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육군대위, 귀환하다-26화 (26/128)

첫 경험. (3)

가슴이 이글거렸다.

심장에 있는 불덩이가 커지는 느낌.

그렇다. 나는 분노하고 있었다.

노인의 잔혹한 살인 계획에.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갔다.

쓔앙!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푸른빛을 머금은 화살이 날아왔다.

하품 나올 정도로 느리다.

그렇다고 피할 수는 없었다.

선소연은 걱정 없다지만 뒤에 있는 유현동이 어떤 피해를 입을지 모르니.

"형님!"

유현동의 외침을 뒤로하며 화살에 손을 뻗었다.

콰앙!

"안돼!"

내 손에 닿는 순간 화살이 폭음을 내며 터졌다. 익숙한 화약 냄새와 터진 화살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유현동이 울부짖었고 선소연이 괜찮다고 달래는 소리도 들렸다.

동굴을 가득 채우는 연기.

난 계속 천천히 걸을 뿐이었다.

"무... 무슨! 놈. 불의 능력자가 아니었구나!"

멀쩡히 걸어 나오는 내 모습을 봤는지 당황한 노인의 목소리가 동굴을 울렸다. 뭔가 굉장한 착각을 하고 있는 듯했지만.

육체는 멀쩡했으나 옷이 걸레짝처럼 찢어져 있었다. 산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상품인데 짜증이 일었다.

노인이 다급하게 화살을 빼드는 순간-

나는 발끝에 힘을 주어 바닥을 찼다.

쓔웅-

순식간의 노인의 앞에 도착해 활을 잡아 뺏었다.

"뭐... 뭐야!"

뿌드득-

나무로 된 활을 간단하게 부숴버리고 노인의 목을 살짝 움켜쥐었다. 세게 잡으면 한 번에 부러질 것 같이 빈약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이 올지 전혀 예상치 못한 듯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커... 커헉"

"이 쓰레기 같은 새끼."

노인은 발버둥 쳤다.

곧 힘으로 안된다는 걸 느꼈는지 손을 늘어트리며 가래 끓는 소리를 했지만.

그대로 동굴 벽을 향해 밀친 후 화살을 꺼내 촉을 목에 겨눴다. 짐작컨데 이 노인의 각성 능력은 화살 폭파. 더 이상 허튼짓은 못할 것이다.

"크흐흐... 애송이. 한 수를 숨기고 있었구먼. 그래.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려면 무기 하나쯤은 감추고 있어야지..."

"헛소리 늘어놓지 마라. 쓰레기."

내 말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여유로운 척 조용히 웃었다.

"끌끌 죽여보게. 죽일 수 있으면."

"......"

노인이 목을 길게 뺀 후 화살촉을 향해 들이밀었다. 살짝 찔린 듯 피가 흘러나왔다.

이 노인.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것 같다.

어설픈 허세나 부리고.

"자네... 사람 죽여본 적은 있나?"

살인 경험?

날 풋내기로 보나 본데.

내 눈엔 보였다.

대담한 척하지만 떨리는 노인의 눈빛.

분명 두려움에 떨고 있다.

"너 같은 사람은 죽여본 적 있지."

"크흐... 허세는..."

"레바논 남부지역에서 무장세력 2명, 남수단 구출작전 간 갱단 무리 3명. 이 손으로 직접 죽였지. 항상 잊지 않고 있다. 후회한 적도 없고."

"......"

노인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목을 뒤로 다시 뺏다.

"큼큼, 내가 실수한 것 같군. 이보게, 내 결정체를 넘겨주지. 이번 일은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겠네. 모아둔 돈도 꽤 있..."

난 겨눴던 화살촉을 헛소리하는 노인의 허벅지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부드럽게 근육을 뚫고 나온 화살이 동굴 벽까지 박혔다.

손에 피가 튀었다.

"끄아아아아악!"

노인이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괴로운지 허벅지를 부여잡고 몸을 비틀었다. 벽에 박힌 화살 때문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난 여유롭게 노인의 등에서 새로운 화살을 하나 더 꺼냈다.

"우으으윽... 이... 이보게 잠깐만."

"왜 그러지?"

"살... 살려주게. 크흐으윽..."

