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육군대위, 귀환하다-14화 (14/128)

오빠를 찾아서. (3)

지쳤다.

반복된 하루와 똑같은 결과.

아무리 찾아봐도 북한산에 균열 같은 건 없었다. 그러나 들러붙은 미련은 털어지지 않았다. 어느덧 3개월이 흘렀다. 멈춰있는 내 시간과 달리 현실의 시간은 잔혹하게 지나갔다.

[우리나라도 균열 생존자, '헌터' 등장. 대중들 환호!]

[정부, 헌터 관리국 창단. 각종 특혜 방안 논의 중. 생존자들은 신원 등록 필수!]

[균열에서 나오는 결정체, 각성의 씨앗으로 알려져! 각성 결과가 랜덤이라니. 다양한 연구 진행 중!]

우리나라도 실종되었던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헌터 강국으로 성장했다. 신인류의 위험성을 논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들이닥친 위험을 해결해줄 영웅으로 대우했다.

각성 결과가 무작위라는 것이 큰 이슈가 됐다. 안타까운 건 이미 각성한 사람은 결정체를 먹어도 효과가 없다는 것. 능력의 증진이 있을지는 몰라도 말이다.

다양한 능력자들이 생겼다. 불을 다룬다든지, 빠른 회복을 도와준다든지, 하늘을 난다든지. 천차만별이었다. 정부는 균열을 효율적으로 통제하여 헌터 수를 급속히 늘려갔다.

[헌터 아카데미 개설, 성적 우수자 정부에서 안전하게 각성 지원! 신청은......]

[세계경제 다시 호황기로 접어드나? 헌터 관련 주 전망은?]

[균열 사이에서도 격이 존재해. 인도에서 출연한 괴물 '사이클롭스 베어' 약 200명 학살. 각국에 헌터 지원 요청...]

[사이클롭스 베어 겨우 잡아. A급 헌터 2명, C급 헌터 13명 사망...]

방구석에 틀어박혀있던 사람들이 다시 나와 일을 시작했고, 급이 다른 괴물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헌터 관련 산업을 독점하면서 많은 기업들의 반발이 빗발쳤다. 현 정부는 강력하게 대응했다. 지금은 개개인의 욕심보다 국가의 안전에 초점을 두어야 할 때라며 '사이클롭스 베어'를 예시로 들었다.

세상이 급변해도 내 삶은 똑같았다.

학부엔 휴학 신청서를 낸 지 오래였고 희수 언니에겐 양해를 구했다. 오늘도 땀을 흠뻑 흘리고 샤워를 했다.

기약 없는 모텔 생활.

모아둔 돈이 벌써 바닥나기 시작했다.

축축하게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덮고 침상에 앉았다.

띠링-

[ 구태경 : 설아야 오늘 시간 돼? ]

[ 나 : 무슨 일이신데요? ]

[ 구태경 : 너 오빠 찾는 거 도움 될 만한 사람을 찾았어. 널 좀 보고 싶다는데, 문자로 하기엔 좀 그렇고 아직도 연신내에 있니? ]

[ 나 : 네! 시간 돼요. 지금 바로 나갈 수 있어요! ]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오빠를 찾는 데 도움이 된다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 구태경 : 지금은 좀 그렇고, 저녁 9시까지 대조공원 쪽으로 나와. ]

[ 나 : 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녁 9시라...

지금 시간은 저녁 7시.

삼각김밥으로 간단히 저녁을 때우고 화장을 시작했다. 그래도 오빠 친구인데 초면에 생얼을 보여주는 실례를 범할 수는 없으니까.

연신내역 4번 출구.

대충 준비하고 나오니 얼추 시간이 맞았다. 밖은 깜깜했고 먹구름이 끼었는지 별빛도 보이지 않는 우중충한 하늘. 과거엔 커플들과 근처 직장인들 회식으로 넘치던 거리가 이제는 황량하고 을씨년스럽다. 균열의 등장 이후 대부분의 커플들은 실내 데이트를 선호했다. 발견되지 않은 균열에서 나오는 괴물들이 간간이 습격을 하기 때문이었다.

불안한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바쁘게 걷는 사람들과 뛰는 사람들. 나는 매번 북한산 등반을 해서 그런지 아무런 느낌이 없다.

'숲속은 빌딩 숲보다 훨씬 무섭거든.'

위험 불감증에 걸린 것 같았다.

대조공원 앞으로 가니 모자를 깊게 눌러 쓴 두 건장한 사내들이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팔뚝에 보이는 시커먼 문신을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걸까 겨울인데도 반팔 티를 입고 있었다.

