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를 찾아서. (1)
마포구 동교동에 위치한 작은 카페.
개장한지 얼마 안 됐는데 최근 들어 손님이 많아졌다.
혼자 일하시던 사장님이 급하게 아르바이트를 구했고
단골이던 나는 냉큼 자리를 꿰찼다.
오늘은 테이크아웃 1+1 행사날 이라 오픈 시간보다 일찍 출근했다.
예쁨 받는 알바생이 되어야지.
"안녕하세요! 언니."
"설아 씨. 빨리 왔네?"
"바쁜 날이잖아요. 준비할 것도 많고. 후딱후딱 도와드려야죠."
"어유. 어쩜 저리 싹싹할까. 옷 갈아입고 나와요."
김희수 사장님. 올해 35살.
나랑 띠동갑이신데도 20대 같이 예쁘시다.
순수하게 생겼으면서도 섹시함이 묻어 나오는 건 나이에서 흐르는 관록일까.
보면 볼수록 감탄이 나온다.
우월한 유전자.
찰랑찰랑 생기 있는 머릿결.
원두를 블렌딩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꼭 고급 커피 광고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나도 나이는 저렇게 먹어야지.
외모도 출중한데 실력은 더 출중하다.
신기에 가까운 라떼아트부터 마카롱, 머랭 쿠키까지 직접 구워다 파는데 한 번 먹으면 끊을 수 없는 맛이 난다.
먹는 순간 그냥 단골행 티켓이다.
그러니 소문이 안 나려야 안 날 수 없지.
내가 일하니까 매출이 더 늘 거기도 하고. 크흠.
오빠랑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소개팅 한번 주선해봐?
음... 연상 좋아하려나. 오늘 한번 물어봐야지.
내가 도와줄 건 과일 씻어 두기, 키위 오렌지 깎아두기, 시럽 채워 넣기, 사장님이 테이스팅 하면서 쓰던 스푼들 닦기, 손님들이 쓰는 컵 설거지해주는 정도가 다다. 쉬워 보여도 주문이 밀리면 전쟁터나 다름없이 바쁘다.
그러나 나는 일한 지 1달밖에 안됐는데도 숙련돼서 엄청 빠르다. 사장님은 카페 일을 처음 해보는 나에게 경력자인 줄 알았다고 했다. 특히 과일 깎기는 어렸을 때부터 해와서 자신 있었다. 지금까지 깎은 과일들을 쌓으면 빌딩 하나 세울 수 있을 거다.
나는 화장실에서 카페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거울을 봤다. 음... 화장에 이상 없고, 옷도 단정하고, 얼굴도 예쁘고 킥킥, 아 머리! 가방에서 고무줄을 하나 꺼내 긴 머리를 포니테일 형식으로 깔끔하게 묶었다. 위생은 철저해야 하니까. 단정한 차림으로 미소 지으며 "어서 오세요" 하는 연습을 했다. 내가 봐도 매력적인 모습이 비치자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손 소독제로 손을 씻으려는 찰나,
띠리리리-
상당히 고전적인 벨 소리가 들려왔다. 나한테 온 전화다.
이씨- 나가야 하는데 누굴까? 아, 엄마구나.
"응. 엄마."
-딸~ 바뻐?
"오늘 행사 있어서 좀 바빠. 왜요?"
-왜긴, 오늘 니 오빠 휴가 날이잖아. 집에 올 거지?
"당연하죠. 오빠 휴가 날 이콜(=) 가족모임. 공식이잖아. 알바 5시쯤 끝나니까 버스 타고 가면 6시쯤 도착하겠다. 연신내 살고 있는 거 맞지? 막, 나 몰래 이사한 거 아니지?"
-얘는 농담도, 어쨌든 날씨 쌀쌀해졌으니까 단단히 챙겨 입고, 또 저번처럼 짧은 치마 같은 거 입고 오지 말고. 아 맞다. 저번에 사준 패딩은...
"힉, 벌써 손님 들어오셨나 보다. 엄마 나 끊을게. 이따 봐."
-어휴, 그래 이따 보자.
오빠와 나의 나이 차이는 7살.
내가 늦둥이 막내라 그런지 어렸을 때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
남매는 사이 안 좋고 맨날 싸운다던데.
우린 남들처럼 평범한 남매는 아닌가 보다.
사실 싸울 기회가 없었다고 해야 하나?
나이 차이도 많이 나거니와,
내 머리가 커갈 때쯤 오빠는 생도생활부터 장교 생활까지 쭉 집 밖에 나가살았으니까.
