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가 되다. (4)
"걱정하지 말고 던져. 잡아볼 테니까. 날붙이도 아니고 고작 고무공인데 못 받겠어?"
"후- 알겠어요. 조심하셔야 해요."
"이게 건방지게, 난 괜찮으니까 진심으로 던져."
그녀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나에게 배운 무회전 쓰로잉 자세를 취했다.
왼팔을 앞으로 내밀어 방향을 잡고 오른손을 직각으로 세운다. 양발은 어깨너비로 벌려 무게중심을 가운데 둔다.
누가 가르쳤는지 폼이 끝내줬다.
청출어람이라 해야 하나.
투척 실력만큼은 이미 나를 능가한 것 같다.
그녀의 눈빛이 살벌하게 돌변했다.
두드드드-
강화유리와 철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던지려는 모션만 취했을 뿐인데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다. 그녀의 손끝에 무지막지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실로 무시무시한 투기였다.
[ 잠, 잠깐만...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
이세영이 당황한 듯 소리쳤다.
선소연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제대로 던질 경우 최소한 10층 벽면이 다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사실 균열에 나온 후 소연도 나도 제대로 힘을 써본 적은 없다.
그런데 이 정도였다니.
건방진 건 나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건 절대 피하면 안 된다.
건물이 무너지는 순간 빚쟁이가 되어 바닥에 나앉을 것이다.
무조건 받아내야 한다, 능력으로 태울 수 있으면 태우던가.
그녀의 손끝을 바라보며 온 신경을 집중했다. 모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었다.
"갈... 게요."
그녀도 긴장한 듯 목소리가 떨렸다.
팔이 휘둘러지고, 고무공이 힘차게 날아왔다.
쓔앙-
빠르다.
그래도 해볼 만했다.
눈을 부릅뜨니 빠르게 다가오던 공의 속도가 확연히 느려져 보였다.
얼마나 세게 던졌는지 공 주위 공간이 이그러져 있다. 보기만 해도 거칠었다.
저걸 받아내야 한다니 자신이 없어졌다.
일단 손을 뻗었다.
동시에 내면의 무언가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느껴보는 이질적인 감각.
마치 6번째 손가락을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그래. 동생의 머리카락을 태웠을 때 받았던 느낌.
나는 속으로 불의 모양을 계속 떠올렸다.
공을 바라보며 태운다. 태운다. 태운다. 계속 읊조렸다. 점점 공이 가까이 왔다.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화르륵-
순간 신비한 감각과 함께 허공에 시퍼런 불이 생성됐다. 고무공이 순식간에 불 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성공한 건가?
"됐어요!"
[불...의 능력이에요! ]
선소연이 외쳤고, 통제실에 있던 이세영도 어느새 마이크를 잡고 반응했다.
나는 계속 감각에 집중했다.
겨우 공을 태운 걸로 만족할 수 없었다.
선소연처럼 자연스럽게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
그녀가 화려하게 물을 뽑아냈던 것처럼 나도 불줄기를 만들려고 시도해봤다.
그러나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 기묘한 감각은 계속 유지하고 있다. 이 감각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건가?
순간 내 신경에 무언가 잡혔다.
불의 능력이 아니다.
무언가 탐지하는 능력인가?
동쪽 700m, 서쪽 1km, 남서쪽 1.2km.
무려 세 방향에서 친근하고도 아렴풋한 감각이 들었다. 이 감각을 더 유지하고 싶었다.
"하나 더 던져봐."
"오케이."
소연이 이제는 긴장감 없이 힘껏 던졌다.
두 번째 공도 마찬가지였다.
떠나는 순간 방어기제처럼 튀어나온 불이 고무공을 태웠고 그 이상은 통제할 수 없었다.
한숨이 나왔다.
"넌 잘 되는데, 왜 난 안될까?"
"혹시, 제가 물에 오래 빠져있었던 거. 그 효과 때문 아닐까요?"
"그럼 난 어디 용암 속이라도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는 거야?"
"그럼 안되죠! 그 공간이 특별했잖아요. 그런 짓 하시다간 골로 갈 수도 있어요."
미친 소리인 건 안다.
그냥 답답해서 그랬다.
