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가 되다. (3)
강남구 삼성동 영동대로.
영등포의 동쪽 지역이라 해서 붙혀진 이곳은 고층 빌딩들의 성지(聖地)다.
마치 내가 제일 잘나간다는 듯 하나같이 화려하고 높다. 반년 전만 해도 무역 센터와 코엑스로 유명한 거리였지만 새로 들어온 두 건물이 그 명성을 갈아치웠다.
헌터 관리국과 헌터 아카데미.
트위스트 형태의 디자인으로 두 건물이 45도 각도로 틀어져 연결되어있다.
균열이 생긴 후 정부는 과거 유명했던 두 건물을 사서 6개월 동안 리모델링했다. 곱고 아름다운 두 건축물은 서울 주요 명소들을 압살하고 관광지 1위의 명예를 차지했다.
"와, 저 사람들은 다 뭐예요?"
정현조의 안내를 받아 거리를 걷던 소연이 감탄을 내뱉었다.
건물 밖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줄 서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아, 헌터 아카데미 지원자들입니다. 왼쪽에 있는 건물이 헌터 관리국이고요. 신축한지 얼마 안 돼서 깔끔하죠?"
"지원자가 저렇게나 많아요?"
"네. 헌터라는 직업이 생각보다 매력이 많거든요. 전망은 잘 모르겠지만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기도 하고, 누구나 초능력 한 번쯤은 얻어보고 싶어 하잖아요. 게다가 각성하면 남녀 근력 차이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하기 때문에 성별, 나이 구분 없이 죄다 지원하고 있어요. 이번 달만 10만 명이 넘게 지원했다던데... 담당 공무원들만 죽어나고 있죠."
"인터넷 지원서로 가입시키면 안 되나요?"
"말도 마세요. 요즘 부정등록한다, 청탁 비리다 해서 한꺼번에 불러다 놓고 현장 테스트하고 있어요."
"아무리 그래도... "
"경쟁률도 엄청나요. 저기서 합격하는 게 끝이 아니에요. 또 아카데미 들어가서 1개월간 교육받아야 하는데 거기서 최소 성적 10명안에 들어야 결정체를 지원해줘요. 거의 경쟁률이 1:10,000 정도 되겠네요. 아, 여기로 오세요."
관리국 건물로 가기 위해 끝없이 줄 서있는 사람들을 제치며 지나가자 숙덕숙덕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와, 쟤내들은 뭐야?"
"각성자 거나 균열 생존자인가 봐, 하... 부럽다."
"금수저일 수도 있어. 인생 참 불공평해..."
수군대는 소리가 다 들린다는 게 참 피곤했지만 말이다.
입구에 뭉쳐있는 많은 인파를 뚫고 건물에 들어가자 정현조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는 공무원증이 있는데, 두 분은 헌터 뱃지가 없으셔서 사람들이 저러는 걸 거예요."
"헌터 뱃지요?"
"네, 이 건물 들락날락하는 헌터들은 다 가슴에 하나씩 차고 있습니다. 급수마다 색깔이 달라요."
공무원증과 뱃지.
둘 중 하나가 없다는 이유로 균열 생존자라고 예측한다니... 헌터라는 직종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걸 느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앞을 바라봤다.
건물 내부는 대기업 사옥을 보는 듯 멋들어지게 디자인되어 있었다.
사방의 면은 통째로 유리창으로 이루어져 외부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고급진 대리석으로 만든 계단과 그 위로 바쁘게 움직이는 수많은 공무원들. 이놈들, 결정체 팔아다가 이런 데다 쓰고 있었어.
"헌터 관리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따라오시죠."
건물에 자부심을 느끼는 듯 힘차게 인사한 정현조가 우리를 안내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으로 올라가자 접객실이 보였다. 고급스레 만들어진 소파에 앉자 정현조가 손짓했다. 돌아보니 하얀 정장 세트를 맞춰 입은 여성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세영 씨, 커피 세 잔이랑 계약서 좀 가져다줘."
"네에, 대리님. 세 분다 아메리카노 괜찮으세요?"
친절하게 미소 지으며 응대하는 여성.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나갔다. 안 웃어도 웃는 것처럼 보이는 긍정적인 얼굴을 가진 여자였다.
