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육군대위, 귀환하다-25화 (25/128)

첫 경험. (2)

"제기랄. 귀찮게 됐구먼. 동굴형 균열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노인은 여전히 여유로워 보였다. 주변을 바라보니 미로 형식의 좁은 동굴 속이었다. 양옆에는 횃불 형식으로 불이 나열되어 있어 어두컴컴하단 느낌은 들지 않았다.

유현동은 몸을 한참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신체 변화에 적응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선소연과 나는 이미 신체 각성이 극에 달한 상태라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체격만 좋으면 뭐 할꼬. 몸에 밸런스가 있어야지. 아가씨도 멀쩡히 있는데 젊은 사내놈이. 쯧쯧."

혀를 찬 노인이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거 불 쓴다는 양반이랑 꼬맹이는 전방에서고, 아가씨는 내 옆에 서게."

남자 둘을 앞에 세우고 뒤로 빠지는 노인을 보며 유현동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급히 나섰다.

"저, 저기요."

"아가씨는 등에서 화살 좀 꺼내줘. 그리고 물의 능력을..."

"저기, 할아버지!"

"왜. 인마!"

노인이 버럭 소리쳤다.

"왜 형님이랑 저만 앞에 서야 합니까."

"그럼 활잡이가 전방에 설까? 아가씨는 물 능력을 화살에 버프 걸어줘야하고, 불 양반은 쓰잘대기 없는 능력이니 몸으로 때워야 하는데, 그럼 저 양반 혼자 세울까?"

"아... 아니 그건 아닌데..."

"그만 징징대게, 잊었나? 들어오는 순간부터 내 지시에 따르기로 했던 거."

"네..."

풀 죽은 유현동이 불안한 표정으로 내 옆에 붙었다. 긴장한 듯 몸이 경직되어 있었다. 진형을 맞추고 활시위에 화살을 걸은 노인이 전방을 노려봤다.

"어이, 꼬맹이. 동굴형 균열에는 어떤 괴물이 나오는지 알고 있나?"

"네. E급이나 F급 균열에선 붉은 박쥐나 붉은 개미 중 하나가 나온다고 배웠어요."

"정확하네, 그리고 놈들은 까다롭지. 다른 놈들이랑 다르게 단체 공격을 하거든."

"......"

"충분히 잡을 수 있을 정도니 너무 걱정하진 말게. 몸으로 버텨만 주면 내가 다 처리할 수 있어."

자신감에 가득 찬 노인의 말을 끝으로 우리는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갈수록 비릿한 공기가 코를 찔렀다.

키힉- 키르륵-

곤충들의 소리가 들린다.

뒤를 돌아 소연을 바라보니 그녀도 들은듯했다. 유현동과 노인은 아직 못 들었는지 천천히 걸음을 지속했다.

굳이 말해줄 필요성을 못 느꼈다.

엄청 멀리 있기도 했고,

아무것도 아닌 놈들이니까.

한참을 걸었다.

놈들의 울음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렸다.

"멈추게들."

노인이 드디어 알아챘나 보다. 놈들도 우리를 눈치챘는지 가까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두드드드-

동굴 바닥이 들썩거렸다.

작은 돌멩이들이 튀어 올랐다.

유현동이 춤을 추듯 기우뚱 발을 헛디뎠다.

"뭐, 뭐예요"

"붉은 개미다. 준비해!"

노인이 일갈하며 왼쪽 무릎을 땅에 대고 자세를 잡았다.

나는 전방을 바라봤다.

어두운 그림자들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창졸간에 돌진해오는 괴물들.

사람만 한 개미 4마리와 동굴을 가득 채우는 거대 개미였다.

키르르륵- 키릭-

"으, 으으아아아아!"

유현동이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공룡형 괴물만 잡다 곤충형을 보니 굉장히 징그러웠다. 유현동은 본능인지 훈련된 건지 손을 급하게 뻗었다. 밝게 번쩍이며 앞으로 뻗치는 푸른 전류. 대차게 전기를 쏘아댔다.

빠지직- 빠지지직-

앞에서 달려오는 불개미 두 마리가 순식간에 타버렸다. 숫제 불에 구은 오징어처럼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나름 괜찮은 능력이라 생각했다.

"제법인데 애송이! 아가씨 버프 걸어줘!"

"네에."

소연이 여유롭게 손을 뻗어 물줄기를 화살에 담았다.

신기했다.

그녀는 배운 적도 없는 능력을 어찌 저렇게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걸까.

