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를 찾아서. (4)
강설아는 오빠의 생존을 긍정적으로 보는 최강수의 말이 달콤했다. 사막 한가운데를 걷다가 오아시스를 발견한 기분. 그 오아시스가 홀연히 사라지는 신기루가 아니길 빌며 말을 꺼냈다.
"오빠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최강수는 기다렸다는 듯 가져온 무언가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렸다. 상당히 큰 묵색 고철 덩어리에 디지털 숫자판과 안테나가 달려있었다.
"PRC-999k랑 비슷하게 생겼군요."
구태경이 신기한 듯 쳐다보며 끼어들었고 강설아가 궁금증을 참기 힘들다는 듯 다리를 떨었다.
"이게 뭐예요?"
"균열 탐지 측정기."
강설아가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내자 최강수가 말을 이었다.
"국내에선 개인이 소지하는 건 불법이야. 아직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놈인데 미국 쪽에서 어렵게 구해왔어. 대단한 놈이지. 반경 500m 내 모든 균열을 탐지하고, 등급까지 체크할 수 있어."
"이런 게 있었으면... 진작... "
강설아는 3개월 동안 북한산을 돌아다니며 고생했던 것을 떠올렸는지 이마를 찡그렸다.
"정부 통제 때문이야."
"왜요?"
"정부 입장에선 당장 헌터 수를 늘려서 국가 안보를 지켜야 하는데, 균열에서 나오는 결정체를 원하는 돈 많은 작자들이 워낙 많아야지. 그들이 몰래 균열을 찾아 결정체를 빼돌리려 하니까 통제하는 거고. 내가 아가씨를 찾아온 이유도 그거야. 균열의 선점."
최근 들어 논란되는 사회 이슈였다.
균열에서 나오는 결정체는 엄청난 효능을 가져다준다.
신체의 발달과 치유.
새로운 능력의 각성.
괴물이 튀어나오는 세상에서 본인을 지킬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이 되기도 하고 거기다 희소성까지 있으니... 최근에는 노화 방지에 피부 재생 효과도 있다는 연구 발표까지 있었다.
결정체의 가치를 알게 된 대기업 재벌들, 지역 유지들은 손을 벌리기 시작했다. 정부의 통제로 공급은 없는데 수요가 넘쳐흐르니 자연스럽게 암시장(black market)이 형성되었고, 그 반동으로 결정체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특히 A급 이상 균열에서 나오는 결정체는 부르는 게 값이다.
"조건이 있다."
"어떤거요?"
"결정체를 넘겨주고, 비밀을 지켜준다고 약속해. 그럼 도와주지."
"저는 상관없어요. 오빠만 찾으면 돼요."
"좋아. 내일 아침 출발하고 결과는 추후에 알려주면 되겠지?"
"아니요! 저도 따라갈 거예요."
"일반인들에겐 위험해."
"저도 그게 조건이에요. 제 눈으로 꼭 확인해야겠어요."
강설아의 단호한 눈빛을 바라본 최강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아침 8시에 보도록 하지."
***
이른 아침 7시 30분.
연신내역 모텔 앞.
구태경과 최강수는 담배를 태우며 강설아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어제 그녀가 간다고 하니까 구태경도 걱정되었는지 같이 가기로 했다. 등 지게에 측정기를 메고 서있는 최강수를 바라본 그는 졸린지 눈을 비비적거리며 말했다.
"근데 헌터님. 그 측정기 등급 측정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대부분의 균열을 측정기로 재면 100에서 500사이로 나와."
"그게 몇 등급인데요?"
"F 등급이 100 미만, 100에서 300까지 D 등급, 300에서 500까지 C 등급, 500에서 1,000까지 B 등급, 그 이상이 A등급이지. 인도에서 유명했던 사이클롭스 베어 같은 경우엔 등급 수치가 2,000가까이 올랐다고 하던데..."
"끔찍하네요."
"국가 재앙이지."
한참 균열에 관한 대화를 나누던 중 어느덧 8시가 되었다.
드르륵- 드르륵-
입구에서 커다란 가방을 매달고 캐리어 2개를 낑낑거리며 끌고 나오는 강설아가 보였다.
"헐, 이게 다 뭐야. 어디 피난이라도 가?"
"오빠가 5개월 동안 거기에 살아있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니까... 또 사람 일이란 게 어떻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대충 확인해보니 각종 남성, 여성의류, 세면도구, 치약, 칫솔, 컵라면, 과자, 휴지, 통조림 등등... 심지어 화장품 까지...
