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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24화 (24/128)

첫 경험. (1)

식탁 위에는 각종 양념으로 버무려진 치킨이 나열되어있었다. 나는 맞은편에 앉아있는 소연을 지긋이 바라봤다. 그녀는 눈을 마주치자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피했다.

"그러니까, 헌터 활동을 나랑 같이 해야 하는데, 집은 시골이고 잘 곳이 없다?"

"네."

"집 주소는 어떻게 알았는데."

"설아 씨한테 물어봤어요."

"근처 모텔도 있고 설아 집도 있잖아."

피했던 시선을 다시 나한테 맞춘다.

살짝 짜증 난다는 눈빛이었다.

"...... 우선 배고픈데 좀 먹어도 돼요?"

"그, 그래"

대답을 회피하는 그녀.

배고팠는지 닭 다리를 하나 잡고 뜯기 시작했다.

"와, 치느님은 진짜 오랜만이네요. 너무 맛있어."

선소연이 능청맞게 웃었다.

짜증 난 거야? 좋은 거야?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우적- 우적-

참 복스럽게도 먹는다.

각성하고 한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찐다는 것. 웬만큼 먹어서는 배부르지도 않아 여러 가지 맛을 음미할 때 좋다.

그나저나 걱정이었다.

방도 없는 좁은 원룸에서 남녀가 한곳에 있어야 한다니. 사실같이 자는 건 어색하지 않다.

반년 동안 좁은 공간에서 함께 지냈으니. 함께 지냈다 뿐이랴, 맨날 껴안고 자기까지 했었다.

선소연이 이젠 날개를 뜯으며 날 쳐다보더니 배시시 웃는다. 저게 걱정이었다. 저런 무방비한 모습.

그녀가 이곳에서 지내는 게 거부감 느낄 정도로 싫은 건 아니었다.

문제는 나도 남자라, 끓어오는 혈기를 참기가 힘들다는 것. 그때는 머릿속에 오로지 생존뿐이라 성욕이 일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렇다고 본능에 몸을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엄밀히 말하자면 그녀와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아닌 사이다.

솔직하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나는 선소연이란 사람에게 일정 부분 끌리긴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정 부분. 이성적인 호감으로 이어지기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소중한 사람임에는 변함 없다.

크르르에게 맞서던 용기.

붉은 익룡에게 끌려갈 때 내 발목을 꽉 붙잡던 모습. 물의왕 발톱 앞에서 함께 고통을 느껴주기도 했고...

갑자기 갈증이 일었다.

캔맥주 하나를 따 벌컥벌컥 마셨다.

각성한 몸임에도 취기가 오른다.

개인적으로 그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난 음주의 즐거움을 아는 남자니까.

"저도 그거 하나 주세요."

선소연이 당당하게 요구했다.

옆에 있는 캔맥주의 뚜껑을 따서 건네자,

손에 묻은 양념이 캔에 닿지 않도록 손가락을 쫙- 피고 양 손바닥으로 받는다.

그대로 한 모금 마시더니-

"으엑- 이런 맛이었군요."

"처음 마셔봐?"

"네, 소속사에서 다이어트 시킨다고 술은 절대 입에 못 대게 했거든요."

이어서 맥주캔 하나를 다 비운다.

처음인데도 잘 마시네...

"캬아- 시원하니 좋네요. 이런 맛으로 먹는 거구나."

어느새 붉어진 그녀의 얼굴. 갑작스레 한 캔을 전부 비우니 취기가 오른 듯했다.

"사실 모아둔 돈이 없어서 모텔도 못 갔구요, 설아 씨는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그런 부탁하기 좀 그렇잖아요."

"나한테 오는 건 좀 안 그렇고?"

"오빠야 맨날 같이 지내도 안전하던데요 뭘. 집도 그때 동굴에 비하면 엄청 넓네요! 짐은 어디에다 두면 되나요?"

"난 아직 허락한 적 없..."

"그리고 여자 혼자 모텔에서 자라니 너무한 거 아니에요?"

선소연이 벌게진 볼을 부풀리며 내 말을 끊었다. 취기 때문인지 평소보다 도전적이었다.

처음으로 당황스러웠다.

뭔가 휘둘리는 느낌.

애초에 이곳에서 살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밀어붙이고 있지 않은가.

"네가 평범한 여자는 아니지."

"뭐라고요!?"

"......"

"휴우- 집 구할 때까지만 있게 해주세요. 어차피 헌터 일하면 돈도 생기니까. 그동안 청소랑 요리랑 빨래는 제가 다 할게요. 오빠 각성 능력 적응하는 것도 도와드리고요."