푸른 물로 넘실거리는 화살을 본 노인이 힘을 주어 시위를 당겼다. 괴물이 다가옴에도 흔들림 없는 깔끔한 자세였다. 옆에 서있는 그녀 역시 긴장감 하나 없는 모습이었다.

슈웅-

화살이 회전을 하며 세차게 날아갔다. 나와 유현동을 지나 놈들의 몸에 닿는 순간.

콰앙!

마치 근접 유탄처럼 폭발했다.

남은 2마리와 거대 개미가 불현듯 한 번에 터져 나갔다. 뚜껑 없는 믹서기에 토마토를 가득 채워 돌리듯 핏물과 가죽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나는 가만히 서있었을 뿐인데 상황이 한 번에 정리됐다. 유현동이 그 광경을 보고 놀란 듯 가래 끓는 소리를 냈다.

"대... 대단해요!"

"아... 니 무슨 위력이..."

노인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선소연을 쳐다봤다. 아무래도 소연의 버프가 평소보다 더 강한 위력을 내게 한 듯싶었다.

전방을 바라보자 거대 개미가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갈기갈기 찢어져있었고, 그 사이에 작은 붉은빛 결정체가 보였다. 결정체가 저렇게 생긴 거로군... 처음 봤다.

내가 집으려 다가가자,

"잠, 잠깐. 거기서게!"

음?

만지면 안 되나?

내가 의문을 가지고 잠시 서자 노인이 말을 이었다.

"아가씨 버프 한 번만 더 걸어줘 보게."

"왜요?"

"잔말 말고 어서!"

소연이 손을 뻗어 물줄기를 화살에 심었다. 그러자 노인은 활시위를 당겨 나와 유현동을 향해 겨눴다.

"잠... 잠깐만요! 뭐예요. 할아버지!"

"미안하네."

"네?"

"자네들은 여기서 죽어줘야겠네..."

***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일까.

지금껏 잘 설명해주며 이끌어놓고 갑자기 죽어야 한다니? 유현동과 선소연은 눈이 동그래졌고 난 재미있다는 듯 상황을 지켜봤다.

"아가씨도 저쪽으로 붙게."

노인이 고개를 까딱거렸다.

선소연이 '어떻게 할까요?'라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일단 어떤 상황인지 지켜보기로 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연이가 내 쪽으로 붙자 유현동이 노인의 방향으로 손을 뻗었다. 손에는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것 같은 시퍼런 전류가 흘렀다.

"아까부터 저 할아버지 맘에 안 들었어요. 음침하게 생겨가지고는!"

"잠깐, 기다려봐 현동아."

나는 왼손으로 유현동을 저지하고 앞으로 나섰다. 저 노인이 왜 우리를 공격하는 건지 궁금했다.

"어르신. 갑자기 왜 그러시는 겁니까."

"크흐흐- 곧 죽을 것들이 그건 알아서 뭐 하려 그러누."

"이해가 안 돼서요. 어차피 F등급 균열이고 게시판에 기록이 다 되어있습니다. 정부 조사 나오면 살인 혐의로 기소될 텐데..."

D급 헌터가 신입 3명을 대리고 들어갔는데 혼자 살아나온다. F급 균열의 난이도는 인원만 갖추면 쉽게 클리어할 수준이었으니 충분히 의심받을 것이다.

"미안한데, 잘못 짚었네. 여긴 미발견 균열이야. 자네들이 이곳에서 죽으면 그냥 실종처리 되겠지. 아무도 모를걸세."

"......"

"끌끌- 정부는 그냥 D급 헌터 한 명이 결석해 사냥이 취소된 줄 알 거야."

사정 생겨 못 온다던 D급 헌터 역시 노인의 수작이었다.

그나저나 이곳이 미발견 균열이라니?

분명 신고된 F급 게시판을 보고 신청했었는데. 안산 자락길 쪽에 있던 균열이었다.

"어쩐지, 게시판 정보랑 다른 방향으로 갈 때부터 수상했었는데... 형님 제 뒤로 피하세요!"

유현동이 손을 재차 뻗으며 외쳤다.

얼 타는 모습만 보여주더니 제법 남자답다.

나는 상황을 정리했다.

그렇다면 저 노인은 미발견 F급 균열을 먼저 발견했고, 혼자서 F급 균열을 처리하기엔 부담감이 있으니 최소한의 인력 보충을 위해 신입들을 끌고 와서 방패로 삼은 거다? 하긴 동굴형에서 5마리가 한꺼번에 달려들면 D급 헌터라도 힘들어 보였다.

