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려가는 실마리. (1)
"드디어 됐어요!"
"뭐가?"
"10번 던져서 연속으로 정해준 표적에 전부 명중했어요!"
"그래?"
소연이 주먹을 쥐며 환호했다.
나는 시야를 집중해 정해준 표적을 확인했다. 100m 거리까지 10m 단위로 정해준 열 개의 표적. 열 개의 나뭇가지가 각 표적에 한치도 틀리지 않고 정확히 꽂혀있었다.
나도 특임대 당시 10m 표적과 20m 표적만 연습했었다. 정확히 던질 수 있을 때까지 걸린 시간만 3년. 매일 한 시간씩 꾸준히 연습했었다.
이것도 재능의 영역이다.
아무리 연습하고 연습해도 못하는 애들은 못했다. 진화된 신체를 고려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100m까지 정해준 거지, 솔직히 기대도 안 했다.
"굉장한데!"
"제가 말했죠! 누구 따라 하는 거 하난 자신 있다고."
"한번 내 앞에서 다시 던져봐."
선소연은 나뭇조각 열 개를 들고 다시 한번 힘껏 던졌다. 부드럽고 현란한 동작과 허리의 회전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졌다. 이토록 유연하고도 빠르고 강하게 던질 수 있다니.
특히 100m 표적에 정확히 명중할 때는 온몸에 전율이 올랐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면 앞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소연의 투척술이 예상을 뛰어넘었다. 나중엔 복싱이랑 특공무술도 알려줘야겠다.
"이젠 때가 됐어."
"네. 이제 저도 꼭 도움이 되겠어요."
소연은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오랜 기간 묵었던 주둔지를 떠날 채비를 했다. 목적지는 고지에서 봤던 커다랗고 공포스러운 괴물들이 누워있는 산. 그곳으로 가기 위해선 계곡을 따라 하산해야 한다. 낭떠러지로 뛰어내려 갈 수는 없으니까.
"저기 봐요. 멧돼지도 있고 노루도 있어요!"
"그러게. 괴물들 사이에서 잘도 살아남아있네."
"우리도 이곳에 온 지 꽤 된 것 같은데 괴물은 한 번밖에 못봤잖아요."
"그건 그렇지."
"혹시... 이곳에 남은 괴물이 그때 그놈 하나 아니었을까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놈 말고도 더 위험한 괴물이 있을 수도 있다. 전속력으로 달리면 금방 내려갈 수 있지만 경계를 철저히 하면서 내려가야 했다. 내가 앞장섰고 소연이 금방이라도 던질 수 있도록 양손에 나뭇조각을 들고 천천히 뒤따랐다.
쏴아아아-
어느정도 내려오니 흐르던 계곡물이 시원한 소리와 함께 떨어지고있는 폭포가 보였다. 사람이 살지 않는 동네의 대자연은 확실히 신비하고 아름다웠다. 소연이 풍경이 맘에 드는지 기지개를 쭉 펴면서 말했다.
"여기서 조금 쉬다갈까요?"
"잠시만."
진화된 감각이 말해준다.
이곳에 무언가 있다고.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 사이로 나는 미세한 동물의 울음. 나는 고개를 숙이고 폭포 밑을 내려다 봤다.
"놈이야."
크르르가 폭포 밑 물가 밖에서 노루를 사냥했는지 우적우적 뜯어먹고 있었다. 비정상적으로 쏟아있는 이빨에 덕지덕지 묻어있는 시뻘건 육편(肉片)이 비위를 상하게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흉측한 모습이지만, 이곳에는 이 모습도 자연스러운 모습이겠지. 화들짝 놀란 소연은 양손에 들린 나뭇조각을 꽉 쥐고 고개를 숙이며 속삭였다.
"이제 어떡할까요?"
아직 놈의 힘을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다.
몸으로 직접 부딪쳐 확인해야한다.
도전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심지어 그 도전이 목숨을 걸 정도로 위험하더라도 이곳에선 해야만 한다.
"우선 먼저 내려갈게."
"저는요?"
"여기 있다가 내가 신호줄 때 위에서 저격해줘."
"...괜찮으시겠어요?"
불안에 떨리는 목소리에 나는 소연의 어깨를 양손으로 살짝 잡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녀의 숨결이 확 밀려들어 왔다.
"소연아."
"네."
