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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4화 (4/128)

이상한 곳에 떨어졌다. (4)

나와 소연은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멍하니 괴기한 정경을 보고있던 그녀가 문득 말문을 열었다.

"저기... 제가 시야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산맥의 나무들이 이상하게 자세히 보이네요. 어라- 세상에... 집중하니까 더 잘 보여요!"

그 말을 들은 나도 눈가에 힘을 주었다.

정말이었다.

분명 내 시력은 250m 정도 거리의 표적을 육안으로 간신히 식별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매월 사격장에 나가기 때문에 정확히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정도의 거리가 바로 눈앞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정밀하게 보였다. 나무를 뒤덮은 껍질의 주름까지 세밀하게...

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정말이네."

"잠시만요."

선소연이 벌떡 일어나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이거야! 하더니 주먹만 한 돌멩이를 집어 들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있잖아요. 갑자기 들은 생각인데... 우리가 슈퍼맨처럼 갑자기 힘이 세져서, 이런 돌멩이쯤은 가볍게 부술 수 있다면요?"

하앗! 하면서 돌멩이를 꽈악 쥐었다.

부스스스-

그리고 돌멩이는 더 이상 돌멩이라 부를 수 없는 작은 모래알들로 변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소연의 얼굴에 불신의 빛이 서렸다. 돌을 쥐어 모래를 만들 정도면 힘이 얼마나 필요할까.

"장난이었는데... 진짜 부스러졌어."

나도 재빨리 돌멩이를 집어 들고 힘을 주었다. 순간 전완근과 이두, 삼두근이 폭발하듯 단단해지고 손에 평소 느껴보지 못한 엄청난 파워가 서렸다. 그리고 돌이 으스러지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나는 웅얼거렸다.

"... 괴물이 된 건가?"

"확실히... 맨손으로 돌멩이를 가루로 만드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차라리 다행이야."

"별로 놀라워하지 않으시네요?"

"저런 괴물들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살아남으려면 괴물이라도 되는 게 유리해."

어차피 이곳은 비상식적인 곳.

괴물을 봐서 그런지 이제 크게 놀랍지도 않다.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복잡한 게 밥 먹여주는 건 아니니까. 나는 손바닥에 있는 모래가루를 탈탈 털고 이동할 준비를 했다. 어느 정도 휴식했으니 이제 출발해야 한다.

***

나는 능선을 타고 천천히 내려오면서 다른 곳으로 이어진 능선들과 푹 패여진 계곡들을 주의 깊게 확인했다. 오를 때는 능선 길로 왔지만 하강할 때는 능선 길을 타면 안 된다.

특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산에서의 능선은 거동이 편하긴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끝없이 산맥을 헤맬 수 있다. 산 중간에 길을 잃었을 때에는 계곡을 찾아야 한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게 되면 방향을 잃어버려도 지상으로 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계곡에 물이 흐르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식수를 구할 수도 있고 산짐승들도 발견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나와 선소연은 계곡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거치고 강한 풀숲을 해치며 꿋꿋이 나아가던 중 먼 곳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조르르르-

선소연이 나를 바라보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가리켰다.

"죽으란 법은 없나 봐요. 저쪽인 것 같아요."

"잠시만!"

그녀가 움직이려는 것을 손을 뻗어 막은 후 속삭였다.

"자세히 들어봐. 물소리 말고 다른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아."

귀를 집중했다.

내가 먼저 조심스럽게 이동했고 그 뒤를 선소연이 따랐다. 물이 흐르는 계곡에 가까워 지자 숨을 죽였다.

꾸르륵 꾸르륵-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옆에서 그녀가 말했다.

"멧돼지 가족이네요. 물 마시러 나왔나 봐요."

이는 희소식이다.

멧돼지가 산다는 것은 이곳에 동물이 살아 나갈만한 식량 자원이 있다는 것이고, 멧돼지를 사냥하여 식량으로 삼을 수도 있다.

식수도 구했고 이제는 어두운 밤을 안전하게 보낼 공간을 찾아야 한다. 그런 공간이 안 나온다면 비트를 파고 땅속에서 숨어 안전을 도모할 생각이었다. 괴물의 존재를 확인한 이상 저번처럼 불을 피우고 공터에서 속 편하게 자는 것은 위험한 짓이다.

개울로 나간 우리는 물을 마시며 갈증을 해소했다. 그 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먼저 단단한 나무를 부러뜨려 창대를 만들고, 쇠로 이루어진 카라비너 하나를 늘여 나무 끝에 꽂아 투창할 수 있는 무기를 만들었다.