마침 근처에 F급 균열도 있었고, 유인하기 딱 좋았겠지. 사전조사도 안 하고 기본이 안됐다며 투덜거리던 노인. 다 꾸며낸 말이었던 건가. 상당히 전문적인 솜씨였다.

그런데 그게 우리가 죽어야 할 이유가 되나?

"원하는 게 결정체 입니까?"

"그렇지. 내가 발견한 균열인데 신입들한테 줄 이유가 없지 않나."

"그럼 수익을 포기하겠습니다. 어차피 경험 삼아 나온 거거든요. 신입이기도 하고."

"내가 자네들을 어떻게 믿나. 셋 중 하나라도 신고하는 순간 끝인데."

입막음까지 하려는 속셈이었다.

우리들의 능력을 물어보고 '이 정도면 할만하겠어'라고 했던 건 미발견 균열을 클리어 한 후에 본인이 뒤처리까지 할 수 있는지 각을 잰 거겠지.

세상에 나쁜 놈들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결정체 하나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놈이 있을 줄이야.

"여태 몇 명이나 죽였지?"

"끌끌- 그건 알 필요 없고."

순간 궁금했다.

노인은 왜 우리를 바로 죽이지 않고 잡소리를 늘어놓는 것일까.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가 어느새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거기 전기 품는 꼬맹이."

"왜... 이 나쁜 새끼야!"

상당히 귀여운 욕을 던진 유현동의 손끝도 노인처럼 떨리고 있었다.

"그딴 전기로 날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애초에 닿지도 않는 사정거리에서? 자네가 전기를 쏘는 순간 내 화살이 날아가 대갈통에 꽃힐 걸세. 자네들은 아까 그 개미처럼 산산조각 나겠지."

"그, 그런..."

"걱정하지 말게. 내 기회를 주려고 하는 거니."

"무슨..."

"저 두 남녀를 자네 손으로 죽이게. 그럼 목숨을 살려줄뿐더러, 결정체 값의 10%를 주지."

그렇다.

노인은 사람의 심리를 건드려 본인의 위험을 최소화할 생각이었다. 아까 두 마리의 개미를 동시에 잡던 현동이를 보고 위기감을 느꼈던 것일까.

게다가 결정체 값을 적게 말함으로써 말도 안 되는 제안이 신빙성 있어 보이게끔 만든다. 역시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았다.

난 궁금했다.

이 17세의 소년이 어떤 선택을 할지.

두려움을 떨치고 악에 맞설 용기가 있는 미련한 자일지. 아니면 목숨을 지키고 악에 굴복하는 현실적인 자일지.

"잠... 잠깐만요..."

유현동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소연이 안쓰러운 듯 나서려 했지만 내가 손짓을 하자 멈췄다.

"아... 형님... 누님..."

결심한 듯 유현동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난 가만히 있었다.

소연이 눈을 질끈 감았다.

"끌끌- 애송이인 줄 알았는데 현명하구먼."

비아냥 거리는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노인의 말이 거짓으로 점철되어 있단 걸 알 수 있었을 텐데.

별 수 없는 건가.

탓할 생각은 없었다.

어린 소년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조그마한 희망이라도 잡고 싶었을 테니.

이건 살인을 선택한 소년이 잘못한 게 아니라 살인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노인의 잘못이다.

어느새 내 앞까지 다가온 유현동이 속삭였다.

"형님... 제가 저 새끼한테 달려들면 결정체를 향해 뛰세요... 제가 시간을 벌 테니 꼭 살아돌아가셔야 해요."

"......"

의외였다.

처음 보는 두 남녀를 위해 목숨을 건다니.

정말 멍청하고도 멋있는 남자이지 않은가.

난 유현동의 팔을 잡았다.

"결정하느라 고생했다. 이제 뒤로 잠깐 빠져있어."

"네... 네? 무슨..."

"유현동이라고 했나?"

"... 네 형님."

"기억해두지."

그가 멍하니 서있자 선소연이 뒤에서 잡아당겼다.

"일로와."

"으- 으억, 누님 힘이..."

그녀의 악력에 가벼운 종이처럼 끌어 당겨지는 현동이. 그 모습을 바라본 노인이 악에 받친 듯 소리쳤다.

"뭐 하는 짓들이냐. 멍청한 애송이들. 그냥 다 죽어라!"

쓔앙-

노인이 활시위를 놓는 순간, 나도 정신줄을 놓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