"쫄지마."
"아니.. 오빠가 위험할 수..."
"불안한거 알아. 그래도 그 때의 용기를 기억해. 네 자신을 믿는거야. 알겠지?"
"휴... 알겠어요. 조심하셔야해요."
선소연은 위에서 숨죽이며 대기했고 나는 힘차게 폭포 밑으로 뛰어내렸다. 대충 5m 정도 되는 높이임에도 불구하고 가볍게 착지할 수 있었다. 이제 몸을 완전한 내 것처럼 통제할 수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크르르르-
놈이 노루를 뜯던 것을 그만두고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봤다.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막상 놈의 앞에 있으니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그래도 자신은 있었다.
힘이 더 세지기 전에 소연에게 힘으로 조금이나마 밀렸던 놈이라면 지금 힘으로는 충분히 혼자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냥 본능이 말해줬다.
저놈은 나보다 약하다고.
그래 이놈보다 크고 강한 괴물들이 존재하는 곳에서 이놈 하나 처리 못한다면 앞으로의 미래는 없겠지.
'먼저 놈의 스피드를 파악한다.'
주변에 있는 돌멩이를 하나 쥐어 놈에게 던지며 도발했다.
푸슥-
힘차게 날아간 돌멩이가 괴물에게 닿는 즉시 잘게 부스러졌다. 움찔 거리지도 않는 것이 별 충격이 없는 듯 했다.
'역시 놈은 돌보다 단단해'
크아아!
놈이 열받은 듯 괴성을 지르며 돌진해왔다.
나는 눈가에 힘을 꽈악 주고 집중했다.
대상은 달려오는 크르르.
분명 번개 같이 빨랐던 움직임이 갑자기 슬로우모션 처럼 보였다.
'이정도라면 피하기 쉽다.'
발을 살짝 튕겨 우측으로 스텝을 밟았다.
놈의 뿔이 허공을 찌르는 순간 허리를 돌려 오른손 주먹을 강하게 내질렀다.
'스트레이트'
파앙!
마치 샌드백을 치듯 찰친 소리와 함께 놈의 거대한 몸집이 붕 떠 옆으로 날아갔다. 확실히 바위를 칠 때와는 다르게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놈은 내부에 큰 충격을 크게 받았는지 부들부들 떨었다. 곧 울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토해져 나오는 메스꺼운 액체.
진화된 힘이 먹힌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이 정도라면 예상대로다.
'소연의 저격도 실험해봐야겠어.'
과연 연습했던 그녀의 투척은 놈에게 얼마나 통할까. 폭포 위를 쳐다보며 소연에게 눈짓을 했다. 신호를 알아챈 소연이 냉큼 나뭇조각을 던졌다.
쓔웅- 탁!
나뭇조각이 놈의 가죽을 뚫지 못하고 떨어졌다. 놈은 비틀비틀 거리며 섣불리 다가오지 못하고 경계했다.
역시 나무로는 통하지 않나?
사실 아무리 날카롭다 해도 돌도 안 통하는 녀석이 나뭇조각에 먹힐 리가 없다.
쓔웅- 푹!
자존심이 상하다는 듯 또 하나의 나뭇가지가 날라왔다. 실로 대단한 집중력과 정확도였다. 이번엔 몸통이 아니라 놈의 눈동자에 정확히 꽂혔다.
크아아앙!
놈이 괴로운지 앞발을 들고 울부짖었다.
'그래도 외피로 덮혀져 있지 않은 부분에는 통하나 보군.'
지금은 나뭇가지지만 놈의 이빨이나 발톱을 이용하여 투척하면 소연도 나중에 충분한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마무리 해야 할 때다.
주먹에 힘을 주자 뭐든 부술 수 있을 것 같은 에너지가 느껴졌다. 땅을 박차고 달려들어 온 체중을 실은 타격을 놈의 안면에 먹였다. 각도는 정확했고, 지금의 내가 낼 수 있는 근력의 최대치였다.
뿌드득-
목이 뒤로 꺾이는 소리가 들린 후 무게를 이기지 못한 몸둥이가 땅바닥에 쳐박혔다. 미동이 없다.
피 한방울 없이 잡았다.
그때 그렇게 비참하게 당했던 것이 허무할 정도였다. 어느새 내려온 선소연이 다가와 엄지를 내밀었다.