꺼내든 화살에 시선을 고정시킨 노인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사람을 죽이려 해놓고 고작 허벅지에 화살 하나 박혔다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빌다니. 좀 전까지 보였던 카리스마는 다 사라지고 없었다. 남의 목숨은 하찮고, 본인의 목숨은 가치 있다는 건가.

"그깟 물욕에 영혼을 팔아놓고 살려달라?"

"내... 내가 잘못했네."

노인은 고통 어린 신음과 울음이 뒤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F급 결정체 하나 얻겠다고 목숨 셋을 앗아가려 했다. 문제는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는 것. 분명 우리 말고도 다른 피해자가 있었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유현동에게 살인 제의.

타인의 목숨 가지고 장난까지 칠 정도로 추악한 노인이었다.

내가 화살을 들어 노인의 목을 다시 겨누자-

"오빠."

뒤에 선소연이 굳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손끝이 떨리는 게 보였다.

"왜. 하지 말까?"

"......"

궁금했다.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할지.

사실 노인의 처분은 밖으로 끌고 가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난 죽이는 것을 택했다.

앞으로의 과정이 험난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세상엔 쓰레기 같은 놈들이 넘쳐나고, 그 사람들 속에서 외계 침공에 대비해야 하니까.

그 많은 악인들을 하나하나 잡아다 경찰에 넘길 수는 없다. 후환을 남기기도 싫었고, 각종 조사로 시간을 뺏기기도 싫었다.

"아니요. 하려면 제대로 해요. 어설픈 자비 보여주지 마세요."

한참 고민을 하던 그녀의 대답이었다.

그녀는 정도(正道)가 아닌 패도(覇道)를 선택했다. 마음에 드는 답변이었다.

난 들고 있는 화살을 그녀에게 넘겼다.

"네가 해."

"......"

그녀는 말없이 화살을 받아들었다.

떨리던 손끝이 화살까지 전해져왔다.

힘든 일인 건 안다.

나도 처음에 그랬으니까.

하지만 날 돕겠다면 이 정도 각오는 되어있어야 한다.

"왜, 자신 없어?"

"아... 니요. 할 수 있어요."

그녀는 받은 화살을 천천히 노인의 목에 겨누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하려는 일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보게... 아가씨. 살려주게... 내 앞으로는 착하게 살겠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노인이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은 맞는 것 같아요..."

"잠... 잠깐만..."

푸욱-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힘을 주어 찔렀고 피가 터져 나왔다. 정확히 목뼈를 노리고 찔렀는지 노인은 즉사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소연의 어깨.

찝찝하고 씁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리들의 첫 균열 사냥은 참혹하고 처참했다. 변해버린 세상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느꼈고, 지금의 괴로움은 앞으로의 여정을 위한 양분이 될 것이다.

***

우리는 결정체를 들고 나왔다.

균열에서는 살아있는 생명체만 빠져나올 수 있다. 즉, 노인의 시체는 영원히 부서진 균열 속에서 머물러 있을 것이다.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쓸쓸하게 부식되겠지.

유현동과는 게시판 친구 등록을 한 후 헤어졌다. 마음에 드는 소년이었다. 차후 집단 창설 시 영입 1순위로 올려두기로 했다.

이곳에서 있었던 일은 각자 비밀로 하기로 했고, 결정체의 처분은 내가 맡기로 했다.

독식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F급 결정체일 뿐이다.

안산 자락길과 오피스텔의 거리는 가깝다. 나와 선소연이 발 한 번 구르면 닿을 수 있는 거리. 그러나 동네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하기 싫다는 그녀의 말에 차를 타고 다녔다.

힘을 숨길 생각은 없었다.

다만, 힘을 드러냄으로써 오는 각종 관심이 귀찮았을 뿐. 각종 기자들의 취재와 관리국의 집요한 조사, 고위 인사들의 초청, 광고 제의, 시민들의 관심 등 생각만 해도 진저리 났다.

선소연은 어떨까.

빛나는 외모로 더 피곤해질 것이다.

요즘 잘나가는 연예인들보다 상급 헌터가 더 팬층이 두껍다는 소리도 있으니.

그나저나 아까부터 그녀는 조수석에 앉아 말이 없었다. 나는 미발견 균열에서 가지고 나온 결정체를 만지작거리다가 선소연에게 건넸다.

"결정체 좀 들고 핸드폰 좀 최강수 아저씨한테 걸어줘 봐."

"잠시만요."

선소연은 본인의 핸드폰으로 최강수에게 연결했다.

