승부를 걸어볼만하다고 판단했다.

얼마나 멍청하고 위험한 짓인진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성과 다르게 몸이 움직였다. 문태준은 우선 아이에게 다가가 입을 틀어막았다.

"꼬마야. 조용히 해. 엄마랑 같이 나가는거야. 알겠지?"

"흐읍?"

아이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는 문태준의 눈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었다. 울음을 멈춘 것만으로도 생존 확률은 높아졌다. 문태준은 그녀에게 다가가 발목을 재빨리 살폈다.

"일어날 수 있겠어요?"

"흐...흑, 무리에요. 저는 괜찮으니까 아이만 좀 데려가주세요."

"아니요. 다 같이 살 방법이 있습니다. 제 어깨에 팔을 올리세요."

애초에 도망갈 생각이 없었다.

함께 매장 안으로 들어가 숨죽이고 시간을 벌 생각이었다. 아이가 울지 않게 하려면 여성도 함께 데려가야 한다. 세상에 어떤 아이가 엄마가 죽어가는 걸 지켜만 보고 있겠는가. 문태준은 그녀를 부축해 일어섰다.

"신속히 이동해야 합니다."

"흐윽, 네."

콰르릉-

거세게 울리는 소리에 급히 뒤를 바라보았다. 학살 파티를 끝낸 괴물이 벽을 부수고 나온 모양이었다. 그리고 놈은 정확히 우리의 위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타이밍 한 번 끝내줬다.

"제... 기랄."

"어... 어떡해."

크르르-

괴물이 자세를 낮추고 도약할 준비를 했다.

위험한 감각이 뇌를 울렸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문태준은 신속히 그녀를 매장 안으로 내팽겨 친 후 주변을 살폈다. 주변에 부러져 있는 뾰족한 의자다리가 보였다.

"아이랑 최대한 숨어요! 시간 벌어볼테니까."

그녀가 덜덜 떨면서 아이와 함께 카운터 밑으로 기어 들어가는게 보였다. 이미 괴물은 이곳의 위치를 봤다. 저 둘을 살리려면 시선을 끌어야 했다.

문태준은 봐둔 무기를 집어 들은 후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전방에 커다란 창문이 보였다.

이곳은 3층.

창을 깨고 뛰어내려도 살 수 있는 높이다.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이 땡겨왔다.

호흡이 가빠지고 폐가 터질 것 같았다.

그래도 좀만 더 빨리. 더 빨리.

창문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제발 50m만 더...

퍼억- 와장창-

순간 눈앞이 새하얘지는 고통이 일었다.

몸뚱어리가 맥없이 공중에 떠올랐다.

내부를 뒤흔드는 충격이 느껴졌다.

섬광같은 발톱으로 후려침을 당한 문태준은 매장 유리창을 깨고 벽에 틀어박혔다.

"끄허어억, 커헉"

입에서 찐득한 피가 품어져 나왔다.

놈의 발톱에 내부에 충격을 입은 듯 했고, 몸엔 유리조각들이 박혀있었다. 가슴에는 커다란 발톱자국이 나있고 그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상황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다. 놈의 시선을 끌었으니 애랑 엄마는 안전하지 않겠는가.

사실 미련하고도 멍청한 행동이었다.

제 목숨도 건지지도 못할 거면서 남을 돕다니. 그래도 웃음이 나왔다.

문태준은 떠올렸다.

헌터가 되기로 결심했던 이유를.

돈을 많이 벌어서?

명예가 따라와서?

전부 아니었다.

3개월 전.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

잠깐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에, 공원에서 갑자기 괴물이 튀어나왔다. 커다란 날개를 가지고 있는 붉은 박쥐였다.

순식간에 기다리고 있던 와이프와 딸을 덮쳤다. 끔찍한 비명소리와 육신이 뜯기는 소리. 무참히 살육 축제를 벌이는 괴물에게 달려가 온몸으로 저항했지만 무력했다. 날갯짓 한 번에 허공을 떠 10m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신고를 받고 지원온 헌터들에 의해 구조되었지만 이미 가족들은 세상을 떠난 상태였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 악랄했던 괴물이 고작 F급에서 나오는 박쥐였다는 걸. 결정체를 섭취하기만 해도 아니, 균열 내부에서 신체각성만 해도 쉽게 잡을 수 있는 쉬운 놈이었단 걸.

허탈했다.

