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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5화 (5/128)

각성의 시작. (1)

긴급한 상황이나 갑작스러운 사건, 사고는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작전 중에도 위기 상황에 맞닿았을 때 지휘관의 빠른 의사결정과 초동조치가 그 작전의 성패를 가른다.

간혹 신속한 보고를 한 후 선임 지휘관의 명령을 기다리는 게 최선이라 말하는 자도 있지만, 나는 그것을 그저 본인의 책임을 회피하고 부담을 덜기 위한 꼼수라 생각했다.

전파가 잘 터지지 않아 통신이 힘들 수도 있고, 현장에서 직접 보고 판단하지 못한 지휘관의 명령은 부정확할 때가 많은 등 변수가 있기 때문에 선 보고 후 조치를 좋아하지 않았다.

1분 1초가 아쉬운 상황에서 리더의 명령이 신속하고 정확해야 부하들도 안심을 하고 따르기 때문이다. 빠른 상황 판단과 지시,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휘장을 달은 자의 숙명이고 무게다.

만약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겠는 상황이 닥쳐도, 무언가 선택을 하고 밀어 붙여야 한다. 즉, 모션을 취해야 한다.

그 이후의 성과는 운과 실력에 맡긴다.

내가 가장 한심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황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 때리는 모습을 부하들에게 보여주는 지휘관이다. 그러한 모습은 사기 저하를 초래하고 작전은 실패에 가까워진다. 또한 리더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기 딱 좋다.

나는 현재의 상황을 직시했다.

먼저 선소연과 함께 싸운다?

아무리 신체가 발달했다지만 그녀는 훈련받지 않은 그냥 여자. 저런 괴물을 보고 함께 싸우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같이 도망간다?

맹수를 대할 때 등을 보인다는 것은 경계의 대상에서 먹이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오히려 각개격파 당할 수도 있다.

내 머릿속은 이리저리 흩어진 퍼즐 조각처럼 복잡했다. 그래도 무언가 해야 했다.

"쉿! 호흡을 멈춰."

놈이 지척까지 다가왔다.

선소연은 두려운지 내 팔을 꽉 붙잡고 덜덜 떨고 있었다. 우선 숨을 죽이고 완전히 다가올 때까지 대기해야 한다.

들키지 않는 것이 최고의 상황이지만 우리의 존재를 들킨다면 선공해야 한다. 선소연을 아래로 피신 시키고 내가 위로 유인한다. 놈의 앞다리가 짧고 뒷다리가 긴 것이 오르막길을 뛰는 것보단 아래로 피하는 것이 도망치기에 더 유리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후에 놈을 따돌리고 선소연을 찾는다.

선택은 끝났다.

이젠 어쩔 수 없다.

운과 실력에 맞기는 수밖에.

"대답하지 말고 들어. 만약 내가 놈을 공격하면 넌 즉시 아래로 도망쳐. 그리고 이런 바위틈같이 적당한 곳을 찾아. 그리고 거기에 숨어있어. 알겠지?"

내가 조용히 속삭이자, 선소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쉿!"

나는 오른손으로 만들어 둔 창을 꽉 쥐고 왼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불안해하는 선소연의 눈동자를 단호하게 쳐다봤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게 공포에 질린 것 같았다. 계속 쳐다보자 몸의 떨림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준비가 된 것 같다.

마침내 작전 개시의 순간이 다가왔다.

놈이 쌓아둔 벽돌 옆을 지나 우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크르르르-

놈의 눈빛은 절대 호의적이지 않았다.

놈의 눈에서 적의가 가득 참을 느끼는 순간.

"뛰어!"

냅다 소리친 나는 지축을 박차올라 온 힘을 다해 창을 놈의 입안에 쑤셔 넣었다. 선소연은 비명도 지르지 않고 신속하게 계곡 아래로 뛰었다. 좋았어.

크아아아!!

놈이 당황했는지 머리를 위로 치켜 들었고 꽂혀있는 창과 함께 몸이 허공에 붕 떴다. 엄청난 힘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창을 꽉 잡고 절대 놓지 않았다.

허리를 튕겨 놈의 등에 착지했다.

지금이다!

창을 힘껏 뽑았다.

푸악!

놈의 입에서 품어져 나오는 빨간 피.

좋아, 창이 괴물에게 통한다.

나는 그대로 놈의 등을 박차 위로 도주하려 했으나,

퍼억-

놈의 스피드는 상상 이상이었다.