뚜우- 뚜우- 딸칵-

- 허허, 아가씨가 웬일이오?

"저 현입니다. 아저씨."

- 그렇구먼! 잘 지냈나.

"네. 아저씨는요. 단체 만드는 일은 잘 되어가십니까?"

- 나야 항상 똑같지. 지금 부산에 출장 와있는데 헌터들 영입하랴, 변호사 선임하랴 바쁘네 바뻐. 그래, 무슨 일로 전화했는감?

"그때 아저씨가 말했던 블랙마켓에 대한 정보 좀 얻으려구요."

- 뭐 미발견 균열이라도 찾았는가?

"네, 그렇게 됐습니다. 정부에 신고하지 않고 처분 좀 하려는데..."

- 으으으음... 그런 거라면 내 도와줄 수 있네. 연합 회원 중 서울에 있는 헌터가 있는데 블랙마켓 쪽 전문가야.

"그렇습니까?"

- 믿고 맡겨도 좋네. 내 보증하지. 그 친구한테 자네 번호를 알려줄테니 한 번 만나보게.

결정체 처분 관련으로 머리가 아팠었는데 잘 됐다. 블랙마켓 쪽 전문가가 있었다니.

오면서 쭉 생각해봤다.

내가 E급 헌터로 승급해서 얻을 이득이 없다. 정부의 관심과 통제만 높아지겠지. 긴장감도 없는 낮은 등급의 균열을 클리어하는 것이 시간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능력.

선소연을 통해 활성화하면 미발견 균열을 찾아낼 수 있다. 차라리 그것들을 찾아 클리어하는 게 낫다.

블랙 마켓을 통해 자금을 모아 발판을 마련하고, 후에 단체 설립 시 직원들을 각성시킬 결정체들을 미리 선점해 놓는 것이다.

"혹시 앞으로도 계속 미발견 균열에서 나오는 결정체의 처분을 도와줄 수 있습니까?"

-미발견 균열이 발견하고 싶다고 쉽게 발견되는 게 아니야. 경쟁률이 얼마나 심한데. 게시판 사냥은 안 하고 그것만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는 놈들도 있다네.

"그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호오, 특별한 방법이라도 있나?

"영업 비밀입니다. 아저씨."

-크흠... 결정체만 가져오면 우리야 좋지. 수수료 1%만 떼어줘도 엄청난 이득일세. 연합 유지하는 데 도움도 되고. 물론, 많이 가져온다는 전제하일세.

"5% 드리겠습니다. 그 친구 2% 떼주고 연합에 3% 가져다 쓰십시오. 대신 세금 문제랑 이것저것 들키지 않도록 확실하게 처리 부탁드립니다."

-허허, 역시 화끈하구먼. 좋지. 내 빨리 서울로 올라가야겠군. 올라가면 연락 주겠네. 좋은 데로 모시지.

"네. 그때 뵙겠습니다."

***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서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문제는 결정체를 둘 곳이 없다.

일단 식탁 위에 올려놓고 결정체를 모아 둘 금고형 가방을 주문했다.

하루 종일 힘없던 선소연은 씻지도 않고 매트리스에 누웠다.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있는 그녀.

강설아랑은 다르게 그녀에게 큰 짐을 지어준 것일 수도 있다.

직접 살인을 시켰으니.

난 가볍게 찬을 꺼내고 식사 준비를 했다.

어쨌든 힘들 땐 밥심이니까.

"밥은?"

"미안해요. 입맛이 없어요."

"그래도 좀 먹고 자."

"......"

미동이 없다.

생각보다 더 충격받은 듯했다.

"후회돼?"

그 말에 흠칫 떨리는 이불.

곧이어 이불을 내리고 고개를 빼꼼 내밀어 내 눈을 쳐다봤다.

"아니요. 후회하지 않아요."

의외로 선선히 말했다.

단호한 눈빛이었다.

"다만... 그냥..."

"그냥?"

"누구에게나 첫 경험은 아프잖아요. 오늘 하루 만요. 내일부터 다시 정신 차릴게요."

"......"

사실 알고 있다.

그녀가 누구보다 용기 있고 강한 여전사라는걸. 다만, 그녀의 말 따라 누구나 겪는 첫 경험일 뿐이었다.

그녀에게 해줄 위로의 말은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 해결 될 일.

"그래, 푹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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