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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19화 (19/128)

가자! 지구로. (4)

"숨을 안 쉬어요. 맥박도 뛰지 않구요."

구태경이 신속히 다가가 둘의 상태를 점검했다.

굳이 확인시켜줄 필요도 없었다.

푸르게 부어있는 피부와 흘러내리는 고름.

그리고 주변에 말라붙은 대량의 핏자국까지.

백이면 백, 저 모습을 보면 죽었다고 생각할 테니까.

강설아는 다리가 풀렸는지 그대로 주저앉았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저 눈물만 흘렸다.

"어찌... 이런 일이. 우려는 했건만..."

최강수가 침음을 흘렸다.

허탈하면서도 안타까웠다.

지구로 복귀하기 위한 두 청춘의 치열했던 노력.

그 결과가 이렇게 비참한 죽음이라니.

쓰러져 있는 현과 그 위에 포개져 있는 소연의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다. 죽은 와중에도 서로를 껴안고 있는 장면은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는 듯했다. 구태경이 떼어내려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얼마나 힘을 주고 있었는지 둘의 녹아내린 피부가 들러붙어있었다.

최강수는 참혹한 광경에 눈을 감고 고민했다.

구태경의 침울한 표정과 강설아의 애통한 낯빛에 마음이 아파왔지만 이대로 슬퍼만 할 수는 없었다. 지금부터는 생존의 문제이니까. 결정체를 얻어야 지구에 복귀할 수 있다. 헌데, 마땅한 수가 없다. 이들조차 실패한 것을 우리라고 성공할 수 있을까.

"잠시만요. 물이... "

구태경의 목소리가 최강수의 상념을 깼다.

눈을 뜨자 보이는 기이한 광경.

"이게... 무슨"

"......"

소연의 육체에서.

푸른 새의 사체에서.

텅 빈 허공에서.

물방울이 하나, 둘 생성되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

중력을 거스르며 올라가는 모습이 비현실적이면서도 아름답다. 어느새 허공에 수백 개의 작고 동글동글한 물방울이 떠있었다. 비가 내리고 있을 때 시간을 멈출 수 있다면 이런 장면이 보일까.

싸늘한 대기 속에 있는 물기에서도.

차갑게 얼어 수분을 머금고 있는 진흙 속에서도.

계속해서 화려한 방울꽃들을 만들어냈다.

강설아의 눈에서 흐르던 눈물도 허공으로 떠올라 전열에 참여했다. 그녀의 멍했던 눈동자가 이채를 띠기 시작했다.

호기심보다는 기대감이리라.

낙서하듯 헝클어졌던 마음이 조금씩 지워지듯.

금방 쓰러져 죽을 것 같아 주저앉았을 때 밝은 빛의 등대가 보이듯. 그녀의 눈빛에는 분명 희망의 세편(細片)이 있었다.

비현실적인 현상에는 비현실적인 결과가 나오기도 하니까. 예를 들면 죽었던 오빠가 부활한다든지 하는.

그녀의 기대에 보답하듯 소연의 신체가 천천히 떠올랐다. 꽉 껴안고 있었던 현의 몸도 함께 딸려 올라갔다. 허공에 떠있던 물방울이 둘을 감싸기 시작했다.

"설마 치유 능력의 각성...?"

최강수가 이 광경을 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아닐 것이다.

아무리 사람을 치료한다 해도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다.

부활은 신의 영역.

신화 속 혹은 성경에나 나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곳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공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한낱 인간이 판단할 수 없다.

아니면 애초에 죽은 게 아닐 수도 있었다.

긴 시간 동안 확인한 것도 아니었다.

심장에 문제가 생겼을 때 가끔 맥박이 안 뛰고 숨을 쉬지 않는 환자가 있다고 들은 적도 있었으니까.

투득- 투드득-

최강수가 고민하는 동안 둘의 신체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머리카락과 수염 등 몸에 있는 털들이 빠져나갔다. 시퍼런 피부가 허물을 벗듯 떨어져 내리고 하얀 새살이 돋았다.

뼈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마치 몸의 골격을 바꾸는 것처럼.

지금의 신체로는 더 강력한 힘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이.

둘의 변화를 응원하듯 물이 빙글빙글 돌았다. 다시 온전한 사람의 모습을 갖출 때까지. 끊이지 않고 계속.

"저길 봐요!"

