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의 반란. (1)
오후 1시.
선소연에게 쉬고 있으라 하고 나왔다.
그녀는 밤새 몸을 뒤척이며 악몽을 꿨다. 난 그 모습에 잠이 안와 하루 종일 그녀를 끌어안고 보살폈다. 아침에 일어나서 활기차게 괜찮은'척'을 했지만 그녀에겐 휴식이 필요해 보였다.
점심에도 영업하는 일식집.
오늘은 최강수가 소개시켜준 헌터와 접선하기로 한 날이다. 결정체가 오가는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눠야 하기에 룸 있는 곳으로 예약했다.
미리 입구에 도착해 있는 여성이 보였다.
가슴에 달려있는 녹색 뱃지.
C급 헌터의 상징이다.
"혹시... 강현 씨 되시나요?"
"아, 네. F급 헌터 강현입니다."
"반가워요. C급 헌터 주유라 입니다. 한국헌터협회 총무를 겸하고 있어요. 들어가실까요?"
우리는 가벼운 악수를 하고 식당에 들어갔다. 그녀는 차분하면서도 단아한 인상이었다. 뭘 하든 확실하게 할 것 같은 똑 부러진 느낌.
"회장님께 말씀 많이 들었어요. 은인이시니 정중히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은인은요 무슨. 그냥 서로 돕고 돕는 사이입니다."
룸은 온돌방 구조였고 방음이 확실하도록 독립되어 있었다. 그리고 식탁에는 깔끔하게 데커레이션 된 생선회와 각종 산해진미가 나열되어 있었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곳.
내 폭력적인 식성을 생각했는지 강수 아저씨가 입김을 넣은 것 같았다.
그나저나 회장님이라고?
연합 만든다고 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회장님 소리를 듣다니. 그래도 능력 있는 헌터들을 많이 모집한 것 보면 꽤 수완이 좋은 모양이다.
게다가 말 한마디 했다고 C급 헌터가 F급 헌터를 상대로 예의를 차리지 않는가. 집단 내에서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맞은편에 다소곳이 앉은 주유라가 미소를 지었다. 비행기에서나 볼듯한 깔끔한 영업용 미소였다.
"술 하실 건가요?"
"아, 술은 괜찮습니다. 일찍 들어가 봐야 해서요."
"음식이 너무 많죠?"
"음... 한 끼로 적당하네요. 좀 부족한 것 같기도 하고."
"... 농담이시죠?"
난 대답하지 않고 음식을 먹었다.
사실 아까부터 많이 배고팠다.
어제부터 입맛 없는 선소연 때문에 제대로 식사를 못했기 때문이었다.
"정말 맛있게 드시네요. 천천히 드세요."
"아, 실례했습니다. 너무 배고파서."
"괜찮아요. 그럼, 혹시 말씀하셨던 물건을 좀 볼 수 있을까요?"
나는 주머니에서 결정체를 꺼냈다.
옅은 붉은색의 작은 돌멩이.
"여기 있습니다."
"흐음... F등급이네요."
난 결정체를 넘겨주었고 그녀는 보자마자 등급을 맞춰냈다. 결정체를 많이 다뤄본 전문가의 솜씨였다.
D급에서 F급까지의 결정체는 색이 비스름해서 일반인은 측정기 없이 판별하기 힘들다고 한다. 높은 등급일수록 더 붉기 때문에 C급 이상부터는 차이가 난다지만.
"이런 건 금방 팔려요."
"낮은 등급인데도요?"
"네. C등급 이상부터는 가격이 확 뛰기도 하고, 얻은 헌터들이 잘 팔려고 하지도 않거든요."
"왜요?"
"아, 모르시겠구나. 결정체가 헌터들 각성 능력 성장에 직빵이거든요."
"처음 듣는 말이군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결정체로 헌터의 능력을 성장시킨다니? 나는 호기심이 동했다.
그녀는 친절하게 설명했다.
정리하자면 각성한 헌터들은 본인의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첫 번째, 꾸준히 능력을 사용할수록 강화된다. 그래서 연합 내 대다수의 헌터들이 매일 단련의 시간을 가진다고 했다.
두 번째, 결정체를 더 먹으면 된다. 그런데 5번 이상부터는 효과가 미미하다고 했다. 그 이후부터는 훈련을 통해서만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도 알려진지 얼마 되지 않아, 상위급 헌터들끼리만 공유하는 정보라 했다.
"신기하네요. 결정체를 먹을수록 능력이 성장한다니."
"그러니까 헌터들은 낮은 등급 결정체는 잘 먹으려고 하질 않아요."
그럼 F급 결정체를 다섯 번 먹고 나면 A급 결정체를 먹어도 성장 효과가 없는 건가? 성장의 증가폭은 F급과 A급과 차이가 있을까? 있다면 얼마나 클까?
"다섯 번의 한도가 결정체의 수준과 상관이 있는 건가요? 그리고 각 결정체마다의 성장폭은?"
"그게... 사실..."
