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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10화 (10/128)

풀려가는 실마리. (3)

"꺄악-"

위기는 항상 예고 없이 찾아온다.

하물며 어떤 대비책도 세우지 못한 상태.

더구나 팔에는 화상을 입었다.

최악의 상황이다.

갈고리 같은 발톱으로 내 몸을 찍어누른 익룡 순식간에 비상했다.

팔을 지진다고 잡고 있던 소연의 팔을 무의식중에 놓았다.

"안돼요!"

날아오르는 순간.

그녀가 오른손으로 내 발목을 붙잡고 매달렸다.

왼쪽 팔은 통증이 심한지 추욱 늘어져 있었다.

지졌던 내 왼팔은 놈의 악력에 짓눌리자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물집은 터져 나왔고 붉은 피와 누런 진액이 흘러내렸다.

몸은 뼈가 뭉개질 정도로 꽉 잡혀있고 발톱에 몸이 꿰어져 있었다.

다행히 소연의 상황은 괜찮았다.

"놔!"

"싫어요!"

또 미련하게 고집을 부린다. 혼자라도 살아야지 같이 죽겠다는 건가.

발목을 흔들어 떨어뜨리려 해 보지만 아귀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발목이 으스러질 듯 꽉 잡고 있다.

"아프니까 놓으라고!"

"싫다구요!"

오히려 놓치기 싫다는 듯 왼손까지 동원해 꽉 잡는다. 오기를 부린다. 정신이 없었다.

어느새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떨어지는 게 무서울 정도로 높다.

고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 공간의 전체 모습이 드러났다.

끼아아악! 끼아아악!

왕과 수호신.

그 거대한 사체를 중심으로 수많은 익룡들과 지상에서 걸어 다니는 다양한 괴물들. 비현실적이었다. 우리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겨우 크르르 하나를 처리하고 생존 희망에 부풀다니. 크기만 봐도 크르르는 이곳 먹이사슬의 밑바닥이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언제나 생존을 위해 노력을 했지만 이번만큼은 힘들어 보였다. 마음속에서 깊은 절망감이 피어올랐다.

더없이 참담한 광경.

이제 체념해야 하나.

희망의 촛불이 아스라이 스러지려 한다.

아니다. 끝까지 해봐야지.

해도 지기 전에 잠깐 밝아지고, 촛불도 마지막까지 힘을 다하지 않는가.

내 육체가 놈들에게 뜯겨 내장기관에서 소화될 때까지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거센 바람에 풍선인형처럼 휘날리는 소연을 향해 소리쳤다.

"내 손을 잡아!"

내 발목에 매달린 채로 주변을 돌아보던 소연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어서!"

"왜요! 손잡으신 다음에 놓으려구요?"

소연히 뾰쪽하게 소리친다.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혼자 살기 싫다는 그녀의 심정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대로 가면 둘 다 죽는다.

[어떤 존재에게 큰 상처를 입으면, 그 존재를 이길 수 있도록 성장한다]

이 암담한 곳에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키워드다.

나는 힘겹게 발을 들어 올려 그녀를 내쪽으로 끌어올렸다.

그 후, 오른손으로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목을 낚았다.

소연이 싫다는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를 쳐다봤다.

"믿어봐."

몇 번 흔드니까 발목에서 손을 떼어냈다.

후에 그녀를 끌어올려 놈의 발톱에 손목부터 팔뚝까지 주윽- 그었다.

흘러내리는 붉은 피.

"끄아악-"

찰과상에 비명을 지르는 그녀의 손목을 손가락으로 두들겨 신호를 보냈다.

"제발..."

소연이 슬픈 표정으로 쳐다본다. 내가 하는 행동이 무슨 의미인지 아는 듯했다. 현명하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꼭 살아남아야 해."

어느새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잡고 있는 손목에 떨림이 느껴졌다. 나는 손에 주고 있던 힘을 천천히 풀었다. 허공 밑으로 떨어지면서도 그녀의 시선은 나를 계속 고정하고 있었다.

'부디 운이 따라주기를.'

높이가 있어 아프겠지만 운 좋게 살아남아 회복한다면 그나마 여기서 생존할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다. 다음은 내 차례다. 놈이 사는 둥지에 가까워져가는지 고도가 조금씩 낮아진다. 나는 주머니를 뒤적거려 크르르 어금니를 꺼내들었다.

한방에 깊게 찔러야 한다.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어 닭발같이 생긴 놈의 발을 향해 내리쳤다.

깡!

몸의 통증과 자세 때문인지 피부의 단단함 때문인지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마치 철문을 때리는 느낌이었다.

깡!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될 때까지, 한 곳만 집중적으로 내려친다.

깡! 깡! 깡!

피부가 점점 붉어지며 벗겨지기 시작했다.

좋다. 조금씩 효과를 보인다.

깡!

놈이 결국엔 비명을 지르며 나를 놓쳤다.

허공에 붕 뜬 나는 중력의 이끌림을 느끼며 밑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끼가아악-!

놈은 열받았는지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곧바로 떨어지는 나를 향해 다시 날라오기 시작했다.

아직 끝이 아니었다. 놈의 집착은 상상 이상이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머리를 굴렸다.

순간 소연이 크르르에게 투척했을 때가 떠올랐다.

놈의 약점이었던 눈동자. 외피에 비해 약했던 눈 부분.

이 상황을 벗어날 마지막 열쇠다!

나는 긴급히 주머니에서 크르르의 이빨을 꺼냈다.

놈의 눈을 정확히 맞춰야 한다.

시간이 얼마 없다.

