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지구로. (1)
나 최강수는 반년 전까지만 해도 백수였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지 못해 고등학교도 못 나온 나는 젊은 나이 때부터 각종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했다. 안정된 직장을 구하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려웠고 결국 야전공병 출신의 경험을 살려 노가다판에 뛰어들었다. 전문경험을 늘리면 육체는 힘들지언정 돈은 많이 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사고로 허리를 다쳤고 수많은 돈이 깨졌다. 나이는 먹어갔고 42살에 몸이 불편한 사람을 써줄 직장은 없었다.
그동안 연인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결혼까지 가기에는 모아둔 돈이 없었다. 항상 돈이 고팠다. 서글펐다.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젊은 남자들을 보며 질투했다. 왜 나는 운이 없을까. 실수로 C급 균열에 빠졌을 때는 그 불운이 극에 달했다고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엄청난 행운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닥쳐온 불운을 지혜롭게 해결했기 때문이었지만.
사람들이 지옥 같은 곳을 뚫고 생존한 자신을 칭송했다. '헌터'라고 대우해줬다. 아팠던 몸은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정부의 대우도 좋았다. 게시판에 뜬 균열에 사냥 신청을 넣으면 각종 헌터들이 모였고, 하나하나 처리해 갈 때마다 통장으로 1억씩 또박또박 들어왔다. 어느새 B급 헌터가 될 정도로 많은 균열을 해결했고 미친 듯이 돈을 긁어모았다. 그냥 그렇게 인정받는 헌터의 삶을 살았어야 했는데.
BLACK MARKET.
이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우연히 익명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다 알게 된 암흑의 루트. 이곳에서 거래되는 결정체들은 기본이 100억 이상이었고, A급 결정체의 경우 5,000억까지 부르기도 했다. 더 놀라운 것은 구매를 원하는 자들은 많은데 파는 인원이 극히 적은 것. 가격은 언제든 더 오를 수 있었다.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결혼도 하고, 집도 사고, 슈퍼카도 타고, 사치도 부리고...
찾아온 행운이 언제 날아갈지 모르는 판에 한판 크게 벌이고 이제 행복한 삶을 살고 싶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까.
정부가 운영하는 균열 게시판을 사용하지 않고 미발견 균열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어느 날 익명게시판에 균열을 찾고 있다는 말을 듣고 바로 연락을 했다. 그러다 온 곳이 바로 이곳.
크르르-
욕심이 화를 불렀다.
사이클롭스 베어 2마리라니.
차가운 겨울 한기가 피부를 쓸었다.
몸이 덜덜 떨렸다.
절대 추워서 떨리는 것이 아니었다.
놈들의 흉포함에 대한 심리적 압박과 곧 죽는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포식자를 맞이한 피식자의 기분. 호랑이를 앞에 두고 있는 토끼의 기분이 이럴까.
도망가고 싶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옆을 쳐다보니 구태경도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았는지 의식을 잃고 쓰러져있었다. 강설아도 마찬가지고. 그래도 저 둘은 운이 좋다. 적어도 의식이 있는 채로 씹혀먹히진 않을 테니까.
놈들은 정확하게 나를 쳐다보며 걸어왔다.
안전하게 나부터 처리하겠다는 건가.
침을 꿀꺽- 삼켰다.
움직이기 힘든 걸 알고 있는 듯 천천히 다가온다.
나는 결국 이렇게 죽을 운명이었나.
식은땀이 뺨을 타고 흘러 바닥에 떨어졌다.
어느새 다가온 놈이 끔찍한 이빨을 벌렸다.
내 목을 물어뜯으려는 찰나.
퍼억!
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놈의 몸통이 수박처럼 터졌다. 놈의 가죽은 갈기갈기 찢어져 형체를 잃은 고깃덩어리처럼 흩어졌고, 피는 불꽃놀이처럼 사방으로 튀었다. 비현실적인 현상.
어느새 옆에는 한 남자가 서있었다.
장기간 면도를 못했는지 수염이 자라있고 머리가 덥수룩했다. 상체는 입지도 않고 있는데 몸이 예술 조각처럼 갈라져 있고, 바지는 입고 있는지 안 입고 있는지 이미 걸레짝이 된 모습. 단 한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껏 봐왔던 그 누구보다 강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놈의 크르르는 맨날 봐도 적응이 안 된다니까."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아니 오히려 더러운 피가 주먹에 묻었다는 듯 쭈그려 앉아 모래바닥에 손을 펴 비벼댔다.
말도 안 됐다.
사이클롭스 베어가 어떤 놈인데 저런게 가능하단 말인가. 정보통에 의하면 사이클롭스 한 마리를 잡기 위해 A급 헌터 10명을 포함, 수많은 헌터들이 동원되었다. 그중 대부분이 최소 부상이었고, 사망자도 많았다.