얘는 왜 이리 과감한 거야.

관자놀이가 지끈거린다.

오른손 엄지로 머리를 꾹꾹 누르며 고민했다. 각종 잡일을 해준다는 말보다 각성 능력을 원활히 통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게 구미가 당겼다.

현재 내 균열 탐지능력은 반쪽자리다.

선소연이 없으면 발동하기도 쉽지 않은 상태.

앞으로 활동에 있어서 그녀가 꼭 필요하기도 하고. 특히나 빠른 적응을 위해선 가까이에 두고 연습하는 게 더 좋겠지. 나도 과감하게 결정을 내렸다.

"후- 좋아. 딱, 집 구할 때까지만이야."

"좋아요."

기다렸다는 듯 벌떡 일어나 가져온 캐리어에서 세면도구와 각종 옷들을 꺼내 진열하는 그녀를 보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

아침 7시.

알람 소리 없이 눈이 절로 떠졌다.

이불 걷어내고 일어나자 주방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요리하는 소연이 보였다. 재료는 언제 준비했는지 인덕션에는 맑은 지리탕이 끓고 있었다.

"일어나셨어요?"

선소연이 반갑게 인사했다.

식탁을 보았다.

정성스레 차려진 반찬들.

소연은 스마트폰으로 요리법을 읽으며 재료를 손질하고 있었다. 아침은 귀찮아서 안 먹는 편이었는데...

"웬 지리탕이야?"

"예전부터 끓여주고 싶었거든요. 아직 준비 안됐으니까 씻고 오세요."

간단한 세면세취를 하며 생각했다.

그래. 간밤엔 아무 일도 없었다.

내가 먼저 매트리스에 누웠고, 자연스럽게 그녀가 내 품으로 들어왔을 뿐. 그게 다였다.

막상 누우니 서로 익숙했던 건지 편안하게 잤다. 걱정했던 게 무색할 정도였다.

"잘 먹을게."

세안을 끝낸 후 식사를 시작했다.

시장에서 사온 듯한 반찬들과 햇반, 그리고 지리탕은 미숙했지만 담백하니 맛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소연은 식사하는 내 모습을 빤히 구경했다. 뭔가 말해주길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맛있네."

"정말요?"

"응, 그나저나 어제 신청한 그 F급 균열, 몇 시까지 였지?"

어제 치킨을 먹은 후 누워서 스마트폰을 뒤적이다 새로 신고된 F급 균열을 찾았었다. D급 헌터 2명이서 F급 신입 3명을 이끌고 경험시켜 준다길래 냅다 지원했었다.

"오전 10시, 안산 자락길 쪽이에요. 요 근방."

난 고개를 끄덕이며 지리탕을 들이켰다.

직접적인 균열 사냥은 처음이다.

어떻게 들어가는지, 결정체는 어떻게 회수하는지 익혀둬야지. E급으로 승급도 해야 하고. 국그릇을 내리자 미소 가득한 선소연의 얼굴이 보였다.

"... 왜?"

"아니에요. 많이 드세요."

"너도 빨리 먹어. 쳐다만 보지 말고."

***

서대문구 무악산 등산로 입구.

30분 일찍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기다리고 있었다. 깔끔한 블랙 코트에 붉은색 F급 뱃지.

"F급 사냥 나가시는 분 맞으시죠?"

우리가 달고 있는 F급 뱃지를 본 건지 먼저 와서 인사했다. 고등학생 정도 돼 보이는 앳된 얼굴이지만 체격은 좋아 보였다.

"네, F급 헌터 선소연입니다."

"강현입니다."

F급 균열을 가는데도 커다란 배낭을 들고 온 것 보니 확실히 초짜의 냄새가 난다. 혹시 모를 상황에 하나부터 열까지 대비하는 철두철미한 성격이던가.

"유현동입니다. 말 편히 하세요. 형님, 누님. 저도 신입입니다. 이번에 아카데미 졸업했는데 첫 사냥이라 너무 떨리네요. 언제 졸업하셨어요? 같은 신입이면 제가 모를 리가 없는데."

"우리는 생존자야."

속사포로 내뱉은 현동의 말에 선소연이 빙긋 웃으며 말하자 또다시 말을 쏟아냈다.

"아, 생존자 시구나! 대단하세요. 일반인이 혼자 균열에 들어가서 살아남을 확률이 거의 1%도 안된다던데... 와! 그나저나 누님은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진심 17년 동안 본 여자 중에 제일 예쁜 것 같아요."

상당히 수다스러웠다.

그는 이후에도 본인의 아카데미 성적이 어땠다는 등 궁금하지도 않은 스토리를 늘어놓았다.