나에게도 돈이 있었다면, 그 흔하다는 F급 결정체 하나만 있었다면! 무력하게 가족을 잃지는 않았을텐데.

처음에는 괴물들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실의에 빠져있다 보니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많은 걸 알게 되었다.나중에는 그들을 구하고 싶었다.

아니, 나와 같은 사람들이 더 생기지 않도록 돕고싶었다. 그렇게 헌터가 되기로 결심했었다.

크르르-

어느새 다가온 놈이 초침돌듯 반바퀴 돌며 그를 노려봤다. 문태준도 마주 노려보며 힘겹게 무기를 들었다.

"켈럭, 쿨럭, 곧... 만나러 갈게."

이제 곧 죽을 거란 걸 안다. 사실 3개월 전 가족들과 같이 죽었어야 했다.

여성과 아이를 구함에 후회는 없었다. 만약, 눈 감고 못본 채 했다면 죽어서도 후회했을 것이다.

괴물은 입가에 침을 질질 흘리며 다가왔다.

그러더니 갑자기 고개를 확 젖혔다.

누군가를 보고 몸을 움츠렸다.

불침 맞은 것처럼 급히 물러서기 까지 했다.

마치 공포라도 느끼고 있는 모습이었다.

문태준은 믿을 수 없었다. 천하의 '사이클롭스 베어'가 꼬리내린 강아지의 모습을 하다니.

"제기랄. 너무 늦었어."

"비상구에 사람이 너무 많았어요."

"일단 빨리 처리하자."

괴물이 바라보는 방향에서 두 남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실감 없는 상황에, 현실성 없는 대화. 목소리를 들어보니 헌터들이다.

그런데 저 괴물을 상대로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지금껏 배운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남자가 발을 박차고 가볍게 주먹을 내질렀다.

푸아악-

순간 터져나가는 사이클롭스 베어.

문태준은 넋이 나갔다. 몸에 느껴지는 통증을 잊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쿨럭, 쿨럭... 저...게 무슨?"

"괜찮으세요?"

옆에 있던 여자헌터가 나한테 다가왔다.

그녀가 손을 가볍게 떨쳐냈다.

화려한 물방울들이 소용돌이 치며 그의 몸을 덮었다. 유리조각들이 뽑혀 씻겨나간다.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는다.

그 희귀하다는 물의능력이긴 한데...

이런 압도적인 치유능력은 들어본 적도, 배운적도 없었다. 그러나 가슴팍에 느껴지는 통증은 그대로다.

"상태가 안좋아요. 외상은 치료했는데 내부가 많이 상한 것 같아요."

"어... 떻게. 된거..."

문태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말이 점점 나오지 않았다.

허파가 찢겨진 것처럼 아파왔다.

괴물의 피를 털어내며 남자 헌터가 걸어왔다. 그의 손에는 시뻘건 결정체가 들려있었다.

'사이클롭스 베어'의 결정체.

최상등급의 결정체로 세계헌터기구에서 측정한 가치만 100억 달러. 이제 우리나라도 저 결정체를 먹는 헌터가 나오겠구나.

그럼 뭐하나.

난 이렇게 죽어가는데.

여자가 남자를 보고 말했다.

"이대로라면 5분도 못넘길거예요."

"살릴 방법이 없나?"

"그게... 하나 있기는 한데. 장담은 못해요."

둘은 심각한 표정으로 떠들어 댔다.

고막이 상한 듯 청각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시야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죽음이 다가오는게 느껴졌다.

순간 남자의 진중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름이 뭡니까?"

"쿨럭, 문...태.. 쿨럭."

문태준은 대답하려 했으나 정신이 없었다.

평소 존경하던 상위등급헌터들.

그럼에도 저 남자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

그러나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본인이 아는 그 누구보다 강한 헌터다. 죽기전이라도 그에겐 최소한의 예의를 보이고 싶었다.

"준, 쿨럭..."

"문태준 씨. 혹시, 헌터가 되보실 생각 있으십니까? 있으면 눈을 두 번 감빡여 주세요."

"......"

헌터.

하고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화려한 인맥이나 많은 돈이 있어도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다죽어 가는데 헌터는 무슨 헌터. 그래도, 할 수 있다면 하고싶다. 내 소중한 것들을 앗아간 빌어먹을 괴물들을 찢어버리고 싶다.

문태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두 번 감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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