"친절하죠? 원래 동사무소에서 일하던 친구인데 이번에 관리국으로 발령 난 신입이에요. 빠딱빠딱 일 잘해서 능력 측정 업무도 겸하고 있죠."
"능력 측정이요?"
"네, 저 친구가 강현 씨의 각성 능력 파악을 도와줄 겁니다. 아, 혹시 선소연씨는 각성 능력을 인지하고 계십니까?"
"전 물이에요."
"와- 축복받으셨네요. 운이 좋은 케이스입니다. 혹시 보여주실 수 있나요?"
촤르륵-
소연이 가볍게 손을 떨쳐내 화려한 물줄기를 만들어 냈다.
물줄기는 나와 소연과 정현조 사이를 이리저리 돌더니 다시 그녀에 손으로 돌아와 사라졌다. 봐도 봐도 적응 안 되는 능력이다.
"굉... 장하네요. 각성 능력을 이렇게 쉽고 자연스럽게..."
"그런데, 왜 축복받았다고 하시는 거예요?"
"아, 현재 균열에서 나오는 괴물들이 물에 약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어요. 반대로 불에 강하기도 해서 불로 각성하신 분들은 거의 죽 쓰고 있죠."
......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인가...
내 각성능력...
불인 것 같은데...
제기랄. 시작부터 영 삐거덕거리는 느낌이다. 그나저나 죽 쓰다니 어떻게 죽 쓴다는 거지?
"죽 쓰다니요?"
"그분들은 거의 헌터 생활 못한다고 보시면 돼요. 신체 능력만으로 괴물들을 잡는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보통 등록까지만 마치고 기업 경호업체에 들어가거나 관리국에서 신입으로 채용하는 식의 루트를 밟습니다. 강현 씨는 아직 능력을 모르시는 거죠?"
"아... 네 제가 아직 컨트롤이 잘 안돼서..."
각성 능력에 따라 좋고 나쁘고 가 있었다니 신기했다. 사실 신체능력만 보면 각성 능력이 없어도 될 수준이라 큰 걱정은 없었다. 다만 등록할 때 불의 능력이라고 말을 해야 하는 건지 고민이 되었다.
"커피 나왔습니다."
이세영이 한 손에는 쟁반에 커피를 들고 또 다른 한 손에는 계약서를 들고 나타났다. 정현조가 사근사근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계약하기 전에 능력부터 파악해보죠. 우선 커피마저 드세요. 세영 씨는 준비 좀 해주고."
"네, 알겠습니다아."
***
"따라오세요."
이세영이 상냥하게 안내했고, 과정이 궁금한지 선소연도 뒤따라왔다.
측정실은 특이했다.
4평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밀실이었고, 바깥에서 관측할 수 있게끔 강화유리가 설치되어있었다. 벽에는 당장이라도 대포가 튀어나올 것 같은 포신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문 앞에 서자 이세영이 날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재능 있으신 분들은 각성하자마자 본인의 능력을 깨달아요. 그런데 대다수가 그게 안되거든요. 그걸 가능하도록 해주는 방이에요."
"어떻게요?"
"보통 각성 능력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위기에 닥쳤을 때 발현되거든요."
강설아 머리카락을 태웠을 땐 갓 깨어난 상태라 스트레스 받았던 건가?
깨어나기 전까지는 말도 안 되는 고통 속에 의식을 잃었었으니까. 유난히 거슬렸던 동생의 머리카락이 떠올랐다.
"이걸 보세요."
이세영은 방 앞에 놓여있는 여러 개의 회색빛 공들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고무로 만들어진 공이에요. 강현 씨가 들어가면 이걸 포신에 실어서 쏠 거예요. 1단계는 맞아도 안 아플 정도로 약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흠... 이걸 저한테 쏘면 제가 위기감을 느낀다는 건가요?"
"보통 1단계부터는 안 느끼죠. 10단계까지 있는데 지금 유명한 A급 헌터 성낙연씨도 7단계에서 능력을 드러냈어요."
A급 헌터 성낙연.
뉴스에 끊임없이 나오는 유명 인사다. 헌터 정보를 알아볼 때마다 항상 1순위로 나오는 인물.