한참을 듣던 중 살짝 음침해 보이는 노인이 다가왔다. 등에는 커다란 활과 화살촉이 메어져 있고 가슴에는 노란색 뱃지가 달려있다.

D급 헌터다.

시간을 보니 10분 지각이었다.

"늦어서 미안하오. 난 이번 신입 파티를 주관하게 된 D급 헌터 최창식이라 하네."

"반갑습니다! 창식 할아버지!"

넉살 좋은 유현동을 필두로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눴다.

"흠흠- 먼저 자네들 모두 균열은 처음이지 않은가? 각자 각성 능력을 말해보게."

"저는 불입니다."

"쯧쯧, 쓸모없는 능력이구먼. 자네는?"

혀를 찬 노인은 선소연을 바라봤다.

"저는 물이에요."

"호오, 귀한 능력을 가진 아가씨로구먼. 마지막으로 거기 꼬맹이는?"

"저는 전기입니다!"

"호오 전기라면?"

"네, 제2의 버나드 스미스가 제 꿈입니다!"

당차게 포부를 밝히는 유현동.

노인은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 고민하는 듯했다.

"음... 이 정도면 할만하겠어. 자, 따라오게. 출발하지."

"저... 잠시만요!"

우리가 따라가려 하자 유현동이 의문을 제기했다.

"D급 헌터 분 한 명 더 오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 그 사람은 사정이 생겨서 못 온다네."

"하지만 이론상 F급 균열은 5명 이상이 팀을 짜서 들어가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호오, 왜 그러지?"

"괴물이 딱 5마리가 나오기 때문에..."

"멍청한 소리 하지 마라, 애송이."

유현동의 대답을 끊은 노인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론은 이론일 뿐이야. 자네, F급 균열 들어가 본 적 있나?"

"없... 없습니다."

"아직 세상에 균열이 나온 지 반년밖에 안됐어. 제대로 된 이론이 구축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나?"

"......"

"왜 F급 헌터들을 상위 헌터들과 붙여 수습 과정을 밟도록 할까."

내가 짧게 받아쳤다

"경험이죠."

"그렇지, 너희들이 배운 아카데미 이론들? 균열 클리어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데없는 것들이네. 내 장담하지. 애초에 괴물이 5마리 나온다는 말도 3개월 전 내용이야. 쯧쯧- 아카데미 강사들이 헌터가 아니니 뭣 같은 정보만 알려주는구먼."

아무래도 나와 소연을 아카데미 출신으로 착각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아무 말 없이 듣고 있자 노인이 부연했다.

"F등급 균열? 솔직히 말해서 운동 쪼매 한 일반인이 들어가도 정신만 똑디 차리면 생존할 수 있는 난이도야. D급 헌터 두 명이나 갈 깜냥이 안된다는 걸세."

"네, 알겠습니다. 가시죠 어르신."

유현동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지만 솔직히 난 귀찮았다.

F 급이고 뭐고, 빨리 승급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위기감이고 긴장감이고 하나도 안 들었으니까.

노인을 따라 둘레길을 걷다가 사람의 흔적이 없는 숲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유현동이 또 의문을 제기했다.

"할아버지 게시판에 나오는 정보로는 이쪽이 아니라 좀 더 앞으로 가야 하는데요?"

"에휴- 아카데미 출신이란 것들이 사전조사도 안 하고 기본이 안 돼있구먼."

"네?"

"그 게시판이 얼마나 정확할 것 같나. 오차 범위 감안해서 사냥 전에 균열이 어디에 있는지 들러보는 게 기본 아닌가?"

"아..."

"잔말 말고 따라오게. 내 미리 확인해 둔 길이니."

노인의 말대로였다.

숲속으로 들어간 지 5분도 안 돼서 옅은 붉은빛의 균열이 보였다. 밖에서 보는 균열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노인이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며 말했다.

"균열 속에 들어가는 순간 신체 각성이 이뤄지니까 준비하게. 방심하고 있다가 나자빠지지 말고."

"네!"

"꼬맹이. 대답은 잘하는구먼. 근데 뭔 짐을 이리 많이 들고 왔어. 어디 피난 가나?"

"아... 아니 만약을 위해..."

"어디 가서 그러지 말게. 풋내기 취급 당해. 알겠어?"

노인의 질책에 유현동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짐을 벗었다.

"자, 짐부터 집어던지고 들어가세. 들어가면 자기 안전부터 확보하고, 그다음 내 지시에 따르는 거야. 알겠나."

"알겠습니다."

"네!"

"알겠어요."

대답을 마친 우리는 균열 속으로 몸을 던졌고, 그렇게 첫 사냥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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