농담이었는데 그녀는 내가 진짜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하긴 그녀 앞에서 무모한 행동들을 많이 했었으니. 일단 계속 연습해서 적응해야겠다.
"사실 불이랑 관련된 건 아닌데 아까부터 계속 뭔가 느껴져."
"뭐가요?"
"뭔가 아련하니 고향의 냄새가 나. 이걸 뭐라 해야 하지... 향수라 해야 하나?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이 근방 3곳에서 느껴져."
"아, 장소가 느껴진단 거예요?"
"응."
그녀는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고 고민했다.
나도 계속 그 감각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감각이 약해진다.
잠깐의 침묵 후-
"혹시 이 근방에 균열 있는 거 아니에요?"
"균열은 왜."
"불의 왕 결정체로 각성하셨으니까 불의 종족들을 느끼는 거일 수도 있잖아요."
"그런가?"
일리가 있었다.
만약 균열에서 나오고 있는 괴물들이 불의 종족이라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의견이다. 조금 있다 정현조에게 근방에 균열이 있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 저... 이제 그만 나가 볼까요? 저도 다음 일정이 있어서요 ]
통제실에 있던 이세영이 재촉했다.
유리창 밖에서 우리가 입만 버끔 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답답했나 보다.
사실 그녀는 내가 10단계 고무공을 잡을 때부터 안절부절 하는 표정이었다.
빨리 상사에게 보고하고 싶어 하는 느낌.
얼굴에서 다 드러났다.
오히려 잘 됐다.
어차피 내 가까운 목적은 헌터가 되는 것.
남들과 차별되는 점을 드러내는 게 불의 능력이라고 책 잡히는 것보단 나았다.
"일단 나가 보자"
***
다시 찾아온 접객실.
정현조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맞이했다.
"후우- 이런, 유감입니다. 불의 능력이라니... 이걸..."
이세영이 금세 말했나 보다. 신체능력에 대해서는 안 말했나?
"괜찮습니다."
"계약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원하시면 관리국 채용이나..."
"아닙니다. 계약하겠습니다. 아 그전에 혹시 이 근방에 발견된 균열이 있습니까?"
"균열이요? 잠시만요."
그는 주머니 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이리저리 화면을 눌렀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도 균열을 확인하나?
"근방 2km 내에 세 곳이나 있네요. 아직 활성화 전이라 헌팅 준비 중입니다. 그런데 그건 왜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계약 진행하시죠."
역시 균열이 맞았다.
정확히 내가 느낀 대로 세 곳만 말하는 것 보니 주변에 미발견 균열은 없나 보다.
최강수가 그렇게 바랬던 균열 탐지능력.
생각보다 쓸모 있겠는데?
"연봉은 저번에 말씀드렸던 대로 균열 하나 처리 시 1억 원 지급. 물론 등급 당 추가 상여금이 존재합니다. 혹시나 미발견 균열 발견 시 신고 안 하고 사냥하다 적발되시면 각종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니 조심하시고요. 또, 국가 위급 상황 시 소집에 응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불이익이요?"
"네. 최소 100억 이상의 벌금이 부과되구요. 얻은 결정체도 몰수할 뿐만 아니라 헌터 자격도 정지됩니다. 혹시나 결정체를 사용하셨다면 시세만큼 뱉어내야 하고요."
"......"
"워낙, 불법으로 처리하려는 사람이 많아 그런 거니 이해해주세요. 대신 계약기간 1년이고, 그 안에 C급 이상으로 상향되시면 더 좋은 조건으로 재계약해드린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급수는 어떻게 올리나요?"
"처음엔 무조건 F등급 뱃지가 나가고요. 일정 수준의 충족치를 달성하면 승급해드립니다. 일단 E급 승급은 F등급 균열 하나만 처리하시면 돼요."
우리나라 헌터 비율 중 F등급이 가장 많다던데, 고작 F 등급 균열 하나를 처리하지 않았다는 건가. 최강수의 말이 맞았다. 우리나라 헌터 제도는 썩어있다.
썩은 살은 도려내야 새 살이 돋는 법.
역시 집단을 만들어야 한다.
위기 상황에서 통제하에 각 지역을 지켜줄 엘리트 집단. 겁쟁이들이 아닌 괴물들과 맞설 용기를 가진 집단.
그러나 막무가내로 만들 수는 없다.