특이한 건 이거다.
거의 매일같이 안부 묻고 연락을 주고받는다.
일상 이야기, 고민 이야기, 연애 문제 등등 오빠랑 연락하면 재밌고 편했다. 친구들이 브라더 콤플렉스라고 놀리는데 절대 그런 감정은 아니다.
애초에 자주 볼 기회도 없었다.
그래도 가족끼리 한 달에 한 번은 꼭 봐야 한다는 부모님의 주장 때문에 간신히 얼굴은 보고 살았다. 센스 있는 건 올 때마다 꼭 선물을 챙겨오는 거. 마음에 쏙 들었다.
요즘은 부대 사정이었나, '팀 휴가'였나, 하여튼 뭔가... 때문에 통 나오지를 않았는데 오래간만에 벌어지는 가족행사다.
아무리 바빠도 빠질 수 없지!
밖에서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설아 씨, 주문 좀 받아줘요!"
"네~ 나가요!"
일하자 일.
***
화려한 식탁이다.
매콤해 보이는 닭볶음탕에 갖은 야채와 소스를 버무린 샐러드. 와인잔 4개와 대미를 장식하는 칠레산 까르비네 쇼비뇽까지. 우리 엄마. 김시연 여사는 항상 오빠만 오면 진수성찬을 차린다.
"지금 몇 시지?"
"음... 한 7시쯤 된 것 같은데요."
"이상하네. 니 오빠가 말도 없이 안 오고 그런 사람이 아닌데."
"연락은 해봤어요?"
"해봤지. 전화도 안 받고, 분명 아침에 통화했을 땐 온다고 했거든."
엄마가 걱정된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식탁을 두들겼다. 이런 만찬을 앞에 두고 기다리게 만들다니. 연락이라도 좀 해주지. 안 그래도 가족행사한다고 점심을 커피로 때웠더니 뱃속이 허전했다.
와인을 들고 병에 붙어있는 라벨을 읽고 있는 아빠.
신호는 가는데 받지는 않는 오빠에게 계속 전화를 거는 엄마.
에잇- 도저히 못 참겠다.
"길조야 길조. 이건 좋은 현상이에요!"
아빠와 엄마가 무슨 소리 하냐는 듯 궁금증 어린 얼굴로 쳐다봤다. 큼큼- 나는 목소리를 한번 가다듬고 당차게 의견을 피력했다.
"맨날 연락 꼬박꼬박 하던 오빠가 갑자기 연락이 안 된다. 심지어 저녁시간에!
그럼 뭐겠어요!"
"글쎄다."
"여자죠. 여자!"
"어머, 정말?"
엄마의 눈빛이 반짝였다.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넌 뭔가 알고 있구나' 하고 쳐다보는데, 죄송해요. 아는 거 없어요. 그냥 빨리 밥을 먹고 싶을 뿐.
"딱 보면 척이죠. 오빠가 어디 빠지는 게 있나요. 얼굴도 잘생기고! 몸도 좋고! 척하면 수석에! 수컷 향기까지! 분명 어떤 여우 같은 애가 딱 물었을 거예요. 우리 기다리지 말고 밥이나 먹어요. 나중에 물어보면 되잖아요."
"그래. 현이가 애도 아니고 일이 있겠지. 먹으면서 기다리자."
가만히 있던 아빠가 거들어주었다. 고마워요.
그날 우린 셋이서 맛있는 저녁을 먹었고,
하루 종일 오빠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
3일이 지났다.
학부 수업, 알바, 자취방. 반복된 일상 속에서 불안함이 싹트기 시작했다. 문자 내역을 들여다봤다.
[오빠 : 휴가 나왔다. 오늘 집에 들를게. 9:30am]
[나 : 오케이. 늦지 마라. 10:02am]
[나 : 오빠, 전화 좀 받아봐. 6:30pm ]
[나 : 왜 이렇게 안 와. 먼저 먹는다? 7:03pm]
[나 : 오빠 뭐 해? 08:30am ]
3일 전 아침 아홉시 반.
휴가 나왔다는 말을 끝으로 연락이 없다.
몇 번이고 시도했던 통화는 무시당했고, 나중에는 핸드폰 꺼짐 알림만 들려왔다. 혹시나 위치 추적이 될까 싶어 인터넷에 번호를 검색해 알아봤지만 핸드폰 GPS가 꺼져있어서 안된단다. 옛날 통신보안 어쩌고저쩌고했던 오빠의 말이 떠올랐다.