남자가 피를 닦는 동안 또 다른 한 마리가 뒤에서 천천히 접근했다. 그는 주먹에 묻어 있는 빨간 모래를 탈탈 털면서 나를 바라봤다. 이런, 방심하고 있는 것 같다. 아무리 강한 남자라도 저 괴물에게 등을 보이면 위험할 것 같았다. 나는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며 남자에게 경고했다.
"이... 이봐! 뒤!"
내 외침에도 그는 뒤돌아보지 않고 우리 쪽을 쳐다봤다. 큰일이다. 어느새 놈이 괴성을 지르며 돌진해 날카로운 발톱을 휘두르는 순간.
쓔웅- 콰앙!
옆에서 섬광처럼 하얀 날붙이가 날라왔다. 아니 총알인가? 자세히 보이지도 않았다. 놈을 뚫고 날아간 물체는 대포를 쏜 것처럼 큰 소리를 내며 바위에 부딪쳤다.
우수수-
먼지가 가라앉자 산산조각 나있는 바위.
괴물의 몸에는 큰 구멍이 뚤려있었고, 괴로운 듯 비틀비틀 거렸다.
쓔웅- 푸욱!
또다시 날라오는 무언가가 놈의 머리에 박혔다.
사지를 부들부들 떨던 괴물이 허무하게 쓰러졌다.
"어휴. 힘 조절이 안되네요. 세게 던지니까 한 번에 안 죽어."
옆 수풀에서 한 여자가 걸어 나오며 말했다.
순간 말문을 잊었다.
거의 다 찢어져가는 하늘색 원피스.
아슬아슬하게 내놓은 새하얀 어깨선과 속살.
매끈한 허벅지에 곱게 곡선을 그리는 라인.
젊은 모습에도 파격적인 노출 때문인지 관능적으로 보였다. 천사가 있다면 저러한 모습일까.
게다가 천하의 사이클롭스 베어를 두고 한 번에 안 죽는다고 투덜거리다니?
저것들은 사람이 아니라 신종 괴물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우리에게 적의가 없어 보인다는 점. 특히 남자는 아까부터 우리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순간 뇌리가 찌릿했다. 아! 그녀가 찾던 사람.
'강설아의 오빠.'
점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천천히 좁아지는 시야.
나는 꿈이 아니길 바라며 의식을 잃었다.
***
"설아야!"
나는 긴급히 쓰러져있는 여동생에게 다가가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의식이 없다. 두 손가락으로 맥박을 재보고 코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심장이 뛰고 숨도 쉰다. 일단 셋 다 죽지는 않았다.
"후우-"
깜짝 놀랐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들은 타인의 목소리에 긴급히 와봤는데 그게 친구랑 여동생이었다니. 그리고 처음 보는 아저씨. 조금만 늦었으면 위험할 뻔했다. 근데 이들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뒤에서 혼란스러운지 표정이 굳은 선소연이 다가왔다.
"아시는 분들이에요?"
"응, 친구 놈이랑 여동생이야. 또한 명은 누군지 모르겠고... 어떡해야 하지."
"아하... 여동생."
왜인지 딱딱한 그녀의 표정이 조금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선소연이 옆에 쪼그려 앉아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괜찮으세요?"
나는 다시 쓰러져있는 셋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니, 상태가 안 좋아 보여."
강설아의 다리에 있는 상처와 입가에 묻은 붉은 피가 마음을 어지럽혔다. 구태경의 상태도 안 좋아 보이고... 서둘러야 한다. 먼저 지혈을 하고, 물로 씻긴 후에, 아 소독도 해야 되는데 약이 남아있나...? 내가 긴급히 일어서려 하자 갑자기 그녀가 양손을 뻗어 내 어깨를 가볍게 눌렀다.
"진정하세요."
"......"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 공간 아시잖아요. 괜찮을 거예요. 일단 제가 이분들 돌보고 있을 테니까 동굴 하나만 만들어주세요. 불도 좀 피워주시고요."
급하게 뛰던 심장박동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래 흥분해서 좋을 거 없다. 침착해야지. 선소연이 말을 이었다.
"세분 모두 크르르한테 당한 것 같은데 그만큼 각성할 거예요. 적응시킬 준비를 해야죠.
이분들에게 물어볼 것도 많구요."
***
콰아앙-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듯 터지는 소리.
근처 암벽을 찾아 간단하게 동굴을 만들고 불을 피웠다.
그동안 소연이 셋을 옮겨다 나란히 눕혔고 물로 씻겼다. 그녀가 얻었다는 물의 능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진가가 드러났다. 예전에는 물에서 숨 쉴 수 있는 능력뿐이었다면 지금은 저렇게 손을 뻗어서 물을 만들어낸다. 그뿐만이 아니라 본인의 의지대로 물을 움직일 수도 있다.
"볼수록 신기해. 어떻게 그게 되는 거야?"
"그냥 본능적으로 알게 됐어요. 눈부실 때 눈 감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물들이 화려한 모양으로 생기있게 움직이더니 셋을 꼼꼼하게 씻겼다. 물이 상처 부분에 닿자 핑그르르- 돌기 시작했다. 벌어진 상처가 급속도로 아물기 시작했다.
