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육군대위, 귀환하다-7화 (7/128)

각성의 시작. (3)

자신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이해해야 할 사람은 본인이다. 시간이 흐르자 몸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었고, 우리는 서로의 힘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시도했다.

진화된 힘을 정리해 보자면...

[첫 번째로 시야]

250m까지 정확히 보였던 시각은 기존 그대로인데 '저걸 좀 더 자세히 보고 싶다' 하는 의식이 드는 순간 눈에 힘이 들어가면서 시각이 확대된다. 마치 저격총의 배율을 장착한 것 같다. 불편할 수도 있는데 때에 따라선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번째로 청각]

처음에는 시끄러워서 도저히 집중이 안 될 정도로 민감했는데 적응되니 견딜만했다. 큰 소리가 날 때마다 귀를 움찔 거리는 동물들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무언가 더 듣고 싶은 소리가 있을 때 귀를 집중하면 어느 각도에서 들려오고 어느 정도 거리인지 대충 짐작이 될 정도다.

[세 번째로 촉각]

라이터 불로 손가락을 살짝 지져봤다. 2초가 지난 후 아뜨뜨- 하면서 손을 치웠다. 그러나 화상 입은 것은 아니고 살짝 그을린 정도. 피부가 단단해졌길래 불에도 견딜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취약했다. 다음으로 계곡물에 손을 담가봤다. 조금 시원한 정도로 어제처럼 차갑지 않았다. 열(熱)과 냉(冷)에 어느 정도 저항력이 생긴 것 같았다.

[네 번째로 속도]

제동하는 법이 익숙지 않아 측정이 힘들었다. 보폭으로 100m의 거리를 재고 실험한 결과, 전속력으로 달릴 경우 약 3초. 인간의 한계를 넘어버렸다. 거의 치타의 스피드와 가깝다. 특히나 발달된 것은 점프력인데 대략 눈대중으로 5m 정도 올라갔다.

[마지막으로 육체]

힘을 정확히 파악할 수단이 없었다. 임시방편으로 주변에서 가장 단단해 보이는 것을 찾다가 커다란 바위로 가서 힘차게 주먹을 내질렀다.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바위는 가루로 변했고 손에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주먹에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갖가지 실험을 했는데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우리는 어제 노숙했던 돌 틈으로 돌아가 말린 쏘가리를 생으로 뜯어 먹으며 상의했다. 저번에 불을 피우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봉변을 당했기에 내린 판단이었다.

소연이 손가락으로 쏘가리의 살점을 조금씩 떼어먹으며 물었다.

"우리에게 왜 이런 힘이 생긴 걸까요?"

"그거야 나도 모르지. 중요한 건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목숨을 연장할 수단이 생겼다는 거야."

인간의 한계를 한참이나 벗어나 버린 힘. 그것은 이곳에 던져진 우리에게 주어진 실낱같은 희망이자 최선의 무기이다.

"그런데요, 오빠..."

소연은 생으로 먹는 쏘가리 회가 나름 먹을만 한지 오랫동안 오물오물거리며 고민했다.

"이 힘이 크르르랑 그놈들한테 통할까요? 저번에 보니까 힘이 장난이 아니던데."

"그러니까 실험해봐야지."

소연이 화들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설마 그걸 잡을 생각이에요?"

"세상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괴물 천지인 이 공간에서 힘이 생겼다? 분명히 이 힘을 이용하면 해답이 보일 거야. 맨날 도망만 다닐 수는 없잖아."

어느새 쏘가리 하나를 다 뜯은 나는 옆에 있는 다른 녀석을 들어 올렸다. 생각보다 맛이 괜찮다.

"물론, 이번엔 무리하게 혼자 싸우지 않을 거야. 저번엔 급하게 당했지만 이번엔 철저한 계획을 세운 후에 놈들을 먼저 칠 거야."

"그래도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나는 소연을 쳐다봤다.

그녀는 도망가라 지시했는데 다시 돌아와 괴물에게 덤볐었다. 덕분에 시간을 벌었고 운 좋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번엔 내가 목숨을 빚졌다.

"용기 있던데..."

"아 맞아! 저 내버려 두고 달려 나가시더니 한방에 나가떨어지시고, 얼마나 놀랐는 줄 알아요?"

소연이 눈을 흘겼다.

"판단 미스였어. 그놈이 그렇게 셀 줄 알았나 뭐."