멧돼지 사냥을 할 수도 있고 혹시 모를 비상상태에 몸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확실히 손에 힘이 있다 보니 만들기는 수월했다.

멋들어진 창 하나를 완성한 후 물가 근처로 이동하자 계곡에 들어가 혹시 모를 식량을 찾고 있는 선소연이 보였다. 시시콜콜 지시하지 않아도 본인의 일을 잘 찾아서 하는 모습이 대견하다.

벌써 하늘은 어스름이 졌고 숲속이라 그런지 더욱 빠르게 어둑해지는 느낌이었다. 선소연은 식량 찾기에 실패했는지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우리는 계곡 아래를 따라 빠르게 이동했다.

점점 어두워지니 마음이 급해졌다.

"휴, 다행이에요."

속도를 높여 내려가다가 암벽 사이에 작은 공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성인 둘이 간신히 들어갈 만한 비좁은 틈이었다.

다행히도 더 컴컴해지기 전에 지낼 곳을 찾았다. 문제는 불을 피울 것인가 불 없이 숨을 죽이고 잘 것인가인데,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눈먼 장님처럼 당하는 것보다는 빛이 있는 게 낫겠다는 판단으로 모닥불을 준비했다.

틈 밖에 화덕을 설치하고 그 주변을 돌로 쌓아올렸다. 연기는 바깥으로 열은 틈 안쪽으로 들어오게끔 작업했다. 또 불빛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했다.

내가 불을 피우는 동안 선소연은 돌을 가져와 쌓았다. 울퉁불퉁한 돌은 손에 힘을 주어 부수니 나름 정교한 모양의 벽돌이 되었다. 그 와중에 돌을 예쁘게 깎아 베개 2개도 만들고 있었다.

불이 화르륵 피어올랐고 주둔지가 완성되었다. 해는 넘어갔고 급속히 어두워졌다.

선소연은 화덕 주변에 쪼그려 앉아 두 손으로 무릎을 두르고 몸과 옷을 말렸다. 돌 옆에 기대어 앉아 딱- 딱- 거리며 타는 불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짓는다. 마음이 심란하겠지. 나는 가방에서 빼둔 초코바 하나를 그녀에게 건넸다.

"오늘 저녁은 이걸로 해결하자."

"아- 네. 그럴까요."

초코바 하나를 반 쪼개어 사이좋게 나눠먹은 후 나는 좁디좁은 돌 틈에 들어가 천장을 보고 누웠다. 선소연도 말없이 들어와 내 옆에 나란히 눕는다.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마음이 찹착했다.

괴물이 있는 공간과 괴물이 되어가는 나라니.

잠에 빠지려는 찰나 그녀가 문득 말했다.

"주무세요?"

"아직."

슬쩍 옆을 보자 선소연이 잠이 안오는지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

너무 비좁았다.

팔에 느껴지는 그의 감촉이 신경 쓰였다.

그렇다고 피해서 벽에 붙어서 자기엔 벌레도 있을 것 같고 오빠도 가만히 있으니 그냥 가만히 있었다.

잠이 오질 않았다.

생소한 곳에서 남자랑 둘이 자본적은 24년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다.

무서웠다.

이제 이곳에 떨어진지 겨우 하루.

종일 정신이 없었다.

몸은 괜찮았지만 정신이 너무 피로했다.

정체 모를 커다란 괴물을 본 후 몸은 항상 긴장되어 있었다. 만약, 이곳에 혼자 떨어졌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고마워요. 오빠가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

나 때문에 이상한 공간에 휘말린 사내.

무뚝뚝하지만 그 사이에 다정함과 따듯함이 분명 존재했다. 발바닥에 따듯한 온기가 들었다. 나 혼자였으면 불도 못 피우고, 외로움과 두려움에 아무것도 못했을 테지.

"어서, 자라. 피곤할 텐데"

믿음직스러웠다.

낯선 곳임에도 안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의 목소리에 불편했던 느낌도 사라졌다.

어제에 비하면 아늑한 거지 뭐.

나는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날이 밝았다.

밤에는 다행히 아무런 일도 없었다.

숲을 살랑살랑 흔드는 청량한 바람 소리.

찌르르 울리는 미세한 곤충 소리.

시원한 계곡 소리.

그리고 지저귀는 새소리를 벗 삼아 기분 좋은 수면을 취하던 나는 서서히 정신이 들었다.

눈을 살며시 떴다.