'사고라도 난 거 아니야?'
재수 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
걱정과 불안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쨍그랑-
"아얏-"
"어머, 설아 씨 괜찮아요?"
깨진 컵과 베인 손가락에서 흐르는 붉은 핏방울.
튕겨져나간 파편 조각들이 마음을 더 심란하게 했다.
"죄송해요. 언니. 빨리 치울게요."
"어떡해. 피 나는 거 봐. 조심 좀 하지. 일로 와봐요."
사장님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구급상자를 꺼냈다.
손가락에 연고를 발라주고 밴드를 붙여줬다.
손이 그녀의 마음처럼 무척이나 따듯하게 느껴졌다.
"오늘따라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네요. 무슨 일 있어요?"
"아... 집안 문제가 좀 있어서요..."
"아이고, 오늘은 행사도 없고 널널한데. 들어가서 쉬어요. 열도 나네."
"아니에요, 할 수 있..."
"아니요. 걱정돼서 그래요. 그거 알아요? 설아 씨 지금 엄청 우울해 보이는 거.
오던 손님도 다 떠나가겠어요."
"죄송합니다."
"다음에 더 열심히 부려먹을 테니까. 오늘은 이만 쉬어요."
빙긋 웃으며 말하는 사장님에게 감동해서 눈물을 왈칵 쏟을뻔했다. 사복으로 갈아입고 터벅터벅 자취방을 향해 걸어갔다. 시원했던 가을 공기가 텁텁하고 쌀쌀하게 느껴졌다. 끼니를 해결하지 못했는데도 입맛이 없었다.
자취방에 도착하고 어느새 저녁 7시.
으슬으슬 춥고, 머리도 아팠다.
이불 속에 기어들어가 리모컨으로 TV를 켰다.
적막한 공간에 누워있느니 방송 목소리나 들으면서 자야지...
라는 생각은 1초 만에 깨졌다.
7시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내용.
충격적이었다.
[뉴스 속보입니다. 현재 대한민국 곳곳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붉은빛 균열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제보된 균열은 속초시, 의정부시, 의왕시, 김제시, 포항시 총 5곳에서 발생했는데요. 전 세계적으로 동일한 현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취재기자 연결해서 자세한 소식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주희 기자?]
[네, 김주희 연결했습니다.]
[우선, 의정부시 소식부터 전해주시죠.]
[네, 앵커께서 말씀하신 대로 현재 의정부시 장암동 근처에 붉은 빛깔의 균열이 발생했는데요. 보시는 바와 같이 신비롭게 생겼습니다. 하지만 시청자 제보에 의해 위험성이 제기되고 있으니 조심하셔야 하겠습니다.]
[어떤 위험성이 제기되었나요?]
[시청자가 제보한 충격적인 영상입니다. 옆에는 몇몇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는데요.
그중 한 명이 균열에 손을 대자 그대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깜짝 놀란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있고요. 믿을 수 없는 모습에 인터넷에서는 "지구에 종말이 왔다." "조작된 영상이다." "외계인의 침공이다." 등등 수많은 댓글이 달리며 화재가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정부는 대규모 천재지변으로 파악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상태이며, 발생한 균열은 모두 경찰이 통제하고 있습니다.]
[해외에도 비슷한 사례 영상들이 들어오고 있죠?]
[네, 그렇습니다. 해외, 특히 후진국에서 피해 사례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NASA에서도 원인을 모르겠다고 발표한 상태고, 연구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총 4명의 실종 신고가 들어온 상태입니다. 전 국민에게 재난 알림 문자가 보내졌는데요, 균열을 발견하면 즉시 경찰에 제보해 주시길 바랍니다. 또, 근처에 가거나 주변에 생기면 다가가지 마시고 꼭 신고 후에 대피하시길 바라겠습니다. 현재 정부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열어 대통령을 중심으로 회의 중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김주희였습니다.]
[네, 보시는 바와 같이 균열의 위험성에 대해 알려드렸습니다. 시청자분들은 주의사항들을 숙지하시기 바라며,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곧바로 전해드리겠습니다.]
"이... 게 뭐야..."
다른 곳을 돌려봐도 '균열'에 대한 뉴스 속보밖에 없었다.
갑작스러운 오빠의 연락 두절.
뉴스의 내용.
둘이 오버랩 되면서, 싹튼 불안감이 '설마'라는 마음으로 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