"저건...?"

푸른빛과 붉은빛이 온 시야를 가득 채웠다.

순간 세상이 뒤흔들렸다.

불의 왕과 푸른 새의 사체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하늘에 떠있는 해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정체불명의 물질들. 셋은 장엄하고도 웅장한 광경을 멍하니 쳐다봤다.

"결정체... 아니에요?"

"세상에. 한 균열에 결정체가 두 개?"

"저렇게 큰 결정체는 본 적이 없어..."

두 결정체는 허공에 떠 본인들의 존재감을 뿜어냈다. 새로운 자리를 찾는 것인지 꿈틀거리며 이리저리 움직였다.

별안간.

두 결정체는 현과 소연이 있는 위치에서 멈췄다. 마침내 본인에게 맞는 육체를 찾았다는 듯 부르르 떨더니 힘차게 쏘아내려왔다.

붉은빛의 결정체는 현의 심장으로.

푸른빛의 결정체는 소연의 심장으로.

드세게 스며들었다.

공간이 이그러지기 시작했다.

푸른빛이 온 세상을 덮었다.

번쩍-

신체가 결정체에 닿는 순간 지구로 복귀할 수 있다는 최강수의 말. 다행히 이 기묘한 균열에서도 클리어 조건은 다른 균열과 동일했다. 어지럽히던 시야가 퍼즐 조각처럼 맞춰지며 숲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돌아왔다..."

하얗게 뒤덮인 북한산 자락.

처음 균열을 발견했던 그곳이었다.

"지... 구에요."

마침내 지구로 복귀했다.

강설아가 감격한 듯 손에 힘을 바짝 주고 낮게 속삭였다. 최강수와 구태경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현과 소연은 의식을 잃은 채로 수북이 쌓인 눈 위에 쓰러져있었다. 입고 있던 옷은 다 찢어져 알몸인 상태였다. 어느새 다가간 구태경이 둘의 호흡과 맥박을 확인하더니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

"숨을 쉬어요! 맥박도 정상이고!"

"일단... 옷을 입혀요."

강설아가 소연의 옷을 입히고 구태경이 현의 옷을 입혔다. 빠르게 옷을 입힌 태경이 균열 측정기를 챙기고 있는 최강수를 바라봤다. 고장인 줄 알았던 균열측정기가 사실 정확했던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직 의식이 없어요. 어쩔까요?"

"과열된 육체를 식히는덴 수면이 최고야. 억지로 깨우지 말고 각자 업고 하산하자. 내가 짐을 들지."

"그러죠. 설아야 소연 씨좀 부탁해"

-

뽀득 뽀득-

"... 정부에는 등산 중에 미발견 균열에서 발견했다고 할 거야."

새하얀 눈을 밟으며 말없이 산을 내려가던 중 최강수가 구태경을 보며 말했다.

"굳이 말할 필요 있을까요?"

"실종 신고 취소해야지. 생존자 신고 따로 안 하고 정부 통제 없이 각성한 게 밝혀지면 불법이야. 골치 아파져."

아직까지 모든 균열은 정부가 통제하고 있다.

헌터 등록 없이 각성을 하게 될 경우 블랙마켓을 통해 결정체를 불법 취득한 것으로 추정. 감사원에서 조사가 들어간다.

"하- 그럼 일부러 실종 신고 낸 다음 결정체 먹고 생존자 신고하면 되겠네요?"

"아직 나온 지 얼마 안 된 법이라 빈틈이 많아. 혹시 알아? 공무원 돈 멕이고 분식 등록 하는 놈들도 있을걸. 그래도 두 분은 실종 신고 한지 기간이 꽤 돼서 크게 의심받지는 않을 거야."

"반년 만에 생존했다고 하면 더 의심받는거 아니에요? 그런 사례가 없다면서요."

"사실인 걸 어쩌냐. 평생 각성한 걸 숨기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건 그렇죠. 그나저나 각성한 건 맞을까요?"

"의식이 돌아오면 확인해 봐야지."

***

"오빠! 오빠! 정신이 들어?"

새하얀 불빛.

아지랑이처럼 퍼져있는 뿌연 시야.

초점을 찾지 못하는 카메라처럼 흐렸다가 보였다가 반복된다.

"선... 선생님!"

누군가가 급하게 튀어나간다.