옆에 오빠가 없음을 확인한 후 기지개를 한 번 쭉 펴고 어제 쌓아올려둔 돌무더기 밖으로 나갔다. 그곳에 계곡가에서 상의를 벗고 작살로 연신 물가를 내려찌르는 오빠의 모습이 보였다.

'우와-'

실로 감탄이 나오는 몸이었다.

탄탄한 가슴과 자잘한 등 근육.

매끄러운 복근이 균형 있게 자리 잡혀있었고 특히 복근 옆 외복사근이 잘게 쪼개져 등 근육까지 자갈밭을 이루고 있었다.

저건 엄청난 끈기와 의지를 가지고 단련하지 않는 이상 가질 수 없는 몸이다. 얼굴이 살짝 붉어졌지만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에게 다가갔다.

"뭐 잡은 거라도 있어요?"

그가 날 바라보더니 왼쪽을 향해 눈짓했다.

왼쪽 아래 돌 위로 커다란 장어 한 마리가 팔딱팔딱 뛰고 있었다. 여기도 개울가라고 민물고기가 존재하다니. 다행이었다.

"아래 개울가에서 찾았어. 여기 한 마리 더 있는데 기다려봐."

그는 심호흡을 하고 작살을 든 채로 집중했다. 빠르게 도망치던 장어는 작은 돌 틈 사이에 숨어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는 상태!

그는 순간적으로 팔을 휘둘러 재빨리 내리꽂았다. 작살에 관통당한 장어가 파닥거렸다. 와- 이것도 큰 놈이야.

우리는 재빠르게 식사 준비를 했다. 오빠가 다시 불을 피우는 동안 정확한 손질법을 모르는 나는 대충 손으로 대가리를 따서 계곡물에 씻었다. 그다음 다듬은 나뭇가지에 꽂아 꼬치구이를 준비했다.

타닥- 타닥-

듣기만 해도 입맛을 다시게 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닥불 위로 노릿하게 익어가는 장어의 기름이 떨어지고 그 기름을 원료로 불길은 더 세게 타올랐다. 생선 굽는 냄새가 새어 나오고 마음이 절로 들뜨게 되는 향이 퍼졌다.

꿀꺽-

이틀간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못해서인지 군침이 돌았다. 그가 꼬치구이를 들어 건넸다.

"자 너부터 먹어."

감사 인사를 하고 생선을 건네받아 조심스레 한 입 물었다. 입안으로 울려 퍼지는 따듯하고 꽉 찬 장어의 속살과 부드럽고 향긋하게 느껴지는 풍미가 감동스러웠다.

"와, 대박이에요. 빨리 드셔보세요."

그도 싱긋 웃더니 한입 베어 물었다.

우린 빠르게 주린 배를 채웠다.

정신 차려보니 뼈도 남기지 않고 예쁘게 발라먹어 아무것도 없는 나뭇가지를 핥고 있었다.

일 인당 일 장어라니!

간만에 포식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집 밥이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식사를 마치고 불을 정리한 뒤 이동 준비를 하려는 순간이었다.

스르륵- 스르륵-

계곡 건너편 수풀로 무언가 지나가는 소리.

그는 재빨리 세워둔 무기를 쥐어들고 어젯밤 쌓아둔 돌무더기 뒤로 몸을 숙였다. 죽어 있던 긴장감이 다시금 살아났다. 나는 재빨리 오빠 옆으로 바짝 붙었다.

"산, 산짐승이겠죠?"

"장어 냄새를 맡았나 봐."

설마설마하는 마음으로 벙커 위에 눈만 살짝 올려 확인했다.

크르르르-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멧돼지의 소리는 아니였다.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괴기한 울림이었다.

힘이 바짝 들어가고 몸이 굳었다.

새로운 산짐승인가?

이윽고 형태가 보이기 시작했다.

쿵- 쿵-

일단 크기는 알래스카에 사는 그리즐리 베어와 비슷한 풍채였다. 그러나 외형은 생전 처음 보는 말 그대로 괴물의 모습이었다.

곰의 몸통에 머리엔 기괴한 뿔이 세 개나 뻗어있고 날카로운 이빨은 울퉁불퉁 밖으로 삐져나와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더러운 침이 뚝뚝- 흘러내렸다.

발톱은 햇빛에 비춰 반짝이는 모습이 수천 번 담금질한 잘 벼려진 명검을 보는듯했다. 세상 어떤 화가를 데려와도 저 공포스러운 모습을 현장감 있게 묘사하지는 못할 것이라 확신했다.

흉악한 놈은 킁킁거리는 소리를 내며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방향은 정확히 우리가 있는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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