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를 찾아서. (2)
정신없이 일주일이 흘렀다.
뉴스속보 이후 가장 먼저 한 것은 경찰에 실종 신고.
엄마는 종일 경찰서에 들락날락하며 민원실 경사들을 들볶았고, 아빠와 나는 조사 경과를 들으며 각자의 일을 했다.
상황은 썩 좋지 않았다.
정확한 실종 시간을 모르니 CCTV 확인도 제한됐고, 휴대폰 위치 추적은 서비스 불가 판정이 떴다. 21세기 과학기술이니 뭐니, 영화에서 범죄자 찾을 때는 컴퓨터 몇 번 두들기면 위성이 찾아주던데 막상 현실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애초에 경찰들은 바쁜지 오빠의 실종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확실히 우리가 오는 걸 반기는 눈치는 아니었으니까.
세상이 떠들썩했다.
수많은 실종 신고가 빗발쳤고 각종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대화창은 '균열'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가장 웃기면서도 화났던 건 군대에서 온 한 통의 연락.
'군 인사법 40조'
실종 신고 때문에 오빠가 장교에서 제적됐다는 말이었다. 청춘을 나라를 위해 불살랐던 사람에게 정 없이 날라온 문자 한 통. 뒤늦게 연락 온 부중대장이라는 사람은 원래 군경 합동 수색을 했어야 하는데, 균열 통제 때문에 인력이 없단다. 세상에 대한민국 군인이 몇 명인데 저런 궁색한 변명이라니. 됐다고 했다. 군이고 경이고 다들 우리에겐 관심이 없었다.
망연자실.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오듯 느꼈던 행복들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마치 고물차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느낌이었다. 사실 실종자들의 수는 오늘 하루 교통사고 발생량보다 적을 것인데, 하필이면 왜 우리가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할까.
한 달이 지나고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균열이 있던 자리에서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괴물들이 튀어나왔다. 총기가 통하지 않고 이리저리 날뛰는 괴물들.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다.
전국에 대피령이 떨어졌다.
균열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세상에 종말이 온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있었다.
괴물들이 건물이나 문을 부술 정도의 힘은 없는지 집 밖이나 차에서 나오지만 않으면 안전했다. TV에는 빠른 시일 내에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대통령의 매번 똑같은 연설만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긴, 세상이 요지경이 된 게 저 아저씨 잘못은 아니지 않는가.
세상이 경직됐다.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오질 않으니 화폐가 돌지 않았고 활발했던 경제는 마비됐다. 전 세계의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신기한 게 매번 차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인간은 독했다.
띠링-
[ 희수 언니 : 설아 씨, 다친 덴 없죠? 카페 쉬니까 나오지 말고 집 안에 꼭 있어야 해요. 아직 마포 쪽은 안전한 것 같은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
[ 나 : 네 감사합니다. 언니도 몸조심하셔야 해요. ]
본의 아니게 알바도 쉬게 됐다.
희수 언니에게 답장을 보내자마자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도착했다.
띠링-
[ ??? : 혹시 강설아 번호 맞나요? ]
[ 나 : 네. 맞는데요. 누구세요? ]
[ ??? : 오. 맞구나! 반가워. 현이 동생 맞지? 나 구태경이라고 현이랑 동기야. ]
어? 기억난다.
OAC 인가?에서 만났다던.
오빠가 자주 말했던 친구.
나는 연락처에 '구태경'이라는 이름을 추가했다.
[ 구태경 : 현이가 연락이 잘 안되네. 평소 너랑 되게 친하게 지내던 것 같아서 혹시 소식 좀 알 수 있을까? ]
[ 나 : 우리 오빠 실종됐어요. 저도 지금 찾고 있어요. ]
띠리리리-
곧바로 전화벨이 울려왔다.
"여보세요?"
-그게 무슨 말이야! 현이가 실종됐다니?
"휴가 첫날부터 연락이 안 됐어요. 경찰에 신고해봤는데도 오빠 실종사건은 뒷전이네요."
-휴가 첫날이면, 음... 아! 현이 암벽등반하러 간 날인데.
순간, 그의 말에서 번쩍이는 스파크를 느꼈다.
"암벽등반이요!? 어디서요?"
-북한산 쪽으로 간다고 했던 것 같아.
"감사합니다!"
-응? 잠...
뚝-
친구들이 내게 붙여 준 별명이 있다.
무대포녀.