"무거워요. 조금만 도와주세요."
구태경이 짐을 넘겨받자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젓던 최강수가 말했다.
"그럼 출발하지."
***
균열은 그간의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허무하게 빨리 찾았다. 최강수 헌터의 각성 능력은 하늘을 나는 것. 균열 측정 탐지기를 맨 그는 북한산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며 돌아다녔고 삐빅- 거리는 소리를 듣는 동시에 구태경과 강설아를 불렀다. 장교 출신답게 구태경은 GPS 좌표만 듣고도 금방 찾아왔다.
어느새 땀을 뻘뻘 흘리며 짐을 들고 올라온 둘은 최강수를 바라봤다. 그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백운대의 끝자락 눈으로 뒤덮인 암벽 사이에 확보물 가방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신비한 투명색 균열.
"세상에,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내가 백운대를 몇 번을 올랐는데..."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이야. 일반인이라면 절대 찾을 수 없지."
최강수가 매고 있던 측정기를 내려놓고 안테나를 접으며 말했다.
"내가 봐왔던 균열과 달라. 균열은 등급이 높을수록 붉은빛이 진해지는데... 이렇게 투명한 균열은 처음 봐. 측정을 해봐야겠어."
그가 측정기의 버튼을 누르자 기계가 진동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천히 올라가는 숫자. 셋은 디지털 숫자판에 신경이 쏠렸다.
0 ... 100 ... 200 ... 400 ... 600...
"이런... 500을 넘기는데요?"
구태경의 목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숫자는 1,000을 돌파했다. 갑자기 올라가는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1,000 ... 3,000 .... 10,000.... 99.999 ..... ERORR ... 0
펑- 피쉬익-
측정기가 잿빛 연기를 내며 작동을 멈췄다.
"......"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강설아와 구태경과 달리 최강수는 바닥에 침을 한번 뱉더니 말했다.
"불량품이군... 망할 놈들."
"불량이요...?"
강설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자주 있는 일이라 들었어. 만든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A/S 요청해야겠어."
"그럼 이제 어떡하죠?"
"고민 중이야... 정부에 신고하고 보상금으로 만족해야 하나..."
"......"
강설아의 눈꼬리가 살며시 휘었다.
갑자기 구태경은 형언할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사격통제 시 멋모르는 신병이 총구를 돌리는 기분. 순간, 강설아가 균열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안돼!"
본능적으로 손을 뻗은 구태경은 그녀가 매고 있는 가방을 신속하게 잡았다. 신병의 총구를 잡아 다시 전방으로 배치시키는 것처럼. 구태경의 손에 대롱대롱 매달린 강설아가 외쳤다. 아니 외침이라기보다는 발악에 가까웠다.
"놔요! 나 혼자라도 들어갈 거예요! 놓으라고!"
"위험해! 일단 진정해봐!"
그는 그녀를 꽉 붙잡은 채로 심각하게 고민하는 최강수에게 물었다.
"저 헌터님?"
"왜."
"균열은 등급이 높을수록 붉어진다고 했는데, 다른 사례는 없죠?"
"그렇지. 사례가 있었으면 내가 모를 리 없어."
"그럼 저 균열은 등급이 높은 균열이 아니겠네요."
"모르지. 균열이 발생한지 반년도 안된 세상이야. 변수는 많아."
"......"
맞는 말이다. 전력을 알지도 못한 채로 들어가는 것은 미련할뿐더러 위험하다. 지금이라도 정부에 신고를 하고 대책을 세운 다음에 안전하게 구해내는 게 더 확실한 판단이다. 그러나 아직 균열이 건재하다는 것은 안에 현이 생존해있다는 것이고, 위급한 상황일 수도 있다. 게다가 아직도 손에서 발버둥 치고 있는 강설아. 나중에 들어간다고 하면 혼자서라도 들어갈 기세다.
"들어가죠. 헌터님."
"......"
"만약 헌터님이 안 가신다면 둘이더라도 갈 겁니다. 저도 현이가 걱정되거든요."
구태경의 말을 들은 강설아는 진정이 됐는지 힘을 풀었다.
최강수는 말없이 고민했다.
머리가 지근거렸다.