"앞으론 그러지 마세요! 오빠 잃고 저 혼자 살았다고 안도라도 할 줄 알았어요?"

"네가 그토록 용기 있는 줄 알았으면 다른 지시를 내렸을 거야."

"......"

실로 놀라웠다.

웬만큼 훈련된 성인 남성도 경험이 없으면 총알이 빗발치는 작전에서는 얼음처럼 굳는다.

적에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한 공포.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리고 고막을 울리는 시끄러운 총알 소리와 전우의 비명소리.

쇼크가 오면 보통 선임이 뺨을 치고 고함을 지르며 정신을 차리게 한다. 그렇게 해도 몇몇은 정신을 못 차리고 흐느끼거나 주저 않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작전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리 없다.

때문에 경험이 없는 신입은 애초에 간단한 작전에 참여만 시켜 경험을 쌓게 해주고 중요한 작전에서는 제외한다. 변수를 없애는 것이다. 총탄만 해도 이 난리인데 하물며 공포스러운 괴물 앞에서 아무런 경험 없는 선소연이 목숨을 걸고 뛰어들었다.

공간은 어느새 고요해졌고 눈시울이 붉어져있는 소연의 모습이 보였다. 내리깔린 눈과 속눈썹 사이에 붙어 그렁이는 눈방울. 하긴 팔이 뜯길 때는 충격을 많이 받았을 거다.

"너 괜찮아?"

무의식중에 소연을 향에 손을 뻗으려 했으나 그전에 소연이 손을 들었다.

"잠시만요."

한 호흡 뒤에 소연이 다시 말했다.

"사실 무서웠어요.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두려운 생각밖에 안 나요."

"그래. 그놈이 여간 흉측하게 생겼어야지."

"그게 아니라요!"

"그럼?"

"......"

얘가 갑자기 왜 이러지 싶은 나는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눈가를 쓱쓱 닦은 소연이 한숨을 푹 쉬고 대화를 이었다.

"이제 괜찮아졌어요. 그냥 마음이 좀 싱숭생숭해져서."

"그래, 그래... 이런 일을 겪고 제정신인 것도 이상하지."

"..... 하여간 하나만 약속해줘요."

"무얼?"

"혼자서 무리하지 않기!"

나는 소연의 당찬 목소리에 피식 웃었다.

"알겠어. 앞으로는 네 도움이 많이 필요할 거야."

"꼭이요. 자 약속해요."

소연이 내미는 새끼손가락을 보며 빙긋 웃으며 마주 걸었다. 왠지 굉장한 아군을 얻은듯했다.

***

식사를 마친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근처 아름드리 튼튼해 보이는 나무에 다가가 손날로 나뭇가지를 쳐내기 시작했다. 선소연이 뒤따라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뭐 하세요?"

"무기를 만들 거야."

"또 창 만드시려구요?"

"아니. 네 꺼."

나는 떨어져 내린 딱딱한 나뭇가지들을 모아 반으로 쪼개 날카롭게 다듬었다.

"너는 근접에서 싸울 수 있는 박투술을 배운 적 없으니까. 투척술을 알려줄 거야. 앞으로 괴물과의 전투 시 비상시에 지원해주는 역할을 맡아."

"오빠 무기는요?"

"이곳에 우리 신체보다 강한 무기가 있을까? 놈들의 뼈나 발톱을 구하기 전까진 주먹으로 싸워야지."

"그놈들한테 통할까요?"

"저번에 네가 크르르한테 달려들었을 때 그놈이 조금씩 밀렸던걸 분명히 봤거든.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강해졌으니까 아마도 통할 거야. 자 됐다."

바닥에 간단하지만 날카롭게 만든 10개의 나뭇조각을 놓았다. 그중 하나를 올려들었다.

"시범 보여줄게."

표적은 전방 20m에 있는 큰 나무다.

정신을 집중하고 바라보자 배율이 달린 듯 정확하게 보였다. 손목에 힘을 풀고 전신 근육에 힘을 줌과 동시에 나뭇조각을 던지며 손목을 회전시켰다.

쑤앙- 탁!

빛살 같은 속도로 핑그르르 돌며 날아간 나뭇조각은 표적에 정확히 꽂혔다. 아니 꽂히다 못해 기둥에 구멍을 뚫고 속에 들어가 박혔다. 거의 총알이 날아가는 것 같았다.

"이게 회전 쓰로잉."