순식간에 뒤로 돌아 커다란 앞발로 후려쳤다.

가슴에 엄청난 충격이 느껴졌다.

발톱에 몸이 찢겨져 나가는게 느껴졌다.

아팠다.

나는 맥없이 날아가 아름드리나무에 처박혔다.

우지끈-

나무가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부러져 넘어갔다.

"커어- 쿨럭, 쿨럭"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 감싸 올랐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몸에 힘을 줄 수 없다.

척추 쪽에 무리가 왔는지 다리와 허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도망갈 시간조차 벌지 못했다.

또 갈비뼈가 부러져 내부기관에 상처를 입힌 듯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이건 실로 말도 안 되는 힘이었다.

'저런 걸 어떻게 이기라고'

괴물은 자신이 포식자임을 알리듯 힘차게 울어젖히고 쓰러진 나를 향해 섬광처럼 돌진해왔다.

놈은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정말로 빨랐다.

급히 손에 쥐고 있던 창을 젖 먹던 힘을 짜내어 괴물을 향해 내밀었다. 팔에 힘이 없기 때문에 창을 쓰러져있는 나무에 받침대로 살포시 기대어 지탱했다. 그대로 들이 박혀 찔리길 기원하면서.

콰득-

돌진해오던 괴물은 바로 앞에서 멈췄다.

발톱을 휘둘러 가볍게 창을 부러뜨린 후 흉측한 이빨을 머리로 들이밀었다.

절망적이었다.

나는 죽기 살기로 괴물의 이빨을 손으로 잡고 못 오게 막았다. 이빨이 너무 날카로워 마치 칼날을 손으로 움켜쥔 것과 같이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절로 신음이 나왔다.

진화한 육체 때문인지 조금은 버틸 수 있었다. 그래도 힘의 차이가 너무 컸다.

서서히 밀렸다.

돌멩이를 부수는 힘이면 뭐하나.

괴물이 나를 비웃듯 그대로 이빨을 얼굴로 가져와 물어 뜯으려는 찰나-

"으아아아!"

선소연이 아래에서 힘찬 기합을 지르면서 달려와 괴물을 들이박았다. 괴물을 껴안고 최대한 나와 떨어트려놓겠다는 듯 꽈악 잡았다.

내가 미는 힘과 함께하자 괴물이 서서히 뒤로 밀렸다. 그러나 한 번 몸을 털어내자 그녀는 바로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내 손은 찢어져 벌써 걸레짝이 되어있다. 고통스러웠다.

괴물은 열받은 듯 나를 내버려 두고 선소연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힘차게 그녀를 향해 이빨을 들이밀었다. 저런, 멍청한... 도망가지 않고 결국 이렇게 되는건가...

다급해진 소연이 급한 대로 왼쪽 팔을 하나 내줬다.

우드득-

"꺄아아악, 꺄악!"

끔찍하게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괴물이 팔을 씹은 채로 머리를 튕기자,

맥없이 날라가는 그녀.

콰앙-

암벽에 부딪친 그녀는 기절한 듯 축 늘어졌다.

팔에는 구멍이 송송 뚫렸고 그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부딪친 소리를 보아 그녀의 상태도 나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완벽하게 힘을 빼놓고 식사를 하겠다는 태도였다. 생각보다 힘도 세고 빠른데 영리하기까지 했다. 이제 할 수 있는 게 없다.

크르르-

괴물은 천천히 선소연에게 다가갔다.

나는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그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목소리를 내어 괴물의 시선을 돌려보려 했지만 힉- 허파에 바람 빠진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살아나갈 생각을 했다니 헛웃음만 나왔다. 나는 믿지도 않는 신을 저주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푸르고 화창하니 죽기 딱 좋은 날씨는 아닌데...

'씨...발'

너무 억울했다.

난 왜 이곳에 떨어져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 곧 잔인하게 뜯어먹힐 선소연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녀는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저런 고통을 받아야 할까. 난 조용히 눈을 감고 죽음을 대기했다.

끼아아아악-

땅을 울리는 포효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중천으로 향하는 해와 하얀 구름 사이로 빨간 무언가가 지나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새였다.

새가 점점 커졌다.

지나가는 게 아니라 이리로 다가오고 있는 거구나. 지금 보니 새가 아니라 거의 15층 아파트 크기만 한 거대한 익룡이었다.

공룡시대에 떨어지기라도 한 것일까.