그녀가 뜸 들이며 말을 이었다.
"저희도 잘 모르겠어요. 아무도 실험해보려고 하는 사람이 없어서요."
그녀의 말은 이랬다.
우선 알려진지 얼마 안 된 정보였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가 없었다. 또 본인의 몸은 하나뿐인데 누가 증명되지도 않은 F급 결정체를 5번 먹고 실험해 보겠는가.
증가폭에 대한 확신도 없이.
그것도 상급 헌터들이 말이다.
누가 책임져 주는 것도 아닐 테고.
"그럼 F급 결정체는 왜 잘 팔린다는 건가요?"
"기업체에서 연구용으로 많이들 사 가요. 헌터 할 생각은 없는데 각성만 하고 싶은 분들도 사가구요. 특히 의료용으로 요즘..."
"아... 아 이해했습니다."
난 그녀의 말을 끊었다.
애초에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였으니까. 그녀가 받은 결정체를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
"이건 빠르게 처리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장기적으로 거래할 생각 있으시다며요. C급 이상 결정체부터는 연합에서 블랙마켓 시세 이상으로 구매해드릴 수 있어요."
"음? 연합에 돈이 많나요? 최강수 아저씨는 연합 유지한다고 맨날 죽는소리하시던데..."
"어머, 회장님이 그러셨다구요? 그럴 리가요. 국내 블랙마켓 대다수의 공급이 연합에서 이루어지기도 하고, 당장 기업체 기부금만 모아도 조 단위가 넘을걸요?"
"허어, 그 정도인가요?"
"그렇죠. 국내 유명 상위 헌터들이 전부 연합으로 모이고 있어요. 영향력이 점점 커지는 중이죠. 기업들 입장에서는 정부가 결정체를 통제하는 걸 고깝게 여기다 보니 많은 지원들이 들어오고 있구요."
그렇다.
각 기업 전략본부에서는 헌터 연합의 중요성을 빠르게 파악했을 것이다. 나중에 조금이나마 잘 보이려고 돈을 가져다 바치는 거겠지.
연합은 헌터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단체일 뿐, 사익을 추구하는 단체가 아니다. 만약 연합 내 헌터들이 담합하여 정부에게 통제권을 위임받게 된다면?
헌터 산업에 진출하는, 혹은 헌터를 고용하고 싶은 기업들은 연합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물론 아직 이렇다 할 큰 활약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연합에 돈이 그렇게 많았다니...
최강수 아저씨는 그냥 날 돕고 싶은 마음에 약한 소리를 했던 것이었다.
"대단하네요. 벌써 세력을 이 정도로 일궈내다니..."
"흠흠... 연합이 대단하긴 하죠."
"아니, 최강수 아저씨요."
"아, 회장님이요? 정말 엄청 나시죠. 사람도 잘 다루시지만 무력은 벽이 느껴질 정도예요. B급 헌터 신데도 A급 헌터들이 아무도 못 건드린다니까요? 저번에 연합 내 대련에서 A급 헌터 3명을 신체능력만으로 압도하시는데... 햐- 얼마나 멋있으시던지."
두 손을 모으고 말하는 주유라의 표정이 오묘했다. 그녀에게서 봄바람의 냄새가 솔솔 났다.
나는 피식 웃고 밥을 마저 먹었다.
주유라는 결정체 대금 지급에 관해서 몇 마디 더 설명해주고 갔다. 국가 조사 때문에 계좌로 큰돈이 오고 갈 수 없다는 것. 연합 측에서 조만간 대책을 마련할 거라고 했다.
즉, 이번 거래에 한해서는 대금을 골드바로 지급하기로 했다. 1kg에 6,000만 원 정도니 거래하기엔 오히려 현금보다 편했다.
***
"와, 상쾌하네요. 이래서 난 산이 좋더라."
선소연이 기지개를 쭈욱 펴며 말했다. 우리는 동네 뒷산 봉우리에 올라와 있었다.
잘 터있는 등산로가 없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겨울이라 그런지 이른 저녁시간임에도 해가 넘어가 있었다. 사실 시간대가 시간대인지라 발길이 닿는 곳이었어도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나도 좋아했는데, 산."
"지금은 안 좋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네요?"
"그치. 이젠 못하잖아. 암벽등반..."
"아... 하긴 저도 등산할 때 느꼈었던 그... 뭐라 해야 하지...?"
"한계? 극복? 보람? 성취감?"
"네, 그런 거요. 그런 게 없어서 아쉽긴 해요. 힘이 하나도 안 드니까... 그래도 저는 산 자체가 좋아요."
선소연은 금방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일식집에서 포장해온 음식을 맛있게 먹고는 산책할 겸 밖으로 나왔다. 입맛이 돌아온 것을 보니 다행이었다.
"슬슬 준비하자."
"네? 뭘요?"
"연습해야지. 각성 능력."
"아... 그냥 산책 나온 거 아니었어요?"