앞뒤 생각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것 때문이다.
여행 가고 싶으면?
계획 없이 곧바로 인천공항으로 달려갔었다.
창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땐?
바로 휴학 신청하고 일을 벌인 적도 있다.
사업 계획서도 없이 했으니 당연 쫄딱 망했지만.
내 최대 단점이다.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
오빠의 실종 장소가 북한산이라는 것.
부모님이 사는 곳. 뒷산이다.
다행히 가족끼리 몇 번 등반해본 적 있어서 지리는 잘 알고 있다. 둘레길부터 원효봉, 신선대, 여성봉, 오봉, 백운대 등등...
"분명 지금 생기는 균열들과 오빠의 실종이 밀접한 관련이 있을 거야."
이건 순전히 내 직감이다.
일단 사건 담당 경찰에게 문자로 이 사실을 알렸다.
물론, 기대도 안 했다.
곧 수색해보겠다고 하고 며칠 있으면 대충 얼버무리겠지.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법.
직접 찾아볼 생각이었다.
나는 긴급히 전화기를 끄고 나갈 채비를 했다. 화장할 시간도 없이 모자를 대충 눌러쓰고 패딩을 걸쳤다. 소형 캐리어에 간단한 의류와 생활용품들을 넣었다.
밖은 적막했다.
비도 추적추적 내렸다.
항상 사람으로 북적거리던 홍대입구역은 마치 유령도시처럼 썰렁했다. 이런 상황에도 입에 풀칠은 해야 하는지, 비상식량을 구하러 나왔는지 쓸쓸히 지나가는 차 몇 대가 보인다. 다행히 택시 하나를 얻어 탈 수 있었다.
"북한산으로 가주세요."
스마트폰으로 새로운 균열 정보를 찾아봤다.
괴물 위치 정보. 균열 위치 정보. 등등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아쉽게도 북한산에는 제보 들어온 게 없다. 어쩔 수 없다. 균열 위치를 찾는 방법은 아직까지 위성사진으로 찾는데, 붉은빛이 보이면 일단 스캔을 한 후에 정부에서 지역 통제가 들어갔다. 괴물이 나오기 전에 균열 주변을 큰 벽으로 둘러싼다는 게 현재 나온 대책.
위성사진 스캔 방법에는 함정이 있었다.
산속에서 발생하는 균열 등은 울창한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발견되지 않는 균열에서 나오는 괴물들 때문에 전 세계가 힘들어하고 있었다. 젖은 우산을 털고 뒷자리에 앉자 문자 도착 알림이 들려왔다.
띠링-
[ 구태경: 설아야. 혼자 찾으려 하지 말고 뭐든 도움 필요하면 연락해. ]
[ 나 : 네, 바쁘실 텐데 감사합니다. ]
[ 구태경: 아니야, 나 한가해. 이번에 연장 복무 끝나고 전역했어. 나도 너 오빠 관련해서 조사해볼 테니까. 힘내고. ]
"후우..."
답이 없는 답답한 상황에서 그나마 위로가 됐다. 고개를 돌리자 빗줄기가 유리창을 힘차게 때리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움직이는 거리에 두었다. 집안에만 박혀있다 보니 몰랐는데 그래도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괴물이 출연한 세상에서도 밥은 벌어먹고 살아야 하니까. 실제로 건물이나 차 안에만 있으면 안전하다고 했으니. 그래도 과거와 다르게 썰렁한 거리는 마치 앞으로 있을 재앙을 경고하는 폭풍전야 같은 느낌이었다.
어느새 북한산 입구에 도착했다.
부모님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마포동 자취방에서 절대 나오지 말라고 당부하셨고, 그렇게 알고 계신 게 나도 편했다. 지금부터 내가 할 행동은 누가 봐도 미친 짓이었으니까.
***
[안녕하세요. 데이브입니다. 요즘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죠. 무시무시한 괴물들과 그 괴물이 튀어나오는 붉은빛 균열! 그곳에 휘말렸던 실종자 중 한 명이 복귀했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그 주인공을 모셔봤습니다. 버나드 스미스 씨?]
[네. 균열에서 운 좋게 살아 돌아온 버나드 스미스입니다.]
[어쩌다가 균열 속에 들어가게 되신 건가요?]
[운이 나빴습니다. 평소처럼 차를 타고 출근하던 중에 앞에 공간이 갈라지고 그대로 빨려 들어갔죠. 끔찍했어요. 처음엔 현실을 부정했습니다.]