정말 가지가지 하는구나 이곳은.

힘찬 날갯짓을 하며 날아온 빨간 익룡은 순식간에 부리로 괴물을 낚아채더니 하늘로 올라갔다. 마치 자그만 벌레를 낚아채듯 신속하고 간단한 동작이었다.

'세상에. 저건 또 뭐야...'

나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다.

잠깐 의식이 돌아왔을 때는 밝았었고,

또 잠깐 의식이 돌아왔을 때는 어두웠다.

몇 번이 반복되자,

"허억-"

깊은 숨을 토해내며 정신을 차렸다.

어떻게 된거지?

고개를 돌려 몸 상태를 확인했다.

괴물의 이빨을 막았던 손바닥의 상처는 어느새 아물어 있었고 흐르는 피는 멎어있었다. 실로 엄청난 회복력이었다.

'그놈은 이곳에서 최상의 포식자가 아니었어.'

나는 의식을 잃기 전 분명히 인간 따위는 먹이 취급도 안 할 정도로 거대한 익룡을 봤다.

이런 공간에서 빠른 회복이라...

웃음이 나왔다.

마치 끝없는 고통을 받으며 절망하라는 하늘의 뜻이 아닐까. 그런 곳을 이승에서는 지옥이라고 부른다.

나는 근육에 힘을 주어 팔과 다리를 한 번씩 들어보고 허리를 펼쳐봤다. 부러졌던 뼈는 어느새 회복되었는지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래도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은 듯 온몸이 욱신거렸다.

심각한 것은 육체보단 정신이었다.

몽롱하니 앞이 어지럽게 보이고 독감에 걸린 것처럼 열이 들끓었다. 차갑게 이는 바람에 뼈가 삭을 것처럼 으슬으슬 추웠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래도 힘겹게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선소연이 있는 방향으로...

그녀는 의식을 잃은 채로 쓰러졌던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등산복은 넝마가 되어 붉게 물든 채로 굳어있었고 암벽의 능각에 긁혔는지 온몸은 상처로 가득했다.

놈에게 물렸던 가녀린 팔뚝도 흉터가 져있었다. 도망 가래도 바보같이 괴물에게 달려든 그녀를 저렇게 가만히 내버려 둘 순 없었다.

선소연을 들쳐 맨 후 하루를 묶었던 돌 틈으로 이동해 눕혔다. 어깨를 두들겨 정신을 차리게 해보지만 여전히 의식이 없었다. 다만 몸이 떨리고 열이 있는 것이 나와 같은 증상인듯했다.

우선 상처를 물로 씻어내기로 했다.

창상(創傷)에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못하도록 물로 헹군후 소독해야 한다. 다행히 구급약품 세트에 과산화수소수와 포비돈 요오드가 있었다.

그녀를 씻기기 앞서 내 몸을 씻기로 했다.

넝마가 된 옷을 벗어내고 덕지덕지 묻은 핏자국과 낱낱이 붙어있는 모래알을 깨끗하게 씻어냈다. 안 그래도 추운데 물이 차가우니 견디기 힘들었다.

몸이 계속 부들부들 떨렸다.

빠르게 세신을 마치고 소독약을 몸에 발랐다.

이제 소연을 씻길 차례.

찢어진 등산복을 살짝 들춰보지만 상처와 함께 굳은듯 살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아 난감했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지.

나는 그녀의 등산복을 찢었다.

새하얀 나신이 드러났지만 정신이 몽롱해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체온이 많이 높아졌는지 점점 어지러워졌다. 빠르게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다. 상처로 보이는 곳에 조심스레 물을 부어 수건으로 닦아내고 소독약을 덕지덕지 발랐다.

후에 가방에 있는 원피스를 꺼내 입혔다.

산속에 원피스라니 어울리지 않지만 당장 입힐 만한 옷이 그것뿐이니 별 수 없었다. 선소연은 의식을 잃은 채로도 추운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불을 피울 정신까지는 없다.

나는 임시방편으로 체온을 보존하기 위해 그녀를 끌어안았다.

죽을 병에 걸린 것 같이 머리가 아팠다.

귓가엔 화재 경보음보다 심한 이명이 끊임없이 들리고 심장 뛰는 속도가 빨라졌다. 세상이 팽이처럼 핑글핑글 돌았다.

잠깐만 쉬자.

나는 이리저리 날뛰는 정신을 내버려 둔 채 눈을 감고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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