낭랑하면서도 맑은 육성이 먹먹했던 고막을 크게 울린다.

익숙한 목소리. 그래. 강설아의 목소리다.

그렇다면 난 아직 살아있는 건가?

푸른 새의 발톱에 몸을 그었을 때를 떠올렸다.

방금 전에 겪었던 것처럼 생생하다.

꿈도 꾸지 않았다.

의식을 잃음과 동시에 눈을 뜨니 이곳이다.

뇌에서 보내는 끝없는 고통 신호.

울음 기와 비명이 뒤섞인 소연의 괴로워하는 소리.

짙어져가는 죽음의 냄새를 분명히 느꼈었는데.

어떻게 살아있을 수 있지?

흐릿했던 시야가 초점을 잡았다.

울리던 잡음과 기계음들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신기했다.

진화하기 전의 몸으로 돌아간 듯한 편안한 느낌.

그럼에도 활기가 넘쳤다.

침대 옆 쇠로 된 손잡이를 쥐어보았다.

옛날에는 힘을 빼고 잡았어야 하는데 지금은 힘을 주고 잡아도 찌그러지지 않는다. 더 약해진 건가. 더 힘주어 잡아본다.

콰득-

찌그러트리겠다는 의지가 듦과 동시에 쇠가 우그러졌다. 아니, 우그러지다 못해 포를 뜬 것처럼 얇은 모습으로 찌부되었다. 비정상적으로 일그러진 손잡이의 모습. 그냥. 나중에 실험할걸. 병원에 민폐를 끼쳐버렸다.

"배로 보상해줘야겠네,"

주변을 돌아봤다.

중환자실의 모습.

창문 밖을 바라봤다.

평범하게 보이는 시야.

더 자세히 보고 싶다는 의지가 들자 자연스럽게 시야가 확장된다.

이제 알 수 있었다.

약해진 것이 아니라 더 강해졌다.

예전과 달리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일 뿐. 내가 원하는 데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몸 안에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푸른 새의 힘을 얻기 위한 도박. 결국 성공했구나.

"강 현씨 괜찮으십니까?"

"오빠 괜찮아?"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들 그리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강설아가 다가왔다. 의사는 들고 있던 차트를 침상 위에 내려놓았다.

"잠시 간단하게 검진 좀 하겠습니다. 이게 보이십니까?"

눈앞에 흔들리는 손가락 두 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 개인가요?"

"두 개요."

"시력은 멀쩡하시네요. CT촬영 결과 신체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십니다. 육체는 건강한데 의식이 오랫동안 없으셔서 걱정했어요. 다행이네요.

"네..."

"오랜 시간 누워있어서 좀 어지러울 수도 있어요. 우선 편하게 휴식하시고 경과는 좀 더 지켜봅시다."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설명한 의사는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 간호사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강설아는 침대 옆 마련된 의자에 털썩 앉았다. 주변에 보이는 여러 생활용품들과 큰 가방을 보아하니 이곳을 꽤 오랫동안 지켰나 보다.

"어떻게 된 거야?"

"오빠... 정신 잃은지 벌써 2주나 흘렀어."

2주...

그럼 2주 전에 지구로 복귀했다는 건데.

결정체는 어떻게 빼낸 거지?

애초에 우리는 어떻게 찾은 걸까?

설명이 필요했다.

"지구로는 어떻게 복귀한 거야?"

"설명해줄게."

강설아는 구구절절 있었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머리도 감지 안았는지 캡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는 동생. 모자 사이로 삐져나와 있는 머리카락 한 조각이 묘하게 거슬렸다.

"그래서 오빠를 찾으러 갔는데 언니랑..."

화르륵-

"꺄악- 뭐... 뭐야!"

거슬리다고 생각한 순간 허공에서 시뻘건 불이 피어올랐다. 딱 한 조각만 정확히 태우고 사라진 조그마한 불덩이. 단백질 타는 냄새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깜짝 놀랐다. 내가 한 건가?

갑작스러운 불에 놀란 강설아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혹시나 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오빠가 한 거야?"

"모... 르겠어."

고개를 갸우뚱하던 강설아가 다시 설명을 이어서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집중이 안 됐다.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느낌.

"... 정말 대단했어. 막 세상에 있는 모든 물방울들이 모이는 것 같았다니..."

"잠깐. 그전에..."

"응. 왜?"

"소연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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