[혹시 그 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열대우림이랑 비슷한 느낌인데... 좀 달랐어요. 공간이 비좁았었거든요. 마치 붉은 상자 속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상자요?]
[지름 1km 정도 되는 커다란 상자를 생각하시면 돼요. 그곳엔 아침도 밤도 없었어요. 상자 주변에 불빛으로 시야를 확보했죠. 그 주변에는 생전 처음 보는 괴물이 있었고요.]
[어떻게 살아남으셨나요?]
[차 속에 있어서 살수 있었습니다. 생긴 건 무섭게 생겼어도 힘이 약해서 그런지 차 유리창을 못 깨더라고요. 배고프고 덥고 갈증 나고 죽기 일보 직전에 차 속에서 나왔어요.]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싸웠죠. 피 터지게요. 이상했던 건 제 힘이 뭔가 평소보다 세진 것 같았어요. 할만했거든요.]
[와. 정말 감탄스러운 용기네요. 그런데 싸우기 전부터 몸에 변화가 있었다는 말인가요?]
[네. 딱 놈들을 이길 수 있을 정도만큼의 변화요. 신이 내린 시련이라 생각했죠.]
[어떻게 나올 수 있었나요?]
[괴물은 총 5마리였어요. 다 죽이는데 일주일이 넘게 걸렸어요. 많이 다치기도 했죠. 그중 제일 큰놈을 죽이니까 내부에 보석 같은 결정이 있었어요. 신기해서 저도 모르게 손을 가져다 대봤거든요? 그러자마자 공간이 이그러지면서 순식간에 지구로 돌아왔어요.]
[신비한 능력이 생기셨다던데 언제부터 생긴 건가요.]
[지구로 복귀했는데 그 결정에서 너무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거예요. 참을 수 없었어요. 그냥 본능이었어요. 배도 고팠고. 냉큼 삼켰죠. 다음날 보니 전기 인간이 되어있군요. 다친 곳은 전부 회복되어 있었구요. 보세요. 손에서 전류를 방출할 수 있어요. 몇몇 괴물들을 상대로 실험해보니 확실히 손쉽더군요.]
[허억. 봐도 적응이 안 되는 능력입니다. 대.. 단하네요. 그럼 끝으로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여러분, 도전하십시오. 지구는 급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괴물의 침공, 정체 모를 균열, 아직 밝혀진 것은 많이 없지만 신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각성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터를 우리의 힘으로 지킬 수 있습니다. 인류도 변화에 동참해야 합니다. 함께해야 합니다. 도와...... ]
***
어느새 한 달이 흘렀다.
엄마는 몸 져 누워 입원했고, 아빠가 밤마다 돌보신다고 했다. 나는 연신내 모텔에 적을 두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북한산을 매일 등반했다. 처음에는 공포스러웠다. 울창한 나무들이나 거대한 바위들 뒤마다 TV에 나왔던 끔찍한 괴물들이 숨어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괴물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지독한 공포 속에서도 나는 계속 움직였다.
태경 오빠 말로는 우리 오빠가 사람이 다니지 않는 코스로 올라가는 걸 즐겼다고 했다.
일반 등반 코스부터 험한 코스까지 곳곳을 돌아다니며 찾아봤다. 그럼에도 오빠의 흔적이나 균열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최근 가장 핫한 이슈는 '헌터'.
초인류.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자들.
특별한 능력을 각성한 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버나드 스미스'
영국에서 나온 최초의 균열 생존자.
그의 인터뷰 장면이 유튜브에서 실시간 조회 수 1위를 차지했다.
[우리가 괴물을 잡을 수 있어!]
[재앙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어!]
절망에 빠졌던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찾았다.
실제로 버나드 이후에 몇몇의 생존자들이 능력을 가지고 귀환하면서 헌터에 대한 관심도는 더욱 집중됐다. 세계에서도, 국내에서도 생존자들을 주축으로 헌터를 육성할 계획이라 했다.
균열에 빠졌던 사람이 살아 돌아올 수 있다는 것. 내가 힘들어도 북한산 수색을 그만 둘 수 없는 이유다.
누구보다 강했던 오빠.
평범했던 사람들도 멀쩡히 생존해 돌아오는데 오빠가 죽었을 리 없다. 아니, 죽었다면 직접 찾아가 시체라도 확인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