숨을 한 번 내쉬고 다시 집어 든 나뭇조각을 이번엔 좀 더 가까운 10m 거리의 나무를 표적 삼아 힘차게 내던졌다. 아까와 다르게 손목의 회전을 없게 해서.

쑤웅- 푹!

이번엔 조각이 나무를 뚫고 나와 뒤에 있는 흙에 박혔다. 세게 박혔는지 흙먼지가 강하게 피어올랐다. 나뭇조각을 던져 나무에 구멍을 내다니 확실히 비정상적인 힘이었다.

"이게 무회전 쓰로잉."

소연이 입을 벌린 채 손뼉을 짝짝 쳤다.

"우와! 대단해요!"

나는 손목을 휙휙 돌려 근육을 풀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투척술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어. 첫 번째 던진것처럼 회전을 넣는 방법은 거리도 많이 나가고 익히기 더 쉬워. 대신 파워가 좀 약해. 두 번째 던진 것처럼 무회전으로 던지는 것은 익히기 좀 어렵고 거리도 안 나오는 대신 파워가 세지."

"둘 다 익혀야 하는 거죠?"

"그렇지 상황에 맞게 써야 하는 거야. 방금 두 번째 던진 조각은 아예 나무 기둥의 구멍을 뚫고 지나갔잖아?"

"더 파워가 세서 그렇군요."

"그렇지. 그런데 실상은 구멍 뚫는 것보다 박히는 게 더 충격이 커."

"왜요?"

"구멍이 뚫린다는 건 그만큼 던지는 에너지를 표적에 전달하지 않고 지나간 거야. 표적이 받는 충격이 줄어드는 거지."

나뭇가지 하나를 소연에게 쥐여주었다.

"우선 10m 거리부터 연습해보자."

"네!"

"자신있지?"

"어렸을 적부터 누구 따라 하는 거 하난 자신 있었어요."

소연의 눈동자가 결연히 빛났다.

***

왜일까?

왜 이 공간에선 시간이 흐를수록 힘이 생기는 걸까.

우리에게 힘을 주는 저의(底意)가 무엇일까.

어떠한 방향도 제시해 주지 않는 공간.

인간이 생존하기엔 벅찬 공간.

이 공간의 목적이 무엇일까.

아무도 해답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괴물이라는 시련이 있고,

그 시련을 극복하지 못하면 죽음이라는 것.

최선을 다해 살아남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발버둥이다.

벌써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소연이 투척술을 연습한지도 날이 수십 번 바뀌었다. 어느 정도 수준이 올라올 때까지 주둔지를 변경하지 않기로 했다.

휘익! 탁!

표적에 정확히 꽂혔다.

선소연은 생으로 먹는 생선으로 끼니를 때우며 해가 뜨고 날이 지기까지 나뭇조각만 던졌다. 대단한 집념과 끈기였다. 재능이 있는 건지 바뀐 신체가 운동신경까지 높여준 건진 모르지만 성장 속도가 제법 빨라보였다.

옆에서 투척 연습을 하고 있는 선소연을 뒤로하고 나는 몸을 풀었다.

내가 익혔던 건 대인(對人)을 상대로 하는 특공무술이다. 총이나 칼을 들고 있는 사람을 빠르게 제압하는 실전 무술. 그러나 상대는 곰의 덩치를 가진 흉포한 괴물이다.

힘이 세졌다지만 막무가내식으로 공격하는 것은 효율이 떨어진다. 나는 복싱을 이용하기로 했다. 허리의 급속한 회전을 통해 주어진 힘을 극대화했다.

소연이 연습하는 동안 잽과 훅을 수천 번 반복했다. 상대했던 괴물을 떠올리며 섀도복싱을 하기도 했다.

놈의 대한 경계도 철저히 했다.

특히 그 거대한 익룡이 나타날까 항시 하늘에 청각을 집중했고 수면시에는 돌을 쌓아 입구를 막았다.

사실 수면을 취하지 않아도 피로는 쌓이지 않았다. 그래도 밤에는 시야가 낮보다 제한되기 때문에 억지로 수면을 취했다. 정신적인 피로의 누적을 방지하고 지속된 육체의 활동으로 배고픔이 빨리 느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연이의 잠버릇이다.

아침이 되면 버릇처럼 나를 껴안고 있다.

처음에는 쑥스러운 건지 눈을 뜰 때마다 화들짝 놀라더니 이제는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듯 껴안고 잔다.

뭐... 나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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