"겸사겸사하는 거지. 오피스텔에서 할 수는 없잖아."
"후우- 알겠어요."
그녀는 돌멩이 하나를 주웠다.
각성 능력 연습 겸 미발견 균열 탐지하기. 오피스텔에서 연습하다간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기에 인적이 드문 산에서 하는 게 낫다.
"그럼, 던질게요?"
"오케이."
처음처럼 긴장되지는 않는다.
그녀는 예전처럼 힘차게 투척했고, 다시금 몸에 느껴지는 기묘한 감각을 찾을 수 있었다. 난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눈을 감고 집중했다. 그녀가 나직이 물었다.
"느껴지는 거 있어요?"
"기다려봐... 동쪽 3km, 남서쪽 2.5km, 북쪽 1.5km... 더 이상은 범위 밖이야. 느껴지는 게 없어."
"잠시만요..."
그녀는 스마트폰을 들어 균열 게시판을 탐색했다. 아직 조작법이 미숙한지 낑낑거렸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있어요!"
"뭐가 있어?"
"미발견 균열이요! 남서쪽, 북쪽에는 신고된 균열이 있는데 동쪽에는 최소 10km 밖에 있어요."
나는 눈을 빛냈다. 잘하면 오늘 결정체 하나를 또 얻을 수 있겠다.
"동쪽 방향 3km에 분명히 느껴져. 가보자."
"네."
미발견 균열을 찾았을 때는 지체 없이 이동해야 한다. 만일 일주일이 흐른 균열이라면 괴물이 튀어나올 위험도 있고, 누가 발견하기 전에 클리어해야 결정체를 확보할 수 있으니까.
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난 눈을 감고 감각을 유지했고, 그녀가 날 끌어안은 후 점프했다. 말이 점프였지 거의 하늘을 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점점 균열이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다.
"여기야. 100m 앞 정도."
"네!"
우리가 착지한 곳은 건물의 옥상이었다.
아름답게 조경되어 있는 옥상정원.
몇몇 사람들도 보였다.
"으아아, 깜짝이야. 뭐야... 저 사람들 하늘에서 떨어졌어."
"헌터인가 봐 무슨 일이지?"
놀란 듯 웅성웅성 거리는 사람들.
난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눈을 감고 있었고 선소연이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실례합니다. 혹시 여기가 무슨 건물인가요?"
"여... 여기 그냥 백화점인데요?"
"감사합니다."
난 눈을 떴다.
균열의 위치는 이곳 아래다.
발밑에서 느껴지는 친근한 기운.
"아래에 있어. 건물 내부에 있나 봐."
"으잉. 그게 가능해요?"
저녁시간대에 백화점은 유동인구가 엄청나다. 특히 이토록 큰 건물이면.
그런데도 발견되지 않은 균열이 있다니. 인적이 드문 창고나 임대 중이라 비어있는 매장 내부를 뒤져야 한다.
"한번 찾아봐야지. 내려가보자."
나와 선소연은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신속히 이동했다. 옥상 출구로 나가자 보이는 푸드코트와 북적이는 사람들.
"따듯하게 보온된 빵 떨이합니다. 손님 시식해 보세요."
"남은 만두 대량 세일합니다!"
저녁 시간대라 그런지 각종 음식들을 싸게 팔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도록도록 굴렀다.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들렸다.
밥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정신 차려. 비상구 계단으로 가자. 내려가야해."
"스르릅- 네에."
"잠깐만."
"왜요?"
아래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이런, 능력 발동 시간이 끝난 것 같다. 다시 감각을 찾아와야 하나?
이곳에서는 안 된다.
소연이가 돌멩이를 던지는 순간 한바탕 난리가 날 것이다. 던지는 여파만으로도 방탄이 아닌 약한 유리나 전구들은 깨져버릴 것이다.
"감각이 완전히 사라졌어."
"그럼 어쩌죠? 봉우리로 다시 갈까요?"
"가봤자 여기 오는 시간 동안 다시 사라지겠지. 어쩔 수 없어.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찾아보자."
우리는 먼저 비상구 계단을 찾기 위해 발을 옮겼다. 그 순간,
쿵-
백화점이 크게 흔들렸다.
웅성웅성.
갑작스런 흔들림에 중심을 잃은 사람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뭐... 뭐야? 지진인가?"
쿵-
한 번 더 흔들렸다.
느낌이 이상했다.
청각을 집중했다.
시끄러운 대중들 속에서 위화감이 느껴지는 소리가 조금씩 섞여 들렸다. 이곳 층 사람들이 아닌 한참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고음. 사람들의 째지는 비명소리와 신음소리, 그리고 괴물의 울음소리였다.
[ 비상상황입니다! 매장 내에 계신 고객님들은 신속하게 대피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비상상황입니다! 매장 내... ]
다급한 안내방송음.
나와 선소연은 예측할 수 있었다.
미발견 균열에서 괴물이 튀어나왔다는 것을.
"일... 일단 빨리 가야 할 것 같은데요?"
"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