"정말 대단해요."
기어코 이놈을 잡았다.
기분 좋은 충만감이 전신을 덮으며 자신감이 생겼다.
괴물을 때려잡을 수 있는 힘.
나는 내 주먹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화하는 곳이라니 이 공간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
***
궁금증이 풀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괴물의 발톱과 삐쭉삐쭉한 이빨을 뽑아내 물가에서 깨끗이 씻었다. 놈의 미끈거리는 침이 불쾌했지만 소연의 투척을 위해서다.
이빨 하나를 잡아 꽉 쥐어봤다.
돌처럼 뭉개지지는 않고 버텨준다.
생각보다 강도가 단단했다.
이것으로 외피를 갈라 도축해 뼈도 발라낼 수 있으면 무기의 폭이 한 층 더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오빠, 오빠!"
폭포 앞에서 소연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찾는다.
"무슨 일이야."
"여기 보세요. 혹시나 먹을 식량이 있나 물에 들어갔는데, 이걸 발견했어요. 이거 사람의 흔적 맞죠!"
소연이 물에 흠뻑 젖은 검은색 배낭을 집어 들었다. 혼란스러웠다. 마치 쥐라기 시대에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문명의 산물이 있다니.
"우리 말고 누군가 이곳에 온 사람이 있다?"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좀 더 찾아볼까요?"
"아니야, 잠시만."
뭔가 비릿한 냄새가 났다.
수산시장에서 썩어가는 생선의 냄새를 고농축 시킨듯한 구역질 나는 냄새.
눈을 감고 후각을 집중했다.
폭포 방향인데 여기서 왜 이런 냄새가 나지? 나는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 안으로 들어가 봤다.
"세상에. 여기 공간이 있어."
"정말요?"
소연도 뒤따라 오더니 인상을 확 구겼다.
"우욱, 냄새가 너무 심해요."
"들어가 봐야겠어. 후레쉬 줘봐."
소연이 가져온 후레쉬를 건네받은 나는 동굴 안으로 조심히 걸어갔다. 선소연도 코를 막고 호기심 어린 얼굴로 뒤따라왔다. 괴물을 잡아서인지 나름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말 사람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꽤 오래 지냈는지 진흙으로 만든 각종 도구들과 간단한 물품들 그리고 오래 지났는지
구더기가 들끓는 두개골 위에 살점, 간간히 보이는 뼈조각, 쌓여있는 썩은 장작과 숯이 보였다.
"처음 맡아봐요. 시체 썩은 냄새는"
"아직 백골화가 완전히 안됐다는 건 죽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아."
"그런 것도 판단할 수 있어요?"
"정확히는 몰라. 많이 잡아도 10년 안팎일 거야"
나는 앞으로의 생존을 위해 가방에 쓰던 도구들을 담았다. 이곳은 생존지로 삼을 수도 있지만 정한 목적지가 멀리 있기도 했고, 이런 역겨운 것들을 치울 자신이 없었다. 점토로 만들어 둔 그릇은 잘 씻으면 요긴하게 쓰일 것 같다. 소연도 시체를 피해 이곳저곳을 뒤지고 있었다.
"반가운 물품도 있군."
"어떤 거요?"
"속옷이랑 옷들이 꽤 넉넉하게 있어 세척해서 사용하면 쓸만할 것 같아."
"남성용이죠?"
"응"
소연이 갑자기 말을 멈추고 머뭇거린다. 내가 고개를 기웃거리자.
"저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그게..."
그녀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흘렸다.
"말해봐. 시원하게."
"혹시 속옷 한 세트만 주실 수 있으세요?"
"걱정하지 마. 우선 챙길 테니 같이 쓰도록 해. 민망해할 필요 없어."
"네..."
붉어진 얼굴의 소연을 뒤로하고 나는 말없이 수색을 계속했다. 대충 챙길 것들을 챙기고 가방 지퍼를 잠군 나는 소연과 함께 밖으로 나가려 했다.
"대충 얻을 건 얻었으니 가자."
"잠시만요, 여기 보세요."
"뭔데?"
"일기장인 것 같아요."
소연이 비위 좋게도 해져서 쓸모없을 것 같았던 시체의 옷을 뒤져 필기구와 다이어리 수첩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곳엔 우리의 궁금증을 해결해 줄 실마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