예상컨대, 놈이 다가와 부리로 나를 쪼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3초.

눈가에 힘을 주었다.

놈의 스피드가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표적인 놈의 눈동자가 배율을 장착한 것처럼 커졌다.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갈수록 숨도 가빠져 왔다.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떨어지는 자세 그대로 팔을 힘껏 휘둘렀다.

제발...!

놈이 날라오는 궤도와 내가 던진 이빨의 궤도가 자석의 양극처럼 만났다.

끊어졌던 희망의 끈이 다시 연결됐다.

푹-!

끼아아아아-

놈은 놀랐는지 날개를 허우적거리며 발광을 했다.

순식간에 놈과의 거리가 멀어졌다.

떨어지는 가속이 완벽히 붙었는지 더 이상 배에 느껴지는 강렬한 느낌이 없었다.

바람이 얼굴을 새차게 쳤다. 지상이 가까워져 왔다.

이제 강화된 신체를 믿는 수밖에 없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눈을 감았다.

푸직- 쿠당탕-

떨어지는 속도 그대로 커다란 나무의 가지들을 부러뜨리며 땅으로 추락했다.

신기하게 충격이 거의 없었다.

마치 추락에 대한 내성이 생긴 것처럼.

하지만 놈의 발톱에 찢긴 상처와 화상 통증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끄윽-"

떨어진 곳은 처음 추락했던 장소처럼 외딴 숲이었다.

온몸이 아파서 일단은 쉬고 싶다. 몸에 힘을 풀고 누웠다.

나는 그대로 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끼아아아-

내 위를 날아다니는 몇 마리의 익룡들이 보인다.

쿵- 쿵-

땅이 흔들린다.

아무래도 놈들의 주거지 한가운데에 떨어진 것 같았다.

쉴 때가 아니었다.

상처에서 흐르는 피.

비릿한 냄새.

놈들이 눈치채고 다가올 수도 있다.

다시 긴장감이 올라왔다.

일단 회복을 해야 한다.

냄새를 숨기면서 몸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나는 신속히 오른손을 이용해 땅을 파기 시작했다.

놈들이 숲을 돌아다닌다면 밟고 지나갈 수도 있으니 거목 옆이 최선이다.

사람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파내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땅에 틀어박힌 돌이건 뿌리건 오른손으로 한 번 내지르면 다 부서져 나갔으니까.

파 놓은 구덩이에 들어가 흙을 다시 덮어 몸을 숨겼다.

혹시 몰라 얼굴에도 진흙을 발랐다.

최소한의 방어책은 마련했다.

이제 됐어.

자세는 불편하지만 참아야 한다.

통증이 느껴지지만 회복력을 믿어보기로 했다.

눈을 감았다.

나는 그렇게 천천히 의식을 놓았다.

***

처음에 의식을 차렸을 때 느꼇던건 저번에도 경험했던 열과 어지럼증이었다.

그리고 배고픔.

움직이면 열량소모가 심하기 때문에 억지로 잠을 청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른다.

예상은 들어맞았다.

비정상적인 회복능력은 내 몸을 완벽히 치유해 놓았다.

적응하는 것도 경험이 있어서인지 어렵지 않았다.

온 몸에 힘이 넘치고 육체에 활기가 돌았다.

"그나저나 소연이는 어떻게 됐으려나."

걱정이 된다.

지혜롭게 해쳐나가고 있을거란 생각은 하면서도 마음 한 켠이 불안했다.

그래도 내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

나는 그녀가 떨어진 방향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무사하기를 바라면서.

묵묵히 걸으며 생각에 빠졌다.

정확히 파악하진 못했지만 내 신체는 분명히 그 익룡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진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다. 이 곳에는 수많은 괴물들이 있었고 각각 어느정도 힘을 가졌는지 모른다. 천천히 실험해 볼 수밖에 없다.

***

한 달이 지난 것 같다.

사실 한 달 보다 더 지난 것 같지만 세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끝없이 움직였다.

몸은 가벼웠다.

그러나 마음은 무거웠다.

외로움.

혼자라는 것이 이토록 정신을 갉아먹을 줄은 몰랐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절감했다.

내 선택이자 결과였지만,

낯선 환경에서 소연의 존재감은 컸다.

맞다. 그녀는 찾을 수 없었다.

애초에 이 넓은 공간에서 찾을 수 있을리 없었다.

죽었을까?

혹시 시체라도 있을까 샅샅이 돌아다녀봤지만 나오는 것은 없었다.

괴물에게 먹혔다면? 뼈조각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목이 쉬었다.

"소연아!"

라는 외침만 수백 번을 넘게 내질렀다.

소리를 듣고 달려온 괴수들은 그 자리에서 해치웠다.

지상에 있는 괴물들, 하늘에 있는 익룡들. 다 고만고만했다.

뛰어올라 주먹 한 번만 내지르면 뼈가 부서지거나 장기가 터져나갔다.

셀 수도 없이 많은 괴물들을 처리했다.

짜증이 일었다.

아무도 몰라주는 공간에서 혼자 지구를 위해 싸우고 있다.

더군다나 지구로 복귀하는 법도 모른다.

왜 하필 내가 희생해야 하는가.

힘이 세지면 뭐 하나.

혼자 생존한다 해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입맛도 없었다.

배에서 보내는 신호들은 무시했다.

정 배고플 때는 생으로 물고기를 뜯어먹었다.

정말 맛대가리 없었다.

딱 배만 채울 정도로 먹고 수색을 시작했다.

놈들은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었다.

학살은 계속되었다.

오로지 소연을 찾으러 돌아다녔다.

내 귀에 신비한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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