우선 결정체는 어떻게 다루는지, 균열은 어떻게 처리하는지 배워둬야 한다. 또 관리국이 헌터들을 관리하는 방법들도 알아둬야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집단을 창설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사인할게요."
그 말에 정현조의 얼굴이 활짝 폈다.
등록하는 만큼 성과급이라도 받나 보다. 하긴 한 명의 헌터가 국가에 벌어다 주는 결정체가 몇 갠데...
등록을 마친 선소연과 나는 F라고 새겨진 붉은색 뱃지를 받았고, 균열 게시판 어플을 다운로드했다. 스마트폰으로 회원가입을 하고 게시판을 열어보았다.
[ 신도림 B급 균열 가실 헌터 분. C급 이상. 본인 능력 메시지 주세요. 물 관련 능력 환영. (5/15) ]
[ F급 신입 데려가 주실 분. 수익 드림. (4/5) ]
[ D급 균열 캐리 해 드립니다. A급 헌터 있음. (2/5) ]
균열 게시판은 균열 모집뿐만 아니라 헌터 관련 소식들, 정부 주요 정책, 외국 사건 이슈들이 모두 기재된 사이트였다. 또한 친구 추가 기능과 메신저 기능을 통해 편의성도 갖췄다.
나는 소연을 친구로 등록했다.
"아까 균열 찾을 때 사용하시던 게 이건 가요?"
"네, 발견되는 즉시 실시간으로 이곳에 등록됩니다. 그럼 일주일 안에 처리해야 하는데, 그전에 못할 경우 지목된 헌터는 소집에 응해야 해요. 그래도 돈 되는 일이다 보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참여해줘서 실제로 소집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편리하네요."
"그렇죠? 아! 참고로 F급 헌터는 의무적으로 고등급 헌터와 함께 가야 해요. 현 씨와 소연 씨는 생존자지만 보통 F급 헌터들은 균열 한번 구경 못 해본 초짜들이거든요. 첫 경험 시켜주고 이것저것 알려주는 대신 벌은 수익을 내는 게 관행이죠. 제가 연결해드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이것저것 주의사항을 들은 후 밖으로 나왔다.
정현조는 끝까지 친절했다.
불의 능력이니 뭐니 트집 잡을 만도 한데, 깔끔하게 본인의 업무에만 임한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
저녁 7시.
마포구 오피스텔.
소연이와 헤어지고 집으로 왔다.
간단한 간이 부엌에 화장실 하나만 달린 원룸. 매트리스와 커다란 식탁 하나, 냉장고만 놓았더니 초라하다. 조금만 살고 돈 벌어서 큰 집으로 이동해야지.
깔끔히 씻고 나오니 치킨이 땡겼다.
통 크게 20마리를 주문하고 사다 놓은 캔맥주를 꺼냈다.
꿀꺽 꿀꺽-
시원하다.
균열에서 나온 이후 꼭 밤에는 맥주를 마셨다. 나만의 소확행이랄까.
매트릭스에 앉아 오늘 알게 된 각성 능력을 돌아봤다.
난 이 능력을 '균열 탐지능력'이라 불렀다.
위기 상황에서 초감각 상태에 빠졌을 때 튀어나온다. 유지시간은 대략 3분 정도?
그러나 옆에 소연이만 있으면 언제든 쓸 수 있다.
사실 불의 능력은 중요하지 않다.
상대해본 적은 없지만 신체능력만으로 군단장 정도는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오늘 소연이 보여준 힘은 균열에서 봤던 골렘 못지않게 강력했다.
이 균열 탐지능력이 훨씬 중요했다.
미발견 균열들을 선점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힘이다. 결정체를 몰래 독점할 수도 있고, 정부 통제 없이 헌터들을 키울 수 있다. 유령회사 하나 만들고 직원들에게 결정체를 먹이면 되니까. 각성을 원하는 사람들은 발에 채일 정도로 많다.
신념이 있는 자.
용기 있는 자.
그리고 제일 중요한 배신하지 않을 자.
이걸 골라내는 게 가장 큰 문제겠지만.
띵동 띵동-
갑자기 울리는 벨 소리.
치킨이 왔나 보다.
반가운 마음에 문을 벌컥 열자.
"오빠."
배달원이 아닌 선소연의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