대한민국 1위 헌터로 평가받고 있으며, 각성 능력은 에너지 빔.
쏘아지는 순간 그 방향에 있는 모든 것을 소멸시킨다고 해서 별명이 '균열 청소기'다. 다만 단점은 한 번 쏘고 나면 하루 동안 충전해야 한단다.
"준비되셨나요?"
"뭐, 한번 해보죠. 아 질문하나 더 해도 되나요?"
"네, 말씀하세요."
"능력 발휘할 때 항상 스트레스받고 있어야 하는 겁니까?"
"아뇨! 아니에요. 제가 듣기로는 처음에 발현시키는 게 문제지 하고 나서는 충분히 연습만 해주면 된대요."
"이 상황을 반복 숙달해서 느낌을 찾아라?"
"아... 마도요? 거기까진 저도 각성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요."
스트레스받을 정도로 위기인 순간.
푸른 새의 발톱에 찢겼을 때처럼 말인가.
일단 한번 해보기로 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새 통제실에는 선소연과 이세영이 들어가 있다.
유리로 비치는 그곳에서 소연이 파이팅 하라는 듯이 모션을 취했다.
[ 아, 아... 마이크 테스트. 하나, 둘, 셋. 들리시나요? ]
나는 손가락으로 OK 표시를 했다.
[ 간단하게 1단계부터 가겠습니다. ]
투쿵-
야구 연습용 토스 머신에서 나올듯한 장전 소리가 들렸다.
퉁-
얼굴로 날라오는 고무공.
너무 느리다.
집중할 필요도 없이 고개를 까딱 움직여 피했다.
사실 1단계나 10단계나 애들 수준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크르르, 그리고 수 많은 괴물들과 지냈던 터라 이정도의 위기감으로는 안 될 것 같은데...
[ 와- 반응속도가 대단하세요... 네? 뭐라구요? 최고 단계요? ]
소연이 뭐라고 말했는지 이세영이 당황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최고 단계로 올려달라고 말하는 듯싶었다.
그녀가 보기에도 공이 너무 느려 보였나 보다. 역시 그녀와는 마음이 통한다.
[ 안돼요, 6단계 이상부터는 고무공이라도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요. 일단 5단계부터 하겠습니다 ]
단호한 그녀의 목소리.
알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또 공이 날라왔다.
1단계나 5단계나 거기서 거기.
하품 나올 정도로 느렸다.
역시나 간단히 고개를 까닥여 피했다.
[ 세... 세상에 5단계를 저렇게 피하다니... 5단계 피하는 사람은 없다고 들었는데... ]
나는 답답했다.
빨리 능력 발현 시의 감각을 느끼고 싶은데, 이걸로는 위기의식이 들기는커녕 지루하기만 했다.
나는 손가락 10개를 뻗었다.
10단계로 해달라는 표시.
선소연이 뭐라고 말하는 모습이 보였고 이세영은 마지못해 수긍했다.
[ 갈... 게요. 이건 총알보다 빠를 텐데. 전 책임 안질 거예요 ]
나와 소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진행하라는 표시.
투- 퉁-
쑤아앙!
공 2개가 양쪽에서 날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집중하자 공이 슬로우 모션처럼 느려진다.
이번엔 피하지 않고 양손을 뻗어 낚아챘다.
역시... 전혀 위기감이 없다.
이 기계로는 무리다.
[말... 말도 안 돼요. 이건 신기록이야. 어떻게 하신 거예요? ]
이세영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넋이 나가있었다.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선소연에게 손짓했다. 알아차린 그녀가 통제실을 나와 냉큼 방안으로 들어왔다.
"어때요?"
"그냥, 아무런 느낌 없어."
"저도 그래요. 1단계나 10단계나 똑같이 느릴 것 같더라니까요..."
난 잡고 있는 공 2개를 소연에게 넘겼다.
"저 기계로는 소용이 없어. 너가 던져줘. 투척하듯이. "
"괜찮을까요?"
소연이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쳐다본다.
저게, 날 뭘로 보고.
"당연하지. 걱정하지 말고 던져."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여기... 건물이 무너지면 어떡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