여기서 발을 뺐는데 균열 등급이 낮으면 이들이 결정체를 획득할 확률이 높아진다. 비싼 측정기까지 구해서 왔는데 결정체를 못 얻기에는 손실이 컸다. 그렇다고 등급 확인이 안된 균열에 들어가기엔 목숨이 걸린 문제다. 그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등급은 기껏해야 C급. 그 이상은 무리다.
평소 그였다면 당연히 돈보다는 목숨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더러운 때가 묻을 만큼 묻지는 못했나 보다. 균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막무가내인 둘이 들어가면 등급이 D 급 이상만 되어도 생존확률은 급격히 낮아질 것이다. 저 태경이라는 놈은 그래도 좀 하는 것 같지만, 저 어린 여자애는 이변이 없는 한 죽을 것이다. 보상도 없이 가족의 생존만을 위하는 그녀의 간절함이 그의 마음을 울렸다. 고민은 끝났다.
"후우- 그래. 같이 가도록 하지."
***
"일단 그놈의 짐짝부터 먼저 던져. 들어가자마자 죽기 싫으면."
짐을 힘껏 균열 속으로 던지는 둘에게 최강수는 주의사항을 일러주며 당부했다.
"너희는 아직 각성한 몸이 아니라 위험해. 어떤 균열은 들어가자마자 괴물이 튀어나오기도 하거든. 들어가자마자 내 뒤로 숨어야 해."
"알겠어요."
"기본적으로 지켜주려 노력하겠지만 본인의 안전은 스스로 챙겨야 해. 같이 들어가기로 한 이상 모든 안전상 책임은 너희에게 있어."
최강수의 조언에 둘의 눈빛엔 긴장감이 어렸다. 준비를 마친 세 명은 손을 잡고 균열에 몸을 던졌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중력. 공상과학 영화에 등장하는 블랙홀에 빠져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강물처럼 흐르는 이질적인 빛무리가 점점 어두워지고 마침내 빛이 번쩍였다.
파앗-
낯설고 고요한 숲.
단순히 그렇게 표현하기엔 뭔가 부자연스러웠다.
일단 넓은 공간.
본인이 아는 균열 속은 이렇게 넓지 않았다.
그다음 지구와 똑같은 날씨.
균열 속에 해가 뜬다는 정보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최강수는 이질감을 느꼈다.
"우선 짐은 내버려 두고 조심히 내 뒤로 천천히 따라와. 정찰부터 해야겠어."
혼자 하늘로 날아가 정찰을 하고 싶지만, 일반인인 둘을 두고 떠날 수 없었다. 긴장한 셋은 인적 없는 숲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나갔다. 걷는 내내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한참을 가다가 멈추고 또 가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부스럭-
갑자기 들려오는 수풀 소리. 선두에 있던 최강수는 신호를 보내고 고개를 숙였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극한의 두려움에 시야가 좁아졌다.
크르르-
"꺄아악-"
갑자기 들려오는 강설아의 비명소리. 급하게 뒤를 쳐다보자 흉포하게 생긴 곰 같은 괴물 두 마리가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심장이 턱 내려앉았다.
"제기랄 피해!"
최강수는 급하게 둘의 멱살을 낚아채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빛살 같은 속도로 점프하는 놈의 속도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시야에 잡히지 않을 정도의 빠르기였다.
"크윽-"
순식간에 셋은 하늘로 튕겨져 나갔다. 그러면서도 둘을 꼭 잡고 있는 최강수는 최대한 힘을 내어 그대로 하늘을 날았다. 충격에 뼈가 부러진 듯 통증이 일었다. 구태경도 정신없이 매달려 있었고 강설아는 기절했는지 축- 늘어져있었다. 슬슬 힘이 떨어져갔다. 땅바닥에 떨어져 구르는 셋.
최강수는 고통스러운듯 신음을 흘렸다. 기절한 강설아의 허벅지엔 놈의 발톱자국이 남아있었다. 옆에 있던 구태경이 피를 토하며 말했다.
"커억, 컥- 뭐, 저런 괴물이...한방에 셋을 공격하다니..."
"괜... 찮나?"
"아니요. 갈비뼈가 부러진것 같아요. 도... 대체 저놈들은 뭔가요?"
"사이클롭스 베어. 그것도 2마리. 제...기랄. 이건 반칙이지."
"사... 사이클롭스 베어?"
스륵- 스륵-
어느새 따라온 놈들은 눈빛을 살벌하게 번뜩이며 걸어왔다.
"빌...어먹을. 이제 우리가 살아갈 확률은 없다고 봐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