'저 사람들인가?'

내가 가까이 붙어 머뭇거리고 서있자 둘의 시선이 느껴졌다. 문신남이 옆 친구에게 속닥이는 소리가 들렸다.

"호오, 야 쟤 좀 봐. 죽이지 않냐? 몸매 봐라."

"야, 심심했는데 잘 됐네. 말 걸어보자."

이런, 잘못 본 것 같다. 역시 생긴 대로 저급한 양아치들이었다. 일단 자리를 피해야겠다 생각하고 고개를 돌렸다.

"저기."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못 들은 척 걷자 누군가 뒤에서 내 팔을 확 잡았다.

문신남이었다.

"왜 그러세요?"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데 우리랑 같이 놀지 않을래?"

"아니요. 괜찮아요."

"에이, 같이 놀자니까."

"선약이 있어서요."

무서웠지만 아닌 척 단호하게 대꾸했다.

안 그래도 답답해 죽겠는데 오징어들이 설치니 마음이 더 심란해졌다. 옆에 친구로 보이는 놈은 그냥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쳐다만 보고 있었다.

문신남은 내 팔을 놔주지 않고 오히려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담배 냄새와 음식 냄새가 섞여 코를 강하게 찔렀다.

"이봐, 예쁜이. 요즘 세상이 어느 때인데 이렇게 혼자 다니실까? 그것도 이렇게 쫙 빼입고 말이야."

"너 만나려고 한 거 아니거든. 이 양아치 새끼야."

쫄면 안된다. 오히려 이렇게 강하게 나가줘야 무시당하지 않는다.

"크크, 야 진강아 얘 봐라 말하는 싸가지하고는."

친구 놈 이름이 진강이인가 보다. 진강이란 놈은 내 쪽으로 다가와 속에 있는 시퍼런 칼을 보여주면서 조용히 읊조렸다.

"오늘 하루만 같이 놀아. 험한 꼴 당하기 싫으면."

머리가 복잡해졌다. 생각보다 더 질 나쁜 놈들이었다. 한두 번 해본 솜씨도 아닌 것 같았다. 요즘 괴물이다 헌터다 해서 다들 비상용 무기 하나씩은 들고 다닌다 듣긴 했는데, 그걸 협박용으로 쓰는 놈이 있을 줄이야.

예전 같았으면 이곳에서 범죄가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주변은 사람 한 명 없이 조용하다.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는 상황. 그렇다고 굴복하는 건 죽어도 싫다.

갑자기 오빠한테 배웠던 호신술이 생각났다.

머리를 굴렸다.

먼저 잡고 있는 팔은 순간적으로 비틀어 빼고, 앞에 있는 진강이란 놈의 낭심을 걷어찬 후 도망쳐야지. 실패했을 때의 위험? 그런 게 어딨어. 애초에 내 인생은 무대포였다.

"하앗!"

힘을 주어 팔을 비틀어 빼려 했으나, 눈치챈 문신남이 꽉 잡았다. 아무리 힘을 줘도 빠지지 않는다. 힘의 격차가 느껴졌다. 호신술은 통하지 않았다.

"이것 봐라. 반항하는데?"

짜악-

진강이가 뺨을 후려쳤다. 따가워지는 뺨과 울리는 머리에 정신이 없었다.

"씨발년이 분위기 파악 못하네. 여기서 죽고 싶어?"

"아씨- 꺼지라고 이 씨발놈들아!"

나는 고함을 지르며 온몸을 비틀었다.

문신남에게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을 때.

띠리링- 찰칵-

핸드폰 기계음 소리와 함께, 어두운 공간에서 두 남자가 걸어 나왔다. 한 명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근육질의 키 작은 사람. 또 한 명은 40대로 보이는 평범한 아저씨였다. 키 작은 사람이 핸드폰을 흔들며 다가왔다.

"왐마~ 세상이 요지경이 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런 쓰레기 같은 놈들이 튀어나온데."

"뭐야, 아저씨들은. 다치기 싫으면 가던 길 가쇼."

"우선, 증거 확보는 했고..."

"어이, 그거 뭐 찍은 거야. 일루 가져와봐."

진강이 나한테 향하던 칼을 저쪽으로 겨누며 말했다.

"내가 나설까?"

뒤에 있는 아저씨가 말하자 키작은 사람은 괜찮다는 듯 손을 올리며 진강의 지척까지 다가왔다.

"뭐... 뭐야! 멈춰! 썰어버리기 전에!"