"뭐야. 치료도 가능해?"
"저도 이건 처음 알았네요... 우리가 그간 다칠 일이 없어서..."
"하아- 혼란스러운 것 투성이구먼."
"이분들 깨면 차근차근 정리해봐요. 우선 좀 쉬세요. 놀라셨을 텐데."
"아니야. 먹을 것 좀 구해올 테니까 돌보고 있어."
소연은 간간이 깨서 어지러움을 토하는 셋을 돌봤고 나는 주변 식량을 구해 손질해놓았다. 그간 경험을 통해 셋의 의식이 없는것이 위험한 상태가 아니라 단지 신체가 진화하는 과정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치유능력 덕분인지 모두 정신 차리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3일 정도 흐르니 셋은 모두 정신을 차렸고 나와 소연은 그들이 빠르게 적응하도록 도왔다.
***
적응을 완료한 셋은 그동안 지구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설명했다.
먼저 부모님의 안부.
이곳의 시간과 지구의 시간은 동일하게 흘렀고 어머니는 몸 져 누우셨지만 점차 쾌차하고 있다고 했다. 가족의 무사함을 확인한 나는 안도했다.
"너무 무모했어. 아무 능력도 없었다는 애가 그 긴 시간 동안 말이야... "
나는 누워있는 설아에게 다가가 핀잔을 주었다. 23살 먹은 꼬맹이 주제에 용기도 가상했다. 괴물들을 상대로 겁도 없이.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드는 성격은 좀 고쳐줘야 하는데.
"오빠한테 들을 얘기는 아닌 것 같은데..."
"틀려. 나라면 안전대책은 확실하게 마련해놓고 찾았을 거야."
"전... 혀 신뢰성 없는 말인 거 알지?"
"여하튼 너..."
"아씨! 오랜만에 만났는데 잔소리 좀 그만해!"
그녀가 버럭 소리치자 나는 씩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쨌든, 고맙다."
강설아가 대답 없이 돌아누웠다.
사실 모를 리 없었다. 그녀는 겁이 없는 게 아니라 겁이 나도 참은 것이다. 단지 사라진 내가 걱정되고 보고 싶어서 모든 것을 버리고 달려들었다. 말은 안 했지만 그 간절했던 마음이 느껴졌다. 물론 내가 설아의 입장이었어도 똑같았을 것이다.
다만 운이 좋지 않아 그녀가 죽었다면...
상상하기도 싫었다.
일단 그녀가 무사하게 이곳까지 도착했다는 것에 마음을 놓았다.
"저기 있잖아... 소연 씨 말이야."
내 맞은편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구태경이 말했다.
태경이에겐 크게 빚을 졌다.
맨날 무모하다고 잔소리하는, 내가 아는 최고의 안전주의자 구태경이 목숨을 걸고 동생을 지켜주다니. 나는 아까도 인사했지만 다시 한번 태경의 어깨를 살짝 두들기며 고마움을 전했다.
"짜식, 감동이다."
"아니, 그건 됐고, 소연 씨."
"소연이 왜?"
"옷 좀... 갈아입혀야 할 것 같은데..."
확실히 그랬다. 나야 오랜 기간 봐서 적응이 됐다지만 확실히 지금 소연의 모습은 뭔가 원초적이면서 뇌쇄적이다. 어쩔 수 없이 시선이 갈 수밖에 없는 모습.
"설아가 이것저것 챙겨온 게 많소. 아마 아가씨랑 딱 맞는 옷도 있을 거요. 이따가 내 태경이랑 다녀오리다."
최강수였다. 다른 이들에겐 말을 놓지만 나와 소연에겐 꼬박꼬박 존댓말을 한다. 말을 편히 하라 해도 한사코 거절했다. 생명의 은인에게 말을 놓을 수 없다나. 그는 걱정된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그나저나 큰일이오. 크르르 보다 더 강한 존재들이 널린 곳이라니..."
이곳에서는 외계 종족들의 단순한 먹이일 뿐인 크르르. '사이클롭스 베어'가 현재 지구에 등장한 최강의 괴물이라고 했다. 이는 최강수에 말 따라 큰일이다. 이곳에 있던 외계 종족 중 하나만 출연해도 지구는 큰 희생을 치러야 할 것이다.
특히 저번에 봤던 군단장 급의 괴물. 그 위의 총사령관의 존재. 푸른 새가 죽은 이상 놈들의 출연은 나와 소연에게도 벅찰 것이다. 외계의 침공에 대비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생존은 안정적인 상태에서의 평화로운 삶이지 언제 멸망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불안에 떠는 삶이 아니다. 나는 재차 물었다.
"결정체를 만지면 지구로 복귀할 수 있고, 먹으면 각성한다고 했죠?"
"그렇소."
그렇다면 불의 왕과 물의 왕이라는 존재.
그들의 힘을 얻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