진강의 위협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다가온 그는 앞에 뚝 서더니, 갑자기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쉬릭-

손을 뻗어 그의 손목을 비틀고 칼을 뺏는데 0.5초.

뿌드득-

팔을 탈골시키는데 0.5초.

절로 감탄이 나오는 깔끔한 동작.

그리고 나에게 날라오는 칼.

눈을 질끈 감았다.

푸욱-

"끄아- 아아악!"

살며시 눈을 뜨자 문신남의 팔뚝엔 시퍼런 칼이 꽂혀있었다.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는 두 양아치와 천천히 다가와 칼을 뽑아내는 키 작은 남자.

내 입이 벌어졌다.

이런 건 영화에서나 가능한 건 줄 알았다.

"요즘 세상이 어떤 시대인데, 칼 함부로 놀리다 광어회 된다."

"살... 살려주세요."

"생각이 있으면 경찰에 신고하거나 하지 않을 거야. 강간범으로 찍히기 싫으면. 그치?"

"네... 네 제발... "

"3초 센다. 내 눈앞에서 사라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팔을 부여잡고 도망치는 양아치들. 키 작은 남자가 어물쩍 거리며 서있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가씨도 위험한데 밤길 혼자 다니지 말고 얼렁 들어가쇼."

나는 멍하니 핸드폰을 켜 시간을 확인했다.

9시 10분.

사람 없는 텅 빈 공원에 있을 사람이라면...

"혹시 태경 오... 빠?"

"엉? 강설아?"

***

공원 옆 조용한 호프집.

과거엔 그래도 잘나가는 집이었는데 지금은 손님이 없다. 강설아, 구태경, 아저씨 이렇게 셋은 자리에 앉아 맥주와 간단한 안주거리를 주문했다.

"씨익- 그런 놈들은 고자를 만들어 놨어야 하는 건데!"

강설아가 씩씩대자 구태경이 웃으며 말했다.

"아서라, 두 놈 다 일반인들이라 이 정도만 해도 트라우마 생길 거야. 군인 신분이 아닌 게 이럴 때 좋다니까."

"그래도..."

"앞으로 혼자 나오게 하지 말고 숙소까지 데리러 가야겠다."

"근데 1초 만에 타다 딱! 하더니 순식간에 쓰러트리는 거 뭐예요?"

"크라브마가(kravmaga)라고 잠깐 배웠던 거야."

"잠깐이 아닌 것 같던데요. 우리 오빠 친구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었다니..."

"오빠랑 친하다면서 네 오빠에 대해서는 정작 잘 모르는구나?"

"네...?"

"아니야, 아! 인사드려. 도와주시기로 한 분이야. 모시느라 힘들었어."

구태경은 옆을 가리키며 아저씨를 소개해줬다.

아저씨는 강설아를 보며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최강수요. B급 헌터지."

B급.

아직 헌터제도가 정립이 되지 않은만큼 엄청나게 높은 등급이었다. 첫 각성후 헌터자격증을 발급받으면 찍히는 등급이 F.

고등급의 균열을 해결해서 인정을 받으면 차례차례 승급이 가능했다. 우리나라 기준 A급헌터는 5명 뿐이 안되며, B급도 32명이라고 알려져 있다. 설아는 한줄기 희망이 보이는 듯 했다. B급헌터가 도와주신다니.

"대... 단한분을 모셔왔네요?"

동네 아저씨 같이 생긴 B급 헌터라니 강설아는 놀랐다.

"물어볼 것이 있수다."

"네. 말씀하세요."

"아가씨 말에 따르면 그 오빠라는 자가 북한산에서 사라졌다는 거요?"

"확실한 건 아니에요. 그런데 그렇게 믿고 있어요."

"실종된지는 얼마라고?"

"5개월 조금 넘었어요."

둘의 대화를 듣던 구태경이 끼어들었다.

"균열 안에서 5개월 이상 살아남을 수도 있나요?"

고민하던 최강수는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사례는 없수.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그럼요?"

"균열이란 게 생긴지 일주일이 지나면 괴물이 튀어나오거든. 근데 그곳에 사람이 들어가게 되면 클리어 될 때까지 균열은 절대 닫치지 않아. 지금까지 정보에 의하면 북한산 근처에는 발견된 균열도 괴물도 없어. 만약 아가씨의 말이 사실이라 치고 발견되지 않은 균열이 있다면..."

어느새 자연스레 말을 놓은 최강수는 500c 맥주잔을 한 모금 마시며 이어 말했다.

"그 오빠라는 자가 살아있을 확률이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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